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베어 단편소설: 폭풍을 부르는 자
by 앤서니 레이놀즈, 라일라 하이드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volibear-color-story/
"발히르!"
잠들어 있던 곰의 신은 움찔하기만 할 뿐 눈은 뜨지 않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불리지 않은 옛 이름이었다. 아마 꿈이거나 과거로부터 들려온 메아리가 분명했다. 곰의 신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깊은 눈 속에 머리를 파묻은 다음, 길고 긴 잠을 청했다.
"발히르, 당신의 이름과 이 피로 도움을 청합니다!"
반신의 눈이 떠졌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또렷하고 가깝게 들렸다.
거대한 곰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지축이 흔들리고 몸을 덮고 있던 눈은 눈사태가 되어 쏟아졌다.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털과 머리에 묻은 눈을 흔들어 털어 냈다.
공기 중에 피의 제물 냄새가 났다. 곰의 신은 전율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돌로 그의 룬을 완성하고 제물을 바친 듯했다. 자신을 숭배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그는 네 다리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발히르! 당신의 분노로 저희에게 힘을 보태 주십시오! 모든 죽음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전투와 학살, 복종을 약속하는 그 말에 발히르의 심장이 땅을 울리는 군악대의 북소리와 함께 뛰었다. 발을 구르는 소리, 칼날이 맞부딪치는 굉음, 죽어 가는 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는 발히르의 육신을 부르고 있었다.
볼리베어는 뒷다리로 서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 소리는 동토 전역에 퍼졌고, 프렐요드의 모든 생명의 영혼을 울렸다.
해가 뜨지 않는 아득히 먼 어느 곳에서 정령 주술사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얼굴을 감싸 쥔 손에는 거대한 발톱이 나 있었다.
유빙이 떠다니는 바다를 건너자 서리송곳니 무리가 고개를 젖히고 반신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멀리 떨어진 또 다른 곳에서는 부족민들이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볼리베어는 네 발로 서서 앞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발톱이 얼어붙은 땅을 갈기갈기 찢었고, 눈 덮인 바위들과 나무들은 사방으로 날아갔다. 속도를 올리자 뻣뻣한 털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멈춰서 냄새를 맡았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노의 먹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물들였다.
"발히르!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죽고 죽입니다!"
땅이 꺼질 듯한 충격과 함께 곰의 신이 등장했다.
높이 솟은 얼음덩어리 위에 우뚝 선 그의 몸에서는 번개가 일었다. 볼리베어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피로 흠뻑 젖은 땅 위에서 두 군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죽거나 죽어 가는 자들은 눈밭 위에 널브러졌다. 두 세력의 병력은 수적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열세에 있는 쪽의 패배가 자명해 보였다.
볼리베어는 코웃음을 쳤다. 숫자가 많은 쪽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그들은 검은 갑옷을 입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싸웠다. 볼리베어는 분노했다. 그들은 프렐요드 출신이 아니었다. 눈이 사라져 버린 땅에서 온 나약한 인간들이었다. 곰의 신이 이빨을 드러내자 번개가 전장 한가운데를 때렸다. 귀가 먹을 듯한 굉음과 함께 양측 병사들은 새카맣게 타서 날아갔다.
"발히르! 발히르!"
볼리베어는 분노로 붉게 변한 눈을 돌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인간을 바라봤다. 털가죽 옷을 입은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더니, 양손에 든 도끼 두 자루를 들어 보이며 경의를 표했다. 얼굴에는 사나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싸움을 멈추고 반신을 경외하며 바라봤지만, 볼리베어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여자의 심장이 폭풍을 불러냈다.
"발히르!" 여자가 붉게 물든 도끼를 치켜올리며 외쳤다. "이들의 죽음으로 당신을 경배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의를 표한 다음, 그녀는 힘을 되찾은 듯이 적들과의 전투를 계속했다.
볼리베어는 그 여자와 맞서고 있는 외지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적이었다. 사나운 포효와 함께, 그는 돌진했다.
"볼 쿠 페라!"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볼리베어가 울부짖었다.
그는 마치 살아 있는 공성추처럼 적들을 날려 버렸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분노한 곰의 신 앞에서 적군은 전투 의지를 상실했고, 결국 도망치기 시작했다. 볼리베어의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힌 프렐요드인들은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눈밭 위에서 후퇴하는 적들을 추격했다.
볼리베어는 붉게 물든 입을 벌린 채로 만족스럽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때 볼리베어를 불렀던 여자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한 발히르시여! 저는 전쟁의 어머니, 피 묻은 손 라에타입니다. 발히르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마을을 지켰습니다!"
그제야 볼리베어의 전투에 대한 갈망이 사그라들었고, 주변의 농장과 석조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인상을 쓰며 무릎을 꿇은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볼리베어는 그녀보다 키가 네 배나 컸다. 게다가 분노가 되살아날수록 몸집은 더욱 커졌다. 위압감을 주는 몸에는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옛 흉터와 새로운 상처가 가득했다. 거대한 발톱은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살육을 향한 욕구는 여전히 들끓었다.
볼리베어는 전쟁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볼트 스바아그 다크 스콜."
그러자 여자는 당황한 듯이 올려다보았다. 옛 언어는 이미 잊힌 게 분명했다.
"일어나라." 그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조악한 언어로 다시 말했다. "전사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
그때 볼리베어의 시선이 계곡 끝자락에 닿았다. 무시무시한 울림이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폭력을 예고하는 그 소리에 라에타는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저건 뭐지?" 볼리베어의 분노가 깊어지면서 공기 중에 번개가 일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둑...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볼리베어는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그 강은 볼리베어의 것이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 자유롭게 흐르던 그 강을 겁도 없이 막아 그 힘을 억제하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볼리베어는 라에타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었다.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마침내 그 상스러운 구조물 앞에 서자 노여움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그의 주변에서는 가공할 만한 힘이 소용돌이쳤다. 전쟁의 어머니 라에타와 다른 부족민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볼리베어는 둑 아래로 내려갔다. 물은 발을 겨우 덮을 정도로 얕았다.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흘러야 할 강의 초라한 모습에 그는 격노했다.
엄청난 포효와 함께 볼리베어는 물을 막고 있던 둑을 파괴했다.
그제야 강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강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강물이 범람원을 휩쓸자 비명이 들렸다. 프렐요드인들의 집이 무너지고, 목재가 휩쓸리고, 석조 구조물이 파괴되는 모습을 볼리베어는 흐뭇하게 지켜봤다. 강물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는 동안 인간들은 아이들을 안고 도망쳤다.
문명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볼리베어는 충격에 빠진 프렐요드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너희는 자유다!"
그는 필멸자들의 공포를 감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경외심과 존경도 느껴졌다.
"자유롭게 살고 사냥하고 죽여라! 그리고 전통을 따르라. 그럼 전통도 너희에게 영광을 베풀지니!"
전쟁의 어머니 라에타는 우뚝 선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볼리베어는 그녀에게서 진정한 전사의 혼을 보았다. 분명 대부분의 필멸자들도 그녀를 따를 터였다.
그는 라에타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지평선을 바라봤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린다미어 단편 소설: 사그라드는 불길
by 로이 그레이엄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tryndamere-color-story/
이런 최북단 지역의 밤은 어둡다. 애쉬의 서약자가 있는 대회당 안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화로 안의 불은 사그라들어 있었다. 죽은 듯 보이지만, 맨손으로 잡았다간 크게 델 터였다. 그런 짓을 할 바보는 세상에 없다.
솔직히 이 남자의 꼴은 볼품없었다. 물론 키는 훤칠하고 힘도 셌지만,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게 세어 있었다. 신화나 전설 속의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석에 앉은 트린다미어는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다. 초록색 눈동자는 짐승의 그것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 수는 없었다. 두 눈에 숨기고 있는 분노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분노는 마치 잉걸불에 지푸라기가 타오르듯,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전장의 자매로서 애쉬와 함께했던 첫 겨울의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성급했으며, 무엇보다 따분했다. 새롭게 시작된 삶은 그동안 꿈꾸던 모험과 전혀 달랐다. 북부의 약탈자들을 토벌하러 떠나기 전, 애쉬는 자신의 서약자를 내게 맡겼다. 트린다미어는 부대를 소집하거나 전투의 흥분에 목말라하지 않았다. 그저 주변 부족들이 보낸 사절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 사절들은 귀족이나 전쟁의 어머니들도 아니었다. 풀밭에 내놓은 가축을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루한 인간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한 노인이었다.
"전쟁의 어머니 애쉬 님께서는 겨울 발톱 부족 약탈조와 싸우기 위해 우리 전사들 3분의 1을 데리고 가셨소. 그래서 밭일을 할 일손도, 가축을 돌볼 사람도 그만큼 줄었지요. 당신네들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친 적이 없겠지만, 더 질서가 잡힌 땅에서는..."
나는 노인의 목이 달아나는 꼴을 보고 싶었다. 전쟁의 어머니의 서약자를 앞에 두고 그딴 소리나 지껄이다니! 나는 고개를 들어 트린다미어를 바라봤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분노가 스며 나오기를, 악명 높은 그 불같은 성질을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참 어리고 철이 없었던 나는 정말로 그가 폭발하길 바랐다.
"피의 서약자이시여. 백색 구릉지 서쪽 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 드리지요." 노인은 계속해서 떠들었다.
나는 무심코 가죽으로 감싼 검자루를 쥐었다.
하지만 내가 나서기 전에, 대회당의 거대한 판자문이 활짝 열렸다. 바람과 함께 눈이 불어닥치자 화로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때 여섯 명의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선두에는 장신의 여성이 서 있었다. 서리로 덮인 여행용 두건 밖으로 땋아 놓은 은빛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두건을 벗자 얼굴을 가로지르는 익숙한 흉터가 보였다.
"헬드레드 님?"
헬드레드는 내가 태어난 부족을 지배하는 전쟁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차갑게 나를 노려봤다. 털옷과 가죽, 갑옷으로 몸을 감싼 부하들은 대회당의 문을 닫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기를 쥐고 있었다. 노련한 병사들이었다.
대회당 안의 사절들은 일제히 입을 다문 채, 초조하게 불청객들을 바라봤다. 트린다미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 그들 때문에 짜증이 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헬드레드는 내 말을 무시하고 트린다미어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멈추십시오, 전쟁의 어머니시여."
"시그라." 그녀는 겨울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불러 주다니 감동이야. 첫 맹세를 아직 잊지 않았나 보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비켜라, 꼬마야. 네가 지금 섬기는 전쟁의 어머니가 앞에 있었다면 내 도끼 맛을 보여 줬을 테지만, 지금 없으니 서약자로 만족해야지."
"세 줄기 강 헬드레드여." 어두운 대회당 구석에서 트린다미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 길을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왜 싸우려고 하는가?"
"안녕하신가, 피의 서약자여." 헬드레드가 대답했다. "이유를 말해 주지. 닷새 전, 해가 질 무렵 습격조 무리가 우리 마을을 공격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가슴이 쓰라렸다. "겨울 발톱 부족이군요..."
"그래, 겨울 발톱 부족이었지! 네가 지키고 있는 저자가 여기 숨어서 살만 찌우는 동안, 놈들은 우리 마을을 짓밟았다. 애쉬가 전사들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을 3분의 1이나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겠지!"
헬드레드는 쉬어 버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우린 버틸 수 없었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도 함께 싸웠어야 했다. 만약 다른 전쟁의 어머니에게 맹세하지 않았다면, 나도 함께 싸울 수 있었다. "몇 명이나 죽었나요?"
"너희 집안 어르신들은 다 멀쩡하시다, 시그라. 다행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피하지 못했다. 너무 많이 죽고 말았어."
트린다미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감이군, 전쟁의 어머니여. 나도... 절망에 빠진 이들을 이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네. 생존자들을 데리고 오시게. 얼마든지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 줄 테니."
너그러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헬드레드는 바닥에 침을 뱉더니 도끼를 꺼내 들었다. "네 음식이나 잠자리는 필요 없다. 피는 피로 갚아야지. 옛 전통대로 네게 도전하겠다."
"말도 안 됩니다. 부족 사람들을 생각하세요." 우리 집안 어른도 생각하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군. 비켜라. 두 번 말하지 않겠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검자루를 쥐고 단숨에 뽑았다. 검날이 화로 불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빛났다. "제 주제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회당을 지키기로 맹세한 전장의 자매죠. 맹세에 따라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군. 빠르게 끝내 주지."
"그만!" 트린다미어가 외쳤다. "더는 아바로사인이 피를 흘리게 둘 수 없다. 적들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우리끼리 싸우다니!"
그의 목소리는 대들보가 흔들릴 정도로 대회당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트린다미어가 그렇게 언성을 높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공포를 느꼈지만, 헬드레드는 그저 비웃기만 했다. "난 네가 두렵지 않다, 피의 서약자. 이곳에서의 편한 생활이 널 무뎌지게 했겠지만, 난 싸움을 멈춘 적이 없지."
헬드레드가 도끼를 휘둘렀다. 검을 들어 방어했는데도 위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하마터면 어깨가 빠질 뻔했다.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한번 공격했다. 속도는 내가 앞섰지만, 경험과 힘에서는 헬드레드가 우위에 있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노리고 도끼를 내리찍었지만, 도끼날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바닥에 박혔다. 앞으로 돌진하며 검을 뻗자 거친 포효와 함께 헬드레드는 도끼를 뽑아 옆면으로 내 갈비뼈를 강타했다.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한때 전쟁의 어머니로 섬겼던 헬드레드를 향해 검을 들어 보였으나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듯 내 손에서 쳐냈다. "용감하게 싸웠다고 가족들에게 전하지. 전장의 자매, 시그라여."
최후의 일격을 위해 도끼를 드는 모습에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기다려도 도끼는 날아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맨손으로 도끼를 잡고 있는 트린다미어가 보였다.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 "이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아바로사인들은 서로를 지켜 줘야지."
그때 트린다미어의 손에 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문 채로 이야기하는 트린다미어의 모습에 조금 전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본능이 내게 속삭였다. '도망쳐. 지금 당장.'
잠깐이나마 헬드레드도 똑같이 느낀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합과 함께 양손으로 트린다미어를 두 동강 낼 기세로 도끼를 휘둘렀다.
그때 트린다미어가 포효했다. 그것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다. 산보다도 더 높고 호수보다도 더 깊은 분노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헬드레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일이 있고 두 번의 겨울이 지났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터였다. 아니, 잊으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트린다미어를 지키고 있다. 긴 탁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헬드레드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오른다. 회랑에서 약하게 타오르는 화롯불을 바라보면 그녀의 비명이 들린다. 흐릿하고 잔잔한 저 눈동자 안에 어떤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매일 밤, 나는 조상님들께 기도한다. 다시는 그 분노를 보지 않게 해 달라고. 세상에는 그저 전설로만 전해지는 편이 더 나은 것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불길은 사그라들도록 두는 편이 낫다.
애니비아 배경 이야기 업데이트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champion/anivia/
애니비아는 삶과 죽음, 부활의 영원한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상징하는 프렐요드의 고대 반신이다. 추종자들은 프렐요드의 영혼이자 희망의 상징, 변화를 이끄는 신성한 존재로 그녀를 숭배한다.
예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애니비아는 선하고 겸허한 마음을 지닌 자들을 돕는다고 한다. 드물게 그녀를 봤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고귀하고 신비로운 얼음불사조의 모습으로 애니비아를 묘사했다. 눈부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을 만큼 거대했으며, 울음소리는 너무도 날카로워 폭풍이 치는 와중에도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유목 생활을 하는 노타이 부족의 노래에는 애니비아가 탄생하면서 세상에 처음으로 눈이 내렸다는 내용이 있다. 얼음으로 된 거대한 알에서 그녀가 깨어나면서, 작은 얼음 조각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슬픈까마귀 부족의 전설은 프렐요드의 살을 에는 냉풍이 애니비아의 첫 날갯짓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애니비아는 겨울의 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며, 프렐요드를 침략하려는 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누구든 화를 돋우면 그녀는 땅을 쪼개고 산을 무너트리며, 귀청을 찢을 듯한 울음소리로 강철도 조각낼 만큼 차가운 눈보라를 일으킨다.
애니비아가 프렐요드에 얼음 정수를 선물했다는 전설은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원소 마법의 힘으로 영원히 녹지 않는다고 하는 얼음 정수는 순수하고 강력한 힘의 결정체이며, 위대한 예언자들과 얼음 마법사들은 오래전부터 얼음 정수 조각을 활용해 마력을 강화했다. 아무리 작은 조각도 무기와 결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냈다.
필멸자들이 처음으로 프렐요드 땅을 밟았을 때, 애니비아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구석진 계곡으로 안내해, 정착하고 서서히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애니비아는 연약한 인간들을 보살폈고, 인간들은 고마움에 그녀를 숭배했다.
애니비아는 새롭게 정착한 부족들이 하나가 되어 외지인들로부터 프렐요드 땅을 지키기를 바랐다. 하지만 서서히 인간들은 반목하며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기 시작했고, 결국 이는 외부 세력의 침략으로 이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남부의 탐욕스러운 왕이 북방을 장악하고 원소 마법을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왔다고 한다. 오만스럽고 불경하기 짝이 없는 외지인들의 만행에 애니비아는 분노했고, 결국 100년하고도 하루 동안 눈보라를 일으켰다. 휩쓸린 평원에는 여전히 드문드문 비석이 서 있는데, 주변 부족민들의 말에 따르면 고대 침략자들의 것이라고 한다.
아바로사 부족의 부러진 창 울라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진다. 냉기의 화신이자 전쟁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서리송곳니로부터 새끼 매를 구해 주면서 애니비아의 총애를 받았다. 평생을 얼음불사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울라가 100살에 가까운 나이에 전장에서 쓰러지자, 애니비아는 두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어 주었다고 한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애니비아는 인간 문명의 흥망성쇠를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고, 수천 년 전 옛이야기는 얼음 속에 파묻혀 잊혔다.
하지만 애니비아는 죽지 않았다. 몇 차례 전투에서 쓰러진 적이 있지만, 언제나 부활했다고 한다. 프렐요드가 건재하는 한 그녀의 영혼은 불멸했다. 수백 년, 수천 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면 애니비아는 부활했다. 그래서 그녀의 부활은 놀라운 축복이면서도 끔찍한 재앙의 전조이기도 했다.
재앙의 방랑자 무리로부터 프렐요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거대한 몸집의 그 괴물들을 당해 낼 자신이 없었던 애니비아는 자기 몸을 던져서 그들을 얼음 속에 가두었다고 한다.
최근 애니비아가 다시 알에서 깨어나 아바로사 부족의 새 지도자이자 전쟁의 어머니, 애쉬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애쉬가 프렐요드를 다시 통일할 것이라고 보았는지 모른다.
얼음불사조의 부활을 주장하는 정령 주술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위협에 맞서기 위해 부활한 것일까?
(IP보기클릭)165.229.***.***
(IP보기클릭)58.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