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의 죄라면,
짊어지게 하소서.
내 마음 속에 후회가
날 찢어지게 하소서.
내 심장에 휘감겨진 가시관이
내 죄 만큼 날 고통스럽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
이 더럽혀진 육신이
내 죄를 구현케 하소서.
규율과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을 다스릴 시절,
사라는 수녀된 몸으로서
친절과 웃음을 잃고 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바른 인사를 건냈고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였으며
도움을 필요로하는 이에겐
그들의 일이 곧 제 일인것처럼
성심성의껏 도왔다.
교단엔 지켜야 할 규율이 있었기에
사라는 그 규율을 마음에 담고
머리로 기억하며
입으로 되내이곤 행동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라.
언제나 웃음을 잃지 마라.
너의 몸과 마음을 언제나 청결히 유지해라."
그 분의 말씀이 내 법이오
내 삶이니.
그리하겠나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마을 청년이 사라에게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도 벽이나 나무 뒤에서
사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이였으니,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얼굴을 붉히곤 아무 일도 없다며
빠르게 달음박질을 치던 젊은이였다.
그런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세상엔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아있었다.
하여간 그 청년이 사라에게 털어놓기를,
사라를 처음 볼 때부터
줄곧 반해있었다고 고백해왔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먹거나 마시거나,
무얼 해도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체취가, 그 존재 자체가
머리에서 떠나가질 않았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사랑 고백에 당황한 사라는
청년을 향해 단호히 단칼에 거절하며
황급히 교회로 도망쳐 왔다.
멈추지 않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부여잡으며 심신을 평온케 하려는 사라.
허나 파장 한 번에 흔들리는 해수면처럼
진정되질 않는 그녀의 마음이
결국 사라로 하여금 도구함에 보관된
아홉 갈래 채찍을 꺼내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웃옷을 벗은 그녀는
자신의 등을 향해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짜악!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짜악!
저를 자비롭게 받아 주십시오.
짜악!
문란한 마음이 제 속에 들어가니
결코 그대의 문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짜악!
수송아지를 드리는 대신에
저의 입술을 열어
주를 찬양 하겠습니다.
짜악!
부디 저의 모든 죄를
사해주십시오
짜악!
그렇게 고행을 끝낸 그녀는
진정된 마음을 이끌고
다시금 청년을 만나러 갔다.
비록 매정하게 거절하긴 했으나
수녀됨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보여야 했기에.
허나 놀랍게도
청년은 자신의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청년의 몸은 포도나무가 휘감겨있었고
나무뿌리는 가슴께에 난
큰 구멍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닥엔 나뒹구는 둥근 돌이
꼭 가슴의 구멍과 크기가 일치했다.
참으로 보기 끔찍한 광경임에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을 향해 청년의 어머니가 소리쳤다.
내 아들이 힘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이 자리에 앉아 중얼거렸습니다.
사라... 사라...
하느님의 딸 사라의 이름만 줄곧 외더니
곧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했고
가슴이 찢어지면서
그 사이로 심장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심장이,
어인 이유로 돌처럼 변해
아들의 가슴을 찢고 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어째섭니까?
독실한 내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어째서…
모여있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탓하시오.
아드님의 마음을 해한 내 죄요.
나를 탓하시오.
깊게도 사랑한 그의 마음을 친절을
그의 가슴을 찢어놓았소.
나를 탓하시오.
되놓지 못한 나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흩뜨러 놓았소.
나의 죄요.
나를 탓하시오.
그 자리에 있었던 인원 전부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나 결국 그녀의 말 처럼
그들은 그녀를 탓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자식이 어린 양을 꾀어
곧 끔찍한 죽음으로 몰고 가게했으니.
마을사람들은 그녀를 교회에 가둬놓고
이단 심문소에 편지를 보내
그녀의 처후를 결정키로 했다.
이단 심문관이 도착할 사흘 간
사라는 신의 모습을 한 석상 앞에 무릎 꿇고
독실하게 기도를 드렸다.
낮이 밤이 되고
깨끗한 바닥은 먼지로 뒤덮혔으며
벌레들이 이곳 저곳을 기어다님에도
사라는 말없이 기도를 드렸다.
그 정성이 그 분께 닿았을까,
절대고독을 맛본 사라는
이내 머릿속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오는것을 느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사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이옵니까?
목소리가 답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죄는 씻을수 없으나
스스로를 채찍질 하여
너의 죄를 잊지 아니 할 수 있으니
너를 탓하라
너를 탓하고
너의 죄를 결코 잊지 아니하라
사라는 주의 말씀을 듣곤
자신의 아홉 갈래 채찍을 가져와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그녀의 등가죽이 찢어져
피가 철철 넘치기 시작해도
그녀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고통은 내 죄의 실현이니
결코 피하거나 미뤄선 아니된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마을에 이단 심문관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사라를 탓하며
그녀의 죄목을 낱낱이 고했다.
곧 심문관이 교회를 찾아가 문을 열고
사라의 면모를 보려 했으나,
그녀의 모습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벗겨진 등가죽 위로 검은 날개 한 쌍이 피어나
그녀의 상처입은 몸뚱이를 감쌌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놀라 두려워하나
사라는 천천히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신께서 내게 기적을 선사하셨으니
이 무쇠와 같이 무거운 날개는
내가 짊어져야 할 죄요
씻겨지지 않을 상처들은
이고가야 할 등짐이니
그대 어린 양들이여
두려움에 떨지 않기를
청년의 가슴을 찢고 나온 돌처럼 굳은 심장에
여인의 상처입은 등에서 날개가 자라나는
소위 이 '기적'이라 칭할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으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심문관은
이를 보고 이단이라 칭하니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마녀로 보고 두려워했다.
곧 열린 재판에 회부된 그녀는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고
어떠한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고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화형대에 올라
육신과 그녀의 죄가 함께 타오를 것이니,
모든 마을 사람들이 화형대 맞은편에 무릎꿇고
형이 집행되길 기다렸다.
사라는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평온한 얼굴로 화형대에 얌전히 묶여있으니
청년의 어머니가 횃불을 들고 화형대에 다가가
사라 아래에 깔려있는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화형식이 거행되고
심문관이 기도문을 올리니
모든 사람이 따라 기도하기 시작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사라지리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때가 찼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니라
아맨
사라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곧 떠나리라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눈을 감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사라는 원죄를 끌어안고가려는
그 순간…
쿵!
땅이 흔들렸다.
자리의 모두가 일어서며 놀라니
심문관이 모두를 진정시키려 했다.
쿵!
두 번째 울림에
심문관 자신마저 진정치 못해 주변을 둘러보니
여섯 시 쯤 되어 붉어진 하늘 아래로
검은 물체 여럿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쿵!
세 번째 울림에
하늘의 검은 짐승들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들 주위로 겹겹이 둘러쌓이니
그 모습에 모든 이가 겁에 질려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쿵!
네 번째 울림과 함께
검은 짐승들이 굉음을 질렀다.
그 소리가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과 같아
귓청을 찢어 발기니
사람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쿵!
다섯 번째 울림이 끝남과 동시에
검은 짐승들이 저마다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고통과 두려움에 찬 비명이
온 마을을 채움에 부족하지 아니했다.
쿵!
여섯 번째 울림이 퍼지며
사라가 외치는 소리가 묻혔음이
사람들은 사라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였다.
쿵!
일곱 번째 울림이 끝나고
불꽃이 사라의 몸을 타고 올라오자
사라는 울부짖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죄를 지으매 합당한 열매를 맺는 저를 두시고
어찌 티끌 하나 없을 죄없는
어린 양들을 거두시나이까?
제 날개를 움직여
그대 문 앞에 날아갈 터이니
부디 저 죄없는 이들을 살려주시옵소서
부디 제 죄를 끝까지 짊어지게 하옵소서
허나 사라의 간청에도
검은 짐승들은 살육을 멈추지 아니했다.
뜨거운 열기가 자신의 몸을 감싸자
곧 사라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해가 지고 달이 뜨며 다시 달이 지고 해가 떴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라는
아무렇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고
놀라 몸을 일으키니
눈 앞으로 수 많은 시체들이
곳곳에 널부러져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시체를 뜯어먹는
들개와 같은 검은 짐승들
역시 눈에 보였다.
허무와 분노에 찬 그녀를 사이로
검은 짐승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하느님께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아버지
어찌 저를 살려두셨나이까
어찌 저 짐승들을 보내
당신의 어린양들을 죽이셨나이까
저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소서
만일 저들이 당신이 아닌
간악한 독사와 같은 악마가 보낸 것이라면
제게 기회를 주소서
제게 마지막 힘을 주어
저 짐승들을 도축하게 하소서
기도하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검은 짐승들,
곧 그녀에게 달려들어 발톱을 휘두르자
하늘로부터 갑작스런 광휘가 그녀에게 내리쬐어
이내 모두를 향해 발산하기 시작했다.
빛이 잠잠해질 때 쯤
사라의 오른 손엔 이미 찬란히 빛나는
뇌창이 쥐어져있었다.
그녀에게 세 번째 기적이 내린 것이다.
...구원 받으소서
그녀는 자신에게 내린 선물을 쥐고
그 앞에 선 짐승들을 전부 도륙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만신창이가 된 사라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한 번,
주변의 시신들을 보면서 또 한 번,
그들 위로 비치는 햇살을 느끼며 또 다시 한 번
땅을 치며 흐느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지고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되
땅은 영원히 있구나
사라는 그나마 남아있는 시체들을 모아
하나 하나 기도를 올리며 땅속에 매장했다.
얼마가 걸린들 얼마나 많은들
그녀에겐 상관 없으리니.
끝내 모든 시신을 땅에 묻어
그들을 한 명 한 명 추모하고 기억했다.
이 후 그녀는 날개를 힘껏 펼쳐
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마을 너머 저 멀리까지 검은 짐승들이 가득히 보였다.
그녀는 강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우뢰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 두 날개는 내가 지은 죄의 산물이요
내가 속한 과거는 곧 속죄의 길이 되어
내가 걸어야 할 순례로 인도했다!
저 간악한 검은 짐승들을 죽여
저들에게 희생된 모든 이를 위로할 것이니
보라, 나 사라카엘의 뇌창 아래
살아 숨 쉴 짐승은 없을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속죄하는 자, 사라카엘로 칭했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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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겜 갓겜 | 21.02.25 17: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