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
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내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내
가 그날 밤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미스터 션샤인」에서
프랑스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에는 론강, 손강, 센강 등이 있소
이야기의 시작은 센강 좌안의 레아 세이두로부터 시작될 거요
레아 세이두가 누구요 아름답소? 그럴지도 단지 내 낭만은 펜
촉에서 흘러나와 알타이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강물의 노
래였을 뿐
올리브나무 새잎은 밤에 더욱 빛나오
고향을 떠나 이곳에 당도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강가의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
았소
센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낯선 바람의 냄새 속에서 고독
은 이미 가을에 당도한 한 마리의 내면처럼 흔들리고 있었
던 거요
거리를 지나 누군가의 내면 같은 골목길을 떠돌 때 파리
라는 거대한 짐승의 냄새를 이미 맡은 거요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다니는 샹젤리제거리를 지나 콩코
드광장을 지나 소르본대학까지 터벅터벅 걸어왔을 때 비로
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깨달았던 거요
나는 이곳의 지도 한 장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고 이곳
의 모든 것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이오
시를 쓰기 위해 당도한 파리에서 나는 고아였던 거요
결국은 생라자르역 근처에 첫날밤 숙소를 정했소 아덴호
텔이라고 했소
생라자르역 주위는 아주 어두웠소
희미하게 불 켜진 가로등 아래로 술 취한 노숙자들이 비
틀거리며 배회하고 있었소
그곳엔 값싼 호텔들이 많아 거리의 여자들도 많이 거주
한다는 말을 들었소
그날 밤 아덴호텔의 지붕을 두드리며 억수 같은 비가 쏟
아졌소
나는 화덕의 불빛이 따스하게 피어오르던 고향을 떠올
렸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맛있는 빵 냄새를 떠올렸소
올리브나무 새잎은 밤에 더욱 빛나오
나는 호텔 다락방에 누워 비 내리는 천창을 바라보며
지금쯤이면 달빛 아래서 환하게 빛나고 있을 고향의 올리
브나무 언덕을 생각했던 거요
낯선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소
낯선 도시의 공기와 풍경과 여인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
들었소
보들레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네르발을 죽음으로 몰아
가던 도시에, 아르튀르 랭보를 끝내 아비시니아 사막으로
떠나게 했던 도시에 시를 쓰겠다는 마음이 겨우 당도한 것
이었소
눈에 보이는 파리는 낭만적이었소
그러나 낭만적 낭만은 외려 적이었소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만 나의 낭만은 그 어
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소
나 스스로 낭만이 되는 것이 훨씬 빠른 이 도시에서 아
무 희망도 꿈꾸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시적이었소
이 땅에 살기 위해 시를 써야 했지만 헛된 희망이 불러
주는 시를 따라 적고 싶지는 않았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배를 타고 미라보 다리까지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곤 했소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는 걸어서 몽마르트르며 몽파르
나스며 페르라세즈묘지를 배회했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은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오
유령처럼 파리를 견디는 거였소 그래도 귀향하지는 않
았소 괴물 같은 도시에서 어쩌면 나는 한 번도 피워 본 적
없는 담배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오
담배가 무엇이오
나는 모르오
진정한 담배를 꿈꿔 본 적 없으므로 담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소만 거리를 걷기도 하고 카
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어쩌면 운명 같은 담배
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요
작금을 벨 에포크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실론티 쿠바산 시가 각국의 박
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레아 세이두가 누구요 아름답소? 그럴지도
단지 내 낭만은 한 방울 눈물처럼 여전히 고독의 펜 끝
에 맺혀 있을 뿐이옿 혹시 아오 나의 시가 그날 밤 귀하한
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비 내리던 어느 날 센 강가에서 귀하를 만났을 때
비 그치던 어느 날 센 강가에서 귀하를 떠나보냈을 때
단지 내 낭만은 허공의 길처럼 흩어지던 한 줄기 푸른
담배 연기 속에 있었을 뿐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박정대, 민음의 시 293
본문
[잡담] 오늘 시 (부- 낭만; 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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