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체육시설 사용에 대한 권고안을 지난달 내놓았습니다. ‘공공체육시설, 학교체육시설을 소수 단체가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취지는 좋은데 개선책은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공공체육시설은 2017년 말 기준으로 2만6900여개가 있습니다. 학교체육시설은 지난해 말 기준 1만1600여개입니다. 위치도 좋고 시설도 괜찮은 편입니다. 잘 활용하면 많은 주민들이 편안하게 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관건은 시설 운영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누구이며 어떻게 운영하고 있느냐입니다.
지자체 공공체육시설은 그나마 운영 주체가 있습니다. 운영 주체가 없어 활용도가 떨어지는 곳은 학교체육시설입니다. 권익위는 예약 및 공개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이는 헛된 희망에 불과합니다. 운영 주체가 없다면 학교체육시설은 제대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학교체육시설에 대한 권한은 학교장에 있습니다. 학교장이 원하면 개방하고, 원하지 않으면 개방하지 않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체육시설을 개방하는 학교는 90% 이상입니다. 그런데 허수가 많습니다. 체육관이 아니라 운동장만 개방하거나, 체육관을 마지 못해 최소한만 여는 소극적인 개방 학교가 다수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교장은 학교체육시설 개방을 원하지 않습니다. 명분은 “학생들을 위한 시설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고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체육시설에 대한 모든 책임이 학교장에 있기 때문에 개방을 꺼립니다. 학생 하교 후, 교사 퇴근 후 체육관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무조건 학교장 책임입니다. 운동장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학교장은 가장 손쉬운 선택인 개방 금지를 결정합니다. 학교, 운동장, 체육관 모두 세금으로 지어졌습니다. 지역민들에게도 개방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학교체육시설 개방은 생애 체육을 강조하는 현정부 체육 정책에도 부합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학교체육시설 운영 주체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은 일부 종목 클럽동호인들이 학교장을 어르고 달래서 체육관 사용을 허락받습니다. 그후 타 종목, 타 클럽 동호인들을 배척하면서 체육관을 거의 배타적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이런 문제가 예약 및 공개 시스템이 마련된다고 없어질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동호인들이 클럽 이름이 아니라 개인 이름으로, 지인 이름으로 대관을 신청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기 사용료를 내면서 체육관을 꾸준하게 쓸 수 있는 종목은 실질적으로 두 세 개에 불과합니다. 관리인을 두고 있는 학교도 물론 있습니다. 대부분 노인인 이들이 매일 밤 체육관을 다니면서 중복 이용하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결책은 제도 개선과 인력 배치입니다. 학교장에게 학교체육시설 사용에 따라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동시에 학교체육시설을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할 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지자체, 교육청,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월급과 행정력을 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동종, 타)동호인 간 갈등 조정 △종목별·클럽별 체육관 사용시간 조율 △학생과 지역민 균등 사용 유도 △체육관내 금지행위 예방 △체육시설 관리 및 개보수 등에 대해 강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제도가 개선되고 인력이 배치된 뒤에 온라인 시스템이 더해져야 효과가 납니다. 제도 없이, 사람 없이 얹어진 시스템은 또 다른 혼란과 편법만 초래할 뿐입니다.
이번 권고안을 의결한 위원 11명 중 체육 전문가는 없습니다. 귄익위가 권고안을 내려보낸 대상기관도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교육부일 뿐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는 빠졌습니다. 권익위는 “대한체육회, 문체부 의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개선안을 들은 게 아니라 시설 분포 현황 자료만 얻었을 뿐입니다. 귄익위가 대한체육회, 문체부에 개선안을 질의했다면 몇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학교체육시설 개방 관리 매니저’ 사업 등을 전해들었을 겁니다.
권익위는 권고할 뿐 강제력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익위는 권고하기에 앞서 대상기관에 권고 수용 여부를 묻습니다. 수용하겠다고 하면 권고하고 거부 의사를 밝히면 권고하지 않습니다. 즉 이번 권고도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교육부가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이뤄졌습니다. 이번 권고는 이행되겠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갈 겁니다. 제도 보안과 인력 배치가 안 된 상황에서 들어가는 세금이 과연 효과를 낼 지 의문입니다.
권익위는 권고안을 내놓으면서 정한 의안명은 이렇습니다. “국민생활 속 반칙·특권 해소를 위한 공공체육시설 사용의 투명성 제고 방안”입니다. 기자가 권익위에 권고합니다. 학교장 책임을 면해주고 학교체육시설 관리 인력을 배치하는 내용으로 추가적으로 권고해달라고요. 그래야 세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고 의안명처럼 체육시설 사용에 대한 반칙과 특권이 사라질 수 있다고요. 기자의 권고에 강제력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