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 경남 감독이 최근 전지훈련지인 남해의 한 호텔에서 올해 자신의 포부를 설명하고 있다. 남해 | 황민국 기자
설기현 경남FC 감독(41)은 선수로 은퇴를 직감했던 2014년 4월을 잊지 못한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허리 부상에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4개월 가까이 쉰 끝에 결국 이듬해 축구화를 벗었다. 어찌 보면 축구선수로 가장 아팠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를 허투로 보내지 않은 것이 지금의 힘이 되고 있다.
당시 설 감독은 몸이 아닌 머리로 땀을 흘렸다. 지도자가 된다면 축구 전술을 선수들에게 영상으로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편집 기술을 익혔다. 원래 ‘컴맹’이었던 그는 분석관 수준의 능수능란한 기술을 익혔다. 유럽 무대를 누비면서 체득한 축구 철학을 한국의 현실에 맞는 옷으로 재단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경남 사령탑으로 새 출발하는 설 감독은 최근 전지훈련지인 남해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전술을 동영상으로 다루고 또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에선 자신이 있다. 7년간 쌓아온 노력이 가득한 노트북이 이제는 나의 전 재산이 돼있다”고 활짝 웃었다.
설 감독의 노력은 개막을 앞둔 경남 선수들의 표정을 통해 잘 드러난다. 선수들은 측면 풀백이 마치 미드필더처럼 올라갔다 내려오는 ‘대세 전술’을 배우느라 고생문이 열렸지만 설 감독의 섬세한 설명에 금세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훈련을 진행하다 잘못된 부분이 확인되면 중단 뒤 즉시 영상으로 전술을 설명한다. 외국인 선수들과의 소통도 그의 몫이다. 전지훈련 내내 선수들의 움직임이 쌓인 오답노트가 줄어들수록 1부리그 승격에 대한 희망도 높아진다.
설 감독은 “분석관이 따로 있지만 아직은 선수들이 내 축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직접 설명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내 축구를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올해 성적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 감독이 과거의 지도자상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더. 선수들과 가까워진 요인이다. 다른 팀들이 1주일 내내 훈련만 외치는 것과 달리 설 감독은 2~3일 주기로 휴식일을 배치하며 자율적인 면을 강화했다. 공격수 황일수는 “형님 같은 감독님이라 소통이 잘 된다. 팀워크도 좋다”고 말한다.
설기현 경남 감독이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에게 동영상으로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설 감독은 “강압적으로 한다고 따라오는 건 아니다. 또 고액 연봉의 프로 선수는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라며 “잉글랜드 풀럼 시절 사제 관계였던 로이 호지슨 감독님(현 크리스털 팰리스)도 선수의 장점을 그렇게 살렸다”고 말했다.
감독 또한 결과로 평가받는 건 똑같다. 지난해 2부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은 경남은 올해 1부 승격을 목표로 제시했다. 감독 설기현의 성패도 승격 여부에 달렸다. 그런데 설 감독은 승격을 넘어 그 이상을 바라본다. 승격만 노리면 1부에 올라가도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과거 ‘완벽한 축구를 5분만 수놓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던 아르센 웽거 전 아스널 감독처럼 상대를 압도하는 축구를 그려가고 있다. 경남을 상대한 일부 K3리그 팀들 사이에선 이미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설 감독은 “경남만의 확실한 색깔을 만들고 싶다”며 “선수들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이젠 70% 수준의 완성도를 갖췄다. 올해 남은 30%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승격도 그 이후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