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도전정신·혁신의 승부사
반도체 불모지에서 ‘세계1위’ 신화
재임 중 매출 39배·시총 396배로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이 스러졌다.
‘반도체 신화’를 통해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 만이다. 그는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국내 산업발전과 기술혁신에 영감을 준 정신적 지주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장례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알렸다. 유족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 등 유족들은 전날 이 회장의 위중 소식에 병원을 찾아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으로 올라서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주위 만류에도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사재를 보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 회장은 현실로 이뤄냈다. 삼성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1987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선언(프랑크푸르트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장은 당시 신경영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바꿔라.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품질경영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초반 휴대전화 ‘애니콜’의 불량이 잇따르자 1995년 3월 ‘화형식’이라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해 불량률을 떨어뜨렸다. 1987년 10조원이 채 못 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으로 386조원을 넘기며 39배 늘었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커졌다. 현재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20여개 품목에서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등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 회장의 별세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과 재계 등 각계가 일제히 애도를 표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나기천·박세준 기자 n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