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앱 결제 모델을 떠나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다, 월드 오브 데몬즈
월드 오브 데몬즈는 베요네타 그리고 니어: 오토마타로 강한 인상을 남긴 플래티넘 게임즈의 신작이라는 점. 그리고 모바일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시선을 모을 만한 타이틀임은 분명했다.
사실, 월드 오브 데몬즈는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신작은 아니다. 2018년에 DeNA의 퍼블리싱으로 첫 선을 보인 바 있는 월드 오브 데몬즈는 당시에 플래티넘의 모바일 도전작으로도 소개 되기도 했다. 2018년 여름에는 필리핀 등에서 소프트 런칭까지 진행하기도 했으나, 실제 글로벌 출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전 세계 시장에 게임을 선보이기 이전에 월드 오브 데몬즈가 문을 닫는 결정을 내려서다.
앱스토어에서 완전히 게임이 삭제된 것이 2019년 1월이니, 소프트 런칭 이후 서비스 종료까지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비스 종료 당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게임이 다시 나온 지금에 와서는 판단하기에 이유는 명확하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수익 모델이 즐거운 경험까지 이어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데몬즈의 빠른 서비스 종료는 게임 전반의 설계로 인한 것에 가깝다. 기본 무료 플레이라는 점. 그리고 인앱 결제라는 BM이 게임 전반의 경험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유가 기인했다. 요괴를 전투에 활용한다는 방향성. 액션의 설계에 있어서 BM을 중심으로 게임이 설계되었기에 나온 결과물에 가깝다.
최초 공개 당시의 스크린샷을 보면, 비주얼은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다른 물건이 됐다.
과거의 월드 오브 데몬즈는 게임에서 스킬의 역할을 담당하는 ‘요괴’를 가챠를 통해 주로 수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게임 내에서도 요괴를 얻을 수 있지만, 주 수급처는 수익 모델을 한 번 거쳐야만 하는 구조다. 여기에 극단적으로 간소화된 조작 / 공격력 등으로 대표되는 능력치 구조 / 비동기화 PVP / 무기 강화 등에서 사용되는 재화들까지. 플레이어들이 게임 자체만을 오롯이 즐기기는 어렵게 짜여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지난 4월 2일. 애플 아케이드로 출시된 월드 오브 데몬즈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전무하다. 애초에 애플 아케이드에서 인앱 결제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 있어서다. 따라서 플래티넘은 과거의 월드 오브 데몬즈 깊숙히 영향을 미쳤던 BM을 제거하고 게임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가챠의 삭제. 그리고 게임 디자인의 부활인 셈이다.
물론, 오오카미를 떠올리게 하는 비주얼은 그대로 유지됐다.
공격은 적에게 가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이루어졌기에 별도의 조작이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대신 조작의 영역을 사전에 설정하는 ‘요괴’들을 배치하고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플레이 화면에서 요괴 스킬 버튼이 세 개만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가챠를 통해 얻은 요괴의 스킬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 액션이 아니라 요괴를 어떻게 육성하고 수집하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요괴를 수집하는 게임에서 액션을 메인으로 두는 게임으로 방향성이 전환됐다. 대신 복잡한 조작을 넣기보다는 간소화된 버튼과 조작으로 다양한 액션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다. 플래티넘 게임즈가 액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방향성이 반영된 부분이다.
자동이 아니라 조작을 강조하는 형태로의 변화다. 패드 UI도 충실히 지원한다.
플래티넘은 공격 버튼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액션이 파생되도록 게임을 다시금 설계했다. 버튼을 연속해서 누르는 것을 기반으로 한 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캐릭터가 성장할수록 새로운 조합을 제공하는 형태로 액션의 폭을 넓혀나간다.
타이밍에 맞춘 회피 또한 게임 내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다. 정확한 타이밍에 회피를 하면 추가 공격 기회가 주어지며, 일종의 카운터로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수의 적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템포가 빠르지는 않지만 액션은 복잡하고 다양하게 흘러간다. 꾸준히 공격을 해야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요괴의 스킬까지 사용하며 전투 자체에서 빠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패턴을 보고서 공격과 회피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단순히 쿨타임마다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연계 기술’이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요괴 스킬 간의 시너지를 낼 수 있어서다. 개별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보장하고 별도의 연출까지 들어간다. 하나의 스킬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지 진행 과정에서 적들이 일회성 스킬까지 획득하니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진다. 일종의 전략 영역이자 게임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으로 작동한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요괴들을 고려해서 사전에 요괴를 덱에 편성할 수도 있다. 아니면 강력한 요괴 둘을 편성하여 고정된 연계 기술을 가진 채로도 전투를 이끌어나가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전투에는 최대 캐릭터 둘을 들고갈 수 있으니, 각자의 전투 방식에 맞춘 스킬 세팅도 가능하다.
과거 전투력을 반영하던 요소가 전략의 영역이 됐다고 하겠다.
이외에도 스테이지에 배치된 특정 오브젝트를 파괴하거나 획득하는 과정에서 요괴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구성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가지고 있는 요괴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 지를 파악하고, 더 나은 보상과 장비 등을 얻기 위해서 스테이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스테이지 자체의 길이가 짧음에도 한 번 클리어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에는 이런 이유들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스테이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탐험하도록 만들어뒀다. 그래서 한 번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물론, 게임의 기본적인 형태에서는 과거 시스템의 흔적들이 남아있기는 하다. 요일던전처럼 보이는 골드 파밍 요소라거나, 무기와 요괴들의 강화, 게임의 전반적인 UI 등을 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즉, 완전히 게임의 구성 자체를 갈아 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적 시스템과 레벨 디자인은 새로이 탄생했다. 무엇보다 플레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설정된 장벽을 마주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아주 긴 시간을 들이거나 한정된 재화로 강화를 해야만 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면, 지금은 게임 플레이를 위한 최소한의 랭크 제한 외에는 플레이를 막는 요소가 없이 게임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반복 플레이가 있기는 하지만, 게임 전반적으로 플레이어의 구상과 상상력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월드 오브 데몬즈는 플레이어의 조작 능력. 그리고 풍부하게 주어지는 재화로 무기를 강화하는 정도만이 원활한 게임 플레이를 위한 전제가 된다. 게임 플레이 외적인 요소가 레벨 디자인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게임은 한결 더 다듬어진 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근본적으로는 플레이어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PvP와 같이 간접적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들이 사라지면서 게임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액션 자체에 집중하는 환골탈태로 이어졌다. 수익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액션을 위한 디자인으로의 전환이다.
게임 디자인이 변화하고 애플 아케이드라는 플랫폼을 둘러싼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게임은 보다 많은 조작의 여지를 두기 시작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iOS 환경은 물론, Mac OS까지를 포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다.
외부적으로는 이제 애플 아케이드가 iOS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공격적인 행보로 다수의 신작을 추가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ARM 기반의 M1 칩이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하겠다. M1 칩의 성능을 떠나서 ARM 기반으로 구성되었기에 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이제 Mac OS에서도 아이폰 / 아이패드의 앱을 구동(완벽하지는 않지만)할 수 있게 생태계가 통합되기 시작하면서 애플 아케이드의 ‘무 인앱 결제 / 무광고’ 모델은 상대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플레이 자체는 괜찮다. 대신, 한국어를 지원한다는 것을 일일이 찾아봐야 할 정도로 편의성은 떨어진다.
조금씩 변화를 시작한 애플 아케이드가 어떤 결과로 마감될 것인지는 현 시점에서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2019년 첫 공개 이후 지금처럼 다수의 라인업을 갖춘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월드 오브 데몬즈가 보여준 것처럼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는 형태로의 새로운 탄생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그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애플 아케이드의 행보가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애플 아케이드에 자리하는 게임들이 내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 플레이 측면이 개선될 수 있는지. 앞으로 이루어질 변화에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