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당
뒤뜰에 널찍한 계단 모양으로 단을 만들어 화초를 심어
가꾸는 정원이 있는데, 이를 화계(花階)라 한다 뒷산의 경
사면을 완만하게 깎아 조성한 이 화계는 궁궐에도 있고 여
염집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비의 처소인 경복궁 교태
전(交泰殿) 뒤뜰의 화계가 대표적인데, 여기서 교태는 크게
합하고 소통한다는 의미다 이를 여인이 아양을 부리는 태도
를 가리키는 교태(嬌態)로 잘못 이해하는 심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는데, 상스러운 데가 있다 왕이 침전에 들지 않
는 북쪽 내전(內殿)의 고독한 심정 또한 살구나무 아래 그늘
보듯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반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처소를
북당(北堂)이라 한다 이 북당을 오해하여 북로당(北勞黨)
으로 부르는 북조선노동당(北朝鮮勞動黨)을 떠올리면 곤란
해진다 1946년 평양에서 결성된 정당과 어머니는 아무 관계
가 없다 우리 어머니는 한국전쟁중에 배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임종 직전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여인은 백두
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북진 통일을 완수하자는 말을 내
게 해줬던 분이다 나는 어머니 거처 북당 뒤뜰에 원추리를
심고 꽃대의 가장 높은 곳이 어머니의 눈썹에 걸리도록 하
고 싶었는데, 이는 이루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원추리 새순
이 한 뼘쯤 자랐을 때 끊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가 찬물
에 담가두고 몇 시간 지난 후에 꼭 짜서 조선간장과 들기름
과 다진 마늘로 양념해 통깨를 뿌려 상에 내놓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멀리서 온 원추리였다 이 원추리는 도처에 흔하
지만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하고 씀씀이가 헤퍼 보인다 우리
산에 사는 단정한 원추리는 해방 전에 일본인 식물학자 나
카이 다케노신이 학계에 발표하면서 백운산원추리로 명명
했는데, 예천 보문산 자락 호골에 들었다가 한 뿌리 캐온 적
이 있다 이는 임산문 불법 채취 행위에 해당하는데, 나는 북
당이 없고 뒤뜰은 있는데 북당의 뒤뜰은 없다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
안도현, 문학동네시인선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