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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편(대단원(1)):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9722
19-2편(대단원(2)):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96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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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에서 작은 만담이 벌어지는 사이, 스카이나이츠들은 첫 노래를 마치고 숨을 고르며 무대 위에 일렬로 도열해 섰다.
“엑, 뭐야 쟤”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던 그리폰의 얼굴이 단박에 찌푸려졌다. 무대 아래서 활기차게 싱그리벙그리한 스프리건이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소개합니다! 오늘 무대의 주인공, 오늘만큼은 가장 지고한 여신들! 가장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 오르카의 여섯 뮤우우-즈! 아이도오올-나이츠으으!”
그녀가 지극히 과장된 동작으로 팔을 크게 휘두르며 외치자 그에 화답하는 환호성이 극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아니 진짜 뻔뻔하네”
약간 차오르는 숨을 헉헉대며 그리폰이 나지막하게 불만을 토했다. 자기들을 얼토당토않은 스캔들에 엮어넣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제는 또 이렇게 얼굴에 철면피 깔고 MC를 본다고?
“다른 적임자가 없잖아. 어쩔 수 없지 뭐. 그리고 미안하다고 프로듀서에게 사과했대”
옆에서 린티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녀들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스캔들 청문회 직후에 자기 대장인 블러디 팬서에게 혼쭐이 좀 났던 모양이다. 그것보다는 각 부대 장성 – 블팬보다 훨씬 더 계급이 높은 – 에게 순차적으로 불려 나가서 한껏 닦이고 쪼인 게 더더욱 큰 이유일 것 같지만.
“아니 그러면 우리한테도 사과해야지”
“그건 공연 끝나고 얘기하고...”
블하의 조곤조곤한 말마따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 지나면 두고보자며 투덜거리는 그리폰을 포함해 스카이나이츠들은 작은 수군거림 – 무대 저편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 을 멈추고 다시 바짝 긴장했다. 어찌 되었든 무대 위에서는, 그리고 관객들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니까.
“자아, 그러면, 오늘 새로이 태어난 신예 뮤즈들의 인사를 받아볼까요!”
아, 온다. 스카이나이츠들은 서로 손에 손을 맞잡았다. 마치 각자가 서로의 밧줄이듯이. 그리폰이 마지막으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헷. 어차피 서로 다 아는 오르카 애들 아니냐”
“어허, 예의란 게 있는거야, 리피, 자, 하나, 둘, 셋!”
제비의 말이 맞다. 오늘만큼은 그녀들은 무대 위에 새로운 존재들이니까. 그래서 그리폰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카이나이츠, 오늘 새로 태어난 아이돌들은, 리더의 신호에 맞춰 동시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스카이나이츠입니다!!”
자신들을 보러 와 준 신도들을 향하여. 우상(idol)을 사랑해주는, 그녀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 모든 이들을 위하여.
관객석에서 그 인사에 답하는 우레 같은 환호성이 돌아왔다. 그 압도적인 열기에 스카이나이츠들은 숨이 막할 것 같았다. 자기가 그 환성의 대상도 아닌데 괜히 주인공이 된 마냥 어깨가 으쓱해진 스프리건이 마이크를 프니르에게 넘겼다.
“그럼 그룹 리더에게 마이크를 넘겨볼까요?”
아까 전까지 당당하고 의연해 보이던 건 역시 허세였나 보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하던 제비도 사실은 내심 겁먹고 있었단 걸 바로 옆의 스카이나이츠들은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당황해서는 스프리건에게서 마이크를 받아든 팔이 달달 떨리는 걸 봐서는 분명했다. 그래, 리더는 늘 저렇지.
“어, 아, 안녕, 아니? 안녕하세요? 엄, 스, 스, 스카이나이츠야!”
언제나 당차던 제비도 쏟아지는 기대와 동경의 눈길 속에서 완전히 정신을 못 차렸는지 버벅였다. 실수를 연발하는 리더를 보고 그리폰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감싸쥐었다.
“공군에서 갑자기 아이돌을 하기로 한게 흔한 일은 아닌데요! 어쩌다가 아이돌을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아, 그건.....”
온 극장을 가득 메운 엄청난 관심과 기대가 자기 한 몸에 집중되자 제비는 긴장해 어물거렸다. 갑자기 그게 너무 어려운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냥 짧게 답해’ 라고 뒤에서 하르페가 무언의 사인을 보냈지만 불행히도 프니르의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았다. 프니르의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가 아이돌을 하려는 이유? 그거야 사령관에게 잘 보이려고...그리고....
‘우리가 왜 노래하지?’
수많은 시선과 조명 아래서 눈이 뱅글뱅글 돌던 제비의 머릿속에 불현듯 이러한 물음이 떠올랐다.
바이오로이드는 노래할 수 있는가?
너무 당연한 소리다. 어떤 바이오로이드라도 노래는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전문 가수는 아닌 뽀끄루도, 아르망도, 모여서 노래부르길 좋아하는 브라우니도, 심지어 아무런 교육도 관련 모듈도 받지 못한 네오딤 같은 바이오로이드도 서툴게나마 높고 낮은 곡조들을 읖조릴 수 있다. 노래는, 어쩌면, 바이오로이드의, 아니, 나아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본질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그리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자도 가질 수 있고, 또 행할 수 있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할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는 왜 노래하는가?
누군가는 그 주인이 명령하기 때문에 노래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러라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건네, 밧줄을 잡기 위해 노래할 것이다.
“어, 프니르?”
“......”
제비가 잠시 잠잠하자 약간 어색해진 스프리건이 재차 그녀를 불렀다. 그 부름에 프니르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시, 그렇다면, 스카이나이츠들은 왜 노래하는가? 왜 그 오랜 고생과 고난, 눈물과 분노, 고통과 짜증을 거쳐가며 이 자리에 오려고 기를 썼는가? 사령관에게 어필하기 위해?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녀들이 그동안의 모든 동고동락을 함께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 ‘함께’ 말이다.
스카이나이츠들은 각자 개성이 강하다. 같은 부대이고 당연히 부대원으로서의 전우애가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각자는 서로 취향도 가치관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슬레이프니르는 이제 말할 수 있었다. 스프리건의 물음에 답할 수 있었다. 씨이익 웃으며, 자신있게.
“이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니까!!”
아이돌이,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른다는 그 밧줄이, 그녀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녀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모두가 하나의 밧줄을 잡는다.
이제는 서로 손을 맞잡고, 같은 추억이 될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 부른다.
“아, 그래서 그 날 서로 묶어주는 연습 한 거에요? 서로 볼 잡으면서 팔로 귀갑묶기?”
프니르의 가슴 벅찬 대답은 스프리건의 농담 한 마디에 순식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저거 죽여 버릴까”
안 그래도 그 일로 사진 찍어서 스캔들 만든 게 누군데 이 철면피가 우리 리더를 놀려? 그 ‘귀갑묶기’의 다른 당사자인 그리폰이 진짜 못 참겠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 딱 관객석에 안 들릴 만큼만 - 으르렁거리자 양 옆에 선 레스벨과 린티가 그리폰의 팔을 꽈아악 잡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정말로 욱해서 뛰쳐나갈까봐. 아이돌 데뷔 첫 무대를 유혈과 폭력으로 끝장낼 수는 없지 않은가.
“리피, 참아, 참아, 참아야돼. 자아, 참을 인 셋”
“후우, 후우, 후....”
블하의 필사적인 다독임에 따라 심호흡하는 그리폰의 큼지막한 가슴이 리드미컬하게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러나 스프리건은 여전히 야속하리만치 눈치가 없었다.
“사실 사령관님에게 꼬리치기 위해 이걸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지만요!!”
“아니 이 씹”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주먹이 나가진 않아도 살기는 전해져 온다. 그리폰의 흉흉한 눈빛을 알아차린 스프리건은 그만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냥 오르카에 나도는 풍문을 얘기한 것뿐인데...하고 뒷말을 뇌까리며. 그러나 여기서 또 뭔가 더 ‘야부리’를 털었다간 진짜 미사일 날아와 박힐 것 같아 그녀는 황급히 서둘러 다음 무대를 호출했다.
“아, 하하하, 그, 그럼 곧바로 다음 무대로 넘어가 볼까요! 캐럴! 노래~주세욧~!”
그리폰이 욱해서 뭐라 하기도 전에 캐럴라이나들의 가슴들에서 뿜어나오는 전주가 울려퍼졌다. 쿵, 쾅, 사방의 스피커들이 진동하며 때를 알렸다.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됨을.
“아니 저것이...”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거의 본능에 따라, 마치 척추반사처럼 스카이나이츠들의 몸은 멜로디에 맞춰 반사적으로 튀어올랐다.
그 날을 잊지 못해 baby
날 보며 환히 웃던 너의 미소에
홀린 듯 I'm fall in love
But 괜한 부끄럼에, 난 그저
한마디 말도 못해
무대도 기승전결, 하나의 이야기다. 첫 노래가 사랑이 시작하는 설렘을 노래한다면, 아직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소녀의 마음을 묘사한 것이라면, 이번 노래는 그 불씨가 확 타오르는 심정을 노래한다. 설렘은 격정이 되고, 자신의 감정을 말못하는 소녀는 그 뜨거운 마음에 스스로 데여 애가 타 노래 부른다.
I wanna you
너의 눈빛은
날 자꾸 네 곁을 맴돌게 해
Just only you
굳게 닫힌 내 맘이
어느새 무너져버려
무대에 나서기 이전에 그녀들이 느꼈던 두려움은 그저 배부른 고민에 불과했다. 일단 시작되자 뭘 걱정할 틈도 없었다. 모든 주의와 마음이 오로지 박자를 따라 몸이 따라가는 것, 그리고 그에 맞춰 목청을 울리는 것에 집중되었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서로는 서로의 호흡을 뒤쫒느라 바빴다.
Because of you
온통 너의 생각뿐이야
나도 미치겠어
너무 보고 싶어
매일, 매일, 매일
하르페가 자기 파트를 부르며 왼쪽 팔을 빙글 돌리면,
자꾸 초라해지잖아, 내 모습이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곧바로 블하에게 바통이 돌아온다. 그녀는 하르페가 전해주는 박자를 맞아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그리고, 성대를 폭발시켰다.
Rollin' Rollin' Rollin', Hey
Rollin' Rollin' Rollin', Hey
Rollin' Rollin' Rollin', Hey
하루가 멀다 하고, 설레이는데.
거기에는 생각도 뭣도 없었다. 물 흐르듯이 본능처럼 반응이 튀어나오지 않으면, 늦다.
Rollin' Rollin' Rollin', Hey
Rollin' Rollin' Rollin', Hey
기다리고 있잖아, Just only you
노래부르면서도 블하는 이 순간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동료들을 뒤에서 받쳐주던 자신을, 지금은 모든 동료들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다. 언제나 초라하던 자신이, 항상 뒤쳐져 있던 자신이, 늘 뒤에서 보이지 않던 자신이 이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그 떼창은 블하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늘 말없던 검은 개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빠른 리더조차 앞질러, 오르카의 한복판에 여왕처럼 섰다. 모두의 앞에서 당당하게 노래 부르며, 어느 누구도 검다 하지 못할 만큼 눈부시게 빛나며.
Hey I just wanna be with you
오늘 밤이 가기 전에
I can't feel you
조금 더 다가와 줘
Tonight I'm ready for you
You wanna touch me I know
대체 뭘 고민해 빨리 안아
아닌 척 모르는 척 하다가
늦게 놓치고 후회 말아
레스벨이 블하의 노래를 받았다. 그녀가 어깨를 두 번 들썩이며 리듬을 바꾸자 리더인 프니르와 그리폰이 양옆으로 나섰다. 레스벨이 턱을 들추는 것을 신호로 노래를 넘겨받은 둘이 번갈아 곡조와 음색을 주고받았다. 마치 공을 주고받듯이, 마치 이어달리기 같이, 혹은, 소녀들의 끝없는, 청춘의 릴레이와도 같이.
I wanna you
너의 눈빛은
날 자꾸 네 곁을 맴돌게 해
Just only you
굳게 닫힌 내 맘이
어느새 무너져버려
Because of you!
노래를 정한 하르페에게, 아니 사실은 스카이나이츠 모두에게 이 노래의 의미는 특히 더 각별했다.
멸망 전 이 노래는 과거의 어느 걸그룹이 해체되기 직전에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그 걸그룹은 오랜 시간 동안 고난을 겪다가, 결국 해체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들은 다시 재기했고, 또한 이 노래로 다시 찬란하게 솟아올랐다고 한다. 멸망 전의 자세한 역사도 그 잊혀진 걸그룹의 사정도 스카이나이츠들이 자세히 알 리는 없었지만, 하르페이아는 그 뒷이야기가 퍽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녀들 자신의 이야기와 겹쳐 보여서.
‘바로 우리들도 그랬으니까.’
보컬을 리드하는 프니르를 뒤에서 백업하며 하르페는 생각했다. 그 모든 고난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한때 무참히 산산조각날 위기를 넘어, 그녀들은 다시 모였다. 영영 흩어졌을 뻔했던 그녀들은 다시 뭉쳤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모두의 갈채를 받으며. 하르페는 그 이름 모를 아이돌 그룹과 자신들이 퍽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멸망 전의 드높은 인간 아이돌에 대한 주제넘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자기 파트가 돌아오자 그녀는 모든 생각을 지우고 자신의 영혼을, 목소리를, 마음을 그 하나에 집중했다.
온통 너의 생각뿐이야
나도 미치겠어
너무 보고 싶어
매일, 매일, 매일!
...
무대 저편에서 실피드는, 이제는 친구가 된 린티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린티가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다. 반짝반짝.
‘귀엽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실피드는 내심 피식 웃었다.
한때는 자신도 저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그러고 싶어서 저 무대 위의 비룡과 험악하게 싸우기까지 했었다. 왜 자신은 저 자리에 서지 못하는 건지, 왜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건지 괴로워했었다. 질투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화해하고, 친구가 되어 지내온 날 동안, 실피드, 바람의 정령은 비룡을 보아 왔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주장하는 스스로의 귀여움과 린티의 귀여움은 약간 결이 다르다는 것을.
자꾸 초라해지잖아
내 모습이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울려퍼지는 노래와 그에 맞춰 춤추는 청중들 속에서 실피드는 생각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속이 여리다. 나쁘게 말한다면 겉과 속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가끔 자기 대장 때문에 잔뜩 스트레스 받은 나이트앤젤이 그녀를 보고 ‘겉바속촉’이라고 놀리는 것은 어쩌면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허세를 부린다. 자신이 귀엽다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이 귀엽다고. 그렇게 짐짓 오만하게, 거만하게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그런 교만해 보이는 허세를 한꺼풀 벗기고 나면, 그 안에는 겁 많고 소심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완전 인싸같아 보이는 언행과 말투는 가면일 뿐, 그녀는 사실 스스로 그렇게 개방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허풍을 친 적도 많고, 그렇게 가면을 쓰다 보니 돌이킬 수 없어져서 자신의 진짜 모습과 평소에 겉으로 내보이는 모습이 달라서 사령관이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매일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노심초사할 만큼. 가식적이라고 실망할까 봐. 이런 점에서는 어쩌면 메이 대장도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나라면 저기에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문해보았다. 만약, 그 날, 실피드가 린티를 박살내고 승리했더라도, 혹은 둠브링어가 ‘둠걸즈’가 되어 아이돌이 될 기회를 얻었더라도, 그녀가 저 무대 위에 저렇게 서서 당당하게, 또한 찬연하게 빛날 수 있었을지.
“헤...무리지”
그녀는 혼잣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야광봉을 - 다른 관객보다 서너 배는 느린 하품나오는 속도로 - 흔들던 다이카가 돌아보았다. 그 시선에 아랑곳없이 실피드는, 이제는 인정했다. 린티를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쳐부쉈어도 자신이 아이돌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럴 기회도 없을 테니와, 그런 기회가 있었어도 그녀는 결국 겁먹고 꽁지를 빼렸으리라. 그녀가 아이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린티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예쁘네.”
그랬기에 그녀는 린티를 용서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친구의 빛나는 모습에 감탄해줄 수 있는 거다. 다이카가 이채롭다는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얼마 전까지 머리카락 붙잡고 싸우던 사이 맞나요”
“무슨 소리야. 화해했잖아. 그 이후로 맨날 같이 놀러 다녔는데”
“빈틈을 봐서 뒤통수 찌를 기회를 엿보는 줄 알았죠”
“다이카, 진짜 교토제 아냐?”
멸망 전 일본 지역감정에 교토 사람은 하라구로(腹黒), 속이 시커멓고 음험하댔다. 다이카는 바이오로이드고 그녀가 일본제라고 해서 꼭 교토인의 스테레오타입(?)을 가지란 법은 없지만...하기야. 겉 다르고 속 다른 건 다이카나 실피드나 그리고 어쩌면 그녀 부대의 대장이나 다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린티와는 다르게 말이야’
린티는 그녀와는 다르다. 비룡은 겉과 속이 똑같다. 그녀의 ‘귀엽다’는 허풍이나 허세가 아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지신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또 진심으로 그것을 쫒는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뭐든지 진심으로 밀어붙인다. 귀여움도, 사랑도. 그녀는 실피드처럼 사령관 앞에서 겁먹어 빼지 않는다. 사령관이 자신의 가식적인 모습에 실망할까봐 두려워 망설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녀는,
“바보지”
“음? 누구요?”
“린티”
“아까는 화해했다며요.”
“화해했어도 바보가 바보인 게 바뀌진 않잖아”
“흠, 그건 그렇지요”
린티는 바보다. 겉과 속이 똑같은. 그녀는 가면을 쓸 줄도 모르고, 본심을 숨기는 데도 서툴다. 그녀는, 내보이는 그 모든 것이 진심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 솔직함이 그녀를 더더욱 빛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힘들어 했던 주제에....”
친구가 되고 나서야 린티와 시간을 보내며 깨달았던 것은, 아이돌이란 게 실피드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달랐던 것이다. 옆에서 얘기를 듣기만 해도 뼈가 빠지게 힘들어 보였다. 과격한 안무를 몇 시간이고 연습하다 전신 근육통이 와서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알싸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고, 때로는 노래 한 소절 창법이 안 된다고 목이 터져라 훈련하다 목이 쉬어 오기도 했다. 귀여워지기 위한 과정이 귀엽지 않은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땀 뻘뻘 흘리며 팔다리 아프게 서툴게 뛰어다니는 것, 그러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떡지는 것, 모두 전혀 귀엽지 않다.
‘그러게 왜 그 고생을 해가지구선...’
그러나 린티는 그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녀는 지금 저 위에 서 있다. 그 모든 것을 견뎌낸 대가로 저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그녀는 기뻐 보였다. 신나 보였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아이니 정말 마음속으로 그러하고 있으리라. 땀 범벅이 되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 모습에 실피드는 다시 생각했다.
‘그럴 가치가 있었던 걸까’
이, 멀리 떨어진 관객석에서 보기만 해도 린티의 열정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니,
“그래, 린티는 저기 서 있을 자격이 있어”
진심으로,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귀여움을 추구하는 자는 저 위에 아이돌로서 서 있을 자격이 있으리라. 한 점 의심 없이 스스로의 귀여움을 믿고, 또 전심전력으로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무대 위에서 모두의 찬탄을 받으며 노래할 자격이 있으리라. 실피드는 깨끗이 승복했다. 그리고 그것이 별로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바람의 정령은 더 이상 비룡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친구니까. 그리고 서로 다른 귀여움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정말로 아무런 유감없이 그녀의 겉과 속이 똑같은 친구를 위해 응원해 줄 수 있었다.
“힘내라구, 바보야. 보고 있으니깐.”
그녀의 중얼거림에 화답하듯 린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열정에 차서.
Rollin' Rollin' Rollin', Hey
Rollin' Rollin' Rollin', Hey
기다리고 있잖아, Just only you!
...
실피드가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두 번째 노래가 끝났다. 그녀들은 첫 번쨰 무대와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 포즈를 잡고 섰다. 첫곡 이상의 기쁨에 찬 응원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밝게 빛나는 소녀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만큼 흐뭇하고 보기 좋은 것도 없다.
“보셨어요? 봤죠? 제가 키운 분들이라구요!”
즐거워하는 이들의 물결 속에서 써니가 자부심에 차 무대 위의 스카이나이츠를 가리켰다. 뭐, 그녀가 요가를 가르쳤으니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스카이나이츠를 키우는 데, 그녀들이 저 무대에 서는 데 그녀의 공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과연 그녀의 지분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런 것 따위 이미 안중에도 없는 그녀는 역시 옆에서 신나서 야광봉을 마치 검처럼 흔들어대는 샬럿에게 마구 자랑했다.
“제가 키웠다고요! 이 제가!”
“하아! 그거라면 저도 할 말 있는걸요, 마담!”
둘 다 유쾌하고 활발한 성격이라 서로 아주 죽이 잘 맞았다. 샬럿의 써니만큼이나 당당한 태도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분도 저들이 저 무대 위에 서는데 뭔가 했다고? 뭘 한걸까? 활기찬 궁금증으로 가득한 그녀에게 샬럿은 자랑스러운 듯 무대 위에서 화답하는 하르페를 가리켰다.
“저랑 닮았다구요!!”
“??? ???"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샬럿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써니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의 얼굴에 이 바보는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이 떠올랐다.
“닮았잖아요!”
“???”
“닮았다니깐!”
“????”
“아, 정말!!”
샬럿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아니, 평소에는 그리도 오르카에서 짭르페이아니 (혹은 그쪽이 짭럿 소리를 듣던지) 뭐니 하는 소리를 들어며 닮았다고 놀림받아왔는데, 정작 자기랑 닮은 저 양반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때는 닮은 걸 몰라본다고?
“닮았다고요오오!”
“어....노래실력이요?”
“아니 진짜, 척 보면 몰라요?”
...
“이 잡것이 어디 갔지....”
무대 한 곳에서 때아닌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두 번째 노래를 마친 그리폰은 이 스프리건 년 죽여버리겠다고 - 아이돌답지 않은 흉악한 단어를 내뱉으며. 다행히 마이크를 꺼놔서 관객들에게 들리진 않았다 - 악에 받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새 스프리건은 저만치 안전한 곳 - 단상이 있는 - 에 떨어져서 “예에-! 오르카 뮤즈의 두우우우- 번째 환상적인 무대가 끝났습니다아아!” 하면서 잔뜩 바람을 잡고 있었다.
잔뜩 힘차게 뛰어, 그리고 흥분으로 얼굴이 잔뜩 붉게 상기된 블하가 리피를 달랬다.
“됐어, 리피, 화 풀어. 지금 기분 좋잖아”
“씁...뭐...”
스프리건 때문은 아니지만, 뭐, 정말 기분 좋긴 하다. 정말 이 정도로 가슴이 벅차고 흥분된 때도 달리 없었던 것 같다. 그리폰은 이렇게나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랑을 한 몸에 받아 본 경험이 없었다. 처음이지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경험이지만...
“...그래, 좋긴 하네”
“그지?”
싱긋 웃는 블하 역시 이런 경험이 처음이리라. 그리폰은 생각했다. 블하 역시, 오늘만큼 그렇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아 본 적 없을 것이다. 그렇게 찬란하게 반짝반짝 빛나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낯선 경험이지만, 생소한 경험이지만, 블하 역시 그것이 싫지 않은 듯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자니 그녀도 그리폰 이상으로 기뻐 보였다. 그래, 그 모습을 보고서 그리폰은 마지못해 인정했다. 어쩌면,
“...아이돌이란 거, 꽤 해볼만 하네”
“그러게. 그러니까 마이크 그렇게 잡지 마. 그거 철퇴 아냐”
“쳇. 파파라치 자식,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몽둥이마냥 이걸로 스프리건의 이마를 후려보면 어떨까, 히고 고민하던 그리폰은 슬그머니 마이크를 고쳐잡았다. 블하의 말이 정말 맞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런 일에 하나하나 화내는 게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그리고, 사실은, 또한...
그리폰의 이마에 맺힌 땀이 또르륵 흘러 뺨을 타고 턱선을 따라 미끄러져 흘렀다. 그래서,
무대 바닥에 그녀의 땀이 한 방울 뚝, 하고 떨어졌다.
“후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기쁘고, 가슴이 벅차고, 흥분이 온 몸에 차오르는데도, 고양감이 손가락 끝 발가락 끝을 하나하나 채워오는데도, 뭔가가 불길했다. 언제나 사건사고가 터지는 오르카답지 않다. 이렇게나 완벽하게 진행되어도 되나? 매 순간순간마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런지 실수는 안 하고 있지만, 그래서 기쁘지만...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96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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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에 대한 이야기
1) 두 번째 곡은 이번에 역주행을 한 화제의 곡,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 (2017) 입니다. "시에라 117"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2) 중간에 들어간 이 시1발것 어쩌고 하는 짤은 일본의 개그만화, Bkub의 '팝 팀 에픽(ポプテピピック)' (2014)의 짤입니다.
1. 설정에 대한 이야기
1) 스프리건은 여러 공식 이벤트에서 MC역할을 맡았죠.
2) 실피드와 린티의 사이에 대한 것은 8번 에피소드입니다(1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3401)
3) 써니의 이야기는 3편 이야기입니다: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80898
4) 샬럿의 이야기는 14편 이야기입니다: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6162
5) 그리폰이 스프리건에게 욱하는 이유는(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5172 /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5495 )
2. 본편에 대한 이야기
1) 드디어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2) 공식이벤트에서 스카이나이츠들이 부르게 될 오리지널 노래를 제가 알 리가 없는 관계로(그렇다고 제가 노래를 만들수도 없지요!) 그리폰 장인님이 예전에 좋아하신다고 하는 분야랑 라오게 여러분들의 추천을 감안하여, 일종의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되도록 순서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3) 다시 말해, 제가 스카이나이츠 오리지널 곡을 모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설정상 멸망 전 걸그룹 아이돌들의 노래를 발굴해내어 편곡해 부른다는 설정입니다. 따라서 가사는 실제 걸그룹들의 곡이지만, 제가 임의로 약간 손봤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멸망 전 노래라 기록이 유실된 부분이 존재 + 하르페이아와 마키나가 조금 편곡했다는 설정입니다.
4) 기타 관객들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라오게 여러분들의 요청 덧글을 반영하였습니다: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9762
3. 잡담
1) 그동안 좀 많이 바빴습니다. 몸도 좀 여기저기 아팠고...그래서 좀 늦어졌군요. 어서어서 진행을 시켜야지..
2) 오늘 본편은 다 완결납니다. 본편은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덧글과 추천이 창작자들에게는 언제나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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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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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ㅎㅎㅎ | 21.04.01 21: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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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89762 요 글에 언급은 되어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 21.04.01 21:5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