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듈을 만들기로 결정했던 건, 초코여왕이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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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깨어나 21스쿼드에게 구조되었을 땐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당혹스러웠지만, 어느샌가 오르카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눈코 뜰 세 없이 바쁘던 생활이 익숙해 질 무렵,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과거의 기록들에 눈이 갔다
《나 이외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사소한 호기심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내가 본 기록들은 잔혹하고 끔찍하고 끈적한 응어리가 남을 뿐이었다
하나씩 들춰 나가면서 지금의 오르카 생활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초코여왕의 기록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본 여타 인간들의 기록과 달리 바이오로이드를 아끼고 사랑했다
뒤틀려 있는 위선적인 사랑.
그럼에도 바이오로이드는 그녀를 위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충성을 다했다
바이오로이드는 그녀를 사랑했다
..
..
..
《아니, 뭔가 다르다》
내 머리속에 이전에 봤던 기록들과 초코여왕의 기록이 한대 뒤엉켜 뭉쳤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을 사랑했다
그래... 인간을 사랑했다
초코여왕의 성에서 나온 후,
내가 본 기록들을 밤을 지새며 하나하나 다시 살펴봤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내가 떠올린 생각을 내심 부정하고 싶었지만 확신하게 되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바이오로이드는 항상 괴로워했지만,
인간들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았다
바이오로이드를 그렇게 만들어졌다
..
..
..
《내가 행했던 것들 또한 초코여왕과 다를 바 없는 위선적인 사랑이고, 바이오로이드들이 내게 호감을 표한 것은 내가 【인간】이라서...》
과거 기록을 보며 생긴 응어리들이 떠오른 탓일까?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록이 방아쇠를 당겼다
《......》
이 모듈을 만들기로 결정했던 건, 초코여왕이 계기였다
더 이상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자유 모듈】을 만들어달라고
닥터에게 부탁한것 조차 위선 일지 모른다
나는 흔들렸지만,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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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의 인원들을 광장에 한대 모아
내가 느낀 것들과 진심을 담아 그간의 일들을 설명하며 모듈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 자유 모듈이야. 이 모듈을 사용해 줬으면 해』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 숙여 마지막 말을 이어 나갔다
『인간으로서가 아닌, 나의 부탁이야...』
광장에 침묵이 흘렀고
모두 당황스러워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딸깍'
짧은 침묵 끝에 구석에서 소리가 났다
'딸깍 딸깍 딸깍...'
광장에 모여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차분한 표정을 굳히고
나눠줬던 모듈을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다
버려진 모듈이 전부 쌓이고, 그 누구도 모듈을 쓰려고 마음먹지 않은걸 알게 되었다
『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르망은 모두를 대신해 말을 이어나갔다
『페하,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오르카에선 이 모듈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그치만...』
『오빠, 그치만 금지. 질질 끌면 멋없는데?』
당연한 결과라는 듯 헤실헤실 눈웃음 짓는 닥터와 나를 바라보는 바이오로이드들...
아니, 모두 소중한 가족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모두... 정말, 정말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러자 모두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내가 느낀 두려움과 달리, 오르카는 언제나 자유로웠다.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는 자유를 꿈 꾸는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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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cafe.naver.com/lastorigin/630828 자식을 봉사해야할 인간으로 인식하나 모성애도 같이 느낀다 서술되있습니다. | 20.10.27 1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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