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북한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북한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경기에서 황희찬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원정에서 접전 끝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남북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열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평양 원정은 취재도 중계도 허락되지 않는 깜깜이 경기였다. 지난 15일 평양 원정이 남긴 가장 큰 의문은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졌다는 점이다.
당초 북한은 5만석 규모인 김일성경기장에 4만여명이 방문할 것이라 예고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를 지켜본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 등 축구 관계자와 평양 주재 일부 외교관이 전부였다. 이날 경기장에 태극기가 내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진 게 아니라면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이라는 큰 무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경기 내용을 문자 중계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무관중으로 진행된 것에 국제 축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도 현지에 파견된 경기 감독관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 평양 주재 지국이 있지만 출입을 거부당한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도 일제히 북한을 비판했다. AP 통신은 “한국과 북한의 역사적인 월드컵 예선 경기가 한국에선 ‘미디어 암흑’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또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는 ‘기괴한 경기’였다며, “(경기) 결과는 거의 부수적인 것이었다”고 논평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사전 조율된 사항이 아니라 파악이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국내·외 축구 관계자들은 이번 무관중 사태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먼저 전력에서 열세인 북한이 한국에 패배할 경우 우려되는 사회적인 충격을 감안해 무관중 경기를 진행했을 수 있다. 역대 전적을 살펴보면 한국이 이날 경기 전까지 7승8무1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조광래 대구FC 사장은 “첫 남북대결이었던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이 떠오른다”며 “당시 북한 선수들은 패할 경우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긴장감이 컸다”고 말했다.
냉랭한 남북관계를 이날 경기를 통해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정치적인 셈법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조선과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북한이 응원단과 취재진의 입북을 거부한 상황에서 관중까지 배제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평양 주재 외교관들을 초청한 것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실는다.
남북전이 열린 다음날인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에 직접 말을 타고 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인판티노 회장이 2023년 여자 월드컵의 남북 공동 개최의 승부수로 북한을 방문한 상황에서 일부러 자리를 비우고,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달 중순까지 월드컵 개최와 관련해 ‘비드북(유치제안서)’을 작성해 각국에 전달해야 하는 가운데 북한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IFA는 내년 3월 월드컵 개최국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북한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예상과 달리 호주가 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