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김형태 '프로젝트 이브', 3D 스캔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이제는 원화가보다 대표라는 직함이 더 익숙한 시프트업의 김형태. 탁월한 그림 실력과 개성적인 화풍으로 PC 패키지, 온라인, 모바일에까지 큰 족적을 남긴 그가 다음 목표로 콘솔 시장을 정조준했다. 지난 4월 서울 서초동 스튜디오 개장과 함께 공개한 ‘프로젝트 이브(Projeck EVE)’는 SF 세계관에 기반한 AAA급 콘솔 액션을 지향하여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김형태 대표는 AAA급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국내 최대 규모의 360도 3D 스캔 및 실시간 모션 캡처 시스템을 선보인 바 있다. 시프트업과 같은 중소 개발사가 스튜디오에 이러한 첨단 설비까지 갖춰 놓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 그만큼 콘솔 액션 게임에 요구되는 고품질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셈이다.
야심 찬 ‘프로젝트 이브’ 첫 발표로부터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아직 초기 단계일 개발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제로 3D 스캔 시스템이 기대한만큼 활용도와 효율이 뛰어날지 등 궁금한 점이 참 많았다. 이에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는 15일(금), 지스타 2019 컨퍼런스를 통해 ‘3D 스캔과 차세대 게임 캐릭터 제작기’라는 주제로 지난 반 년간의 경험을 공유했다.
선단에 오른 김형태 대표는 이날 강연이 멋진 결과물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창 헤매는 와중인 ‘방랑기’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세 가지로 압축하자면 첫째, 왜 하이엔드 그래픽의 3D 게임은 언제나 비싸고 만들기 힘든가? 둘째, 좀 더 현명한(날로 먹는) 방법은 없을까? 셋째, 이것 저것 시도해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고 최상의 그래픽을 얻어내 보자, 라고. 또한 아직 완전히 검증된 방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쉐이더와 노말뱁을 사용하는 최상급 3D 게임은 그만큼 어셋 단가가 높다. 캐릭터 하나의 의상과 얼굴까지 만드는데 평균 3달 이상이 소요되고,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정확히 어느정도 품질일지 알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3달이나 걸려 결과물을 받았을 때는 이미 굵직한 수정은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 설령 그렇게 제작했다 해도 규모상 해외 AAA급 게임을 따라가기 쉽지 않으며 그만한 실력이 있는 인재는 이미 해외로 진출한지 오래다.
그렇다면 활로는 어디에 있을까? 김형태 대표가 내놓은 답안은 3D 스캔, 해외에서는 포토그램메트리(Photogrammetry)라 불리는 기술이다. 실사와 같은 고품질 그래픽을 추구할 때 그것과 가장 근접한 모델은 당연히 실사 그 자체일 것이다. 해외 유수의 대작에서 보듯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보편적인 비주얼 정서 또한 실사에 가까운 3D 그래픽이다.
사실 3D 스캔 자체는 생각보다 원시적인 기술이다. 그저 다양한 각도의 무수히 많은 사진을 가지고 클라우드 포인트(Cloud Point)를 추출하여 3D 메쉬(Mesh)화 시키면 된다. 김형태 대표는 본격적인 투자에 앞서 리얼리티 캡처, 메타셰이프 그리고 갤럭시 S8 내장 카메라만 가지고 자신의 가방을 여러 각도로 67장 찍었고 이를 통해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어냈다.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자 곧장 설비를 본격화했다. 지난 4월 서초동 스튜디오 개장과 함께 설치한 니콘 DSLR 160대와 동조장치의 통합 시스템이 그것. 이를 통해 모델을 촬영해보자 숙련된 모델러가 장시간 작업해야 가능할 듯한 섬세한 옷 주름과 질감이 구현됐다. 게임이니만큼 여기에 각종 장식이나 디자인을 후작업하면 그것만으로 고품질 3D 모델이 탄생한다.
그럼 인물은 모델을 섭외하면 될 것 같은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은 어찌할까? 마침 ‘블레이드 앤 소울’ 몬스터 총괄이자 ‘데스티니 차일드’ 원화 총괄인 이창민 디자이너가 조형 작업을 할 줄 알았다. 그렇게 괴물 조형을 만들어 촬영해보니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고, 내침 김에 우리나라에서 괴물을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을 누구인가까지 생각이 미쳤다.
괴물 하면 역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영화 속 괴물을 직접 디자인한 장희철 아티스트를 시프트업으로 전격 영입했다. 세계적인 CG 업체인 웨타 디지털과 협업한 경험이 있는 장희철 아티스트는 ‘프로젝트 이브’에 들어갈 괴물을 디자인하고 조형까지 가능한 실력자다. 다만 알고 보니 지브러시(Zbrush)도 능숙히 다루는 터라 보름 만에 몬스터 하나를 완성시켜버렸다고.
즉 몬스터의 경우 3D 스캔의 효율성이 높지만은 않다. 3D 작업이 능숙하지 못한 크리쳐 디자이너도 몬스터 제작의 후반 프로세스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업계에 조형을 할 줄 아는 디자이너보다 지브러시를 사용하는 모델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시프트업은 조형의 숙련자가 셋이나 되어서 이러한 방식이 가능했다.
캐릭터 의상을 만들 때 3D 스캔이 편리한 또다른 이유는 아무나 입혀도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모델을 섭외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빠르게 결과물을 보고 확인해야 하는 개발 와중에 번거로운 일이다. 대신 내부 인력이 의상을 입고 촬영을 한 후 다리 길이나 어깨 넓이 같은 소소한 부분은 후작업으로 보정하면 된다. 의상을 촬영할 때 주의할 점은 너무 검거나 하얗거나 빛을 발하면 촬영이 어렵다는 것. 이때는 다른 색으로 촬영하고 후작업을 해준다.
종합하면 3D 스캔은 비교적 손쉽게 실사에 근접한 고품질 그래픽으로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 결코 추천하지는 않지만, 정말 급하다면 촬영부터 인게임 적용까지 닷새만에 해낼 수 있다고. 실제 모델을 활용하니 하니 결과를 예측하기 쉽고 재촬영을 통한 조정도 어렵지 않다.
다만 당연하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3D 스캔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각종 의상을 제작하고 대여해주는 업체가 여럿 있으므로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 순 있다. 또한 기획에 어울리는 의상을 찾고자 상가를 뒤지고 모델을 섭외하는 과정이 상당히 고달플 수 있다. 아무래도 대다수 개발자는 일에 집중하길 좋아하지 쇼핑이나 미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초부터 결과물까지 완전한 창작을 선호하는 모델러와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프로세스를 받아들일 오픈 마인드가 필수. 그리고 모델러라고 다 코디의 소양이 있지는 않은지라 타고난 감각도 요구된다. 상술했듯 너무 검거나 하얗고 반사, 반투명 재질의 경우도 3D 스캔이 어렵다. 전체적으로 실사와 같은 결과물은 얻어낼 수 있지만, 실사 이상의 미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한 셈이다.
김형태 대표는 “모든 기술이 그렇듯 3D 스캔도 만능은 아니지만 차세대 게임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임에 분명하다. 이 자리를 빌어 업계의 많은 분들과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며 발전하여 나가면 좋겠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만들어보자”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시프트업과 같이 3D 스캔을 활용하여 작업하는데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가
: 10년 전 ‘블레이드 앤 소울’ 개발 당시만해도 전체 팀이 240명 정도 되었다. 반면 시프트업은 최근 세 명이 더 합류하여 캐릭터 모델러가 다섯 명이다. 그전에는 두 명이서 3D 스캔으로 캐릭터를 제작하여 게임에 적용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배경 같은 경우는 직접 만들기 보다 마켓플레이스에서 제공하는 어셋을 활용하는데, 최근 에픽게임즈가 퀵셀 메가스캔을 인수하여 무료 공개함으로써 큰 도움이 되었다.
● 인물이나 괴물뿐 아니라 지형지물, 그러니까 배경을 3D 스캔하는 것이 가능한가
: 현대적인 배경이라면 그렇다. 중세 판타지가 배경이라면 나무 같은 자연물은 쓸 수 있겠으나 성이나 마을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360도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으로 실제 장소를 찍어 추출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이런 방식은 개인 수준에서도 꽤 쓸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다만 그래도 배경은 어느정도 기존 어셋의 도움을 받길 추천한다.
● 3D 스캔을 도입했지만 정작 ‘프로젝트 이브’ 캐릭터는 데포르메된 얼굴을 하고 있다
: 사실 ‘프로젝트 이브’ 티저 영상은 3D 스캔을 활용한 결과물이 아니다. 서초동 스튜디오 개장과 거의 동시에 신작을 발표하려고 그 이전에 작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사 모델을 통한 얼굴 스캔도 테스트 중이며 언젠가 그에 대한 결과물도 공유하려 한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얼굴 스캔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로 예쁜 모델을 섭외하여 촬영하여도 그다지 예쁘게 뽑히지 않는다. 누가 봐도 예쁜 결과물을 내려면 보기보다 굉장히 많은 후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얼굴을 스캔할 때는 예쁘고 못생기고보다 얼굴 그 자체가 강렬한 아이덴티티인 모델을 쓰는 것이 좋다. ‘데스 스트랜딩’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다만 당연히 그런 모델은 비싸다. 나도 쓰고 싶픈 배우가 있는데 아마 섭외하려면 현재 제작비의 10배쯤 들 것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