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TS에서 출발한 분대 지휘 FPS, 디스인테그레이션
최근 캠페인 CO-OP를 지원하는 게임이 많이 늘어나며 예전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플레이를 직접 즐길 수 있게 됐다. 친구와 셋, 둘, 하나를 세며 싱크킬을 노리거나 헬기를 몰아 하늘에서 아군의 진격을 지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를 위해선 손발이 맞는 친구가 여럿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남는다. 혼자서도 FPS의 손맛과 분대를 지휘하는 전략성을 모두 잡을 순 없을까? V1 인터랙티브가 개발하고 프라이빗 디비전이 유통하는 ‘디스인테그레이션(Disintegration)’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식량 부족, 광범위하게 번진 폭동으로 인류가 멸망의 기로에 선 150년 후 미래.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뇌를 기계 신체에 이식하여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는 융합(Integration) 시술을 받았다. 당초 융합은 어디까지나 세계가 다시금 유기체가 살기 적합할 만큼 회복될 때까지의 임시 방편이었으나, 기계 신체야말로 우월하다는 광기에 휩싸인 나머지 아직 시술 받지 않은 생존자(Naturals, 자연인)를 사냥하는 최악의 형태로 변질됐다. 기계화된 악한과 맞서기에 유기체인 생존자들은 너무도 무력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기계 신체가 되었다고 모두가 자연인에게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것. 한때 비행 ATV 그라브사이클의 조종사로 유명했던 주인공 로머 쇼얼(Romer Shoal)은 융합 시술을 받은 사이보그지만, 악한들에 맞서 자연인 생존자를 보호하고자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이끈다. 그가 조종하는 그라브사이클은 중력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비행하며 머신건 탄환을 퍼부을 뿐만 아니라 시야의 이점을 살려 분대 지휘에도 유용하다. 또한 게임을 진행하며 해금하는 다양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추가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디스인테그레이션’에서 플레이어는 전장을 저공 비행하며 직접 싸움을 벌이는 동시에 두 발로 뛰어다니는 최대 네 명의 AI를 지휘하게 된다. 아군에게 어디로 이동할지, 무엇으로 엄폐할지, 어떤 적을 우선 공격할지 지정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자신이 선봉에 서는 것도 가능하다. 지상군은 병종에 따라 저마다 화력과 특기가 다르므로 임무에 최적화된 분대를 편성하자. 이러한 게임 방식은 자칫 손이 너무 많이 가거나 짜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본작의 지상군은 강력한 AI를 탑재하여 여러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취한다.
‘디스인테그레이션’은 싱글 캠페인과 PvP 멀티플레이를 갖춘 AAA급 게임을 지향하지만, 개발사인 V1 인터랙티브의 구성원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한때 번지 소프트웨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헤일로’를 창조한 마커스 레토(Marcus Lehto) 대표를 비롯하여 개발자 모두가 잔뼈 굵은 베테랑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과연 마커스 레토 대표가 ‘헤일로’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디스코드로 진행된 ‘디스인테그레이션’ 컨퍼런스에서 일문일답을 나눴다.
● 구성원 사진에 라쿤(미국 너구리)이 껴있는데
: ‘헤일로’ 시절부터 함께한 시네마틱 부서의 리더 윌슨이 집어넣은 것이다(웃음). 실제로 게임에 라쿤이 등장하는데, 장님 캐릭터인 와그너가 기르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 인간의 기계화를 다룬 여러 SF 소설과 영화가 존재한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나
: 번지 소프트웨어를 떠나고 몇 가지 테마에 대해 생각했는데 그 중 구체화된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술의 침투성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술에 얼마나 많이 의지하며 통제되지 않는 기술은 어디까지 가버릴 것인가? 둘째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급격한 환경 변화다. 우리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두 가지 테마의 만남은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바로 ‘디스인테그레이션’이다.
본작의 배경은 흔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보는 그런 무색건조한 세계가 아니다. 인류는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마침내 자연은 회복되었고 다시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더는 유기체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들로 인해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등장인물을 배치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은 서로 알아가며 상호 존중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모습도 보여줄 것이다.
● ‘디스인테그레이션’의 세계는 오픈월드인가, 아니면 선형적인 구성을 취했나
: 게임 구성 자체는 선형적이다. 하지만 게이머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주어서 같은 임무를 놓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 그라브사이클을 조종하는 플레이어와 AI 지상군, 어느 쪽이 전투에서 더 큰 비중을 지니는지
: 이 지점이야 말로 우리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으며 본작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당초 ‘디스인테그레이션’은 RTS로 구상되었다. 내가 번지 소프트웨어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미스(Myth: The Fallen Lords)’처럼 여러 유닛을 세심하게 운영해야 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수많은 경쟁작 사이에서 돋보이게 하려면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전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그라브사이클을 고안했다. 기체에는 두 가지 무장 혹은 무기 하나와 치료 등 보조 장치를 탑재할 수 있다. 지상군이 당신의 왼손이라면 그라브사이클은 오른손이다. 만약 한손으로만 싸워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나. 지상군과 그라브사이클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며, 두 요소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 그라브사이클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멀티플레이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 그라브사이클 업그레이드는 싱글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멀티플레이에선 밸런스 문제로 반영되지 않는다.
● 지상군은 언제나 같은 숫자인가. 더 늘릴 수는 없나
: 캠페인에 따라 2~4명까지 운용할 수 있으며, 진행 과정에서 레드 셔츠라 불리는 무법자들을 구해줄 경우 플레이어 곁에서 함께 싸워줄 것이다.
● 지상군에 대한 업그레이드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육성 요소에 대해 듣고 싶다
: 간단한 스킬 트리가 주어진다. 각 지상군은 네 가지 스킬 슬롯을 가지고 있으며 임무에서 얻은 업그레이드 칩을 삽입하여 방어력을 높이거나 재사용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
● 임무 도중에 지상군이 영구적으로 사망하기도 하나
: 그러면 게임 오버다. 융합 시술을 받았더라도 본질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머리 장갑 아래 뇌가 들어있다. 가령 캠페인 등장인물 중 하나인 블랙 샤크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상대의 뇌에 칼을 꽂아 죽인다. 만약 지상군이 파괴될 경우 이 머리 부위가 떨어지며 플레이어가 회수할 수 있도록 30초가 주어진다. 제한 시간 내에 회수하지 못하면 마지막 체크포인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강력한 기계 신체라도 여전히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 만에 하나라도 지상군의 AI가 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주 답답할 듯하다
: 우리는 오랫동안 AI에 대해 작업해왔으며 지난 테크 베타 이후로 더욱 발전시켰다. 지상군은 스스로 최적의 은/엄폐물을 찾고 적에게 대응 사격을 하며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디스인테그레이션’은 RTS에서 출발한 기획이므로 플레이어가 어떻게 지상군을 운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 싱글 캠페인 CO-OP이 가능한가, AI 대신 친구가 지상군을 조종해도 재밌을 텐데
: 아직은 그런 요소는 없다. 이에 대해선 게임 출시 후 다시금 논의하고자 한다.
● 전장의 지휘관이 된다는 컨셉은 흥미롭지만 몇 시간이고 플레이하기는 힘들 것 같다
: 앞서 공개한 게임 플레이 영상은 매우 강렬한 전투가 이어지는데, 게임 내 모든 임무가 그렇지는 않다. 전투 와중에 잠깐 쉬어 가는 상황부터 은신하여 통과하기, 아예 지상군을 대동하지 않고 지역을 탐험하는 부분까지 다양한 임무가 준비되어 있다.
● 전투 와중에 잠깐 쉬어 가는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 각 임무를 마무리하면 허브라는 곳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장님 와그너가 살고있는 일종의 배다. 여기서는 3인칭 상태로 돌아다니며 여러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하고 각종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센트리라는 로봇의 경우 다음 임무에서 수행할 수 있는 도전과제를 주는데 이를 해결하면 멀티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보상을 주기도 한다.
● 메인 스토리 외에 허브를 통해 서브 퀘스트를 수주할 수도 있을까
: 현재로선 메인 스토리가 전부지만 이러한 콘텐츠를 구현할 수 있을지 작업 중이다. 참고로 캠페인의 경우 쉬움부터 무법자까지 네 가지 난이도를 지원한다.
● 와그너를 비롯한 자연인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다
: 작중 자연인들은 숨어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로, 융합 시술의 힘을 잘 알기에 주인공 로머 쇼얼처럼 기계인 도망자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상부상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캠페인이 진행될수록 다양한 자연인과 만나 흥미로운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 흥미로운 관계를 구축한다는 게 특정 NPC와의 로맨스를 의미하는 건가
: 기계인 도망자들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지만 그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바비큐에 맥주를 즐기고 싶고 또 누군가는 인간 시절처럼 뜨거운 사랑을 갈망한다. 이러한 욕구가 여러 등장인물을 정의 내리고 흥미로움을 부여한다. 로맨스가 가능하냐고?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기 바란다(웃음).
● ‘디스인테그레이션’은 루트 슈터인가. 뭔가를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플레이해야 하나
: 맙소사,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난 루팅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다. ‘디스인테그레이션’에 그러한 메커니즘이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 지난 테크 베타(멀티플레이만 가능했다) 이후 어떤 부분을 주로 수정했다
: 매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실 테크 베타는 게임 서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에 가까웠는데,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덕분에 테크 베타 이후 ‘디스인테그레이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 멀티플레이 인원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하여 크로스 플랫폼 지원을 고려 중인가
: 그렇진 않다. 크로스 플랫폼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문제는 개발사의 기술력보다 양 플랫폼 홀더의 합의가 더 중요하다.
● 30여 명의 작은 규모를 감안하면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질지 걱정스럽다
: 우리는 ‘디스인테그레이션’을 출시한 이후에도 커뮤니티의 반응을 주시하며 게임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갈 계획이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피드백에 귀 기울일 것이고, 만약 여러분이 e스포츠화를 원한다면 그런 것도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끝으로 한국어 지원 여부를 확실히 하고 싶다. 스팀 제품 페이지에는 기제되어 있지 않다
: 한국어를 비롯한 아시아 언어의 지원 계획이 있으며 현재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웃음).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