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정세균 총리 체제는 여러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갈등 정국에서 ‘소통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정 차기 총리의 역할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13일 “정 차기 총리는 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 4선을 하며 명절 때마다 지역 내 1000명에게 전화를 했다”며 “19대 총선 때 서울 종로로 지역을 옮긴 후엔 의정보고회를 200회를 할 만큼 소통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정 차기 총리의 탁월한 소통 능력을 소개했다. 그의 몸에 밴 소통은 집권 후반기에 공직기강을 다잡아 분위기를 쇄신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된다.
실물 경제 전문가 출신의 정 차기 총리는 청문회에서 “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겠다”, “과감한 규제혁신을 통해 기업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겠다”면서 친기업, 규제개혁 행보를 예고했다. 쌍용그룹 상무이사와 참여정부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경험을 살려 문재인정부 최대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정 차기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역대) 여러 총리께서 갖고 계신 장점을 어떻게든 잘 취해서 ‘명총리’가 됐으면 하는데, 저 같은 경우 일로 승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총리직에 강한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만큼 신중한 정 차기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명총리’를 화두로 내세운 것은 총리로서의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 차기 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스웨덴식 목요클럽이라는 협치 모델을 제시하며 올 4월 총선 이후 모든 정당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 내각’ 구성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약속했다. 현 정국에서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참여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당과의 협치는 가동될 수 있다. 나아가 정 차기 총리가 평소 지론인 ‘분권형 개헌’까지 추진한다면 정세균발 개헌 정국이 열릴 수도 있다. 정치적 중량감이 묵직한 정 차기 총리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의 관계처럼 문재인정부의 실세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금까지 총리 출신 국회의장으론 백두진, 정일권씨 등 2명이었으나 국회의장 출신은 정 차기 총리가 처음이다. 또 그동안 국무총리 출신 대권후보들이 적지 않았는데 김종필(JP) 전 총리를 제외하곤 총리직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잠룡으로 부각되곤 했다. 이회창, 고건 전 총리는 물론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이낙연 총리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선후보로 떠오른 케이스다.
당 대표를 세 차례 역임한 정 차기 총리는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적이 있다. 청문회에서 차기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나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문 대통령과 정 차기 총리는 공동운명체”라며 “문재인정부가 성공하지 못하면 (정 차기 총리) 다음 자리가 어디 있겠나. 현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면 같이 무너지고 성공하면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정 차기 총리로서는 총리직 수행 자체가 대선후보로 가는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정 차기 총리는 2009년 민주당 대표 때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맞서 6일간 단식투쟁을 하는 강단을 보인 바 있다. 호남의 텃밭 지역구를 떠나 서울 종로에 출마해 2연승을 한 저력을 보였다. 그런 정 차기 총리는 국회의장 출신 첫 총리로서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다. 그는 총리 인준안이 통과된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국민을 잘 섬기는 총리가 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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