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2 레저렉션, 깐포지드와는 다르다! 깐포지드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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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9일) 저녁 11시, 많은 이들이 기다려온 ‘디아블로 2 레저렉션’ 알파 테스트가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출시되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양대 국민 게임 대접을 받은 액션 RPG, 그 전설의 부활을 4K 해상도와 일신된 그래픽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걸출한 명작이라도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고전이고, 리마스터링은 게임에 극적인 변화를 주려는 목적이 아니므로 한계는 명확하다. 어쨌든 10대 시절 ‘디아블로 2’와 함께하며 무수한 시험을 망쳤던 필자로선 원작을 제대로 재현하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럽겠다.
핵앤슬래시의 대부가 돌아왔다. '디아블로 2 레저렉션' 알파 테스트가 금일 시작된다.
사실 뭐, 명작을 리마스터링만 하는데 잘못될 수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필자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블리자드는 그 어려운 걸 바로 지난해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로 기어이 해낸 바 있다. 텍스처만 좋아지고 모델링 센스는 최악, 불안정한 시스템과 본 적도 없는 새로운 버그,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수준의 허위 과장 광고. 그런 참사가 터졌는데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이라고 멀쩡히 나온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그리하여 11시 오픈을 기다리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도록 미디어 얼리 액세스로 조금 일찍 게임을 살펴봤다.
아, 본격적인 체험기에 앞서 새벽 동안 조그만 소요가 있었음을 밝힌다. 20여 년 전, 하도 문을 안 열어줘서 밈이 된 게임답게 약속된 새벽 2시에 접속이 되지 않았다. 사전 다운로드도 없었으니 게임을 깔아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 방송을 보니(블리자드에게 키를 받은 스트리머들도 마찬가지로 2시 접속),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세계가 한마음으로 욕을 하는 진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도 못 자고 밤새 플레이한 후 곧장 출근하여 체험기를 써야 하는 필자만 할까… 물론 알파 테스트의 취지가 그런 것이니 이해한다.
정석적인 리마스터링이었던 '스타크래프트'와 그냥 다 망친 '워크래프트 3'. 과연 '디아블로 2'는?
20여 년이 흘렀건만 제때 문 안 열어주는 건 여전하다. 결국 새벽 3시에야 겨우 플레이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접속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확실히 만들다 만 티가 나는, 그렇지만 첫 테스트치곤 정돈된 메인 화면을 보여줬다. 늘 그렇듯 ‘알파니까 좀 이상해도 좋게 좋게 넘어가~’류의 안내문이 뜬 후 옵션 조정과 캐릭터 생성이 가능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4K 해상도를 지원하며 텍스처 애니소트로피 16x, 안티 얼라이징 SMAA T2x까지 옵션을 끌어올릴 수 있다. 본작은 3D로 다시금 제작된 ‘레저렉티드’ 모드와 기존의 스프라이트 기반 ‘레거시’ 모드를 G 버튼 하나로 오갈 수 있으므로, ‘레거시’ 모드에서의 그래픽 옵션이 별도로 존재하는 게 특징이다.
금번 테스트에선 일곱 영웅 가운데 아마존, 바바리안, 소서리스만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영웅들도 선택창에 등장하긴 하므로 어떻게 바뀌었나 살짝 확인해주자. 체험기에서 긴히 다룰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지난 20여 년간 블리자드의 캐릭터 디자인 기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어 흥미롭다. 모두가 보다 현실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인종·문화·연령대를 대변하도록 수정되었다. 따라서 여성 영웅 셋 중 누군가는 중장년을 대변해야 하는데, 이미 소서리스와 어쌔신은 인도인과 동양인을 대변하므로 아마존이 당첨되었다. 추…축하합니다, 누님.
버튼 하나로 '레저렉티드'와 '레거시' 모드를 오갈 수 있다. 양쪽 그래픽 옵션이 모두 존재한다.
일곱 영웅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 블리자드의 변화한 캐릭터 디자인 기조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시대 조류를 반영한 디자인 변화는 NPC나 몬스터도 예외가 아니다. 분명 깡마른 인상이 강했던 로그는 다부진 기골의 여전사들이 됐다. 하이레그 형태의 갑옷도 ‘리저렉티드’ 모드에선 어깨나 허벅지 쪽이 보강된 모습이다. 사실 활이란 어지간한 완력 없이는 다루기 힘든 무기고 갑옷도 하이레그인 쪽이 이상한 거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 혹시 아쉬워할 사람은 없겠지만, 고뇌의 여제 안다리엘도 더는 나체가 아니다. 어깨 장식과 허리 가리개가 추가됐다. 물론 정말이지 그걸 아쉬워할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없어야 한다).
캐릭터 디자인이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그 외에 그래픽 개선 효과는 그야말로 발군이다. 단순히 해상도만 끌어올린 수준이 아니다. 배경의 어떤 오브젝트가 있다고 하면, 그 오브젝트가 차지하는 영역은 그대로 두면서 디테일을 대폭 끌어올렸다. 무미건조하던 도로에 바퀴 자국과 물웅덩이가 생기고 다 똑같던 동굴 벽면에 천막과 주술적 장식이 들어섰다. 이런 추가 사항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전부 새로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픽만큼은 리마스터보단 리메이크라 하는 게 적절하다.
(경) 고뇌의 여제 안다리엘, 20여 년만에 부끄러움이 뭔지 알다! (축)
기존 작품의 해상도를 높였다기 보단 그냥 다시 만든 것이다. 그래픽은 리메이크라 해야 맞다.
‘디아블로 2’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준 또다른 수훈갑은 광원 효과다. 마을의 횃불부터 던전의 겁화까지 각종 광원이 주는 명암이 크게 강조되었고, 덕분에 ‘디아블로 2’ 원작보다도 더 ‘디아블로 2’스러운 풍광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디아블로 3’ 그래픽이 이렇게 뽑혔어야 했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유일한 단점은 명암이 강조된 대신 가시성이 좀 떨어진다는 건데, 가령 어둠 속의 적이나 아이템이 잘 안 보인다. 필요할 때 언제든 G를 눌러 ‘레거시’ 모드로 전환이 가능하니 정 뭐가 안 보인다 싶으면 바꿔가며 플레이하도록 하자.
스프라이트 기반에서 3D로 넘어오며 움직임 또한 몰라보게 부드러워졌다. 실제 이동, 공격 속도는 그대로지만 비어 있던 프레임이 채워져 동작이 훨씬 자연스럽다. 필자는 ‘디아블로 2’를 할 당시 뭔가 툭툭 끊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레저렉티드’ 모드를 하다 ‘레거시’ 모드를 하니 역체감이 엄청났다. 그렇다고 동작이 부드러워진 탓에 박력이 떨어진다 거나 하는 부작용도 전혀 없다. 심지어 캐릭터가 급격히 방향을 바꿀 때 무게 중심을 옮기며 한 쪽 무릎을 살짝 굽히는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이것만으로도 다시 할 가치가 있을 정도.
광원 차이가 이렇게나 난다. 다만 가시성만 따지자면 원작보다 적, 아이템 식별이 어려운 편.
'레저렉티드' 모드의 부드러움을 느끼고 나면 '레거시' 모드에서의 역체감을 못 견딜 정도다.
캐릭터뿐 아니라 장비 디테일도 개선되었는데, 사실 알파 빌드의 볼륨이 액트 2까지라 그리 확 체감되진 않았다. 노멀 두리엘 정도는 거적대기나 다름없는 복장으로 잡기 때문에 소위 ‘룩딸’할 기회가 없다. 다만 아이템 이미지는 파란 두건임에도 ‘레거시’ 모드에선 보통 두건과 동일하게 보이던 것이 ‘리제렉티드’ 모드로 바꾸자 제대로 파랗게 표시되는 건 확인했다. 이처럼 아이템 이미지만 다르고 인게임서 보여줄 때는 적당히 퉁치던 장비들이 제모습을 되찾는 것 역시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라 하겠다. 언젠가 ‘디아블로 3’처럼 염색이 추가될지도?
그래픽 향상 외에 ‘디아블로 2 레저렉션’가 갖는 의의는 콘솔 지원이다. 금번 테스트는 PC 한정으로 진행되지만 Xbox 컨트롤러를 연결하니 잘 인식한다. 이미 ‘디아블로 3’로 콘솔 진출을 성공리 경험한 블리자드답게 지원 품질은 나무랄 데 없다. 단순히 ‘패드로도 할 수 있다’가 아니다. PC서 컨트롤러를 인식하는 즉시 콘솔 UI로 변경되며(역으로 마우스 클릭 시 즉시 PC로 바뀐다), 한 번에 여섯 개 스킬을 장착 가능하고 스태미나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걷는 등 작은 부분까지 공을 들였다. 설령 PC로 쭉 즐기더라도 컨트롤러 하나면 색다른 느낌을 낼 수 있는 셈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디아블로 3'로 쌓은 노하우가 여기에 쓰일 줄이야.
금번 알파 테스트는 PC 한정이지만 컨트롤러를 인식하면 즉시 콘솔 UI로 전환된다.
정리하자면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앞으로 고전을 리마스터링할 때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레저렉티드’ 모드의 그래픽은 최신 게임과 견줄만하고 ‘레거시’ 모드로의 전환도 매우 빠르고 간편하다(그래서 재미있다. 자꾸 눌러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와 달리 안정화에 성공했다. 테스트 도중 약간의 글리치를 발견하긴 했지만 알파임을 참작하면 사소한 편이다. 다만 금번 테스트는 어디까지나 싱글로, 노멀 액트 2까지만 진행하였음을 고려해주기 바란다. 필자가 보증할 수 있는 건 일단은 알파 빌드까지다.
음, 너무 칭찬만 늘어놓았나.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서두에서 언급한 ‘리마스터링의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몇몇 사기적인 룬워드 밸런스나 드랍 확률은 알파서 논할 영역이 아니라 치더라도, 겨우 노멀 액트 2까지 하는데도 견디기 힘든 조막만한 인벤토리는 좀 심각하다. 그냥도 최신 루팅 게임들과 비교도 안되게 작은데 참까지 꾸역꾸역 넣으려니 이건 뭐 답이 없다. 골드 자동 획득처럼 새롭게 적용된 편의 기능도 있긴 하나 인벤토리처럼 굵직한 부분까지 손을 댈지 의문이다. 하필 참 때문에 인벤토리가 밸런스와 직결되어 더 손보기 껄끄러워졌다.
우려를 불식할만한 완성도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보다 낫다고 본다. 깐포지드는 나가있어.
다만 리마스터링의 한계는 명확하다. 이 작고 귀여운 인벤토리를 신세대 게이머가 어찌 볼까.
아무래도 20여 년 전 작품이니 이제와 보면 지나치게 단순한 점, 불편한 점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어차피 리마스터링이란 그런 점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고, 더욱이나 본고서 ‘디아블로 2’ 원작까지 평할 의도는 없다. 향후 블리자드 하기 나름이겠지만, 일단 현 시점에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그래픽 좋아진 ‘디아블로 2’다. 그런데 그 그래픽이 진짜 아주 어마무시하게 좋아졌다.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는 댈 것도 없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보다도 훨씬 뛰어난 복각판이다. 그러면 충분한 거 아닐까? 어서 대악마 삼형제와 다시 맞붙을 날이 기다려진다.
알파 빌드에는 아쉽게 빠졌지만, 향후 시네마틱도 리마스터링 및 현지화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