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너즈 워: 백년전쟁, 컴투스는 슈퍼셀의 꿈을 꾸는가
지난 29일, 문제적 게임이 하나 나왔다. 바로 컴투스의 실시간 전략 대전 신작 ‘서머너즈 워: 백년전쟁(Summoners War: Lost Centuria)’이다. 왜 문제적 게임인고 하니 론칭 하루만에 컴투스 주가가 13.24% 빠졌고 오늘도 계속 떨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간 기대감만 무성하던 게임이 출시되고 주가 하락을 겪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낙폭이 꽤 크다. 이에 컴투스는 30일 곧장 100만 다운로드 돌파 소식을 알리고 오늘은 또 50억 원 매출 기록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해외 매출이 전체 80%가 넘는다고 강조했는데, 해외서 잘 벌고 있으니 국내 앱마켓 순위만 보고 당황하지 말라고 주주들을 달래는 모습이다.
그래서 진짜 게임이 별로인가?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나름데로 만듦새 좋다. PvP가 취향에 맞는다면 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 지향이라는 것도 납득할 만한데, 캐릭터 디자인만 봐도 그렇고 해외서 더 먹힐 장르기도 하다. 아무래도 ‘서머너즈 워’ IP라 수집형 RPG로 오해 받기도 하나 ‘백년전쟁’은 컴투스 스스로 정의했듯 실시간 전략 대전 게임이다. 여러모로 ‘서머너즈 워’보다는 슈퍼셀의 게임들과 더 닮았다. 바꿔 말하면 그리 빅 타이틀은 아니란 의미기도 하지만. 약간 MMORPG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 출시까지 공백을 메우고자 낸 느낌도 들고. 어쨌든 그냥 문제적 게임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백년전쟁’은 수십여 종의 몬스터와 스펠로 덱을 구성하여 전세계 유저와 실시간 대전을 벌이는 PvP 게임이다. 하나의 덱은 전, 후열 몬스터 넷씩 총 8명과 스펠 3개가 들어간다. 몬스터는 일반, 희귀, 영웅, 전설로 나뉘고 당연히 고등급일수록 성능과 효용성이 뛰어나다. 아직 론칭 초기라 몬스터가 많지 않은 대신 중복 획득 시 레벨업이 가능하다. 슈퍼셀의 그것을 떠올리면 얼추 비슷하겠다. 모든 몬스터는 액티브 스킬을 하나씩 지녔으며(가끔 고유 패시브가 추가로 있기도), 여기에 스펠 3개를 더하여 유저의 핸드로 들어온다. 전투 중 핸드에 드는 스킬(액티브 혹은 스펠)은 최대 네 개이며 무작위로 들어오므로 순발력 있는 대처가 요구된다.
다만 전설 등급으로 꽉꽉 채운 빅 덱이라고 꼭 유리하진 않다. 전투가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마나가 차오르는데, 고등급 몬스터의 스킬은 대부분 많은 마나를 요구하여 자주 쓰기 어렵다. 역으로 낮은 비용으로 아군 전체에 가속을 걸어주는 버나드는 일반 등급이지만 현 랭킹 1위 유저가 애용할 정도다. 스킬 효과가 워낙 다종다양해서 특정 아군을 지켜주거나 회복시키고, 적 전체에 디버프를 걸기도 하며, 아군의 마나 수급을 원활히 하거나 상대의 마나를 깎기도 한다. 마치 수집형 RPG처럼 여러 몬스터가 마주보고 싸우지만 게임을 하는 감각은 마치 TCG 같다. 적재적소에 스킬을 쓰는 것이 핵심이며 그러려면 핸드의 운도 따라줘야 한다.
참고로 ‘백년전쟁’은 자동화 기능을 아예 지원하지 않는다. 실시간 대전 게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실제 사람을 자동화 상태로 이길 만큼 스펙으로 찍어 누르는 게 불가능하고 그러도록 매칭이 잡힐리도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카운터 시스템인데, 설령 상대 덱이 더 강력하더라도 마구잡이로 스킬을 난사한다면 카운터로 혼내줄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가 스킬을 사용하는 걸 확인하고 재빨리 이쪽도 스킬을 쓰면 카운터 판정이 뜨며 내 스킬이 먼저 나간다. 위협적인 공격 스킬을 무적 같은 방어 스킬로 상쇄하거나 아예 CC기로 시전자를 기절시켜 조기 진압하는 슈퍼 플레이가 나오기도 한다.
카운터야말로 ‘백년전쟁’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므로 좀 더 예시를 들겠다. 수호 나찰이 불타는 채찍(체력이 가장 낮은 적을 공격하여 처치 시 상대 마나 2를 연소)으로 공격했을 때 마브가 임무 교대(아군 선봉의 방어력 강화 후 서로 자리 교체)로 막기, 운사가 불사의 기원(아군 전체에 면역과 실드)를 걸자 구미호의 정기 훔치기(적이 가진 이로운 효과를 강탈하여 아군 전체에 부여)로 빼먹기, 스펠 부패(적 전체에 지속 피해)를 스펠 전이(아군이 가진 해로운 효과를 적에게 전이)로 돌려주기 등등. 물론 이러려면 상대가 지닌 몬스터와 스펠의 효과를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 끽해야 수십여 종이므로 게임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외워진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면 서로 카운터만 노릴 게 아닌가? 필자도 게임이 출시되기 전 비슷한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게임이 나오고 보니 실제로도 다들 그러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면 적잖은 유저들이 마나 10이 가득 찰 동안 서로 스킬을 쓰지 않는다. 다만 평타만 주고 받아도 어느 한 쪽이 밀리기 마련이라 결국은 누가 먼저 스킬을 쓰긴 쓴다. 꼭 상대가 카운터에 적합한 스킬을 핸드에 쥐었다고 보장도 없고, 비교적 카운터 여지가 적은(주로 버프) 스킬도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전투가 지리멸렬해지진 않는다. 그래도 기본 스펙이 좋은 쪽이 평타도 오래 버티므로 ‘니가 와’를 시전하기 유리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카운터의 또다른 미묘한 점은 턴제가 아닌지라 스킬 발동 시점과 카운터 시점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무슨 뜻이냐면, 똑같은 카운터 판정이라도 얼마나 빨리 누르는지에 따라 적의 공격 스킬을 맞기 전에 방어 스킬을 쓰기도 하고 얻어맞고 쓰기도 한다. 따라서 적이 무슨 스킬을 쓰는지 보고 머리를 굴린 후 카운터하다 늦는 경우도 나온다. 반대로 너무 빨리 눌렀다가 카운터로 날린 정기 훔치기가 적중한 후 적이 버프가 걸어서 허탕만 치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카운터 판정 자체의 범위는 상당히 여유롭다는 방증인데, 그 안에서 최적의 순간을 포착하려면 뇌지컬과 피지컬이 함께 요구된다. 이게 재밌기도 하지만 살짝 피곤하다.
컴투스가 진짜 우려해야 할 부분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 네트워크 환경이다. 상술했듯 ‘백년전쟁’의 카운터 시스템은 무척 예민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칼같이 카운터에 성공해야 아군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백년전쟁’은 글로벌 서비스 중이다. 세계 만국의 유저들과 경쟁한다는 게 셀링 포인트다. 문제는 이렇게 먼나라 이웃나라 매칭하다 보면 네트워크 지연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 역시 필자가 출시 전 인터뷰서 지적한 바 있고 괜찮다는 답변도 받았으나 실상 별로 안 괜찮다. 매칭되는 국가와의 거리를 고려하면 분명 준수한 편이고 뛰어난 기술력인 건 맞다. 그저 현재의 카운터 시스템이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예민해서 탈이다.
이만하면 게임의 핵심은 다 훑었으니 나머지를 보자. 사실 나머지랄 게 별로 없다. ‘백년전쟁’은 오롯이 PvP에 집중한 작품이다. 싱글 모드로 점령전과 현상수배가 있는데 둘 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거나 하진 않다(정말 좁쌀만큼은 있지만). 일종의 묘수 풀이처럼 특별한 스펠을 사용하는 적 AI를 상대로 승리하고 보상을 챙기면 종료다. 재차 도전할 유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회성 콘텐츠고 분량도 적다. 도전 모드로 결계전이란 건 쌍방이 특정 제약을 걸고 벌이는 PvP다. 이외에 룬 제작소, 임무 의뢰소, 마법 상점 같은 것들은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지녔다. 작품의 전체적인 콘텐츠 규모를 어림잡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담백하다면 담백하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과금 구조(Business Model, BM)다. ‘백년전쟁’은 PvP가 전부인 게임이다. PvP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덱이 좋아야 하고. 여기서 좋다는 건 ‘상대적으로’ 좋아야 한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고심해서 덱을 맞췄더라도 상대의 덱이 더 강력하다면 결과는 패배뿐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백년전쟁’의 과금 압박은 그리 심하지 않다. 게임을 성실히 플레이하기만 해도 웬만한 일반~영웅 등급 몬스터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옆사람이 과금을 엄청 했다면 더는 경쟁이 성립하지 못한다. 매치메이킹이 계속 비슷한 수준의 유저를 잘 골라줄 수도 있지만 늦던 빠르던 과금의 갈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면 몬스터는 어떻게 얻느냐, 물론 주된 방법은 가챠(랜덤 박스)다. 대전으로 얻는 별, 싱글 모드 보상, 일일 퀘스트, 출석 체크, 도전 과제 등으로도 수급 가능하지만 당연히 수량이 제한된다. 무엇보다 단순히 플레이하는 걸 넘어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앞서 전설 등급만으로 채운 빅 덱이 유리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게 전설 등급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전설 등급은 스킬의 효용성이 엄청나기 때문에 한둘 넣은 덱과 없는 덱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그런데 무과금으로 전설 등급 얻기가 너무 힘들다. 골드 5 달성하면 확정 보상으로 하나 주는데, 골드 5면 현 시점에서 상위 4% 안쪽이다. 아, 15일차 출석 보상으로 또 하나 받을 순 있다.
게임이 TCG 느낌이 나는만큼, 이 장르는 어느정도 P2W(Pay To Win)이 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용인되기도 한다. 무과금인 내가 1,000만 원 쓴 사람의 덱을 쉽게 이기면 그것도 문제다. 그래도 이를 보정해줄 우회로는 필요하다. 가령 ‘하스스톤’을 보면 돈이 거의 안 드는 날빌로도 꽤 높은 승률이 나오고 안 쓰는 카드를 갈아 전설 카드를 장만하기도 한다. 반면 ‘백년전쟁’은 일반~영웅 등급만으로 뭘 해보는데 한계가 명확하다. 무과금으로도 할 수는 있게 만들었지만 과금 유저와 보조를 맞추며 함께 가는 그림이 안 나온다. 아무래도 리세마라로 전설 하나쯤은 뽑고 시작하는 걸 가정한 듯한데, 필자는 무과금에 노 리세마라이며 운도 없는 편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건 상품이 너무 큼직큼직하다는 점이다. ‘백년전쟁’은 마찬가지로 PvP 중심인 슈퍼셀의 여러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역력하다. 그런데 이들 게임을 해보면, 계정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몇 천 원짜리 소과금 고효율(처럼 느껴지는) 상품을 은근히 건넨다. “이거 함 잡숴봐” 같은 거다. 여기에 필자 같은 구두쇠도 비교적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나중에 보면 지출이 꽤 크다. 그런데 ‘백년전쟁’은 고대 소환 패키지 1이 6만 원, 고대 소환 패키지 2가 12만 원 가량이고 솔직히 구성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이런 식으로 무과금 유저를 보호하나 싶을 정도로 과금 효율이 별로다.
글이 길어졌다. 정리하자면 ‘백년전쟁’은 해외 지향인 컴투스 신작답게 천편일률적인 양산형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실시간 전략 대전 게임으로서 완성도가 준수하고 나름의 특색도 갖췄다. 하지만 (마치 슈퍼셀 신작이 거의 얼리액세스 상태로 출시되듯)콘텐츠가 PvP뿐이고 그나마도 변주가 없어 조금은 미완성된 게임처럼 느껴진다. 아직은 적은 유저풀 속에서 며칠 열심히 하다 보면 무과금 유저가 넘을 수 없는 전설 등급의 장벽이 나타난다. 무과금 유저를 버티게 해줄 각종 보상도 다소 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돈을 갈퀴로 쓸어 모을 것 같진 않은데 돈 없이 하기가 편치도 않은 미묘한 BM이다. 이런 장르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해보는 건 괜찮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