넷마블 ‘제2의 나라’는 정말 ‘지브리니지’일까?
지난 10일, 넷마블의 모바일 MMORPG ‘제2의 나라: 크로스 월드’가 정식 서비스에 돌입했다. 본작은 제목에서 보듯 레벨파이브 인기 IP ‘니노쿠니’에 기반하여 감성 가득한 지브리 화풍과 왕도적인 이세계 모험담을 표방하고 있다. 또한 개발사가 ‘리니지 2 레볼루션’을 만든 넷마블 네오인지라 일찍부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솔직히 유저 여론은 대부분 우려지만) 받기도 했다.
신작이 나왔는데 그래픽, 시나리오, 콘텐츠보다 BM(수익화 구조)에 관심이 쏠리는 건 참 난감함 일이다. 어쩌겠는가, 업보다 업보. 불과 보름 전 ‘트릭스터 M’이 거하게 논란을 일으켰으니 뭇 유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지사. 넷마블로선 엔씨소프트가 원망스러울지 모르나 스스로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는데 일조한 바가 크다. 이제와 달리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게임은 게임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하며 비판은 실제 현상에 근거해야 한다. 당장은 정식 서비스 3일차에 불과한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외 버전서 어떻다더라~하고 퍼졌다가 거짓으로 판명 난 소문도 적잖다. 그래서 본고는 이 시점에서 정석적인 체험기로 내기보다 차라리 논란이 되는 부분을 직접 살피고 따져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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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시 전부터 강조한 지브리 감성, 진짜로 있나
: 있다. 적어도 ‘니노쿠니’만큼은 있다. 필자는 작금의 각박한 세태가 지브리가 더는 작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할 만큼 중증 지브리 덕후다. 그런 면에서 레벨파이브 ‘니노쿠니’도 즐겁게 플레이했지만 솔직히 지브리 명작들에 견줄만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지브리의 작품성은 단순히 특유의 화풍이나 유려한 작화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제2의 나라’는 지브리보다 ‘니노쿠니’와 훨씬 닮았다. 지브리의 DNA는 간접적으로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니노쿠니’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제2의 나라’는 매우 훌륭한 변주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배경과 인물, 의상, 이마젠과 후냐, 적들의 디자인은 틀림없이 ‘니노쿠니’다. 즉 ‘니노쿠니’가 지브리 감성이 맞다면 본작도 맞을 테고, 아니라면 본작도 아닌 셈이다.
● 콘텐츠는 풍성한가. 어떤 즐길 거리가 있는지
: 할 건 정말 많다. 필자는 이제 33레벨에 불과하지만 엔드 콘텐츠 외에는 대부분 해금했다. 잃어버린 왕국을 구하고자 에스타바니아에서 고군분투하는 메인 퀘스트, NPC들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는 서브 퀘스트, 일퀘에 해당하는 제비상회 및 토벌 의뢰, 보상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성장 던전, 닥사 전용 카오스 필드, 연속 도전 콘텐츠 몽환의 미궁, 보스전인 차원의 경계 등등.
칭찬하고픈 점은 두 가지다. 론칭 시점에서 풍성한 콘텐츠를 만듦새 좋게 갖춰 놓아, 그간 개발팀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지 짐작케 했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콘텐츠를 배치하면서도 해금 시점과 안내문을 적절히 안배하여 진입 장벽을 최소화했다. 굳이 단점을 지적하자면 결국 이 많은 콘텐츠가 보여주는 방식만 다른 전투의 연속이란 것 정도. 물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 스토리와 퀘스트가 그냥 양산형 RPG 수준으로 저질인가
: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스토리가 아주 빼어나진 않다. 그래도 무난하게 잘 뽑힌 왕도적인 모험담이라곤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주로 콘솔 게임을 즐기고 리뷰도 작성하는데 그쪽도 ‘스토리가 뛰어나다’고 할만한 작품은 한 해에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무난하거나 나쁘다. ‘제2의 나라’는 모바일 게임임에도 콘솔 게임 기준으로 무난한 정도다. 이건 나름 칭찬이다.
모바일 게임 스크립트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못 쓴 건 정말 눈살이 찌푸려지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본작의 인물과 서사는 왕도적, 즉 뻔하긴 해도 그만큼 안정적으로 잘 쓰였다. 소위 캐붕이 일어나거나 세계관과 괴리감을 주지도 않는다. 무의미한 퀘스트가 없진 않으나 당위를 주려고 노력했다. 훌륭한 컷신도 많다. 그러니 모바일 게임도 대사 좀 읽으면서 즐기기 바란다.
● 그래픽이 정말 좋긴 한가, 최적화에 실패하진 않았나
: 저마다 보유한 기기가 다르다 보니 개인차가 있겠다. 필자는 갤럭시 노트 10+로 플레이 중이며 그래픽 옵션은 최상으로 두었다. 여타 게임의 포토리얼리즘과는 지향점이 달라 일대일 비교가 어렵지만 이만하면 어디서 부족한 그래픽은 아니라 본다. 물론 콘솔 게임과 비교할만한 수준은 못되지만 모바일 게임 기준에서 ‘제2의 나라’ 정도면 무척 만족스럽다.
프레임은 많아야 십여 마리의 마물과 뒤엉키는 메인 퀘스트에선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향후 수십 명의 유저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면 다를지도. 이 역시 제대로 벤치마크를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확언하긴 어렵지만, 이 그래픽에 이 정도 안정성이면 최적화로 욕먹을 정돈 아니지 않을까. 아, 배터리는 확실히 많이 먹는다. 여름인데 폰이 뜨거워져 곤란하다.
● 그렇다면 ‘원신’처럼 콘솔 게임의 기준으로도 호평할만한가
: 질문이 좀 그런데… 필자가 ‘원신’을 높이사는 게 아니라 모바일 게임의 어떠한 기준점이긴 한지라 언급했다. 그리고 대답은 NO다. 출시 전부터 유독 ‘원신’과 많이 비교되는 건 렌더링 방식에 따른 유사성과 서브컬처풍 디자인 때문이지 싶다. 실제로 둘은 매우 다른 게임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무의미하며 양쪽에서 유저를 뺏고 뺏기는 일도 그다지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아쉽게도)’제2의 나라’는 딱히 콘솔스러움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니노쿠니’ IP를 씌운 건 해외 진출에 지브리 감성이 필요했기 때문일 터이다. 본작은 오롯한 모바일 MMORPG이며 어디까지나 그러한 플랫폼과 장르적 한계 내에서 평했을 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평생 K-모바일 MMORPG를 안 할 사람이 이해해보려 해도 본인만 피곤할 뿐이다.
● 진짜 시작부터 끝까지 게임이 자동으로 알아서 돌아가나
: 앞선 답변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솔직히 이 논란 자체가 너무 해묵은 것 아닌가. 모바일 게임의 자동화 기능를 두고 이게 게임이네 아니네 물고 뜯은 지 거의 10년이 됐다. MMORPG란 장르가 모바일로 나오기 전부터 있던 논란이다. 물론 그간 콘솔 게임만 즐겨왔다면 퍽 이상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냥 모바일 게임만의 문법으로 인정하고 놓아줘야 할 때가 되었다.
‘제2의 나라’는 전투와 이동간 자동화 기능을 지원한다. 모바일 게임 유저에겐 익숙한 일이다. 필자는 완전 수동 K-모바일 MMORPG가 영원히 나오지 않는다는데 직을 걸 수도 있다. 다만 엔씨소프트 ‘리니지’류처럼 자동 사냥을 24시간 돌려야 버티는 구조는 아니다. 메인 퀘스트의 경우 토벌 목표도 15~20마리 내외라 집중해서 스토리를 밀 때는 그냥 보고 있어도 괜찮다.
● 필드 PK를 허용하는데, 막피나 통제에 취약한 환경 아닌가
: 단순히 운이 좋았는지 몰라도 막피를 당해본 적은 없다. 이제 겨우 론칭 3일차고 필자도 아직 33레벨이라 앞으로의 상황까지 내다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리니지’류처럼 핵과금러가 무과금러와 압도적으로 스펙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구조처럼 보이지 않고, 막피나 통제로 이렇다 할 이득을 취하기도 어렵다. 옆동네 불타는 걸 보고 강자들이 자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굳이 MMORPG의 필수 요소가 아닌 PK를 넣어서 논란을 자초한 건 사실이다. 앞서 공개된 로드맵을 보면 수도 킹덤처럼 뭔가 ‘리니지’ 냄새나는, 권력 지향적인 콘텐츠가 있기도 하고. 넷마블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해도 PK가 허용되는 한 막피나 통제의 위협도 상존하는 셈이다. PC 온라인 시절에는 PK가 되지만 평화로운 게임도 많았다. 본작 역시 그럴 수 있겠다.
● 어쨌든 돈 많이 쓴 사람이 이기는, P2W(Pay to Win)이지 않나
: 그렇다. 스펙업과 직결되는 거의 모든 걸 가챠로 뽑을 수 있다. 물론 이런저런 콘텐츠에 흩어 둔 어드밴티지를 다 챙기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P2W다. 다만 대만 서버서 봤다는 월정액 27만 원은 어떻게 계산했길래 그렇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27만 원짜리 상품은 없다. 흔히 ‘아인하사드’로 대표되는 버프형 과금도 계정당 1일 1회 구매 제한에 겨우 30분짜리다.
어차피 핵과금러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논다. 중요한 건 그 돈으로 얼마나 격차가 벌어지는가, 중/소/무과금 유저가 콘텐츠 자체에 접근하지 못하진 않는가다. 그런 면에서 BM이 ‘비교적’ 착한 건 맞다. 장비, 이마젠, 코스튬 등을 무과금으로도 획득 가능하다. 메인 스토리도 33레벨까지는 과금 없이도 잘 돌파했다. 꼭 천상계를 노릴 게 아니라면 일단은 돈을 쓰지 말고 즐겨보라.
● 친구가 없고 사귀기도 싫은데 킹덤 콘텐츠는 포기해야 하나
: …이건 사실 필자 본인 이야기다. 사람들이 K-MMORPG를 즐기는 건 기본 플레이가 무료라 접근성이 높은 까닭도 있겠으나, 어쨌든 다른 유저와 어울리고픈(그게 협력이든 경쟁이든) 사회적 욕구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MMORPG는 기본적으로 유저간 상호작용을 전제로 콘텐츠를 짜기 마련이다. 반면 필자는 게임에서까지 타인과 얽히고 싶지 않아 주로 콘솔로만 즐긴다.
‘제2의 나라’는 일정 부분까지 파티 플레이를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메인 퀘스트는 난이도와 내용 모두 솔로잉에 맞춰져 혼자 콘솔 게임하듯 즐기면 된다. 문제는 킹덤 콘텐츠인데, 혼자 만들고 놀래도 개설 비용이 캐시다(뿌리지도 않으면서!). 공용 킹덤은 40레벨까지만 이용 가능한데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결국 좋든 싫든 후반 콘텐츠를 다 즐기려면 사회성을 발휘해야 한다.
● 그래서 ‘지브리니지’가 맞다는 건가 아니란 건가
: 반감을 살지도 모르겠으나 필자는 ‘지브리니지’가 아니라 결론 짓겠다. 물론 ‘제2의 나라’는 그리 특별하거나 새롭지 않다. 이건 또 하나의 K-모바일 MMORPG다. 여기서 K-모바일 MMORPG라 함은 조롱하거나 지적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저 독자 여러분이 쉬이 상상할만한 어떤 공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신 그 범주 내에선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금의 ‘지브리니지’라는 멸칭에서 ‘리니지’는 ‘리니지 2 레볼루션’보단 ‘리니지M’이나 ‘리니지 2M’을 가리킨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범인이 저 둘이기 때문이다. 다소 민망스런 상대 평가일지 몰라도 그런 의미에서 ‘제2의 나라’는 ‘지브리니지’가 아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해줘야 게임사들도 조금이나마 더 차이를 두려고 하지 않겠나. 넷마블이 앞으로도 쭉 3N 최약체로 남길 바란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