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응암동 오 남매 왈츠
목련이 지고 나면
모가지가 답답해지고
봄밤에 우린
다들 살아 있었지
할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오 남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던
봄밤에 거길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틀림없이 여기쯤인데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작은 집이 있었는데
다시 가네 가보네
예예예 예예예 흔적도 없네
하얀 앵두꽃 지면
빨간 앵두 열리고
그 소식을 알리던 할머니
지금이 딱 앵두꽃 필 땐데
“하얗게 앵두꽃 피었다 나가봐라”
더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
틀림없이 여기쯤인데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다시 가네
가보네
예예예 예예예 흔적도 없네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봄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봄
앵두나무 꺾이고
목련나무 뽑히고
살던 집은 헐리고
백련산의 어깨는 찢어지고
1차 2차 3차
기세등등한 응암동 힐스테이트
산의 얼굴을 가리고
거기 어머니 혼자 계셨다
지금은 아래층에 사셔도
다시 가네
가보네
예예예 예예예 흔적도 없네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봄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봄
하지만 내가 변한 것에 비하면
다시 가본 그곳은 변한 것이 아닌걸
내가 바뀌 지금을 생각한다면
흔적도 없는 그곳은 정말 그대로인걸
가야지 가야지
이젠 없는 그곳으로
돌아가야지
예예예 예예예 예예예
목덜미 훤히 내놓고
빛과 이름
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