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잘 찍는 건 아니지만, 늘 특별한 사진에 굶주려 여행하고 있는 유저입니다. 올해의 절반이 다 가기 전에 기억나는 여행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올려보네요.
여행 게시글은 처음이라 다소 이상할 수 있지만 좋게 봐주시길.
첫번째 여행은 벚꽃이 가져다 준 여행.
벚꽃 사진, 그것도 잇폰사쿠라(一本桜) 사진이 찍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고치현의 효탄자쿠라(ひょうたん桜)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효탄자쿠라와 함께 묶어서 볼 장소가 뭐가 있을까, 책을 뒤져보다가 강제 동원지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걸 확인하고, 지역 관광 협회에 문의를 넣었죠.
관광협회에서는 제가 이 기사를 보고서 문의한 걸로 착각했는지 이 기사를 PDF로 보내주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대략 고치현에도 과거 조선인 강제 노동의 흔적이 다수 남아있다는 것.
그 중에서도 저 표식이 있는 장소를 알기 위해 신문사에 문의를 넣어봤지만, 도중에 산으로 들어가야되서 혼자서는 무리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현지에 닿으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카와 역(佐川駅)에 도착.
신문에 있는 단체 사진의 배경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사진에 설명이 안 붙어있어서 확실하진 않습니다. 애초에 일본어를 잘하는 거도 아니라서...
사카와 역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 거기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효탄자쿠라(ひょうたん桜),
꽃봉오리가 표주박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수령은 50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분명 일기예보는 맑다고 했었는데, 워낙 산중이다보니 일기예보 미스...
소나기에, 우박에 정신없이 두드려 맞다가 2시간도 못 버티고 하산했습니다.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난 관계로 표식을 찾으러...
도착한 곳은 니요도가와초(仁淀川町)의 야스이 계곡(安居渓谷) 일대.
이 근처에 있던 야스이 도잔(安居銅山)이란 구리 광산에서 한때 많은 조선인들이 일했다고 합니다.
4, 5시간을 걷고 또 걸었지만 표식다운 것은 보이지 않았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계곡 아래의 호라이소(宝来荘)라는 민박집에 들러 식사 겸 정보 수집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민박집에 모여있던 마을 사람들도 15년 전쯤 공공기관측에서 제사를 지냈었다는 것만 알고,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상황.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고, 찾을 기미가 안 보이자 철수하려는 찰나,
민박집 사장님께서 기사를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기사의 인터뷰한 사람을 알고 있다며 안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민박집 사장님의 안내로 인터뷰한 분을 만나뵌 뒤, 드디어 그 장소로 향했습니다.
(저야 장소를 들어도 못 찾을 게 뻔하기에 사장님이 동행해주셨습니다.)
물 저장소 아래에 이어진 산길, 한참을 찾았지만 나타날 기미는 안 보였고,
설마 장소를 잘못 찾은 건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는데...
물 저장소로 다시 올라가던 중, 낡은 나무토막이 물에 젖은 채 내팽개쳐져 있는 것을 발견.
어! 이거 아니에요? 먼저 올라가있는 사장님도 그 소리를 듣자 헐레벌떡 내려왔죠.
발견했다는 기쁨도 잠시, 벌초된 나무들과 함께 뽑혀 널부러져 있는 모습에 씁쓸함이...
다시 세워놓고 싶었지만 해는 저물고 있었고, 사장님께서 서두르지 않으면 돌아갈 버스를 놓친다고 하셔서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번외,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사카와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에 역 내에 있던 관광 정보를 보다가 발견한 그 사람.
어디서 본 듯도 한데... 했더니만 죠타로의 성우로 유명한 오노 다이스케, 여기 출신이었나보네요.
두번째 여행은 4년만의 의기투합.
여행의 목표는 히로시마현의 세라 고원 농장(世羅高原農場)의 튤립...인 듯 했으나,
골든위크 + 연호 변경으로 인한 파워 연휴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2시간만에 볼 장 다 봤습니다.
그러던 중에 히로시마현의 코보 댐(高暮ダム)에서 발굴된 조선인들의 유골을 보관했었던 스님과 연락이 닿았고,
4년만에 다시 코보 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과는 4년 전에도 연락을 드려 코보 댐을 안내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유골 발굴 조사에 참여한 츠카모토씨와 이 지역에 이주 한 지 3개월차로, 퉁소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마후지씨도 함께 했습니다.
코보 댐에 가기 전에 들렀던 후루사토무라 코보(ふるさと村高暮).
폐 소학교를 개축한 숙박 연수 시설로, 평상시에는 개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 분께 미리 전화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화가 잘 안 터지는 지역이라는 게... 결국 견학은 순전히 운;;
이곳에는 1942년 무렵의 코보 댐 사진과 함께, 당시 코보 댐에 강제 동원된 뒤 도망치는데 성공한 분이 쓰신 서적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 외 자료도 있었다고 하는데, 관리가 어려워 정리한 모양...
조리실에는 네가 있는 마을(君のいる町) 포스터와 싸인이.
나중에 정보 찾아보니까 2013년 작품이네요? 나온지 얼마 안 된 작품인줄 알았는데...
골든위크가 막 끝난 참이라 가게는 대부분 쉬었고, 허기진 배로 겨우겨우 코보 댐에 도착.
작년 폭우로 인해 가는 길목 곳곳이 붕괴되어 정면 사진조차도 담지 못했습니다.
코보 댐은 1940년 착공하여 조선인 2,000명 이상이 강제 동원되었고,
당시를 회고하는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덮개를 씌운 트럭 한 대에 30 ~ 40명을 태우고 매일 같이 실려왔다고 합니다.
제방 아래에는 수많은 인골이 발굴되지 못한 채 가라앉아 있어, 인골 댐(人骨ダム) 혹은 백골 댐(白骨ダム)으로도 부른다고 하네요.
츠카모토씨가 알려주신 유골 발굴 장소는 댐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보이는 이 경관의 중심, 전봇대가 이쑤시개 크기로 보이는 지점.
댐 근처에 세워져 있는 위령비 앞에서 간단한 추도법회를 가졌습니다.
4년만에 다시 만난 스님과 새로 알게된 분들, 그리고 코보 댐에 다시 찾을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번외, 아침 안개의 무녀-
세라 고원 농장과 코보 댐 일정 동안에는 아침 안개의 무녀(朝霧の巫女)의 작가, 우가키씨의 아내 분이 운영하는 만차보(万茶房)에 묵었습니다.
마감일이 얼마 안 남은 시기에다가, 마을 행사까지 겹쳐 바쁘신 와중에도 잘 챙겨주셔서 감사를 전하고 싶네요.
마지막 여행은 탐험.
두번째 여행과 같은 5월, 하다하다 에히메현까지 흘러갔습니다.
에히메현에 일본의 마추픽추라고 홍보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 어딘가에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위령제를 지냈다는 것.
그 정보를 보고 호기롭게 찾은 것까진 좋았는데, 첫번째 장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광범위라...
일본의 마추픽추라고 홍보되고 있는 곳은 벳시 동광(別子銅山)으로,1690년에 발견되어 그 이듬해부터 1973년까지 운영되었고,
강제 동원의 핵심 기업 중 하나인 스미토모(住友)가 일본을 대표하는 거대 재벌 기업이 되는데에 기여한 구리 광산이라고 합니다.
주말 아침부터 산에는 동광 노동자들이 구리를 옮기는 작업을 체험해보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시끌벅적했습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동광 유적들. 행사를 진행하는 분들도 무덤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동광 유적에서 내려와 동광 테마 파크인 마인토피아(マイントピア)에도 가봤지만 헛수고...
광산 열차의 나레이션이 미즈키 나나라는 것만 알았네요.
출신지가 이곳이라 관광 홍보도 하고, 금단의 레지스탕스 pv 촬영도 했다는 듯.
아무튼 그렇게 하루 왠종일 돌아다니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도 지인을 통해 위령제를 지냈던 에히메현의 조선 학교쪽에 연락해보았지만,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히로시마현에서 조선인 강제 동원에 관한 조사를 하고 계시는 마사키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본인도 벳시 동광에 관심이 있는데 무덤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리하여 굽이굽이 꺾여들어가는 코스 길을 헤치고, 기어이 찾아낸 그 장소.
벳시 동광 관광지 에어리어에서도 차로 4, 5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이걸 어찌 찾았누.
우리는 묵념한 뒤, 발견했다는 기쁨에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숙소 돌아갈 때까지 5시간 동안 비몽사몽...
올려보고픈 곳은 많고 많지만, 올해는 이 세 곳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취직 준비만 아니였어도 더 많은 사진, 더 많은 장소를 찾을 수 있었을텐데...
올해 남은 시간은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네요.
ps. 다음 글은 올해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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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처음으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19.06.23 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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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여행의 방식이 다르고, 그 방식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야말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9.06.23 12: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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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9.06.23 15: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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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말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9.06.23 16: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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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워낙 정보가 적어서 강제 동원에 대해 조사하는 일본 분을 통해서 연락해 봤었는데, 무덤에 관해서는 듣질 못했어요;; | 19.06.23 18: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