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토브리그’를 집필한 이신화 작가의 작업실. 이 작가는 “신인이라, 이를테면 런닝바람인 상태나 다름없다”며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작가를 대신해 이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노트북과 스토브리그 16화 대본, 등번호 1번과 작가 이름이 적힌 드림즈 유니폼, 드림즈 마스코트가 이 작가를 대신했다. | 이용균 기자
여의도 오피스텔 작업실, 길쭉한 거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은 백승수 단장의 책상처럼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노트북 1개, 야구책 몇 권. 이 곳에서 겨우내 뜨거운 야구 얘기를 쏟아 놓은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탄생했다. 야구 팬들은 물론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백 단장의 ‘사이다’ 활약에 환호했다. 조용했던 현실의 스토브리그와 달리 드라마 속 스토브리그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야구를 다시 이야깃거리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았다. 지난해 7월부터 8개월째 작업실에서 작품에 매달린 이신화 작가를 마지막 방송 직전 만날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야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 숱한 화제 속에 드라마가 끝났다.
“불친절하고 로맨스도 없는 드라마를 시청해 준 분들에게 진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로맨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정말 러브 라인이 없었다.
“기획 때는 엑스 파일의 멀더와 스컬리 정도의 긴장감 정도 고려했다. 또는 허준과 예진아씨 정도. 회의 거친 끝에 해야 할 얘기가 많아서 빼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 야구팬들이 열광했다. 야구를 둘러 싼 수많은 사건 디테일이 잘 녹아있다. 엄청난 야구팬일 것 같다.
“음, 오래된 마일드한 야구팬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열광적이지 않고, 그냥 늘 옆에 두고 (야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드라마 만들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 스토브리그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스포츠 드라마 어렵다는 얘기 많다. 스포츠 자체가 각본없는 드라마니까, 더 재밌기 어렵고 시각적 구현도 힘들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있지 않나. 손병호 감독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손병호 감독이 단장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기본 틀을 잡고, 야구 이야기를 넣었다.”
- 실제 스포츠 드라마 잘 안되는 징크스를 이번에 스토브리그가 깼다.
“음, 실제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 오피스 드라마로 여겨지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머니 볼>이 아니라 <미생>을 모델로 삼았다. 미생도 드라마 속 무역 용어 잘 몰라도 넘어간다. 무역회사 다니는 사람은 더 카타르시스 느끼고. <스토브리그>도 그런 느낌이다. 세이버메트릭스 용어 나올 때도 아는 사람은 아는대로 즐기고, 몰라도 저게 굉장히 어려운 얘기구나 정도만 느껴지면 백승수, 백영수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도 아주 잘 해주셨다.”
- 백승수 사이다 활약과 대사에 팬들의 마음이 시원해졌다.
“원래는 조금 더 ‘다크 히어로’에 가까웠다. 주전 유격수 여자 문제 생기면 여자측 증거 다 없애고, 마음의 경멸 있지만 승리를 위해 선수 지키는 스타일. 회의 거듭하면서 지금 모습으로 바뀌었다. 두 장면이 각별하다. 길창주 기름 가지러 갈 때, 백승수 단장이 ‘내가 약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니까. 이젠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지켜주는 마음 뿐일 거예요’ 하는 부분과 드라마 마지막에 이세영 팀장이 ‘우승을 해야만 의미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두 개. 강하게 무장된 사람이 약한 조직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드라마라고 여겨질 때쯤, 사실은 백승수가 성장해야 하는구나 느껴지는 점. 그게 이 드라마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우리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것.”
- 야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장 야구가 좋았을 때는 2000년대 중후반이었다. 두산은 발야구, SK는 벌떼야구, 롯데는 노피어 뻥야구, KIA 선발야구, 삼성 불펜야구 하고 그럴 때. 모든 팀들이 각자 색깔이 있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던 시절, 다양성이 넘치던 때의 야구가 그립다.”
- 야구팬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드림즈는 롯데인가? 한화인가?
“하하. 이건 진짜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다. 롯데·한화 아니다. 삼미, 쌍방울, 태평양, 현대 등의 이미지가 다 섞였다. 이상하게 가난한 팀을 많이 좋아했다. 농구팀 나산 플라망스 좋아했다. 유니폼 빨아입고, 숙박비 없어서 지각하고.”
- 임동규는 이대호? 김태균? 예고편에서 김태균과 생년월일이 같았다.(본편에서 수정)
“아, 그건 진짜 거짓말같은 우연이다. 연출부에서 계약서에 생년월일 필요해서 아무렇게나 적었는데, 그게 김태균 선수랑 딱 맞았다. 모두 너무 깜짝 놀랐다. 심지어 (숫자 적은)분은 야구 잘 모른다. 이 자리를 빌어 자꾸 비교되고 언급된 김태균 선수는 물론 이대호 선수에게도 미안한 마음 전하고 싶다.”
- 시즌 2 볼 수 있을까.
“당장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차 오르면 가능할 것 같다. 적어도 ‘이럴 거면 돌아오지 말지’라는 말을 들으면 안되니까. 스토브리그니까, 정규시즌 아니고, 다시 스토브리그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