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구덩이 속의 세 B급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16)
2편: 구덩이 속의 네 B급(上)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47)
3편: 구덩이 속의 네 B급(下)(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448)
4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 하나(上)(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559)
5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 하나(下)(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560)
6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하나, 그리고 철충 한 마리(上) (https://bbs.ruliweb.com/game/84992/read/76607)
전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하나, 그리고 철충 한 마리(下)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76608)
----
“달려요, 달려, 418번!”
“명령 안 하셔도 조빠지게 달리고 있슴다!”
“우린 그거 없어요! 그리고 뒤쳐지고 있잖아요!”
“저 몸상태 말이 아닌 거 아시잖슴까!”
“몸은 저도 만신창이거든요!
“제가 아쿠아 들고 있는 것도 감안하셔야 함다!”
“두분, 만담할 시간 있으면 다리에나 더 힘주십시오!”
톰의 희생으로 철충이 부활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대재앙을 일으켰다. 아마 그는 침식되어 가는 급박한 상황에서 힘을 조절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레프리콘은 다시금, 그녀들이 떨어진 이 지하가 연약한 지반을 가졌다는 점을, 아마도 적어도 수십 년을 그런 불안불안한 상태에서 버텨 왔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망할 부실공사, 망할 안전불감증. 하여간 인간님들이 문제다.
톰이 일으킨 충격파는 아마 그 진원지를 중심으로 지하 대피소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했다. 톰이 일으킨 파괴의 진동이 이 어두운 심연 전체를 집어삼키기 전에, 그녀들을 따라잡아 그 파괴의 무저갱의 구렁텅이 속에 잡아 처넣기 전에, 그녀들을 무너지는 어둠 속에 파묻어 영영 잊혀지게 만들기 전에, 그 충격파로부터 도망가야 했다.
그녀들이 떨어진 지하 전체가 우르르릉 울리는 것 같다. 지반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집힌다. 땅이 흔들리고 머리 위의 돌들이 쩍쩍 갈라졌다. 그녀들의 머리 위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돌들이 쏟아져 내렸기에 그녀들은 머리를 감싸쥐고 제발 자신들이 이 통로를 빠져나가기 전에 통로 전체가 무너져내리지 않길 바랬다. 이미 주먹만한 돌멩이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기에, 또한 그녀들은 제발 그녀들 위로는 ‘좀 작은’ 돌멩이들이 떨어지길 바랬다.
“아윽!”
“상병님! 괜찮으심까!”
“어윽, 말할 시간에 달리기나 해요!”
“피 나심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걱정마요!”
레프리콘은 이마를 세게 때려갈긴 돌멩이에 순간 머리가 띵했지만, 피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지만,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프다고 비틀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그녀들이 달려가는 뒤를 따라 무서운 속도로 땅들이 쩌어억 갈라지고 있었다. 세이렌 포격 후폭풍도 부끄럽지 않을 진동이 뒤따랐다. 저기에 먹히면, 따라잡히면 끝장이리라.
톰이 말한 대로 틈새는 체구가 작은 사람이 겨우 한 명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다행히 기본적으로 여성형인 바이오로이드들은 군용임에도 불구하고 체격이 우람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는 좁아서, 그녀들은 거의 바위틈에 낑기는 꼴로 이동해야 했다. 모 부대의 모 대령이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부러웠다. 지하에 야속하리만치 좁게 난 틈새에 낑기고, 긁히고, 스치면서, 바이오로이드들은 샌드걸을 선두로 일렬로 나란히, 필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저 끝에 뭐가 있든, 일단은 이 무너지는 수라장을 탈출해야 했다, 무조건,
“젠장, 중위님! 앞에 뭐 보이심까!”
“아뇨, 아직...계속 나아갑시....?”
“? 중위님?”
이윽고, 저 멀리, 통로의 끝이, 원근법으로 인해 동전 크기만하긴 했지만, 은은하게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이 그렇게나 찾던 것.
빛이다.
빛이다!
빛이다!!!
그녀들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창백하고 어둑어둑한 인공광이 아닌 자연광의 은은한 빛이었다. 저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빛줄기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들의 가슴을 뛰게 하기엔 충분했다. 고작해야 수백 미터 가량 떨어져 있을 저 빛나는 점이 그녀들에게는 천릿길보다도 더 멀게 느껴졌다. 차례차례 무너지는 돌과 쏟아지는 흙에 질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지만, 그녀들의 마음은 단 하나, 하나만을 외쳤다. 지금 이 순간, 그녀들은 가장 광신적인 쿄헤이 교도보다도 더 애타게 빛을 갈구했다.
나아가자. 나아가자, 빛으로, 빛으로.
빛으로.....?
“아이고!”
“418!!”
그러나 세상일은 언제나 맘 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마음은 뭘 해야 할지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고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 게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란 물건이다. 아쿠아를 안고 달리던 브라우니는 - 당연히 무게중심이 위에 있다 - 흔들리는 땅 위에서,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요란한 와당탕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지기에 더없이 완벽한 조건이라, 물리법칙은 기꺼이 그녀를 쩍쩍 금이 가는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지금 상황이 스틸라인의 평범한 급속행군 상황이었으면 - 아, 물론 그것도 스틸라인 장병들에겐 개 같은 상황이긴 하다. 훈련 중독자 마리만 빼고. - 레프리콘은 핀잔을 줬을 것이고 이프리트는 비웃었을 것이며 레드후드는 군기 빠진 브라우니에게 철권을 가하러 왔을 테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상황은 레드후드의 꾸지람조차 감미로운 음악으로 들릴 만큼,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톰이 기둥을 무너뜨린 데서 시작된 진동과 파괴의 충격파는 야속할 만큼 빠르게 그녀들을 따라잡았다. 브라우니는 벌떡 일어나려다 고통에 찬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무릎을 꿇었다.
“젠장, 다리 삔 거 같슴다!!”
레프리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아자젤이시여.
브라우니는 이를 악물고, 나동그라진 아쿠아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아이의 등을 떠밀었다.
”다들! 전 두고 빨리 가십쇼! 아쿠아! 달리십쇼!”
“싫어! 방금 톰을 잃었어. 언니까지 잃기 싫어!”
“이럴 시간 없슴다! 돌 떨어짐다!”
정말로 그녀들의 머리 위로 돌과 흙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전 그녀들의 머리 위로 ‘부슬비’ 같이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폭우’ 같은 것이었다. 수 분 내로 그녀들은 매몰될 것이 분명했다.
극도의 짧은 시간 동안, 샌드걸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갔다. 제길, 난 여기서 어떡해야 하지? 계속 앞만 보고 달려야 하나? 저들을 버려두고? 그래, 그러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샌드걸은 선두에 서 있고 지금 저만치 보이는 통로의 출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지금 그게 가능한 수단도 있다. 지금이라도 온 힘을 다해 달리면 그녀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살고 싶어했던 저 둘을 죽음으로 내몰고서?
합리적으로 너무나 자명한 선택을 앞에 두고 그녀는, 원래대로라면 할 필요도 일 분 일 초가 다급한 상황에 해서도 안 될 고민에 빠져버렸다. 조금 전 지하 시설에서 자신을 후려쳤던 그 한 문장이 다시 그녀를 괴롭혔다.
‘내게, 아쿠아와 브라우니 앞에서, 감히 살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그녀들을 이 어둠 속에 버려두고 홀로 빠져나갈 자격이 있는가?
“아까 전엔 포기 안 한다며요! 일어나요, 418!”
“상병님, 버리고 가십쇼! 저 부축하시면 느려짐다!”
“입닥쳐요, 분대원 버리는 분대장이 세상에 어딨어요?”
브라우니에게 달려가는 레프리콘을 보며 샌드걸의 머리 한 켠에서 조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틸라인 놈, 아니 년들은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바보같으니. 살 년은 살아야지, 왜 저런 자1살행위를 하는가?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 무언지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하는 것인가?
처음 이 구덩이에 떨어졌을 때 그녀 스스로 자신했던 바대로, 샌드걸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는 짐짓 근엄한 조롱을 가했다. 멍청이들. 그깟 전우애 때문에 저런 짓을 하는 건가? 아니면 그 뇌 안에 내장된 같잖은 동료의식 모듈 때문에? 동료와의 우정이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도 될 만큼 중요하단 말인가? 한심하기는. 자신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뭔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머릿속의, 스스로를 합리성이자 잘난 판단력이라 자처하던 조롱의 목소리를 후려친 거 같다.
만약 우리 시스터 오브 발할라 자매들이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나는....
....똑같이 바보짓을 하겠지, 저 레프리콘처럼.
비록 그녀들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아니었지만, 샌드걸은 바보짓을 하기로 했다. 샌드걸은 브라우니를 부축하며 낑낑대며 걸음을 내딛는 레프리콘과 아쿠아에게로 달려갔다.
“중위님??”
“꽉 잡으십시오”
“네? 잡으라뇨?”
“시끄러우니까 잡아요, 빨리! 나도 이게 될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늘 냉정한 샌드걸답지 않게 격앙된 빽 소리를 지르자 세 바이오로이드는 황망한 표정으로 그녀의 추진기를 붙잡았다. 이제는 아예 눈앞의 시야를 다 가릴 정도로 쏟아지는 흙모래 밑에서 샌드걸은 기도하며 레버를 잡아당겼다. 비행장치의 두 추진기 중 그나마 수리된 쪽의 추진기가 불을 뿜었다.
둥실, 그러나 엄청나게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며, 비행장치가 떠올랐다. 나아가라, 나아가, 제발! 샌드걸은 기도하며 비행장치를 작동했다.
“중위님, 이거, 무어어어어어----------”
굉음을 울리며 비행장치가 앞으로 질주했다. 부스터가 하나뿐인 비행장치는, 공중으로 ‘솟아오르지는’ 못해도, 다행히 네 바이오로이드를 끌고 수평 가속 정도를 할 출력은 나왔다. 샌드걸은 돌아가면 먼저 그렘린에게 키스부터 할 거라고 맹세했다. 살아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날개 한 쪽에서만 작동하는 부스터에 다닥다닥 매달린 네 바이오로이드까지 감당하자니 도저히 방향과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쪽 벽에 긁히고 저 쪽 바닥에 구르며 좌충우돌 앞으로 나아갔다.
부우우우웅! 쾅!
“악!”
“윽!”
“야호!”
“으앙! 무서워!”
“아갸갸갹!”
“저기! 벽이 다가오는데요!”
“다가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리로 치우치는 겁니다. 다리 좀 치워봐요!”
엉덩이가 뜨거워진 레프리콘은 고개를 돌려보곤 부스터의 열기에 자기 전투복 사타구니가 타오르는 걸 보고 경악하며 다리를 들어올렸고, 그건 억지로 조향타를 붙잡은 샌드걸에게 또다른 부담이 되었다. 생각 없는 브라우니는 이 만취한 음주운전 같은 곡예비행이 즐거운지 환호를 질렀고, 아쿠아는 그저 눈이 뱅글뱅글했다. 그 난장판 속에서 샌드걸은 초조하게 앞만 바라보았다. 좋지 않다. 부스터가 하나밖에 없는 비행장치에 넷이나 올라타 있으니 추진력이 붙질 않는다.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그러니까 방향조절이 되는 거지만, 제발, 그 전에 여길 빠져나갈 수 있기를...
머리 위로 후두두둑 쏟아지는 돌과 모래 사이로 눈앞에 비치는 광휘가 점점 커져갔다. 처음에 점이었던 빛나는 틈새가 점점 커져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샌드걸은 연료계가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을 보며 추진기의 기어를 더 올렸다.
마침내, 떨어지는 흙과 돌멩이와 자갈을 헤치고 눈부신 빛이 그녀들을 감싸 왔다.
“됐다! 빠져나왔....”
우르르릉, 소리와 함께 일어난 최후의 지하 산사태가 그녀들을 덮쳤다. 그것은, 절대로 그녀들을 놔주지 않겠다는 대자연의 심술은, 그녀들의 머리 위로 무차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리는 막대한 양의 토사와 함께 그녀들을 그대로 파묻어 버렸다.
....그리고 침묵만이 남았다.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76676>
----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도 이제 종막입니다. 10편 미리 써 놓은 거 하루 텀으로 둘씩 올리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리는군요.
(IP보기클릭)211.201.***.***
(IP보기클릭)1.235.***.***
이번엔 제가 음악선정을 잘한 모양이군요 | 20.10.20 10:59 | |
(IP보기클릭)58.227.***.***
(IP보기클릭)1.235.***.***
한둘쯤 SALHAE하는것도 좋지않을까 했습니다만... | 20.10.20 11: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