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대신 이야기가 이끌어나가는 메트로베니아, 사망여각 체험기
하지만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개발 도중 엔진을 RPG메이커에서 유니티로 변경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어드벤처에서 플랫포머 액션으로 장르를 바꾸는 결정도 내렸습니다. 과거 펀딩 시작 시기의 사망여각이 RPG로 구상되었다면, 발매를 앞둔 현재 시점에서는 메트로베니아의 향취가 느껴지는 게임으로 선회한 셈입니다.
킥스타터 당시의 스크린샷과 비교해서, 최종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된 상태.
그 결과, 사망여각은 메트로베니아식 플랫포머의 특징과 더불어, 바리데기 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 액션에 초점을 맞춘 타이틀로 거듭났습니다. 물론, 원래의 계획과는 다른 물건이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개발을 지속하며 게임을 가다듬었습니다. 이제 한국형 언더테일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다른 호칭이 붙어야할 정도로 말이죠.
그렇다면 ‘메트로베니아’라고 부르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른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르의 핵심은 ‘모험’ 그리고 이를 위한 맵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전투나 액션에서 게임 플레이의 재미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플레이어가 다양한 곳을 헤메이며 발견하는 즐거움.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개발진이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의도적인 요소들이 자리하는 장르입니다.
단순히 길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플레이어가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해진 길로 플레이어를 인도할 것인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모험을 하게 만들 것인지. 상당히 정교한 메커니즘과 개발의 의도가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닌 셈입니다.
복잡함보다는 구역과 구역의 유기적인 맵디자인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메트로베니아.
동시에, 플레이어의 모험과 호기심으로 도출되는 결과물-새로운 능력이던 지름길이든-이 제대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작동하도록 게임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여각은 이 부분에 있어서 모험보다는 정해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죠.
이러한 선택에서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우선은 진행이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야기 진행 정도에 따라서 갈 수 있는 장소. 갈 수 없는 장소가 명확하게 나뉩니다. 플레이어는 정확하게 제시되는 목표. 그리고 월드맵 내부에서 표시되는 타겟을 따라 모험을 진행합니다. 지도는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지만,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어지러이 짜여진 길을 탐색한다는 느낌보다는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곳곳에 있는 포탈 그리고 명확한 네비게이션이 주어집니다.
이는 곧, 동시에 한 번 방문했던 곳을 다시 활용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그다지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8괘문(일종의 포탈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능적 요소가 잘 마련되어 있기도 하고, 지름길을 만드는 행위 등은 크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필연적으로 게임의 제목과 같은 ‘사망여각’을 거점으로 삼도록 해뒀습니다. 탐색의 요소를 다른 층위에서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역과 지역을 잇는 모험 대신, 사망여각을 반드시 방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찾아낼 수 있는 여러 루트는 8괘문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포탈과 세이브 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몇 가지 갈래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모험을 함에 있어서 새로운 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크 포인트로 작동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의 수나 방법론에서 추가적인 여지가 끼어들지는 않습니다. 해당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려서 얻어야하는 능력들이 확실하게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A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B와 C라는 갈래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험보다는 일반적인 선택지인 셈입니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루트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도 중간 거점인 8괘문에 도달하는 구조.
돌아다니다 보면, 도망령을 이리저리 잘 숨겨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거점인 사망여각을 중심으로 월드가 뻗어나가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형태로 월드 디자인이 이루어지는 형태가 되면서, 게임 플레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메트로이드 형태와는 다른 결과물로 자리하기 시작합니다.
갈 수 있는 곳. 갈 수 없는 곳이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게임의 형태가 변했을 지언정, 저승 배경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죽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주인공.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음모와 비밀들은 게임 플레이를 계속해서 이끌어나감과 동시에 플레이어게 새로운 목표를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역할로 작동합니다.
이야기는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와 사건으로 유도하는 장치가 됩니다.
레일 위에서 진행된다고 언급했던 것도 이러한 부분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는 개발진이 의도한 이야기와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월드맵이 메트로베니아의 연속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횡스크롤 액션의 스테이지에 가까운 것도 여기서 기인합니다. 각 지역은 별도로 구성되고 이후 진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단편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새로운 능력을 얻는 구조입니다.
각 지역이 세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연출과 이야기를 통해서 연결되는 구조를 가져가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의 지역에서의 이야기가 완료되면, 다음 지역을 개방할 수 있는 도구가 주어지고 이를 이용해서 모험을 이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이리저리 지역과 지역을 이어나가기보다는, 이야기의 다음 무대를 선보이는 방식 쪽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명확한 방향성 아래에서, 약간의 퍼즐 요소도 게임 내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닿으면 바로 사망하는 요소를 두고 적절한 조작을 통해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전까지의 액션과 다르게 탈출의 형태를 띄는 점. 그리고 수직 / 수평적으로 플랫폼과 조작 능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를 제공하고자 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탈출 과정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음 모험으로의 진입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 탈출 과정은 꽤 어렵습니다.
실제 게임 플레이가 사이드뷰 액션의 스테이지와 같이 작동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지역과 지역이 엮이기보다 독립적으로 구성되고. 모험 과정에서 중간 거점인 사망여각을 계속해서 방문하는 플레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포탈인 8괘문도 편하게 잘 배치되어 있기에 지역 간의 연결은 더 멀어지기도 합니다. 이동 거점이 세밀하게 구성되면서 각 지역을 연결하는 숏컷도 최종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도망령과 같은 숨겨진 요소들이 있기는 하나, 굳이 메트로이드 방식의 넓은 맵이 아니었어도 넣을 수 있는 요소처럼 느껴집니다.
게임이 전반적으로 친절해서 숏컷이 의미가 없어진 편입니다.
각자의 테마로 구성된 지역들의 배경 디자인은 준수한 편이며, 이전 스테이지에서 얻은 무기가 다음 스테이지의 열쇠가 되는 등 기본적인 형태는 갖추고 있습니다. 보스전 또한 이전에 얻은 무기를 사용해서 클리어하도록 유도하고 있기에 패턴을 파훼하며 어떻게 공략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정리하자면,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사망여각을 대하는 평가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메트로베니아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보자면 완벽하지는 않은 타이틀임은 분명하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전제에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는 것에는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와 분위기 전달 자체는 만족스러운 비주얼과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기 구상과는 달라졌지만 저승에 대한 재해석과 이야기로 플레이어를 이끌어나가는 사망여각.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완성까지 도달한, 루트리스 스튜디오의 끈기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