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일부 의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조문하기를 거부한 데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심 대표의 사과를 놓고 정의당 안팎에서는 박 전 시장 고소인 비판이 제기됐다.
심 대표는 14일 의원총회에서 “유족과 시민의 추모 감정에 상처를 드렸다면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두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방지하겠다며 조문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일부 당원은 이에 반발해 탈당했다.
심 대표는 이날 두 의원의 조문 거부를 “2차 가해를 우려해 피해 호소인 측에 굳건한 연대 의사를 밝히는 쪽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라고 두둔하면서도 사과했다. 이어 “정의당은 애도의 시간 동안 고인의 공적을 반추하며 저를 포함한 전·현직 의원들이 조문하고 명복을 비는 동시에 피해 호소인에게 고통이 가중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며 “장례 기간에 추모의 뜻을 표하는 것과 피해 고소인에 대한 연대의사를 밝히는 일이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와 정의당의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사회적 논란이 큰 만큼 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크다”며 “당 내부의 격렬한 토론 역시 정의당이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심 대표의 사과 후 정의당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진 모양새다. 정의당은 비판이 이어지자 심 대표의 사과가 ‘조문을 거부한 행동’ 자체에 대한 사과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심 대표의 사과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심 대표가 두 의원을 향한 부정적 여론에 고개를 숙이며 결과적으로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강민진 당 혁신위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심 대표의 사과에 관해 “아쉽고 유감스럽다”며 “(심 대표가) 두 의원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에도 “당의 입장과 색을 분명히 할 기회인데 연대 발언을 한 두 의원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과를 한 것은 얻는 것 하나 없이 잃기만 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글이 다수 게시됐다.
통상 정의당은 범여권으로 분류되며 민주당과 정치적 입장을 비슷하게 가져왔다. 이에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의당은 이달 초 “정의당을 범여권이 아닌 ‘진보야당’ ‘진보정당’이란 더 정확한 범주로 지칭해달라”로 요청하기도 했으나 심 대표의 사과 후 비슷한 취지의 비판도 이어졌다. 트위터에도 ‘심상정 한마디로 2중대로 확인사살한다’, ‘왜 소신껏 할 말을 하는 다른 의원들을 자기 멋대로 말 한마디로 잘못한 사람을 만드냐’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정의당을 탈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어이가 없다”며 “민주당 2중대 하다가 팽당했을 때 이미 정치적 판단력에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심 대표에 대해 가졌던 마지막 신뢰 한 자락을 내다 버린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피해자가 ‘50만명이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고 절망했던 그 위력에 (심 대표가) 투항·적극 가담한 것”이라며 “거기에 분노한다”고 했다.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했으나 공개발언은 하지 않았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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