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애,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최근에 ‘82년생 김지영’을 극장에서 봤어요. 재밌더라고요.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여성의 위치가 많이 변화했다는 것도 느꼈죠. 또 예전 제가 연기했던 MBC ‘아들과 딸’이 생각났어요. 그땐 여성이 약자로서 소외되는 게 당연시됐는데, 이젠 세상이 점점 좋아지고 살만하게 변해가나 봐요.”
배우 김희애가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엄마’ 그리고 ‘여성’의 삶을 색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신작 ‘윤희에게’(감독 임대형)에 대한 자신감도 투영돼 있었다.
“영화의 톤이 참 좋았어요. ‘비밀이 있으면 계속 들키지 마’라고 말하는 것도 굉장히 사실적으로 느껴졌고요. 동성애 등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써내려가는 게 신선했어요.”
최근 ‘스포츠경향’이 만난 김희애는 ‘윤희에게’ 촬영 후기와 오랫동안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는 비결 등을 털어놨다.
■“참 좋았던 유재명·프로페셔널 김소혜”
그는 이번 작품으로 연기파 배우 유재명을 만났다. 동성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내(김희애)와 그를 사랑하는 전남편(유재명)으로 나온 두 사람이 함께 앵글에 잡힐 땐 그 시너지 효과가 필름을 뚫고 나왔다.
“후반부 청첩장을 건네는 장면에서 감정이 터지잖아요. 리허설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안 맞추고 해봤어요. 더 좋은 게 나올 것 같더라고요. 유재명도 미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분명 얻는 게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연기를 맞춰보니 기대 이상이었어요. 감정을 교류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죠.”
딸로 등장한 김소혜의 패기 넘치는 호흡에선 어릴 적 자신을 떠올렸다.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었어요. 타고난 건가 싶을 정도였죠. 또 소혜가 평소에도 성숙하더라고요. 자기 몫을 200% 해내는 걸 보면서 반성도 했고요. 전 어릴 적에 소혜처럼 프로페셔널한 마음이 없었거든요. 그런 면이 존경스럽고 멋있어서 부러웠어요.”
20대의 김희애를 떠올리면 부끄러울 뿐이란다.
“예전엔 배우라는 게 제 옷이 아닌 것 같았어요. 사인해달라고 요청이 오면 주눅부터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 못 즐겼던 것까지 즐기자! 현장에 설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 뿐인데,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배우가 된 것 같아요.”
혹시나 선배로서 조언해준 게 있느냐고 물으니 손을 저었다.
“나이 많다고 연기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또 소혜를 한번도 후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같이 연기하는 동료죠.”
■“멜로 연기 전문가요? 전 많은 생각은 안 해요”
데뷔 36년차, 지금까지도 멜로 연기를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멜로 연기 전문가’란 수식어가 나오자 그는 또 한 번 두 뺨을 붉혔다.
“글쎄요. 전 많은 생각은 안 하기로 했어요. 그저 배우니까 연기와 캐릭터에만 집중하자.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캐릭터에만 신경쓰자. 그래야 보는 이도 오그라들지 않고 시청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매 작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어요. 특히 멜로란 장르는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좋아해주시는 걸까요?”
작품에 대한 간절함이 지금의 위치로 이끌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배우 김희애’를 자극하는 것은 뭘까.
“다른 사람의 열연을 볼 때 가장 자극되죠. 또 영감을 받는 건 다큐멘터리를 볼 때예요. 특히 KBS1 ‘인간극장’을 좋아하거든요. 단촐하게 찍지만 굉장한 감동을 주잖아요. 사람을 공부할 수도 있고요. 이렇다 할 큰 자극은 없지만 그런 작은 것들을 보며 영감을 얻고, 하루하루가 모여 제 연기도 완성되는 것 같아요.”
평소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남들과 다르지 않아요. 하루종일 일과를 끝낸 뒤 어스름이 질 때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 음악을 틀어놓은 채 음식을 준비하고 와인 한 잔 하면서 재밌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정말 행복해져요. 아늑하고 포근함을 느끼죠. 최근엔 티모시 샬라메에 꽂혔어요. ‘더킹:헨리 5세’ 등 다 찾아봤고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왔다는데, 아쉽게도 저도 촬영이 있어서 보질 못했어요. 언젠가는 꼭 작품으로도 만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최근의 화두를 물었다.
“제게 집중해도 되는 나이인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젠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생각하고 그걸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