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0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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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가장 저렴한 바이오로이드조차 구입할 돈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그리 되었건,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하여 그리 되었건, 혹은 어떤 이유로 가진 재산을 탕진하였건 말이다. 콘스탄챠의 주인의 경우는 가장 마지막 경우에 해당했다.
냄새나고 더러운 좁고 험한 판자촌을 걸어올라, 다른 허름한 집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너절한 집구석의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시끄럽게 코고는 소리와 함께 역한 술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 그녀의 주인님이 풍기는 냄새였음에도 콘스탄챠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그녀의 눈매를 일그러뜨리는 것은, 주변에 마구 널브러져 파리가 날아다니는 쓰레기와 마시다 만 술병들이었다. 아침에 깨끗이 청소하고 나갔건만....메이드로 태어난 바이오로이드로서 그녀는 그런 지저분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왔어, 누나”
한숨을 쉬며,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주섬주섬 주인님 곁의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콘스탄챠에게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피곤해서 약간 퀭해진 눈을 들자 주인님의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뚱해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마른 얼굴을 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뭐 특별한 일 없었나요”
“아까 전에 윗집 김씨 할배가 다녀갔어. 아빠가 또 돈 빌려놓고 안 갚았나봐”
도박을 하느라 이 빈민촌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조금씩 소액을 꾸는 그 작태를 보자니 콘스탄챠는 암담해질 것 같았다. 조만간 정말로 빚 문제로 콘스탄챠도 B구역 소모품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 전까지는, 그녀는 모실 것이다. 섬길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본분이니까.
“식사는 하셨나요, 도련님”
“먹었겠어?”
콘스탄챠는 새삼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운 골방에 주인님 혼자만 진탕 퍼마셨을 술병들, 오만 데 널브러진 마권, 사설토1토, 그리고 담뱃갑....아무래도 소년은 하루종일 굶은 듯했다.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한 가정을 책임지는 메이드로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 상대가 바로 소년이라서 더더욱.
“....그러네요”
콘스탄챠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요리를 해주기엔 애로사항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늦었기도 했고, 요리 모듈도 제거된 깡통에 불과한 그녀가 딱히 요리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아니 애초에 집구석에 요리 재료가 얼마 남아있지도 않았다. 사실, 쌀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콘스탄챠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두려워서 쌀통을 열어볼 엄두도 안 났다. 결정적으로 요리하다가 지금 코 골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는 주인님이 깨면 또 뭐라고 짜증을 내실 것이다. 결국, 그녀가 나지막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식사하러 가실까요”
...
저녁을 먹기엔 너무 늦은 밤이었지만 그래도 끼니를 거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정에 식당에 가는 것은 지나친 사치이니,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고 또 죄송했다. 콘스탄챠는 그렇게 느꼈다. 가정용 메이드 주제에 그 집 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이다니, 그녀 안의, 메이드로서의 자존심이 한없이 상처받고 또한 죄책감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다지 불만이 없어 보였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은 그에게는 편의점 레토르트 도시락도 충분히 맛있어 보였다. 한참 허겁지겁 먹고 나서야 콘스탄챠의 눈치를 볼 만큼.
“저기...누나는 안 먹어?”
“저는 일하는 데서 먹고 왔어요”
사실은 안 먹었다. 테마파크에서는 직원들 밥도 유료로 사먹어야 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인 콘스탄챠는 이 초라한 인간 2인 가족을 먹여살리는 데 그 돈조차 아쉬웠다. 애써 배부른 척하며 그녀는 다른 데로 소년의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 항상 소년에게 타이르지만 그는 늘 잊곤 하는.
“도련님, 절 누나라고 부르시는 건 잘못된 거에요”
“누나는 누나야. 나 아기 때부터 돌봐줬잖아”
그녀와 그녀의 주인이 처음부터 이렇게 나락에 떨어진 삶을 살았던 건 아니었다. 한떄는 그녀의 주인도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콘스탄챠를 살 만한 꽤 유복한 가정을 꾸렸더랜다.
그녀의 주인은, 지금 술에 절어 판잣집 아래 누워 아들내미가 뭘 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곯아떨어져 있는 그 남자는, 원래는 회계사였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계사 정도면 아주 괜찮은 전문직이고 실제로 그도 그러했다. 그녀, 콘스탄챠를 비롯하여 몇몇 바이오로이드를 사서 가질 수 있을 만큼. 도박에 빠져 회사 공금에 손을 대지만 않았어도 그와, 그의 아들과, 콘스탄챠의 삶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도박 중독과 그에 뒤이은 범죄는 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그리고 그들을 모시단 콘스탄챠도 한순간에 파멸로 내몰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회사에 해악을 끼친 그는 해고되었다. 그나마 철창신세를 지지 않은 게, 그래도 그가 오랫동안 봉직해 온 회사가 그에게 베푼 마지막 자비였다.
그러나, 신용이 없는 회계사는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그 어떤 회사에서도 그를 찾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을 그 나락에 빠뜨린 도박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아, 그리고 알콜 중독도.’
그는 자신의 재산들 - 바이오로이드들을 포함해서 - 을 팔아치워서 경마, 슬롯머신, 그리고 술에 몰두했다. 그의 재산은 금새 탕진되었고 아내는 집을 나갔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우 벽 짚고 설 줄 알게 된 그의 아들과, 바로 그녀, 콘스탄챠S2 736번이었다.
모든 모듈이 제거된, 심지어 파트너견인 보리조차 없는, 깡통이나 다름없는 콘스탄챠 하나, 오로지 그녀만이 주인님의 곁에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헐값에로라도 그녀를 사갈 사람이 없어서 남았다고 말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모듈도 반려견도 없어 전투도 가사일도 서투른 배틀메이드는 쓸모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자의로 남았든 타의로 남았든, 그녀에게는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었다, 특히, 젖을 떼자마자 졸지에 편부가정의 자식이 되어버린 소년을 말이다. 소년의 말마따나 콘스탄챠는 그가 겨우 벽 짚고 설 무렵부터 거의 혼자서 그를 돌봐 왔다. 소년의 아버지, 그러니까 콘스탄챠의 주인님은 술독과 잠과 도박에 빠져 아이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결국 콘스탄챠가 홀로 소년의 어머니이자 누나이자 보모 노릇을 해내야만 했다. 물론 힘들었다. 고생스러웠다. 제대로 된 기능모듈 하나 없어 돈을 벌어올 만한 직업도 갖지 못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B구역에서 몸을 파는 정도의 일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인스턴트 도시락조차 정말 맛있다는 듯 허겁지겁 입에 털어넣는 소년을 멀거니 바라보던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응?”
“도련님은 꿈이 뭔가요?”
소년은 어찌 보면 약간 뜬금없기도 한 콘스탄챠의 질문에 눈을 동그렇게 뜨고 골똘히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사실은, 콘스탄챠 자신도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소년에게는 어떤 꿈과 희망이 있는지, 있기는 한 건지 궁금했던 건지도 모른다.
“글쎄. 요즘 남창(男娼)이 인기 좋다는데, 나도 몸이나 팔아 볼까?”
그 말에 콘스탄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바로 몇 시간전까지, 지금 소년이 천연덕스레 말하는 그 짓을 하고 온 바로 그 몸을.
인간 남자들은 여성형 바이오로이드를 통해 성적 욕구를 풀 수 있지만,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는 없다. 인간 여성들의 성적 욕구를 풀려면 결국 인간 남자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남성 창부는 여전히 수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미쳐가는 세상에서 과거보다도 더. 그러나 콘스탄챠는 소년이 그 길을 가길 바라지 않았다. 더, 더 나은 길이 있지 않은가. 콘스탄챠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에, 농담이야, 누나”
“재미없어요.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요”
“화났어?”
“....아니요”
“뭐야, 누나 꼭 바닐라 같이 말하네”
그러고선 그는 싱긋 웃더니 먼지와 얼룩이 끼어 남루한 가방에서 책들을 꺼냈다.
“마침 잘됐어. 집에서는 아빠 떄문에 공부도 잘 안 되고...차라리 여기서 공부하는 게 나을 거야”
흘긋 보니 경제학과 법학 교재였다. 교육용 바이오로이드도 아니고 콘스탄챠는 요즘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지도, 가르치는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한눈에 보기에도 소년이 열심히 공부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펼쳐진 책에 필기와 메모가 한가득이었으니까.
“뭐 하세요?”
“다음 모의고사 준비”
“모의고사요?”
“누나, 나 조금 있으면 졸업해. 알아?”
콘스탄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것도 걱정이었다. 졸업하고 나서 뭐 하실지. 사실은 그래서 소년의 꿈을 물어본 것도 있고.
“나 전교에서 4등했어. 아빠는 관심도 없지만.”
소년이 뭘 공부하는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은 안다. 그래서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자화자찬같지만, 좀 열심히 공부했지. 헷”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다른 가족, 콘스탄챠만큼은 알아주길 바라는 듯 말을 계속했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길 바라는 듯이,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발버둥치는지, 그녀만큼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듯이. 소년이 약간 불평했다.
“내 위에 있는 애들은 못 이겨. 오리진 더스트가 많아서 머리도 좋고, 학원도 좋은 데 다니거든.”
학습도 결국은 좋은 교육을 받을 돈과 시간이 있는 자가 유리하다.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 수단을 자본이라 하고, 자본은 자본을 낳는다. 자본주의가 강고해지는 이 시대에 그 명제는 더 튼튼해지면 튼튼해졌지 약해지진 않았을 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지푸라기라도, 혹은 그나마 남은 콩고물이라도 집어먹기 위해 소년은 연필을 쥐었다. 적어도 그 방식이 정정당당하니까.
“그런 애들은 못 당하겠지만, 그래도 지방대 경제학과 정도는 갈 수 있을 거야”
“경제학과요?”
“어어. 요새 실업자는 넘치고. 기업들은 늘 정부랑 싸우고, 경제학을 배워 두면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법학이랑 같이.”
경제학이고 법학이고 콘스탄챠는 모른다. 소년의 노트를 흘긋 바라보자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아래로 눈을 내리자 ‘형법’이란 단어도 보였다. 그녀로서는 뭐가 뭔지 단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년이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그리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응원해주고 싶었다.
“요새 기업들이랑 정부랑 점차 법적 분쟁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어. 경제학이랑 법학을 전공해서, 경제 쪽 법무사를 노려볼거야. 상법, 회사법, 이런 거 말야. 기업 법무팀이든 정부 법무부든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즐겁게 재잘거리던 소년은 문득 콘스탄챠의 눈치를 보면서 어깨를 작게 움찔했다.
“무...물론, 대학 등록금이 만만치 않겠지만...어떻게든 노력하면 되겠지? 나 어제 민증 나왔어. 성인이야. 이제 알바도 할 수 있으니까...”
소년은 빠른 년생이다. 주민등록증이 나왔으니 성인이고 이제 정식으로 돈도 벌 수 있는 나이다. 물론 동시에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지만, 그 점에서 소년은 나름대로 의지가 있었다.
“난, 아빠처럼은 안 될 거야. 범죄도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테야”
그 나이쯤 되니 이제 소년도 알고 있었다. 그의 무정하고 난폭한 아버지는, 범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 나락에 떨어졌다는 걸. 충동에 빠져 불법과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도탄에 빠뜨렸다는 걸. 소년은 그의 아들이었지만,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거진 다 차지한 세상에서 빈민가의 자식이 번듯한 일자리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취업이 거의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교육, 특히 대학교육은 사치다. 돈들여 교육을 시켜봤자 노동시장에서 바이오로이드에게 경쟁이 안 되니까. 그래도 여전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뚫을 구멍은 어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년은 그 구멍이 좁아도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길 바랬다. 그러자면, 많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계획하고, 이악물고 나아가야겠지만.
그러나 바로 그랬기에 콘스탄챠의 눈에는 소년이, 그 못 먹어서 작달막한 그 소년이, 커다란 바위보다도 더 크고 굳세어 보였다. 가장 높은 산보다도 더 높아 보였다.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빛나 보였다.
그는 벌써 계획을 다 세워두고 있었다. 조숙하게도.
아아, 어쩌면 이렇게 반듯하게 자라셨을까.
어쩌면 이렇게 올바르게도 자라셨을까.
콘스탄챠에게 있어 소년은 마치 거름덩이 속에서 피어난 장미와도 같았다. 이미 그 거름구덩이 속에서 잔뜩 뒹굴어 지저분하게 변한 그녀는, 그 장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 티없는 깨끗함이, 그 아름다움이 이 더러운 거름구덩이 속에 떄묻고 떨어지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녀 삶의 이유였다.
그가 바로, 그녀가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여기, 이렇게 훌륭하게, 자기 앞길을 헤쳐나가는 소년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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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왜 자꾸 매운맛 스토리만 생각이 나는지... | 21.06.17 1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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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_Rider
| 21.06.17 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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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읽으시는 분들에게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답니다. | 21.06.18 00: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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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죠 ㅋㅋㅋㅋㅋㅋ 이번 이야기는 조금 쓰지만... | 21.06.18 11: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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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추종자
약간 자극적이죠? ㅎㅎ 그래도 잘 읽힌다니 다행입니다. | 21.06.21 17: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