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감싸는 바흐의 선율, 수퍼브 ‘피아니스타’
베토벤, 모짜르트, 하이든, 비발디, 쇼팽… 옛 거장들의 악곡에는 요즘 대중가요나 EDM에서 느끼기 힘든 중후함과 생동감이 살아있다. 클래식이란 어딘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지만, 실상은 우리 일상 이곳저곳에 굉장히 친숙하게 녹아 들어있는 음악이다.
여기 그러한 클래식으로 콘솔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당찬 국내 게임사가 있다. 바로 최근 네이버 웹툰 원작 ‘유미의 세포들’로 캐주얼 리듬 게임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킨 수퍼브. 음악과 게임이 너무 좋아 의기투합했다는 이들은 스스로 리듬 게임 전문 게임사란 정체성을 갖고 뭇 마니아의 손과 귀를 사로잡고자 매진하고 있다.
수퍼브가 오는 25일 닌텐도 스위치로 선보이는 ‘피아니스타’는 바로크부터 낭만주의 시대를 총망라한 23명의 작곡가, 77개 곡이 담긴 본격 클래식 리듬 게임이다. 지난 2016년 말 글로벌 출시돼 조용히 돌풍을 일으킨 모바일 원작을, 콘솔 환경에 걸맞게 꼼꼼히 새단장했다. 과연 ‘피아니스타’가 아직 리듬 게임 라인업이 미진한 닌텐도 스위치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 바흐의 선율에 몸을 맡긴 수퍼브 김민택 오디오아트 팀장과 김영대 사업 PM을 만났다.
● 반갑다. 우선 회사와 자기 소개를
김민택: 수퍼브는 어려서부터 리듬 게임을 즐겨했고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다는 꿈을 지닌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환경을 만들어낸 곳이다. 그래서 다들 리듬 게임 마니아에다 ‘디제이맥스’, ‘탭소닉’, ‘오투잼’, ‘슈퍼스타 SM타운’에 참여한 베테랑 개발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오디오아트 팀장으로, 사운드가 아닌 오디오아트라 하는 이유는 수퍼브에서 나오는 음향 관련을 모두 관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단순히 사운드만 만지는 것이 아니라 노트 패턴 디자인까지 직접 작업하고 있다.
김영대: 흔히 생각하는 노트 낙하형 리듬 게임을 넘어 음악과 게임이 융합하는 모든 종류의 종합 예술을 선보이는 것이 수퍼브의 궁극적 목표다. 나는 사업 PM으로, 게임 개발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좋은 타이틀이 만들어진 후에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도 맡고 있다.
● 국내 리듬 게임 개발 인력은 대부분 어뮤즈월드-펜타비전 출신이 많은데
김영대: 실제로 수퍼브 오민환 대표가 어뮤즈월드 ‘이지투지데이’ 기획자로 출발했다. 그후 펜타비전에서 ‘디제이맥스 포터블’과 ‘디제이맥스 테크니카’ 디렉터를 역임했는데 나도 당시 글로벌 비즈니스 담당으로 함께했다. 그러고 보면 개발 인력뿐 아니라 지원 인력까지 모두 리듬 게임에 익숙한 셈이다.
● 리듬 게임 전문 개발사라면 역시 인력 구성도 여느 회사와 다를 것 같다
김민택: 현재 수퍼브 총원은 45명이고 오디오아트 팀은 나 포함 네 명이 근무 중이다. 알다시피 이정도 규모의 게임사는 자체적인 사운드 팀 자체가 없이 외주에 의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팀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오디오아트 팀원 모두가 스스로 디렉팅이 가능한 수준의 전문가로 음향뿐 아니라 게임의 기획적인 측면까지 허물없이 의견을 내는 문화다. 리듬 게이머들에게 잘 알려진 M2U(엠투유)도 우리 팀에서 일하고 있고.
● 모바일이 대세인 국내 시장에서 리듬 게임은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장르다
김민택: 꼭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과거에 콘솔 리듬 게임은 어느정도 고수만 즐긴다는 인식의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그런데 모바일에서는 이러한 장르를 경험해보지 않은 유저도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볼 수 있다. 모바일 시장에서 리듬 게임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반대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보다 깊이 있는 콘솔 리듬 게임으로 마니아적인 영역을 공략하는 전략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김영대: 리듬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캐주얼 유저도 재미있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작품이 12일 출시한 ‘유미의 세포들 with 네이버 웹툰’이다. 익히 잘 알려진 IP와 우리의 기획력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리듬 게임을 만들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실제로 출시 후 양대 마켓 무료인기 상위권을 점하여 노력의 결실을 보게 됐다.
● 인기있는 웹툰도 많았을 텐데 딱 ‘유미의 세포들’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영대: ‘유미의 세포들’은 감성적이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이야기로 여성층에게 인기가 많다. 그리고 여러 개성적인 세포가 등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캐릭터성을 각각의 리듬으로 치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만약 남성적이고 액션이 강렬한 작품이었다면 아무리 인기있어도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 다만 리듬 게이머의 기준에서는 지나치게 쉽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김민택: ‘유미의 세포들 with 네이버웹툰’은 리듬 게임을 처음 해보거나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무는 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만큼 노트 구성이나 판정도 단순하고 쉬울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피아니스타’ 스위치 버전과 ‘유미의 세포들’ 동시기 발매는 투트랙 전략인가
김영대: 두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선보이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 ‘유미의 세포들 with 네이버웹툰’은 외부 IP를 활용한 작품이라 그쪽과 출시 시기를 조정했고 ‘피아니스타’ 스위치 버전 또한 닌텐도 검수로 인해 우리 마음대로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 클래식에 특화된 리듬 게임이라니 독특하다. 라이선스 문제를 고려한 기획이었나
김민택: 라이선스 문제가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보다 우리만의 특색을 갖자는 목적이 컸다. 기존 리듬 게임에도 사람들에게 친숙한 여러 클래식 악곡이 들어있긴 했다. 이런 곡들은 대부분 높은 난이도를 지니고 있어 초심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그렇다면 이 음악 저 음악 섞을 것이 아니라 클래식의 묘를 제대로 살려보자고 결정했다. 나 스스로도 피아노를 전공한 터라 클래식과 리듬 게임을 어떻게 조화했을 때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을지 답을 찾고 싶기도 했고.
● ‘피아니스타’가 모바일로 2016년 말에 나왔는데, 콘솔 버전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김영대: 닌텐도가 스위치를 처음 발표했을 때 사내 인원들 모두 매력적인 기기라 느꼈고 실제로도 많이들 구매했다. 우리도 여기에 게임을 내면 좋겠다 싶어서 R&D와 프로토타이핑을 해보고 이정도면 충분히 좋은 경험을 전달할 수 있겠다고 결정, 실질적인 이식 작업에 들어간 것이 올해 4월 즈음이었다.
● 늦은 만큼 콘솔 스펙에 어울리는 새단장이 필요했을 텐데, UI나 음질 개선처럼
김민택: 물론이다. 모바일과 달리 콘솔은 용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훨씬 더 좋은 음질로 수록할 수 있었다. 또한 휴대 및 거치 시 각각에 맞는 해상도와 UI를 지원하고, 어떤 경우라도 안정적인 60fps 구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노트 패턴은 조이콘에 최적화된 구성으로 싹 다시 작업했고 기기 특성을 고려한 2인 앙상블 모드도 추가했다. 그리고 모든 곡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와 여러 커스터마이징, 콜렉션 요소도 모바일에선 없던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이식이 아니라 바닥부터 다시 만든 작품에 가깝다.
● 모바일에서도 키음 추가 요청이 있었는데, 결국 콘솔 버전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김민택: 기획적인 판단 하에 수록하지 않았다. 고민이 정말 많은 부분이었는데, 키음을 원하는 분만큼이나 없는 쪽을 선호하는 유저도 많기 때문이다. 키음의 문제는 정확한 타이밍에 연주하지 않으면 음악이 엉성해지고 불쾌한 경험을 준다는 거다. 키음을 넣어도 보고 반만 넣기도 하고 볼륨을 낮추기도 하고 여러 테스트를 해본 결과 지금 상태가 최적이라 판단했다. 다만 이번에 스위치 버전도 키음을 넣어 달라는 피드백이 많다면 차기작에는 도입하려 한다.
● 모바일이 원작임에도 굳이 전면 터치를 배제하고 조이콘 조작만 지원하는데
김민택: 스위치는 구조상 전면 터치로 리듬 게임을 즐기기에 적합하지 않다. 조이콘이 부착된 상태에서는 손가락이 닿지 않고, 본체만 들기에는 그립감이 나쁘다. 그렇다고 조이콘을 빼고 탁자에 놓고 하려니 스위치가 가진 휴대성이란 장점을 망치는 꼴이고. 그보다는 타격감이 좋은 버튼 조작에 최적화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 앞서 ‘디모’가 나오기도 했지만, 스위치가 리듬 게임에 적합한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김민택: 과거 콘솔에서 리듬 게임이 흥행한 것은 휴대기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스위치의 조작감이 좋냐 나쁘냐는 개개인마다 다를 테니 무어라 단정할 수 없지만, 주어진 버튼 내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노트 패턴을 다듬었다. 조이콘 버튼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노트를 비벼서 처리하거나 빠르게 연타하는 구간을 넣기도 했다.
● 그렇다면 키 매핑을 넣은 계획이 있나
김민택: 현재로서는 우리가 판단하기에 최적의 세팅으로 고정되어 있다. 다만 키 매핑을 원하는 목소리가 크다면 얼마든지 업데이트할 용의도 있다.
● 앙상블 모드는 협주라는 컨셉인데, 아예 경쟁하는 모드가 있어도 재미있었을 텐데
김민택: 앙상블 모드는 두 사람이 조이콘을 하나씩 들고 서로 중심 선율과 반주를 오가며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당연히 똑 같은 노트를 내려주면 되는 경쟁 모드가 더 만들기는 쉽다.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가 지닌 가치관 자체가 서로 싸우는 경쟁이 아닌 협동에 있다고 생각했고, 남들 다 넣는 PvP와는 차별화를 두고 싶기도 했다. 뭐 그래도 옆 사람 탓 정도는 할 수 있는 구조다(웃음). 대신 자신의 점수를 타인과 경쟁하고픈 마음은 글로벌 랭킹으로 풀어냈다.
● 클래식 리듬 게임이니 닌텐도 라보 버라이어티 팩의 건반 키트를 지원하면 좋겠다
김민택: 실은 닌텐도 라보 소개 영상이 뜨자 마자 닌텐도에 연락을 넣었다. 우리 게임이 이러저러한 컨셉인데 건반 키트와 잘 맞을 것 같다. 이걸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싶다고. 그런데 당시 닌텐도는 라보를 외부 게임과 연계하는 것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결국 키트가 출시된 후 직접 만져봤더니 반응속도가 다소 느리고 철컥-하는 감각이 리듬 게임과 잘 맞지는 않겠더라. 그래도 언젠가 닌텐도 라보에 최적화된 신작을 만들어보고 싶긴 하다.
● 전체적으로 콘텐츠 분량은 어느 정도이며, 가격은 얼마로 책정했나
김영대: 오는 25일 닌텐도 스위치 e샵을 통해 가격은 24.99달러(한화 약 2만 8,000원)다. 곡을 해금하는데 비용이 드는 모바일과 달리 23명의 작곡가, 77곡, 693개 패턴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리듬 게이머들이 느끼기에 어느 정도가 합리적인 가격일지 고민을 거듭했다.
● 원작자가 전부 고인이라 신곡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김민택: 출시 후 성과를 보긴 하겠지만 실은 이미 추가 콘텐츠를 준비하고는 있다. 물론 이미 죽은 사람에게 곡을 쓰라고 할 수는 없다(웃음). 과거 ‘슈퍼스타 SM타운’을 만들며 얻은 경험인데, 누구나 아는 유행가 외에도 앨범에는 숨겨진 진주 같은 명곡이 굉장히 많다. 방송을 타거나 여기저기서 틀어주지는 않지만 팬카페 가보면 좋다고 칭찬하는 그런 곡들. 클래식도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그리 친숙하지는 않으나 굉장히 훌륭한 작곡가와 악곡이 얼마든지 더 있다.
● 모처럼 국산 게임인데 정작 국내 닌텐도 스위치 e샵에는 출시하지 않는 건가
김영대: 당연히 출시하고 싶었지만 글로벌 랭킹 지원을 위한 서버가 존재치 않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국내 닌텐도 스위치 e샵을 이용하는 유저들에게 반쪽짜리 게임을 팔 수는 없지 않나? 대신 세계 어느 e샵에서 게임을 구매하더라도 한국어가 지원되고, 글로벌 랭킹 등록 시에도 태극 마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차후라도 서버 지원이 되면 곧바로 국내 정식 발매하기 위해 심의 등 절차는 모두 완료한 상태다.
● 국내 콘솔 시장은 PS4가 주류인데, 스위치 외에 기기로 발매할 계획도 있나
김영대: 이제 회사가 설립된 지 2년밖에 안됐고 첫 콘솔 도전인 만큼, 우선 눈앞에 주어진 닌텐도 스위치라는 기기에서 최고의 리듬 게임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번에 좋은 성과를 거두고 타 기종 유저들이 많이 성원해준다면 그때는 당연히 멀티 플랫폼도 고려할 것이다.
● ‘피아니스타’ 스위치 버전을 통해 이루고픈 목표나 포부가 있다면
김민택: 수퍼브라는 리듬 게임 전문 개발사가 존재하고, 이곳에서 나오는 작품은 믿고 즐긴다는 그런 기대감을 심어주고 싶다. 더 깊이 들어가면 오디오아트 팀장으로서 우리 팀이 만든 음악이 기다려진다는 그런 설렘을 주고 싶다. 그러자면 브랜드가 인식되는 것이 우선이겠지.
김영대: 장차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글로벌 콘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앞서 말했듯 비단 노트 낙하형 리듬 게임뿐 아니라 음악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으로 수퍼브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 ‘유미의 세포들’과 ‘피아니스타’ 스위치 버전, 그러면 수퍼브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김영대: 사실 엄청 큰 대형 회사가 아니다 보니 차기 프로젝트를 미리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유미의 세포들’과 ‘피아니스타’ 모두 앞으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도록 라이브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유저 여러분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는 길이라 믿는다.
● 리듬 게임 개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적잖은데, 추가 인력을 모집하고 있나
김영대: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언제든 문은 활짝 열려 있으니 리듬 게임에 대한 열정만 충분하다면 함께 일하자. 부서간 허울없이 재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각종 부조리가 없는 회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 끝으로 루리웹 독자들에게 당찬 한마디를 부탁한다
김영대: “진짜 음악과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품질의 리듬 게임을 선보이고 싶고, ‘피아니스타’에도 명곡을 많이 담았으니 재미있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민택: “사운드를 총괄하는 오디오아트 팀장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작곡가로서 언제나 좋은 음악으로 여러분을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