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스위니가 말하는 언리얼 엔진과 에픽게임즈 스토어
세계 굴지의 게임 엔진사 에픽게임즈가 최근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언리얼 엔진 4.22 업데이트를 통한 본격적인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지원은 물론, 서구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온라인 배틀로얄 게임 ‘포트나이트’와 에픽스토어 운영까지 바쁜 나날이다. 에픽게임즈 28년 역사에서 근 몇 년간 벌인 사업이 이전까지 전부보다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차세대 콘솔과 스트리밍 플랫폼이 대두되고 VR/AR/MR까지 발전하며 그 어느때보다 게임 엔진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아울러 ‘포트나이트’와 에픽스토어 운영은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시행착오를 빚고 있다. 과연 에픽게임즈는 언리얼 엔진, 나아가 ‘포트나이트’ 및 스토어와 함께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14일(화), ‘언리얼 서밋 2019 서울’을 기하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팀 스위니 대표와 박성철 한국 지사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에픽게임즈의 사업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확장되었다. 스스로를 어떤 회사로 정의하는지
: 디지털 콘텐츠 에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로 봐주면 좋겠다. 언리얼 엔진은 그 도구이며, 에픽게임즈 온라인 서비스로 운영 측면을 지원하고, 이제 에픽스토어로 유통까지 관할한다. 과거에는 디지털 콘텐츠가 영화면 영화, 게임이면 게임으로 서로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미디어가 도구를 공유하고 콘텐츠 교환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가령 3년 전에 언리얼 엔진으로 맥라렌 슈퍼카를 실시간 비주얼라이징한 적 있는데, 그 모델링이 이후 비디오 게임 ‘로켓 리그’에 그대로 쓰이기도 했다.
● 언리얼 엔진은 특히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 한국의 개발 환경은 매우 독특하다. 모바일에 집중하면서도 하이엔드 품질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리얼 엔진은 모바일에서도 실감나고 세밀한 하이엔드급 그래픽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북미나 유럽의 모바일 게임은 여전히 로우엔드 위주인데 그들이 큰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야말로 게임 개발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 국가라 생각한다.
● 언리얼 서밋과 별개로 전문적인 교육 체계를 갖춘 사설 학원을 운영할 계획은 없나
: 직접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할 계획은 전혀 없다. 대신 학교를 비롯한 기존 교육 기관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무조건 수익 사업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교육에 투자하여 미래의 언리얼 엔진 개발자를 길러내고자 한다.
● VR/AR에 대한 게임 업계의 관심이 많이 꺼졌다. 금번 행사에도 관련 강연이 둘 뿐이다
: 게임 업계에서 VR/AR이 소비자용 미디어로 자리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초기에 높은 기대치에 비해 하드웨어가 적절한 퍼포먼스를 내지 못했다. 다만 그와 별개로 VR/AR 자체는 엔터프라이즈 산업에서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언젠가는 소비자 시장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그 중간 과정으로서 산업 측면에서 활용되는 것 또한 매우 유의미하다.
● 프로그래밍, 아트, 교육, 엔터프라이즈까지. 언리얼이 또 어떤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까
: 실제 디자인에 앞서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시각화)이 필요한 분야라면 어디든 가능하다. 건축, 엔지니어링, 자동차, 우주 항공까지도 말이다. 혹은 매우 위험한 작업 환경에 대한 교육이나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소방관을 훈련시키는데 언리얼 엔진이 쓰이는 셈이다.
기조 연설에서도 소개한 카오스 피직스 시스템이 여기서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이제는 비주얼라이제이션뿐 아니라 물리 시뮬레이션까지 언리얼 엔진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자율주행차처럼 실제 도로에 내놓기 어렵거나 위험한 기술을 얼마든지 미리 테스트해볼 수 있다. 혹은 머신러닝 알로리즘 훈련을 가상공간에서 시키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 그렇다면 언리얼 엔진이 방송 산업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 이미 날씨나 스포츠 방송에서 사용되고 있다. 실제 모습에 3D를 입혀서 시청자가 보는 화면을 완성하는데 쓰인다. 앞으로는 더 많은 회사가 TV 쇼를 만드는데 버추얼 프로덕션을 하게 될 텐데, 매우 흥미로운 영역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리라 본다. 버추얼 프로덕션에서는 그린스크린에 서있는 배우가 실시간으로 CG와 합쳐져 카메라에 나타난다. 즉 포스트 프로덕션의 수고와 비용이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 ‘포트나이트’는 강력한 마케팅 전개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성적이 미진한 상태인데
: 서비스를 꾸준히 지속하며 ‘포트나이트’의 매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마블 코믹스 영화 ‘어벤져스’와의 연계를 통해 지표가 상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차원의 성공이 있으리라 믿고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다. ‘포트나이트’를 즐겨주고 있는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 감사한다.
● 1억 달러 규모의 ‘포트나이트 월드컵’이 기대를 모은다. e스포츠 종목으로서 전망은 어떤가
: 배틀로얄 장르 자체가 e스포츠로 즐기기에 알맞다. 단 2개 팀이 아니라 수많은 선수가 서로 겨루고, 꼭 실력이 있어야만 우승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만큼 변수와 드라마가 풍성하지 않겠나.
● 에픽스토어의 판매 라인업이 아직 협소한 편이다. 파트너사가 얼마나 모였나
: 아직 초기 단계임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현재까지 100개 이상의 파트너사가 협업하는 중이며 앞으로는 우리가 제시하는 품질 기준만 넘어서면 누구나 게임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할 계획이다.
● 개발자를 위한 생태계도 좋지만, 에픽스토어의 독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도 적잖다
: 에픽스토어를 론칭할 당시에 스팀의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었다. 시장 점유율 0%인 스토어가 시장 점유율 90%인 스토어에 아무런 무기 없이 덤벼와야 영원히 승자 독식이 반복될 뿐이다. 개발자들이 무조건 7:3 수익 분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불합리하며 여러 스토어가 서로 경쟁하여 최선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길 원한다. 그걸 위하여 독점 라인업 구축은 스팀, 오리진, 배틀넷, PS, Xbox 등 모두가 채택하고 있는 증명된 메커니즘이었다.
● 5G 통신의 시대가 열리고 구글 스태디아를 비롯한 스트리밍 플랫폼이 대두되고 있다
: 에픽게임즈의 역할은 기술 공급자가 첫 번째, 콘텐츠 제작자가 두 번째일 것이다. 우리가 직접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관련 하드웨어를 만들 계획은 없다. 구글 스태디아에 대해서는 이미 1년 이상 협력해왔는데 매우 흥미로운 비즈니스다. 물론 구글뿐 아니라 아마존이나 MS에 대해서도 지원하는 중립적인 입장이다.
● PS와 Xbox의 차세대기 발표가 임박했다. 에픽게임즈와 언리얼 엔진은 어떤 역할을 맡나
: 아직 하드웨어가 정식 발표되지 않은 만큼 여기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적다. 다만 어떤 모습이 차세대기가 나오든 언리얼 엔진은 열심히 지원할 것이다. 하드웨어가 더 강해지는 만큼 레이 트레이싱과 카오스 피직스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훨씬 더 현실적인 표현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다.
● ‘포트나이트’가 크로스 플랫폼을 성사시킨 이후 이렇다 할 후속주자가 안 나오고 있다
: 크로스 플레이가 워낙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리얼 엔진은 이런 과정을 쉽게 만들기 위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포트나이트’를 통해 얻은 노하우로 한번 게임을 만들면 최대한 다양한 플랫폼에 론칭할 수 있도록 돕겠다. 모쪼록 내년에는 크로스 플랫폼 사례가 훨씬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 설령 게임이 현실보다 즐겁고 재미있더라도, 누구나 자기 시간을 적절히 관리하고 균형을 갖출 필요가 있다. 우리 업계에서도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할 때 한층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돈을 더 내면 게임을 유리하게 해주거나 랜덤박스로 원치 않는 보상을 주는 것이 게임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켰다.
● 개발자 지원 기금이 1억 달러(한화 1,188억) 규모의 ‘에픽 메가그랜트’로 크게 확대됐다
: ‘포트나이트’가 크게 성공한 덕분에 기금 마련이 가능했다. 우리의 성공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5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확대한 만큼 게임뿐 아니라 엔터프라이즈, 영화, TV, 오픈소스, 학계 연구까지 지원 분야도 넓힐 계획이다. 적시에 적절한 지원으로 여러분의 성공을 돕고 업계의 빠른 발전을 이끌고 싶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