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라스트 오브 어스'가 공개되었을 때, 단편적으로 공개된 정보를 토대로 유추해볼 수 있었던 게임의 분위기는 '언챠티드+재앙물'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은 묘기하듯 무너진 건물 잔해를 뛰어다니며 호쾌하게 적을 쏘고, 가끔은 머리를 굴려야 하는 퍼즐이 게이머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너티 독이라면 좀 더 획기적인 무언가를 준비하리라 생각은 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제 예상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게임 플레이를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타이베이 게임쇼에서의 미디어 시연회에 참가해서 PS3 컨트롤러를 잡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드셋을 끼고 플레이를 시작하자 마자 저의 예상은 완전히 깨졌고, 감염체와의 치열한 사투가 시연회에 참가한 아시아 각국의 미디어들을 반겨주었습니다. 너무 안일하게 게임에 대해 예상했고, 제작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 셈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서로를 돕는 남성과 어린 소녀와의 가슴 뭉클한 성장기 내지는 따뜻한 휴먼 스토리만을 예상했던 저에게, 라스트 오브 어스는 잘 익은 막창 구이처럼 생긴 감염체가 기묘한 관절 움직임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연한 목살을 잡아 뜯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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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스크린샷을 봤을 땐 그냥 재앙물 언챠티드인 줄 알았는데…. |
그런 거 없고 감염체. |
본격적인 체험기에 앞서 잠시 라스트 오브 어스의 기본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곰팡이균에 의해 전 세계에 끔찍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뒤 20여년이 지나서 현대 문명이 무너지고 정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모험해야 한다는 설정입니다. 현대 문명이 사라지고 주인공만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내용의 '나는 전설이다'와도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닮은 듯합니다. 기묘한 존재의 등장은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대재앙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소설/만화 등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데모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캐릭터는 일단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캐릭터인 '조엘'과 그가 보호하며 함께 여행하는 어린 소녀 '엘리', 그리고 블랙 마켓의 '테스'까지 총 세 명입니다. 함께 모험을 하는 구성은 게임 진행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데모 버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이동하며, 무너진 건물 사이사이를 이동하면서 가끔 전투를 하다가 몰려드는 감염체를 피해 한 건물 속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데모 버전이 끝났습니다. 데모 버전의 플레이 시간은 대략 40~50분 정도였으며, 약간의 이벤트 영상과 전투, 퍼즐 파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세 캐릭터가 한 팀이지만 데모 버전에서 캐릭터들 간의 협력 플레이가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도와가며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는 언챠티드 시리즈에서도 이미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데모 버전은 게임의 극히 초반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동행하는 캐릭터들의 인공지능도 올라가면서 상황에 따라 조엘의 전투를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데모 버전에서도 가뭄에 콩나듯 전투 도중 조엘이 위험에 처하면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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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합쳐 목적지까지 이동하거나 때로는 사신의 얼굴을 하고 전투를 도와주기도 한다. |
실제 배우들을 모델로 한 사실적인 캐릭터들의 모습과 자연스러운 모션(관련기사 바로가기), 대재앙 이후의 도시를 묘사한 압도적인 배경 그래픽도 인상적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게이머들을 안내해주는 빛의 묘사가 가장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언챠티드 시리즈를 통해 라스트 오브 어스의 그래픽이 굉장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부분이지만(물론 제작진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조명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광원이 적용되고 그것이 배경의 각종 오브젝트와 맞물려 유기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기대 이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완성도 높은 그래픽은 게임 특유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대재앙 이전에는 마천루가 들어선 도시였겠지만 이제는 수풀이 무성한 정글 도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비를 피하려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감염체가 따뜻하게 주인공들을 맞이해줍니다. 이젠 PS4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는 이 시점에서 PS3라는 하드웨어의 한계 덕분에 몇몇 연출에서는 딱 기대한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을 둘러싼 회색 환경과 포인트를 찍어주는 듯한 수풀과 비가 고인 웅덩이의 모습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맵 자체는 넓은 편이지만 언챠티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어차피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으며, 이는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 속을 돌아다니는 것에도 적용되는 전제입니다. 보기엔 아무리 아슬아슬한 난간이라 해도 가야할 길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데다 저쪽 아래로 갈 수 있어 보이긴 해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유로운 오픈 월드 스타일을 기대했던 유저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한정적인 성능 내에서 사실적인 캐릭터 묘사와 전체적인 그래픽 품질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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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를 이용한 인상적인 광원 연출과 멋진 자연 풍경이 준비되어 있다. |
장중한 음악이 플레이 내내 꽝꽝 울리진 않지만, 최근 플레이해본 그 어떤 게임보다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바로 감염체의 괴성 때문입니다. 일단 감염체가 어슬렁거리는 구역에 들어서면 해당 구역을 벗어나거나 모든 감염체를 처리하지 않는 한은 소름 끼치는 감염체의 괴성과 신음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괴성은 게임의 장르를 순식간에 호러 장르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감염체가 달려드는 모습에 놀라는 일은 없는데, 난데없이 들리는 괴성 때문에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시연회 내내 헤드셋을 끼고 플레이했던 터라 끊임없는 감염체의 괴성은 마지막에 가서는 불쾌하기까지 했으며, 몇몇 기자들은 아예 헤드셋을 벗고 플레이하기도 했습니다. 사운드를 통해 감염체의 위치나 공격 상황을 감지할 수는 있었지만, 귀가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만 당할 수는 없으니 정식 발매가 된다면 꼭 헤드셋을 끼고 플레이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힘들었던 시연 동안 단 한 순간 귀가 즐거웠던 순간은 길을 걷는 도중에 엘리가 추워서 재채기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귀여운 목소리로 재채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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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체의 괴성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40분 내내 누가 귀에 대고 트림을 해대는 것 같았어요. |
굉장히 게임이 빡빡한 편입니다. 절대적인 난이도가 어렵다거나, 적으로 등장하는 감염체가 손도 못 댈 정도로 강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감염체의 특성에 맞게 진행해야 하고 적당히 총을 쏘고 피해다니면서 이동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빨리 게임을 진행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달리다가 몇 번이나 감염체에게 목 힘줄을 맛나게 냠냠당하기도 했습니다. 언챠티드 시리즈에서 시원하게 총을 난사하며 전투 그 자체를 즐기던 것에 비하면 라스트 오브 어스의 전투는 서바이벌 호러 잠입 액션에 가까웠습니다. 좀 길지만 진짜입니다.
예를 들면, 앞을 보진 못하지만 소리에는 민감한 감염체가 있다면 억지로 그들을 때려잡는 게 아닌, 주변에 굴러다니는 빈병이나 벽돌 등을 멀리 던져서 그쪽으로 보낸 이후 길을 뚫어 해당 지역을 벗어나야 합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는 화염병을 던져 다수의 감염체를 처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도 굳이 전투를 피하고 도망치는 식으로 플레이해야 한다고 나오길래 얼마나 저 감염체가 강하면 그럴까 싶어서 일부러 총을 한 번 쏴봤습니다. 사방에서 총소리를 듣고 감염체가 몰려들었고,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 속의 감염체 수가 +1 되었습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SCEK 관계자에게 왜 바보 같이 총을 쏘냐고 어깨를 맞아가며 구박받은 것은 매우 억울했지만, 어쨌든 게임에 굉장히 익숙해지거나 엄청난 실력자가 아닌 이상은 다양한 감염체의 특성에 맞게 플레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탄환을 제공해주는 게임도 아니기에 때로는 몰래 뒤로 돌아가 감염체의 목을 부여잡고 끝장을 내는 것도 거의 필수입니다. 플레이 도중 운이 좋아서 이런 플레이를 하지도 않고 위험 지역을 거의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마지막 즈음에 붙잡혀서 힘줄을 냠냠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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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훌륭한 공격 수단이지만 탄환은 부족한 편. |
당연한 소리지만, 다수의 감염체와의 전투는 매우 위험하다. |
실제로 시연회가 열린 기간 동안 한국/일본/대만/홍콩/싱가폴 등 게임에 익숙한 아시아 각국의 기자 수십 명이 돌아가며 데모 버전을 플레이했지만 마지막까지 클리어한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단 세 명뿐이었을 정도로 일반적인 데모 버전을 플레이하는 듯한 감각으로는 진행할 수 없는 난이도를 자랑했습니다. 제작진은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지금도 게임 밸런스와 난이도 조절을 하고 있으며, 정식 제품 버전에서는 난이도 선택 옵션을 넣을 것이라고는 밝혔지만 이렇게 빡빡한 느낌을 즐겨가며 플레이하는 것도 게임의 장르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과격한 모션의 액션이 등장하고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잔혹한(=통쾌한)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액션 자체를 즐기는 게임은 아닌 듯해 보였습니다. 각종 오브젝트를 인식하고 사용하는 식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의 극적인 연출로는 멋지게 보였지만 멀티 플레이 모드에서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에 멀티 플레이 모드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시간에 이에 대해 묻기는 했지만 아직은 멀티 플레이 모드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액션 시스템을 짜넣을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어렵다고는 했지만 제품 버전이 나오면 감염체를 가지고 노는 유저들도 분명히 나오겠지요.
데모 버전에서는 퍼즐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언챠티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감을 못잡고 헤매다 보면 힌트를 볼 수 있게 했기에 수시로 게임의 맥이 끊기거나 공략법을 알기 위해 골머리를 앓을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저도 데모 버전 최후에 등장하는 퍼즐을 이해 못해서 신경질내며 5분 정도 돌아다니기만 했지요). 게다가 과거 몇몇 어드벤처 게임처럼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퍼즐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적어도 데모 버전에서는 상황에 맞게 길을 만들고 게임을 진행해나가기 위한 필수 요소로 퍼즐이 등장하는 식이었습니다.
데모 버전은 아주 짧은 챕터를 플레이하는 형식이었기에 그리 와닿진 않았지만 음식과 물, 약이나 기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설정이기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모을 수 있는 아이템은 최대한 모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각종 도구를 조합해서 진행에 쓸만한 도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복잡한 시스템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아이템들끼리는 같은 카테고리로 묶어서 간략화하고 조합 과정도 복잡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자막 한글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기에 각종 시스템 이해도 수월할 것입니다.
각종 아이템 조합은 공격 용도로도 사용됩니다. 비록 원시적인 무기에 가깝지만 날붙이를 이용해 감염체를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도 있고 화염병을 만들어서 다수의 감염체를 상대로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을 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탄환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보다 수월하고 빠르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사실 전 데모 버전에서 기껏 만든 화염병을 실수로 계단에 던져버려서 없애버렸지만, 어쨌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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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버전에 나왔던 그 장소이긴 하지만 떨어지진 않아요. |
부비 트랩을 사용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
라스트 오브 어스를 플레이해본 첫인상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신중하게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호러 요소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봤을 때 '무서운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무섭다기 보다는 피곤한 게임이었습니다. 처음 감염체가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 땐 놀라긴 하겠지만 조금만 플레이해보면 옆동네에서 밟히고 있을 네크로모프가 겹쳐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출시된 게임 중 약간만 플레이해봤는데도 이토록 긴장감을 느끼고 피곤하게 느껴진 게임은 라스트 오브 어스가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잘 만들어진 그래픽과 전두엽을 긁는 듯한 기괴한 사운드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실제 데모 버전을 플레이한 것은 40분 정도였지만 저를 포함한 다른 미디어의 기자들 역시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많은 제작 인력이 오랜 시간을 들여 제작한 하나의 게임을 평가하기엔 데모 버전 시연은 굉장히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무섭다는 것을 떠나서 게임 내의 여러 상황으로 인해 굉장히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기엔 충분했고, 이러한 감정이 제작진이 원했던 반응이었다면 그 결과물은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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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성향이 완전히 쭉 빠진 담백한 리뷰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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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짤 스샷 : "막짤을 기대한 저 녀석들에게 한방 쏴주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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