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0416
18편 (짧은 이야기들(4)): https://m.ruliweb.com/game/84992/read/89523
19-1편(대단원(1)):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9722
19-2편(대단원(2)):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96935
19-3편(대단원(3)):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96944
19-4편(대단원(4)):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96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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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은, 모두의 담담한 합창으로 시작되었다.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 거야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영원히 널 비춰줄게
레스벨이 다음 턴을 붙잡는다. 블하가 그 노래를 받는다. 노래는 계속된다. 노래는, 이야기는, 삶은,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약해보였나요
언제나 걱정됐나요
달빛에 반짝이는 저 이슬처럼
사라질 것만 같나요
영화든 소설이든 마지막은 역시 해피엔딩인 것이 왕도다. 노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을 고백한 소녀가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바를 이루어 행복에 빠지는 모습, 그래서 달콤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는 결말이, 오늘 이야기의 끝으로 적절하리라.
불안해마요 꿈만 같나요
널 위해서 빛나고 있어
떨리는 그대 손을 꽉 잡아줄게요
따스히 감싸줄게요
따라서 이 노래는 이전과 같은 격정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이제 조금 잔잔해진, 그러나 속은 더 깊어진 마음이 그 선율 속에 물결친다.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이제 마무리될 때다. 사랑이 이루어졌으니, 그 행복한 마음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결말을 지을 때다.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 거야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영원히 널 비춰줄게
결말이라. 그 순간, 합창하던 모든 스카이나이츠들이 생각했다.
모든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다. 삶이 그러하듯이.
못 이룰 것 없어요
그대만 있어준다면
어쩌면, 그녀들 모두가 바라는 이야기.
어두웠던 맘 속에 밝은 햇살을
비춰줘 언제까지나
리피가 마침내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며,
블하가 더 이상 뒤쳐져 떨어지지 않고,
하르페가 모두의 영혼을 울려줄 단 한 줄의 곡조를 찾으며,
레스벨이 누군가의 사랑받는 마법소녀가 되고,
린티가 진정한 귀여움을 찾으며,
그리고, 프니르가, 친구들과 다같이 눈부시게 빛나며 나아가는 이야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그대의 마음이 전해져
그리하여, 모두가 다같이 하나의 밧줄을 잡고, 삶을, (아, 그리고 사랑도) 지속하는 이야기.
떨리는 어깨 이젠 꼭 안아줄게요
따스히 감싸줄게요
모든 이야기의, 모든 삶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의 공연처럼, 다같이 붙잡고 올라간 그 밧줄 끝에 마침내 추구하던 것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 거야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영원히 널 비춰줄게
모두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그러한 삶이 있기를 바라노니.
달콤한 말도 필요없어요, 오 없어요
매일 같은 꿈에 행복해요, 오 들리나요
아름다운 미소를 모두 담아둘게요
깨지지 않도록 지켜줘 언제까지나
그러니 노래하라, 그대의 영혼이 마침내 일깨워져 환희에 잠길 때까지.
그러니 춤추라, 그대의 삶이 한 점 후회 없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러니 들려주라, 당신들의 노래를, 스카이나이츠의 소리를.
‘그러니까, 난, 여기서, 쓰러질 수 없다고!’
그리폰은 헐떡였다.
애초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고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상상 외로 힘들었다. 땀이 비오듯 흘러 공연복이 흠뻑 젖었다. 숨이 차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던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무대에서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연습실에서도, 리허설 때도 이미 수없이 연습했던 것이지만, 그 때는 수많은 관객이라는 중압감이 없었고, 실전은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한 치도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 긴장감 앞에서 그리폰의 체력은 무자비할 정도로 빠르게 소진되어갔다. 만인의 기대에 찬 시선은 그녀를 기쁘게 했지만, 또한 그녀를 두렵게 했다. 지치게 했다.
‘아..안 되는데...’
이제 마지막 곡인데. 이제 마지막 부분인데. 이것만 넘기면 되는데, 벌써 체력이 한계에 다달았다. 숨이 차다. 노래 부르는 것조차 숨이 벅차올라 무리일 것 같았가. 그리폰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래도 억지로 자신의 몸을 윽박질렀다. 일어나라고. 계속 뛰라고. 계속 노래부르라고. 아직, 공연은, 끝나지 않았다고.
‘실수해선...안 된단 말야...!’
지쳤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더 그녀를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여기서 그녀가 실수하면 그녀만 낭패보는 것이 아니다. 오르카의 눈 앞에서 팀이, 스카이나이츠 전체가 실패한다. 그리폰은 그것이 두려웠다. 이미 그녀 때문에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프로젝트는 하마터면 실패할 뻔했다. 다시는 그녀 때문에 스카이나이츠가 실패하게 두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 않았나.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제발.
움직여 줘.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녀의 몸은 삐걱댔다. 너무 힘들어서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 동안의 호된 훈련이 헛되지는 않아 혼에 빠져나갈 것 같아도 지친 몸이 거의 본능적으로 동료들과 합을 맞추곤 있었지만, 이대로면 삐끗할 것 같았다. 그녀는 왈칵 무서워졌다. 너무 힘들어서, 실수할까봐. 그녀의, 그리고 친구들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까봐. 그렇게 두고 싶지 않다. 그녀는 거의 울부짖듯이 자기 자신에게 빌었다.
내가...어떻게...여기가지 왔는데....여기서....무너질 수는...
그랬다간...나뿐만 아니라...모두가....
“아!”
그리폰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것은 그녀의 다리가 이미 그것이 응당 밟아야 할 자리를 이탈한 뒤였다. 발을 헛디딘 그녀의 작은 몸이 휘청했다. 발목이 꺾였다. 아프다. 이 상태로는 뭘 할 수가....안 된다는 절규가 그녀의 새하얘진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그녀의 머리는 이제 뭐가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몸은 거기에 따라주지 않았다. 안 돼....여기서 쓰러지면...모두의 공연이...
누군가가 지친 채 쓰러지려는 그리폰의 손을 잡았다.
“!?”
슬레이프니르가 거기 있었다.
아니, 슬레이프니르만이 아니다. 하르페이아도, 블랙 하운드도, 흐레스벨그도, 그리고 린트블룸도, 모두 함께 거기에 있었다. 다들 땀에 범벅이 되고 숨은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 눈만큼은 저 하늘의 태양만큼 빛나서.
“리더? 지금 이럴 때가 아니....”
자신의 손을 잡다니. 당연히 이건 원래 예정에 없는 동작이었다. 군무가 흐트러지지 않는가. 리듬이 어그러지지 않는가. 대체 지금 뭘 어쪄려는...
당혹해서 반문하려는 그리폰에게 답하지도 않고, 리더가 무대 바깥으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그러나 힘차게 속삭였다.
“포메이션 G!”
리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스카이나이츠들이 한데 뭉쳤다.
리더가 꼭짓점에 섰다. 모두를 이끄는 자로서, 가장 앞서서 그녀들을 지켜주는 방패로서. 린티가 그 옆에 섰다. 원래대로라면 그리폰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녀들의 양 옆으로 하르페가, 레스벨이, 그리고 블하가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제야 그리폰은 리더가 뭘 하려는 건지 깨달았다.
‘기러기(Wild Geese)의 G였나’
안행진(雁行陣)이라는 것이 있다. 문자 그대로 기러기가 하늘을 날아갈 때 취하는 대형을 본따 만든 편대비행 포메이션이다. 힘들고 고된 장거리 비행을 할 때, 기러기들은 먼저 날게 된 녀석을 꼭지점으로 맨 앞에 세운 V자 형태로 날아간다. 이 형태로 비행하는 게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고, 그래서 힘이 덜 들어서 오래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지친 기러기는 V자의 양익으로 빠져서 한결 쉽게 비행할 수 있다. 드높은 하늘을 비행하는 스카이나이츠들도 너무 당연히 알고 있는 편대대형이었다. 편대비행에서 다치거나 지친 전우를 배려해 줄 수 있는 대형이다. 그리고 지금, 지쳐 있는 건 그리폰이다. 지친 기러기는 잠시 옆으로 빠져 쉬면 된다.
안행진의 양 끝에 서게 된 리피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방금 양익의 한쪽 끝에 있던 린티와 자리를 교체했다. 여기는 춤은 덜 춰도 되지만 대신 메인 보컬에 맞춰 화음을 넣어줘야 하는 포지션이다. 그리폰은 리더의 대처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격렬한 안무보다는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게 확실히 힘이 훨씬 덜 든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중압감이 쏟아지는 자리인 가장 앞, 가장 중앙 포지션보다는 양익이 심리적으로도 덜 부담스럽다.
그러나 또한 그 자리에서 그리폰이 손가락 빨면서 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얼얼한 발목을 추스르며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곡에서 이 자리의 역할은 메인 보컬을 뒷밤침하며 코러스를 넣는 것이다. 원래는 린티의 포지션인.
'온다!'
그러나, 그 오랜 연습으로 서로의 포지션도 체득한 그리폰에게, 아니, 안행진으로 서로의 포지션을 바꾼 스카이나이츠들에게 각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대체할 자신이 있었다. 간주가 끝나고 리듬이 다가왔다. 가볍고 경쾌한 리듬이었지만 그리폰에게는 타이런트 발걸음만큼 크게 들렸다. 호오, 하고 그리폰은 한 차례 작게 심호흡하고 가슴에 손을 모았다.
그녀의 입에서, 뜨겁게 그러나 잘 조율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소중해, 아아 그 누구보다 더 널 사랑해, 사랑해
믿기지 않는 기적이 찾아온 거야, 온 거야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않도록
영원히, 영원히 널 비춰줄게, 널 비춰줄게
스카이나이츠는 언제나 함께한다. 낙오되는 이 하나 없이. 누군가가 낙오된다면 다른 이들이 끌어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 연습한 거지 않은가. 다같이. 마지막까지, 마지막 노래가 끝날 때까지, 무대 위에 서 있기 위하여.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깨지진 않을 거야
사랑해 너만을 변하지 않도록
영원히 널 비춰줄게!!
스카이나이츠들이 소리가, 그녀들의 목소리가 멈췄다. 노래는 끝났다.
“........”
무대 저편의, 야광봉의 대초원이 잠시 고요로 물들었다. 그녀들은 일순 당황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뭔가 우리도 모르는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다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다 쥐어짜내었으니 그럴 지도 모른다. 아니면...역시 아까 전의 실수가 너무 컸던 걸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역시 리더의 임기응변은 무리수였던 걸까? 그리폰의 마음이 죄책감으로 어둡게 물들어갔다.
“스카이나이츠!!!”
폭발하는 환호가 그녀들을 눈부시게 휘감으며 찬란하게 밝혔다.
스카이나이츠를 연호하는, 그 수많은 목소리들의 폭우가 그녀들에게 밀려들어왔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자신들의 목소리마저 압도해버릴 것 같은 거대한 목소리들의 파도 속에서 슬레이프니르는, 그리폰은 하르페이아는, 블랙 하운드는, 린트블룸은, 그리고 흐레스벨그는 그 쏟아지는 흥분의 폭포에 경도되어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살짝 웃음짓자 가슴이 눈앞의 야광봉의 물결에, 더 커질 수 없는 환호소리에, 찬란히 빛나는 조명에, 흩날리는 반짝이는 조각들에, 더 크게 두방망이질쳤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제야 겨우 깨달았다.
“하...하하하...”
콘서트는 성공했다는 것을, 의심할 바 없이.
각자의 입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식 같은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스카이나이츠는, 성황리에 그녀들의 인생 첫 무대, 첫 데뷔 공연을 마쳤다. 공연 시작 직전까지만 해도 그녀들의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과 걱정이 드디어, 엄청난 해방감과 함께 눈 녹듯이 사라졌다.앙코르의 연호(連呼)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 준비했던 그 모든 시간들, 그 모든 노력들, 그 모든 과정들을 생각하자,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여기에 들인 그 기나긴 시간들을 생각하면, 두 시간여의 공연은 차라리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아깝지는 않아’
그 모든 시간들, 그 기나긴 시간들이 겨우 이 몇 시간을 위해 녹아들어갔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 진심으로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대장은, 지금 그녀들의 앞에 나서서 대표로 그 모든 찬란한 빛들을 받아내는 그녀는 옳았다. 바보지만, 멍청이지만, 한심해빠진 그녀들의 전대장이지만, 그녀가 잡기로 한 밧줄은 옳았다. 그녀들의 삶을 지탱하며, 또한 한순간이나마 그녀들을 찬란하게 빛나게 해주는.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관객석의 면면을 둘러볼 수 있게 된 스카이나이츠들, 각자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아는 얼굴도, 고마운 얼굴들, 신세진 이들도 거기에 있었다.
레나는 자신이 손수 만들어 온 게 분명한 플랜카드를 펼쳐보이며 눈물을 줄줄 흘리며“체거다! 아이돌나이츠!”를 외치고 있었다(적어도 그 입모양은 그렇게 보였다). 옆에 있는 마리가 부담스러워 할 만큼 열혈이 넘쳐 보인다.
레스벨의 눈에 칸에게 부대끼며 신나하는 워울프와, 그런 그녀가 또 뭘 잘못했었는지 마구 타박하는 카멜이 보였다.
칸뿐만이 아니다. 그녀들의 뒤편으로 스캔들에 왔던 장성들과 레모네이드가 보였다. 극장의 온 사방이 브라우니들이었지만, 그녀들 주변만은 브라우니가 아무도 가지 않아(그나마 몇 명 거기 앉은 브라우니들은 세상 다 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붐비는 관객석에서 거기만 아주 휑했다.
그보다도 뒤편에 선 바닐라와 미호, 둘은 하필이면 좋은 좌석이 아닌지라 멀리서 미호의 저격총에서 떼 온 조준경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녀들 정도면 프로듀서에게 요청해서 좋은 자리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구차하게 사령관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는 특유의 은근한 자존심이 발동했던 걸까.
뽀끄루와 백토는 골타리온의 어깨에 올라앉는 것으로 좌석의 불리함을 해소했다. 골타리온은 자기가 왜 어깨에 마법소녀를 앉혀줘야 하는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듯했지만, 정작 그 골타리온에게 안기듯이, 마치 우상처럼 추켜세워진 뽀끄루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 것 같았다. 그래도 얼굴이 빨개져선 야광봉은 분명히 흔드는 걸 보니 그녀들도 즐기긴 했나보다.
땀투성이가 된 린티는 저편에서 손을 흔드는 실피드와 다이카를 보았다. 씩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들은 린티의 리스펙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블하는 운디네가 두 손을 모아 응원하는 것을 보았다. 함께 소녀에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아이. 너도 너만의 길을 찾길 바래, 라는 마음을 담아 그녀는 운디네에게 활짝 미소지어 주었다.
후배들을 보러 온 드라큐리나는 아직도 LRL과 죽이 잘 맞게 떠들고 있었고, 써니와 샬럿이 서로 얼싸안고 감동해서 울고 있었다. 하기야 써니는 자기가 도와줬으니 감동받을 만도 하지만, 왜 샬럿도 울지? 하고 생각하던 하르페는 자러 온 건지 콘서트를 보러 온 거지 모르는 이프리트가 그 브라우니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걸 발견했다. 자러 온 걸까? 그러나 자러 왔다면 이런 시끄럽고 열기 넘치는 곳에 올 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하르페는 씩 웃었다. 뚱해 보여도 의리 있는 병장이란 말이지. 마지막까지 하르페와 함께 한 선곡에 책임감을 느끼고 음향에 귀를 기울이는 마키나도 그 곁에 보인다. 그녀 옆에서 네오딤이 브라우니들 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흥에 취해 스카이나이츠들을 따라하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알렉산드라도. 비록 그녀가 전에 어깃장을 놓긴 했지만, 그녀도 결국 하늘기사들에게 만족했나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기나긴 시간동안 그녀들과 함께했던 그 모든 얼굴들이 보였다. 괜히 반갑고 또 고마웠다.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스카이나이츠는 여기 서 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서, 그녀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미소지었다, 환하게.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다. 온 팔다리가 뻐근하다. 목청이 떨린다. 누가 말 걸면 목쉰소리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행복하다.
프니르가 활짝 웃는다. 군용 바이오로이드인 스카이나이츠, 그녀들로서는 신기한 경험이다. 그녀들이 태어난 목적은 싸우는 것이다. 그녀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다른 누군가와 싸워야 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라, 그리폰은 생각한다. 오늘 그녀들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서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누군가에게 무기를 휘두르지 않고서, 오로지 그녀들의 생기발랄함만으로, 그녀들의 몸짓과 선율만으로 모두의 우상(idol)이 되었다. 재수없긴 해도 스프리건이 한 말은 맞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은 오르카의 여신이었다.
블랙 하운드가 미소짓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언젠가 이 모든 것들, 환호하는 이들, 밝게 웃는 이들, 즐거워하는 이들 모두가 추억으로 남으리라. 그녀들의,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빛나던 한 때를 행복하게 회상하는 추억이 되리라.
하르페이아가 개운한 표정으로 극장의 천장을 올려다본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위험에 차 있다. 그녀들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적대적인 철충과 별의 아이들로 가득하고, 죽음은 언제나 오르카에 사는 이들의 옆에서 내달린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멸망은, 종말은 막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스벨이, 늘 음침했던 그녀답지 않게도, 관객석을 향해 열렬히 화답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은 살아 있었다. 살아 생동하며, 땀흘리며, 기뻐하며, 환희에 차,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니, 린트블룸이 그 옆에서 같이 기쁘게 손을 흔든다. 후회는 없으리라. 그 기나긴 시간들, ‘귀엽지 않았던’ 시간들, 그 모든 고생들. 그 보상으로 그녀들은 오늘, 삶의 한 순간 그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다. 아쉬움 따위 없을 만큼,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만큼.
문득, 그리폰은 무대 뒤편에서 박수치는 모모와 사령관에게로 시선이 갔다. 프로듀서와 매니저란 존재는 본래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아이돌들이 환하게 빛날 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프로듀서와 매니저가 없다면 그 어떤 아이돌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스카이나이츠들 역시 그와 그녀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으리라.
‘고마워’
쏟아지는 환호성의 열기 속에서 들릴 리도 없었겠지만, 그리폰은 무대 뒤의 사령관을 향해, 모모를 향해, 그녀들과 같은 기쁨에 차 작게 박수치는 그들을 향해 씩 웃으며 입모양으로나마, 작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폰의 인사를 알아보았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곧바로 스프리건의 눈치 없는 멘트가 울려퍼져 그녀는 고개를 돌려야 했다.
“네에에! 뮤우우-즈들의 팬서비스가 있겠습니다! 다들!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까요!!!”
그런 그녀들을 보고, 프로듀서와 매니저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들을 위해 빌어주었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 반짝반짝 빛나기를.
할 수 있을 때,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기를.
웃을 수 있을 때, 기쁘게 웃기를.
삶의 한 순간에,
그대들, 찬란하게 빛나기를.
소녀들의 한때는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
< E N D >
< 곁가지: >
< 에필로그: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9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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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에 대한 이야기
1) 마지막 곡은 걸그룹 "여자친구"의 노래인 "유리구슬(Glass Bead)"입니다. "닭계꿩치" 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2) 십입된 그림은 그리폰 장인님 (Yong2님)의 그림입니다(출처: https://twitter.com/Yong2_22/status/1303297795118346240)
1. 설정에 대한 이야기
1) 모든 관객들의 모습은 다 이전 에피소드들에 등장했던 이들입니다.
2. 본편에 대한 이야기
1) 드디어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2) 공식이벤트에서 스카이나이츠들이 부르게 될 오리지널 노래를 제가 알 리가 없는 관계로(그렇다고 제가 노래를 만들수도 없지요!) 그리폰 장인님이 예전에 좋아하신다고 하는 분야랑 라오게 여러분들의 추천을 감안하여, 일종의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되도록 순서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소녀가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을 이루기까지를 노래합니다.
2-1) 첫 번째 '살짝 설렜어' 로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눈뜨고,
2-2) 두 번째 곡' 롤린' 으로 혼자만의 사랑에 애가 타고,
2-2) 세 번째 곡 Miracle night는 가사가 약간 핀트가 어긋나긴 하지만, 소녀가 자신의 소원에 따라 다가가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2-3) 네 번째 곡 프니르의 자작곡은 고백하러 가는 소녀의 기대와 서렘, 흥분을 이야기합니다.
2-4) 마지막 곡 유리구슬에서는 마침내 사랑이 이루어져 꽁냥꽁냥 행복한 소녀의 모습을 그리고요.
3) 원래는 네 번째 곡과 마지막 곡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이 고백을 받아줘서 너무 기뻐서 기분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 소녀의 마음을 노래하는 곡을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곡이 딱 여섯 개가 되니까, 스카이나이츠 애들에게 한 곡식 할당해서 한 곡마다 주인공 보컬이 정해져 있는 식으로 할 생각이었죠. 근데 제가....아이돌 노래를 찾기도 힘들고....진짜 이번 학기에 너무 죽도록 바빠서..도저히 그럴 여유가 나지 않았습니다...다시 쓸 기회가 생긴다면 꼭 그렇게 써보고 싶어요.
3) 제가 스카이나이츠 오리지널 곡을 모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설정상 멸망 전 걸그룹 아이돌들의 노래를 발굴해내어 편곡해 부른다는 설정입니다. 따라서 가사는 실제 걸그룹들의 곡이지만, 제가 임의로 약간 손봤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멸망 전 노래라 기록이 유실된 부분이 존재 + 하르페이아와 마키나가 조금 편곡했다는 설정입니다.
4) 기타 관객들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라오게 여러분들의 요청 덧글을 반영하였습니다: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9762
3. 잡담
1) 마침내 이걸로 본편은 다 완결났습니다. 에필로그와 (아마도 쓸. 확정은 아닌)곁가지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걸로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하는 본편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 끝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이 창작자들에게는 언제나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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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하는 이야기가 하는 얘기를 이 노래가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IP보기클릭)1.235.***.***
리스펙트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IP보기클릭)147.46.***.***
하나도 빠짐없이 끝까지 읽고 덧글 달아주셨죠. 사실은, 바로 저 그림을 소설에 넣고 싶어 지난 몇 개월간 그 대장정을 해온 거랍니다 ㅎㅎㅎㅎㅎ 그간 꾸준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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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의 끝은 역시 해피엔딩이죠 ㅠ 장인님의 아이돌 그림에서 시작된 대여정인 걸로 아는데 재밌을 떈 웃고 갈등이 터질 땐 불안하고 희로애락을 다 느낀 아이돌 시리즈였네요 ㅎ 마지막이 딱 깔끔하게 난 거 같아 후일담 전개가 어떻게 될 지 제 상상력으론 상상이 안 되는데 그래서 기대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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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가 있긴 한데, 이거, 시간상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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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빠짐없이 끝까지 읽고 덧글 달아주셨죠. 사실은, 바로 저 그림을 소설에 넣고 싶어 지난 몇 개월간 그 대장정을 해온 거랍니다 ㅎㅎㅎㅎㅎ 그간 꾸준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21.04.01 2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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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의 끝은 역시 해피엔딩이죠 ㅠ 장인님의 아이돌 그림에서 시작된 대여정인 걸로 아는데 재밌을 떈 웃고 갈등이 터질 땐 불안하고 희로애락을 다 느낀 아이돌 시리즈였네요 ㅎ 마지막이 딱 깔끔하게 난 거 같아 후일담 전개가 어떻게 될 지 제 상상력으론 상상이 안 되는데 그래서 기대되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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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가 있긴 한데, 이거, 시간상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21.04.01 2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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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습니다. 아울러, 끝까지 읽어주신(그리고 호응해주신) 여러분께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21.04.01 22: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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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이 지쳐서 쓰러질 뻔할 때, 따로 듣고 있던 노래 가사랑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이 들더군요. 身体滅びる時 祈りも消え果てる? 가사와 상황이 묘하게 이어지는 듯 했지만 스러지지 않고 그녀들의 기도 역시 이어져나가는 장면을 보니 가슴 뭉클했습니다. (가사가 무슨 뜻인진 구글링해서 알아보세요. 제가 내는 작은 문제입니다.) | 21.04.01 22: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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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 3부까지만 관심가졌는데 이렇게 영업하시는거 볼때마다 시간내서 봐야겠다 생각하고있습니다ㄷㄷ 사실 드문드문 봐서 처음부터 정주행해야될거같지만요 | 21.04.01 22: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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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 영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암튼 아이돌나이츠도 끝났네요. 수고하셨고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21.04.01 22:47 | |
(IP보기클릭)58.227.***.***
저 작가님 아니에요ㄷㄷ 이런 좋은 작품 쓰고싶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 21.04.01 22: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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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 덧글이 너무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작가님인줄 알았자나여 ㅋㅋㅋㅋㅋㅋ 언젠가 한번 짧게라도 써보긴 해야할텐데... 일이 바빠서... | 21.04.01 2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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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죠 애니 오프닝인가요 몸이 스러질지라도 소망은, 희망은 스러지지 않으리라는? | 21.04.02 00:37 | |
(IP보기클릭)175.215.***.***
그렇습니다 죠죠 5부 2쿨 오프닝 배신자의 레퀴엠의 한 소절이죠 정확히 번역하자면 몸이 무너져내릴 때, 기도도 스러지는가?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돌나이츠에선 몸이 무너질 뻔 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이어나갔기에 가슴 뭉클했습죠. | 21.04.02 00: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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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_Rider
어쩌면 스카이나이츠 아이돌 하는 이야기가 하는 얘기를 이 노래가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21.04.02 00:36 | |
(IP보기클릭)1.235.***.***
Mental_Rider
리스펙트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 21.04.02 0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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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스카이나이츠! 아이마스의 또다른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IP보기클릭)147.4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아미마스 시리즈 보신 느낌이시라면 다행이네요. 어느 정도는 의도한 바도 있어서... | 21.04.02 13:4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