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축구장 면적(0.714㏊) 1천774개에 해당하는 1천267㏊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속초산불이 고압전선 노후화와 한국전력의 부실시공 등 복합적인 하자에 따른 인재로 드러났다.
강원 고성경찰서는 한전 관계자 7명과 관리 시공업체 2명을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의 혐의는 업무상 실화, 업무상과실치사상, 전기사업법 위반 등이다.
경찰은 이들 중 4명에 대해 2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모두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전선 자체의 노후, 부실시공, 부실관리 등 복합적인 하자로 인해 전선이 끊어지면서 산불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전선이 끊어져 산불 원인을 제공한 해당 전신주를 포함해 일대의 전신주 이전·교체 계획을 한전이 2017년 수립하고도 2년여간 방치한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전기배전 관련 안전관리 문제점들은 관계 기관에 통보하고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 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 주민들은 이번 경찰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조사 결과가 이미 전해진 것과 차이가 없다며 봐주기 조사 의혹도 제기했다.
장일기 속초·고성산불 비상대책위원장은 "중실화도 아닌 업무상 실화라니 한마디로 참담하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재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산불피해 보상 문제를 둔 6차 협상이 다음 주 월요일로 예정된 만큼 이 시점에서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현익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부위원장은 "다음 협상에서 한전이 피해액에 대한 보상 비율을 제시하는 시점에 수사결과를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한전 편을 많이 들어주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경혁 고성속초 산불피해 소송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사망자가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한 관리책임자의 구속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앞으로 협상, 소송 등에 영향이 미칠 것이기에 검찰을 상대로 집회와 항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비대위들은 경찰 수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책임자 구속을 촉구했다. 이들은 자체 회의 후 6개 비대위 연합집회 등 강력 대응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자사의 책임으로 드러난 만큼 이재민 보상과 안전관리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김동섭 한전 사업총괄 부사장은 이날 경찰 수사 결과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며 "이재민 피해 보상을 신속하고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손해금액이 확정된 이재민을 대상으로 보상금 일부를 선지급했으며, 최종 보상금액을 결정하기 위해 특별심의위원회를 운영 중에 있다"며 "이달 11일 기준 선지급 보상금은 715명 123억원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설비 안전 강화대책을 추진하겠다"며 "강풍 지역 안전보강형 전기공급방식 개발 등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통해 설비 안전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4월 4∼6일 고성·속초(1천267㏊), 강릉·동해(1천260㏊), 인제(345㏊)에서 잇따라 발생한 산불로 축구장 면적 4천22개에 해당하는 2천872㏊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재산 피해액은 고성·속초 752억원, 강릉·동해 508억원, 인제 30억원 등 총 1천291억원에 달하고 658가구 1천52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571억원에 달하는 국민 성금이 모금되는 등 국민적으로 관심이 집중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한윤종 기자 hyj070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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