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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의 ‘토탈워’ 시리즈는 단 몇 개의 작품을 거쳐 한국 게이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가장 주목받는 대전략 게임이 되었습니다. 물론 전략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원래 선택의 폭이 넓지 않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토탈워 워해머’ 시리즈와 ‘토탈워: 삼국’ 이 한국 게이머들에게 연타석 홈런을 날린 것이 큰 영향이겠죠.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다음 스핀오프, ‘토탈워 사가: 트로이’ 가 오늘 출시
(링크)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에픽 스토어를 통해 출시 24시간 동안 무료 배포라는 전에 본 적 없는 정책을 펼쳤는데요. 그래서 ‘토탈워 사가 트로이’ 의 무료 배포가 끝나기 전, 여러분의 선택을 돕고자 빠르게 짧은 체험기를 작성해보았습니다.
먼저 전반적으로 보아 ‘토탈워 사가: 트로이’ 의 가장 닮은 기존 시리즈 작품을 찾으라면, ‘토탈워: 삼국’ 이 됩니다. 먼저 비슷하게 중세 이전의 고대를 다루는 만큼 경장, 중장 보병이 전장의 주역이며, 강력한 공성병기나 포대도 없는 편입니다. 전차만 있어서 기병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인데다, 정치와 군대의 구조 면에서 유사점이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신화적 영웅들을 중심으로 부대가 돌아가며, 이 영웅들은 여타 다른 토탈워 시리즈의 지휘관들처럼 다양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영웅’ 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무용(아리스테이아)을 쌓고, 이를 터트려 사용하는 전용 궁극기가 존재합니다. 이 궁극기는 굉장한 버프를 주기 때문에 영웅을 무작정 사리거나 무작정 앞으로 던지는 플레이는 지양되고, 충분히 무용을 쌓고 터트려 적장을 도륙하는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또 이들 영웅은 상대 영웅에 도전하여 1대1 대결을 펼칠 수도 있죠.
영웅은 제각각 다른 특성을 가져,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는 계속해서 싸우지 않으면 캠페인 모드에서 큰 분노를 받아 아군에게 적지 않은 패널티를 댓가로 전투력을 얻기도 하고, 전장에서는 한 번 싸움에 돌입하면 분노상태가 되어 자체 버프를 줍니다. 당연히 영웅별 특수 병력의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에, '토탈워: 삼국' 과 유사한 방식으로 세력 차별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 는 그리스의 신화적 이야기인 ‘일리아스’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았고, 그 말인 즉, 미노타우르스 같은 신화의 괴물들, 신의 아들인 아킬레우스 등 허구적 요소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허구의 요소를 현실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리기로 했는데, 예를 들어 미노타우르스, 고르곤 같은 신화적 존재는 진짜 괴물이 아닌 특이하고 특별한 인간 보병이며, 신들의 경우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특정 세력의 버프나 축복 형태로서 등장합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토탈워 워해머’ 이후로 두갈래로 나뉜 판타지 토탈워와 역사 토탈워 중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역사에 약간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토탈워에도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고, 가장 비슷한 사례는 ‘토탈워 삼국’ 의 연의 모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배경을 넘어서지는 않지만, 그 해석은 ‘토탈워 삼국’ 이 ‘삼국지연의’ 를 바탕으로 하듯, ‘토탈워 사가 트로이’ 는 ‘일리아스’ 를 바탕으로 하는 셈입니다.
그만큼, ‘토탈워: 삼국’ 에서의 장수가 굉장히 중요했던 것처럼 ‘토탈워 사가 트로이’ 에서는 영웅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토탈워: 삼국’ 의 장수 비중보다 이 게임의 영웅 비중은 더 높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웅의 성장은 좀더 간략화되었지만 손쉽게 마치 RPG 의 캐릭터를 키우듯 스킬트리를 고르게 되어있어, 영웅의 강함이 비범하다는걸 보여주죠.
외교에서도 이 부분이 부각되어서, ‘토탈워: 삼국’ 의 외교처럼 단순히 팩션 대 팩션을 넘어서서 영웅 대 영웅의 모욕감이나 칭찬, 또는 신의 뜻을 개입하는 등의 정치 싸움도 가능합니다. 물론 ‘토탈워’ 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 외교는 전쟁을 위한 수단이긴 하지만요.
게임의 UI 는 그리스풍에 맞게 강한 이미지이고, 전반적인 그래픽도 ‘토탈워 삼국’ 이 동양적인 미학에 집중했다면 ‘토탈워 사가 트로이’ 는 헬레니즘 문화의 느낌을 살려내려고 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시각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도였네요.
‘토탈워 사가: 트로이’ 만의 특징은 역시 자원입니다. 기존의 토탈워 시리즈의 자원은 전부 골드 혹은 고유자원 1종으로 통일이었고, 병력을 고용하고 유지하고 영토를 발전시키는 등의 행동은 한가지 자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토탈워 사가 트로이’ 는 곡물, 목재, 석재, 청동, 금의 5종으로 나뉘었고, 각자 쓰임이 다릅니다. 곡물은 병력을 고용하고 유지하는데에, 목재와 석재는 영토를 발전시키는데에, 금은 고급 병력이나 고급 건축물 등에, 청동은 중장병기를 생산하는데 들어가죠.
때문에, 이전 작품들보다 두가지 행동의 비중이 커졌는데, 바로 영지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과 영웅 세력 간의 거래를 통해 자원 밸런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초반의 지역 몇 개로는 모든 자원을 풍족하게 채우는건 한계가 있고, 대체로 지역별 특화 자원이 남게 됩니다. 결국 주변의 세력과 동맹을 맺고 교역으로 서로의 자원을 교환하고 맞추게 됩니다.
삼국지의 군웅할거 시대를 표현하기에 안성 맞춤이었던 ‘토탈워: 삼국’ 의 외교 시스템은, 이 게임에서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 특유의 난잡함과 상호 견제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전쟁이 걸리고, 이득 하나를 취하면 바로 다시 평화 교섭을 하거나… 이런 자잘한 외교적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마치 군소 도시국가들이 서로서로 아웅다웅 하면서도 범 그리스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유대감으로 계속 뭉치고 싸우길 거듭했던 실제 역사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투 면에서는, 앞서 말했듯 철저히 보병과 영웅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싸움의 다이나믹함이나 다양하게 써먹는 재미는 적은 편입니다. 전차를 제외하면 모두 보병이라 원거리 투사병의 위력이 너무 강력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또한 궁병의 사거리가 상당히 짧고 경보병의 속도, 중장보병의 방패 등으로 수싸움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이제 전장에서의 가장 강력한 적은 지형인데요. 마치 테르모필레 전투처럼 좁은 골목은 모든 유닛에게 최대의 적입니다. 이제 좁은 골목을 뚫으려면, 충격기병이나 막강한 궁병의 영향이 적으므로 영웅이나 엘리트 보병을 투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신화 유닛(즉, 정예연대)과 영웅이라는 강력한 존재가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전장이고, 그에 맞춘 운용을 해야 합니다.
‘토탈워 사가: 트로이’ 의 이야기는 트로이 목마로 널리 알려진 ‘일리아스’ 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고, 이는 먼 이국 땅인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소재입니다. 지금 2030 게이머들이라면 어렸을 적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 를 봤을테고, 대체로 어떤 흐름의 이야기인지, 아킬레우스는 어떤 사람인지 대강 파악하고있죠.
그런 면에서 이 사가 시리즈의 전작 ‘토탈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 보다는 훨씬 좋은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왕좌’ 는 그전까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었던, 정말 생소한 영국사였고 정말 역사 토탈워의 코어 팬이 아니라면 흥미를 가지기도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토탈워 ‘사가’ 라고 이야기를 강조한 네이밍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정작 그 핵심 내용이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건 꽤 평가를 깎아먹을 수 밖에 없는 점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트로이’ 가 ‘토탈워 사가’ 라는 시리즈 이름에 보다 어울리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가멤논왕, 헬레네, 파리스, 헥토르, 그리고 아킬레우스까지, 우리가 한 번 쯤은 대중 문화에서 들어본 이름이고, 트로이 목마까지 이어지는 내용은 매력적인 이야기죠. 물론, 이런 대전략 게임에서 스토리를 내세운다는 것은 생소해보이지만, 정확히는 딱 하나의 정해진 스토리보다는, 그런 이야기를 둘러싼 배경과 인물들, 요소를 적극 채용해 흥미로운 세트를 만들었다고 보는게 좋겠습니다.
결론은 기존 ‘토탈워’ 시리즈의 팬, 그리고 그 중에서도 ‘토탈워: 삼국’ 의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던 게이머라면 충분히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 비록 신화적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단계에서 다소 호불호를 부르긴 했지만, 이 역시 취향에 따라 가려볼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마음에 드신다면, 라이브러리 한칸을 허용하는 것은 충분히 좋은 선택이겠네요.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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