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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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둘 다 동시에 외쳤기에 서로에게 치명타를 먹이지 못한 것이지,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조금 늦거나 빨랐다면 둘 중 하나는 확실히 끝장났을 것이다.
뒤이어 수많은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그리고 프로스트 서펀트 소대가 농장의 불을 끄기 위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말입니까?! 편히 쉬던 중이었는데.”
브라우니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화를 내며 레프리콘과 함께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다. 동시에 프로스트 서펀트 소대가 소방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뿌리며, 뒤처리 때문에라도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다들 이 상황에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 없다는 건 잘 알 것이다.”
농장 화재 사고를 적당히 수습한 직후. 사령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바이오로이드와 AGS를 전부 다 사령관실로 불러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농장에서 난동을 부린 백토. 그 난리를 두 배로 부풀린 골타리온. 백토를 제대로 말리지 못한 모모까지 중징계를 받아야만 했다.
“같은 오르카 함 내의 동료들끼리 싸우지 말 것을 내가 몇 번 강조했지?”
사령관은 골타리온. 백토. 모모. 그리고 뽀끄루까지 세워놓고 질문을 던졌다.
“굉장히 많이 얘기했어요.”
모모와 뽀끄루가 먼저 대답했다. 하지만 백토와 골타리온은 서로를 사납게 노려보며, 조금이라도 타협을 볼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매지컬 잰틀맨. 하지만 뽀끄루가 다시 마왕이 되려고 하는데 그걸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마왕군 간부까지 오르카 호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백토는 골타리온을 가리켰다.
하지만 골타리온 역시 혀를 차며 백토와 모모를 손가락질했다.
“뽀끄루 대마왕님에게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는 저 마법 소녀들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라는 건가?!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역시 저 둘만큼은 평행선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둘 중 하나를 죽이고 다시 되살리거나, 둘 중 하나의 기억을 깨끗하게 지우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러나 사령관은 이전에도 닥터가 제안했던 그 방식들을 전부 다 거부한 이상. 아무리 AGS라고 해도 그렇게 데이터나 메모리에 마구잡이로 손대고 싶지 않았다.
“뽀끄루 마왕님께 무슨 무엄한 짓이냐!!”
“시끄럽다 악당! 여기서 한 번 더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줄까?!”
그 와중에도 백토와 골타리온 13세의 말싸움은 더욱 격해졌다.
이 상황에서까지 사령관은 ‘인간’ 특유의 강제복종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이 상황에서도 서로를 사납게 노려보는 모습에 그대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다들 그만!”
백토와 골타리온은 각자 DNA와 메인 프로그램에 각인된 본능대로 입을 꽉 닫았다. 사령관은 화를 꾹 눌러 참는 투로 징계 내용을 전달했다.
“그래서 다들 반성하는 것 같지 않으니, 각자 징계를 내리겠어. 우선 백토는 일주일간 간식용 떡 금지와 열흘 독방. 그리고 샬럿의 검술 연습 상대 5일. 모모는 관리 소흘로 알렉산드라와 함께 토모의 교육 담당 일주일. 골타리온은 엘븐 포레스트메이커 부대와 함께 농장 복구 작업에 투입된다. 이상.”
사령관의 징계 내용에 콘스탄챠부터 눈살을 찌푸렸다.
“꽤 큰 징계인데요. 그건.”
특히 엘븐 포레스트메이커는 안 그래도 짖궂은 성격에, 이번 일로 가장 크게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복구 작업 동안 골타리온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일으킨 사건이 너무 큰 데다가,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사령관이 반쯤 포기했다는 투로 말하자, 콘스탄챠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건 어때요?”
콘스탄챠가 내뱉은 한마디에 사령관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게 가능할까?”
사령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콘스탄챠는 너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암흑 용사 램파리온하고 신수 유니콘. 그걸로 백토의 살의를 돌려놓았잖아요.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계속하면 아마 백토나 골타리온도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겉보기에는 확실히 그럴싸했다.
“그런데….”
하지만 사령관은 AGS와 바이오로이드의 사고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백토를 잘 속여 넘겼다 하더라도, 골타리온 13세마저 무사히 넘어가게 할 수 있을지는 완전 달랐다.
“그게 AGS에게도 통할까?”
“AGS도 감정 모듈이 있는 존재니까요. 그들의 감정 모듈을 건드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콘스탄챠의 조언에 사령관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가? 그런 방법이 있다면 확실히….”
그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콘스탄챠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좋아. 그러면 ‘한 번’ 더 연극 준비를 해야지. 콘스탄챠는 바로 샬럿과 아르망. 램파리온과 기간테스를 불러줘.”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콘스탄챠는 환하게 웃으며 방송실로 달려갔고, 사령관은 램파리온과 기간테스가 백토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제발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기적이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사령관은 연속된 기적이 벌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그때의 믿을 수 없는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나 주기를 몰래 기원했다.
잠시 후. 사령관 앞에 램파리온과 기간테스. 그리고 샬럿과 아르망. 모모와 뽀끄루가 모이게 되었다.
“램파리온과 기간테스의 연극 이후로 오래간만이옵니다. 폐하.”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어느 정도 준비해둔 게 있습니다. 사령관님.”
램파리온과 기간테스까지 모이자, 사령관은 모두 자리에 앉게 권한 뒤 우선 바이오로이드 둘과 AGS 둘에게 사과부터 했다.
“미안. 내가 일이 있을 때만 부르게 된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넷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오히려 모두 뭔가 한 가지씩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또 마법 소녀 백토와 관련된 일이라고 아르망에게 들었사옵니다.”
“다시 한번 용사가 나설 때가 된 것인가?!”
“마침 마왕의 부하가 하나 더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그 마왕의 부하가 요즘 트러블을 많이 일으킨다면서?”
사령관은 벌써 이 이야기가 기간테스한테까지 흘러 들어갔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기간테스가 포함된 AGS 로보테크는 스틸 라인과 합동 작전을 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틸 라인의 수다쟁이가 여기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할 일이다.
“또 브라우니인가?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말이야.”
기간테스는 사령관의 한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령관은 굳이 브라우니를 추궁할 생각이 없었기에, 한데 모여 있는 넷에게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백토와 골타리온이 서로를 향해 겨눈 칼을 거두는 연극을 진행할 생각이야. 너희들의 생각은 어때?”
모모는 멸망 전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 눈을 빛내며 사령관의 의견에 찬성했다.
“확실히! 좋은 방법이에요. 저희 덴세츠 사에 소속된 바이오로이드나 AGS는 모두 다 현실 같은 연기를 위해 감정 모듈과 사고 모듈을 등장 작품 기준으로 맞춰놓으니까요.”
모모의 말대로 램파트의 확장 파츠인 하이퍼 라이온마저도, 추가적인 감정 모듈을 설치할 만큼 신경을 써둔 회사이긴 했다. 그런데 사령관은 거기서 갑작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골타리온은 어째서 평소에는 그런 모습을 보여온 것이지?”
평상시의 골타리온은 전투에는 도저히 써먹지 못할 만큼 겁이 많고 심약했다. 오로지 모모와 백토를 볼 때마다 그렇게 앞뒤 안 가리고, 심지어 뽀끄루의 앞에서 자동으로 세뇌가 걸리는데도 그녀의 명령도 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는 뽀끄루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악역으로만 사용했다가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그 대책으로 평소에는 어수룩하게 만들어놓았어요.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잘 팔린 덕분에 캐릭터 성으로 굳혔어요.”
그 이후 뽀끄루가 추가로 설명해준 것은 이렇다.
골타리온의 인공지능을 순박하고 어수룩하게 재조정한 이후. 그를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아동용 교육 프로그램 등에도 출연시키고, 그것으로 한때는 램파리온보다 훨씬 더 높은 인기를 얻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백토와 모모를 볼 때마다 그렇게 미쳐 날뛰는 거지?”
뽀끄루 대마왕은 무시무시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투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마법 소녀와는 진짜 죽고 죽이는 것처럼 싸워야 해서, 다른 특별한 장치를 더 넣었다고 했거든요. 그 장치가 뭔지는 저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요.”
사령관은 또 인간 특유의 괴상망측하고 가학적인 발상이 끼어들었을 것 같아, 뽀끄루의 대답에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뽀끄루가 다시 예전 TV 촬영 시절을 떠올리며 우울해하자, 괜한 걸 물어봤다는 후회까지 들 정도였다.
“결국 그래서 지금 포츈과 닥터. 그리고 스카디에게 골타리온의 AI와 메모리 분석 작업을 다시 해야만 하지.”
모모와 아르망은 골타리온의 상태를 점검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일할 셋을 생각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셋은 계속 이렇게 골타리온 때문에 속을 썩일 거면, 차라리 AI와 메모리. 데이터까지 깨끗하게 지우고 새로운 AGS로 사용하라는 말을 했어.”
확실히 저 셋이 한 말은 기계를 다룰 때 거의 유일하고 아무 뒷탈도 없는 해결책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인간이 그런 일을 당하면 죽는 거나 다름없잖아. 바이오로이드도 그렇고. 내가 당하기 싫은 걸 너희들한테도 그대로 겪게 하는 건 싫어.”
사령관의 말에 모여 있는 AGS와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의 고뇌 어린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샬럿과 아르망은 환하게 웃었고, 표정이 없는 두 AGS는 눈의 카메라 렌즈를 깜박이는 것으로 웃는 것을 대신했다.
“그러니까 모두 골타리온과 백토가 싸우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연극을 만들어보자.”
“최선을 다해 새 각본을 써오겠사옵니다! 폐하.”
“저도 샬럿의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겠습니다.”
샬럿과 아르망이 먼저 한마디 했다.
“골타리온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우정의 힘을 보여주겠다.”
“새로운 용사 유니콘이 골타리온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
뒤이어 기간테스와 램파리온이 한마디씩 보태자, 사령관은 그제야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넷을 지켜보며 새로운 계획을 머릿속에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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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은 장갑 AGS 스파르탄으로 이어지겠군요. 그쪽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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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골타리온 성기사ver.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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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대로라면 악역이 선역화할땐 포스가 죽는다고 하니 그 부분이 고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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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세츠의 광기(혹은 덕질)로 빚어낸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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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대로라면 악역이 선역화할땐 포스가 죽는다고 하니 그 부분이 고민이네요 | 20.11.24 19: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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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리얼함을 위해 버려온 것들...수많은 바이오로이드의 목숨과 현실적으로 타협하려던 직원 등등 | 20.11.24 19: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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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세츠의 광기(혹은 덕질)로 빚어낸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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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은 어떻게 보면 광기같긴 하네요 | 20.11.24 19: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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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자기 전에는 늘 양치질을 하고 횡단보도에서는 신호등을 살피고 건너세요.'라고 안내한다면 나름대로 재미있겠죠. | 20.11.24 2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