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소여행기'랍시고 몇 편에 걸쳐 여행기를 적었던 적이 있었더랬죠, 그 때는 일본 북동부를 거쳐 관서를 잠깐 다녀오는 그런 루트였었구요.
그리고 그 해 말에는 가족들과 페루를 다녀오는 여행기도 길게 적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음 여행기는 '매년 다녀오는 일본 자유여행기가 다시 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끝맺음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 2년.
뭔가 일은 해야겠고, 어찌어찌 변변찮지만 자리를 구해서 열심히 삶에 치여 살다보니 병가 빼곤 휴가를 한 번도 못 얻었었습니다.
도저히 짬내서 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보니 그랬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주말이지만 아주 마음 편히 쉴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쉬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일터 사장님께 말씀드려 신년이 되자마자 휴가를 받아냈습니다.
제 지난 여행기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한번 여행을 떠나면 일정이 꽤 깁니다. 휴가도 그 만큼 받아냈습니다.
그래서 제 일은 일터에 남은 나머지 직원들이 다들 분담해서 해줬고, '내 이번 월급 니들이 다 나눠서 가져가라' 하는 조건(?)도 붙여서 어찌어찌 딜을 성사시켰습니다.
#0. 출발 전
예전 같았으면 오락실에 게임하러 가는 목적으로 아예 일정을 안 잡거나, 지방 소여행 일정을 위해서 일정을 몇 달 전부터 아주 빡세게 계획하다시피 했는데...
이번엔 일하는 와중에 겨우 휴가를 성사시킨 모양새가 돼서, 일정을 아주 안 잡기도 아쉽고, 그렇다고 일정을 촘촘히 짜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애시당초 휴가를 컨펌 받자마자 든 생각이 '그래서 어딜 가지?'였으니까요.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2년 전을 생각합니다. 그 때는 분명히 JR 패스를 끊어서 신칸센을 타고 북해도를 갔다가 관서로 넘어가서 산을 타고 어쩌고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운 좋게 오른쪽에 간 적 있었던, 해당 일정 2일차 링크)
'그럼 이제 안 가본 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더라구요. 직감대로 대충 계획을 짜봤습니다.
예전에는 HQ(???)를 잡고 소여행을 시작했다면, 이번엔 소여행을 마치고 HQ가 될 곳으로 넘어가는 일정을 짰습니다. 순전히 시간과 예산을 절감하려는 목적으로 말이죠.
마침 여행을 계획하던 때가 연초였고, 어째 비행기값이 좀 아쉽다... 싶은 때에 LCC 쪽에서 할인 행사를 대거 터뜨려준 덕분에 비용을 꽤 절감했습니다. 운이 좋았죠.
이번 여행에서 계획했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전에 일본 동부는 발을 붙여본 적이 있다. 한번도 안 가본 서부를 가보자.
2. 비용은 되도록 아껴서, 휴가를 다녀온 뒤에도 여유있는 생활을 도모하자.
3. 어차피 휴가고 노는 시간이다. 없는 체력도 나오기 마련이니 조금 무리한 일정도 끼워보자, 그 때 가서 안 되면 포기하고.
1번에 맞춰서 비행기를 예약하려는데, 당시에 조금 욕심을 부려서 '기왕 가는 거 한번 꺾어(?)보자'는 심산에 행선지를 돌렸습니다.
오키나와는 아닙니다. 그 쪽으로 가게 되면 일본 열도 본토로 넘어가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무시 못 할 수준이 됩니다. 물론 JAL Explorer Pass 같은 게 있지만, LCC를 이용했다보니 이건 패스.
이동 수단도 있어야 하니 JR 쪽으로 패스를 알아보고 눈에 띄는 걸로 지르기도 질렀고...
하지만 일본 서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JR 패스를 먼저 지르고, 그걸로 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루트를 정하는... 참 특이한 방식을 택하게 됐습니다.
어찌어찌 대강 틀은 짠 것 같고, 그 뒤로도 일을 계속하다보니 어찌어찌 얻어놓은 휴가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다 끝내고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여러분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시건 간에 위에 써놓은 계획 중에서 3번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1. 지방 여행 1일차 (3월 19일)
들뜬 마음에 한 일주일 전부터 짐을 미리 싸두긴 했었는데, 막상 휴가가 오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다보니 휴가 직전일이 돼서는 '미리 캐리어에 짐 좀 담아두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더라구요.
일단 떠납니다. 이른 비행기라,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서 공항 리무진 첫 차 아니면 그 다음 차를 타야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일 새벽의 공항 버스는 참 빠릅니다. 아-주 넉넉하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발권은 미리 핸드폰으로 해뒀고, 수하물을 애시당초 안 주는 티켓이었던데다 공항 검색대에서 문제 될 만한 사항을 모두 정리한 채로 당당하게 출국심사를 빠르게 끝냈다보니 오히려 시간이 남아서 기다리는 동안 졸았습니다.
환전 문제가 살짝 꼬여서 핸드폰으로 환전 신청하고는 공항 환전소 열리는 걸 기다려야 하나 어쩌나 했었는데, ATM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알곤 해봤더니 신박하더라구요. 새삼 세상 편해졌구나, 싶었습니다.
출발합시다. 확실히 얘네들이 광고하는 대로 자리가 앞뒤로 넓어서 편하긴 하더라구요, 어차피 고도 영향으로 다리에 피 쏠리는 건 똑같지만.
웰컴 투 쿠마모토.
쿠마모토를 첫 기점으로 잡은 이유가, 일단 큐슈에 발을 들여보고 싶었습니다. 근데 이럴 거면 후쿠오카에서 시작해도 될텐데 왜 쿠마모토였냐면...
예전에 드라마 '징비록'을 방영할 당시에 가토 기요마사를 맡았던 배우 분이 배역을 받고는 쿠마모토성으로 가서 '가토라는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지?'하는 걸 알아봤다고 하는 일화가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히고 오오즈(肥後大津) 역까지 무료로 데려다 주는 공항 라이너 택시를 탑니다. 내부가 나름 편안하게 개조된 봉고차입니다. 20-30분에 한 대씩 다닌다고 보시면 됩니다.
9인까지 탈 수 있고, 정원을 넘기면 아예 안 태웁니다. 공항에서 히고 오오즈 역까진 30분 정도, 길게는 40분 정도 걸립니다.
쿠마모토 지진으로 히고 오오즈 역 바로 앞에서 산사태로 철로가 끊겨버리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참 다행스럽게도 여기서 쿠마모토 시내 방향으로 가는 철로는 무사합니다.
히고 오오즈 역에서 쿠마모토 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는, 대부분 이런 2량짜리 원맨 열차입니다. 근데 말이 원맨이지, 타는 사람들이 좀 돼서 객차 양끝으로 승무원이 한 명씩 총 두 명이 배치되어있습니다.
신칸센이 닿는 쿠마모토 역까진 410엔 정도가 들지만, 그 전에 내릴 예정입니다.
일단 JR선과 쿠마모토 트램이 만나는 가장 빠른 지점인 '신스이젠지 공원앞 (JR신스이젠지)'으로 갑니다. 이 날 하루 종일 쿠마모토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이라, 가져 온 캐리어는 일단 적절한 곳에 보관합니다.
저는 다음 일정을 고려해서 특정 장소에 보관했습니다.
트램을 타고 계속 돌아다닐 거라서 1일 승차권을 끊었습니다. 쿠마모토성 셔틀 버스(시로메구린)나 시내 일부 노선버스도 탈 수 있는 '와쿠와쿠 1일 패스(900엔)'가 편하긴 한데, 일정상 여유롭게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트램용으로만 끊었습니다.
이걸로 일단 스이젠지 조주엔(水前寺成趣園)으로 갑니다. 창구에 1일 승차권을 보여주면 단체 입장료로 깎아줍니다.
조주엔은 이런 곳입니다. 잘 가꿔놓은 정원인데, 순수하게 '정원'으로 가꿔진 터전이라기보단 권력자의 소유욕을 뽐내고 싶은 축약적인 배치로 이뤄진 한정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원래 '지도'라는 것이 권력자가 한 눈에 영지, 혹은 주변을 원활하게 보고 자신의 손 아래에 있다는 걸 자각하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거라는 설도 있잖아요.
이런 정원은 그 '지도'를 공간으로 옮긴 표현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옛날 옛적에 공부하라고 만든 공간도 아닌데 한자로 읽으면 '성취원'이잖아요.
인공 호수를 중심으로 정원이 펼쳐져있습니다. 조주엔 내에는 신사(神社)도 두 곳 있습니다.
그 옛날 조주엔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동상입니다.
계속 수목이 펼쳐집니다. 제가 막 도착했을 때는 아직 봄 느낌은 찾아보기 힘든 추운 날씨였어서, 벚꽃 찾긴 어렵습니다.
무슨 경주 왕릉들 같이 생긴 작은 언덕이 늘어서있는데, 규모가 훨씬 작기도 하지만 그냥 흙을 쌓은 언덕입니다.
정겹네요. 이런 벤치는 예전에 약방이나 버스 정류장 앞에 하나둘 씩 있었는데... 게다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후지칼라 로고까지.
아그파, 코닥과 함께 세계 영사 시장을 나눠먹다시피 한 회사였지만, 세상은 이 회사들이 따라가기엔 너무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계속 움직입시다. 대낮인데도 구름 낀 날씨에 추워서 그런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벚꽃이 피려는 흔적 정도는 보이는데, 이런 날씨면 만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가끔씩 노악 공연이 있는 조주엔 노악전입니다.
슬슬 나갑시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쿠마모토에 도착해서도 변변찮게 뭐 하나 집어먹은 것 없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해가 중천이니 점심을 먹으러 갑시다.
쿠마모토는 말고기, 특히 말육회(馬刺し)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가 말고기로 유명하죠. 쿠마모토시 교통국 주변에 적당한 가격으로 말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대서 찾아갔습니다.
런치 코스 중간(特上 코스), 2,300엔. 이 윗 단계인 극상(極上) 코스가 3,500엔, 이 아래인 상(上) 코스가 1,200엔입니다.
말육회는 처음 먹어봤는데, 씹는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집에서는 말고기를 먹지 말라고 권했지만, 그래도 왠지 먹어봐야 할 것 같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지 말라는 이유가 위생적인 이유다보니 구충약도 잘 챙겨먹었습니다.
이제 쿠마모토성을 보러 갑시다. 정말로 공구리를 쳤을까요?
지진 때문에 성벽 대부분이 개보수 대상이 됐습니다. 중간에 보이시는 것처럼, 개보수 수준이 아니라 아예 폭삭 주저앉은 곳도 많습니다.
본성(本丸) 역시 지진으로 꽤 큰 피해를 입었다보니 직접 보러 갈 순 없고, 성곽을 돌아서 경치를 구경하는 코스로만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장료는 받지 않고 있지만, 올해 9월부터인가 뭔가 큰 전시회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충 보기로는 본성 보수 공사 이후 뭔가 첫 공개가 있을 거라고 하는데, 그 때는 보수공사를 위한 기금 마련을 겸해 특별 입장권이 필요하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상점 구역에서 단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작은 공연이 진행중이었는데... 아아니, 넌!!!
아까 무너진 성벽 쪽은 해자 부근 외성이었고, 내성 성루를 봐도 이렇게 꽤 무너져있습니다.
멀리 본성이 보입니다. 왠지 공구리를 친 듯한 찐한 느낌이 오긴 하는데, 공구리가 아니더라도 규모가 크면 타워크레인 정도는 쓸 수 있잖아요? 그렇죠? (...)
중간에 박힌 철심을 보고는, 이X야샤나 괴담 만화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뼈 박은 나무인 줄 알았더랩니다.
일단 산책 코스에 있는 가토 신사로 갑시다. 가토 신사를 거치면 바로 성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코스가 나온댑니다.
가토 신사에서는 본성이 잘 보입니...
이 새X들이 진짜로 공구리를 치네?
우리나라 문화재청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다면 대체 무슨 소감을 말했을까, 싶은 생각이 괜히 들었습니다.
아무리 지진 후 복구라서 내진 공사를 겸한다고 해도 공구리라니... 문화재에 콘크리트라니. 쉽게 이해하긴 힘들었습니다.
왠 양복 빼입은 늙은 아재들이 단체로 찾아와서는 신사 본당에 참배하는 걸 보고는 자리를 뜹니다.
문화재 공구리 현장을 두 눈으로 보니 충격이 좀 큽니다.
가토 신사 옆으로 돌아서 나가면, 성곽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급경사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잘 내려오면 이런 길이 나옵니다.
오른쪽에 쿠마모토 호텔이고, 바로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옆으론... 쿠마모토 가정재판소(가정법원, 사진에 보이는 흰색 건물)가 있습니다.
왠지 호텔에서 누군가가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중재결과를 들으려고 팝콘을 씹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단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쪽 벽은 이끼 푸른 상태로 비교적 지진에도 잘 살아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개보수 대상입니다.
원래 이 쪽으로도 올라가는 길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진에 보이시는 것처럼 상태가 꽤 심각해서 입구를 봉쇄해놨습니다.
천수각 복원을 위한 부자재 적치장으로 쓰고 있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근데 나중에 다른 성에 가는 일정을 적을 때도 할 얘기지만, 이러고 복원 안 하고 여기 놔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 언덕길을 내려와서 쭉 걸어나가면...
쿠마모토시의 번화가, 도리초스지(通町筋)가 나옵니다.
이 사진 기준으로 앞으로 쭉 가면 도리초스지, 오른쪽으로 가면 쿠마모토역, 쿠마모토성 입구, 쿠마모토시 청사가 있습니다.
잠시 도리초스지 번화가에서 오락실을 찾아 어슬렁거리다가, 뭔가 아쉬워서 발길을 돌립니다.
쿠마모토시 청사(우리나라로 따지면 자치구청급) 입니다. 여기 꼭대기층에 쿠마모토시 일대와 쿠마모토성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마침 쿠마모토시 행정조직 자체가 내부로부터 강한 개혁 요구를 받고 있었고, 전망대 층으로 올라가면 그 층을 반으로 뚝 쪼개서 개혁추진위 사무실을 설치하고 있었던 탓에 청사 내부는 외부인을 매우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이 때문에 전망대도 온전히 다 둘러볼 수는 없습니다.
근데 이 때 제 가방에는 참 특이하게도 PRESS라는 와펜이 붙어있었더랩니다. 그냥 워너비... 정도로 붙여놓은 마크였을 뿐인데. 이 때문에 시청 사람들이 저를 엄청 경계했습니다. -_-;;;
전망대 층으로 올라갑시다. 쿠마모토시 일대가 한 눈에 보입니다.
이 때도 제 머리에선 공구리의 충격이 여전했습니다.
쿠마모토 일정으로 잡은 곳은 모두 둘러본 것 같고, 슬슬 여행 첫 날의 피로도 몰려오는 탓에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갑니다.
근데 뭔가 안 먹고 여길 뜨자니 좀 아쉬워서...
'쿠마모토 라멘'을 명물로 홍보하고 있길래 일단 뭔지 먹으러 갑니다. 도리초스지 번화가 뒤로 돌아가면 있는 '라멘 아카구미' 입니다.
제가 돈코츠 라멘을 잘 못 먹는 편인데, 이 동네에서는 돈코츠 육수를 조금 덜 넣고 나머지를 특산품 중 하나인 바유(馬油, 말기름)로 채워서 '원기 회복과 미용에 좋습니다!'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돈코츠를 못 먹는 제게는 반가운 일이긴 한데... 바유 자체도 호불호가 갈리죠. 그래도 이 때는 잘 먹었습니다. 한 그릇에 500엔.
힘들어 죽겠으니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갑시다.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인데, 이 때 버스를 찍는다는 걸 급히 타느라 못 찍었습니다.
도리초스지 PARCO 건너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20분 간격으로 오는 시외버스를 잡아탑니다.
아침에 미리 PARCO 지하에 있는 코인락커에 캐리어를 보관해둬서 번거롭게 멀리 찾으러 가진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하기 전에 도리초스지 지역 코인락커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찾아두길 잘 했었네요.
버스 안에는 110V 플러그가 자리마다 있어서, 핸드폰을 빠르게 충전하는데 요긴하게 썼습니다.
탑승해서는 운전기사 바로 뒤에 앉았는데, 피곤하다고 계속 곯아 떨어져서 운전기사가 아마 낭패를 봤을 겁니다. 분명 제가 코를 많이 골았겠죠.
아, 여기서 타는 버스는 직통 버스가 있고 일반 버스가 있습니다.
둘 다 가격은 같고, 시간도 15분 정도 밖에 차이가 안 나긴 하지만 신경 쓰이시는 분들은 탑승하실 때 탑승구 부근에 적힌 루트를 잘 보세요.
다음 일정을 소화할 곳으로 왔습니다. 버스로 2시간 30분 걸려서 도착한 후쿠오카 입니다.
일단 여기서 미리 예약한 숙소로 가서 잠을 청하는 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도미토리형 숙소라고 해도 그렇지 시설이 너무 부족해서 새벽 내내 제대로 잠도 못 자고 힘들었었네요.
그래도 몸 피곤한 건 어느 정도 풀어야 하니 미리 챙겨간 휴족X간 같은 걸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2. 지방 여행 2일차 (3월 20일)
날이 밝았습니다. 숙소가 불편해서 잠도 오래 못 자겠고, 일찍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바깥이 아직 거뭇거뭇할 때 움직입니다.
아침은 메일로 도착한 할인쿠폰을 써서 규동집에서 대충 때웁니다.
일단은 JR 계통 역을 찾아가야 하니, 전날 미리 구매한 후쿠오카 투어리스트 패스를 사용해서 하카타로 이동합시다.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로 넘어오셨다면, 텐진역 기준으론 버스를 내리자마자 볼 수 있는 관광 안내 창구에서도 투어리스트 패스를 살 수 있습니다.
하카타 역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하루 동안 돌아다닐 예정이니 코인락커를 찾아서 짐을 짱박아둡시다.
이거 받으러 왔습니다. 앞으로 닷새 동안 요긴하게 쓸 JR 세토우치 패스입니다.
근데 이거 받고 발권 좀 하고 어쩌고 하려고 일부러 이른 시간대에 왔는데, 역무원이 '이걸로는 전혀 뭘 발권하실 필요 없이 그냥 개찰구에 보여주고 타시면 됩니다'라고 합니다.
지정석 없이 자유석 전용 패스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승차권 같은 건 많이 남기고 싶었던 저로서는 좀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나저나 '이게 있는데 왜 후쿠오카 투어리스트 패스를 따로 샀나' 싶은 생각이 드신다면... 적용 구간이 다릅니다. JR 세토우치 패스로는 후쿠오카에선 신칸센 밖에 못 탑니다.
날이 좀 궂어서, 해가 좀 덜 뜬 것처럼 보이는 하카타 역 전경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때 다른 데로 이동해서 뭘 좀 구경하려고 했는데, 아침이라 너무 피곤해서 멍때린 것도 있었지만... 가려고 했던 곳이 09시에 문을 연대서 그냥 주변을 계속 방황했습니다. 시간 계산을 잘못 한 거죠.
피곤하니 밥이나 한 끼 더 먹읍시다. 하카타 역 지하 푸드코드에서 파는 하카타 우동 아침 세트입니다. 얼마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러고 식곤증 때문에 상태가 더 안 좋아졌습니다.
하카타 역에서는 이런 명판도 볼 수 있습니다. 등킨 도나쓰... 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미리 예약을 잡아 둔 견학 코스가 있어서 찾아갑니다. 아사히맥주 하카타공장입니다. 하카타 역 부근에 있진 않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찾아가서 예약 확인을 마치고 나서는 대합실에서 계속 졸았습니다. 마침 한국어 견학 코스였고, 대합실에 한국인들도 많아서... 많이들 쳐다보더라구요. 쩝.
시음용 맥주는 조금만 마셨습니다. 세 잔 까지 마실 수 있지만, 그 당시 몸 상태로는 가득 채워 세 잔을 다 마셨다간 그대로 뻗을 수도 있었으니...
주류 공장 견학은 여러 군데(에비스, 삿포로, 닛카, 산토리 야마자키 등)를 가봤습니다만, 여기 견학 코스가 가장 짧습니다. 그 만큼 설명도 적습니다.
아마 단체로 오는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음, 설명은 이 쯤 하면 됐구요. 마시세요.' 이렇게 가는 모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 견학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일단은 하카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아침에 못 갔던 곳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옛날에 차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했다던 장소인 라쿠스이엔(楽水園) 입니다. 후쿠오카 투어리스트 패스를 지참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쿠스이엔 자체는 아담한 정원이지만, 햇볕도 적절했고 나름 작지만 시원한 물이 흐르는 폭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느낌이 어우러져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이 곳 벤치에 앉아서 15분 정도를 졸았습니다. '나 지금 피곤한데다 아까 맥주도 마시고 와서 힘들어'라고 징징거려도 말 없이 받아주는 듯한, 정말 쉬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잘 쉬었으니 나갑시다.
이후의 스케쥴을 생각해보니, 가려고 마음먹은 곳이 모두 거리가 좀 되는 곳들이라 어딜 먼저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조금 더 오가기 힘든 곳을 먼저 가기로 합니다.
버스로 갈 곳을 먼저 갑니다. 만약 저녁에 출퇴근 시간에 걸려 막히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하카타 역 기준으로 시내버스로 30-40분 정도를 달리면 나오는, 후쿠오카 타워입니다. 원래는 해 떨어지고 야경을 보러 오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갈 때는 오래 걸리더니, 돌아올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후쿠오카 투어리스트 패스를 보여주면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JR 세토우치 패스를 보여주면 기념엽서를 선물로 줍니다.
굳이 세토우치 패스 뿐만 아니라 이 동네에서 쓸 수 있는 JR 계열 패스면 모두 엽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올라갑시다.
올라오면 후쿠오카의 다른 주요 관광지들이 보이는 방향에서 스탬프를 찍을 수 있습니다. 여섯 개를 모두 찍으면, 두 층 아래에 있는 전망대 식당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안 갔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타워에서는 이런 걸 많이 합니다. 여행 중 갔던 다른 타워에서도 이런 걸 많이 하덥니다.
근데 이러면 뭐 하나요... 2년, 길게는 3년에 한 번씩 임의로 철거합니다. 철거 공지는 타워 내부, 그리고 타워 홈페이지에 올라가는데 '와서 직접 열쇠로 풀고 가져가세요'라고 일자를 명기해두고, 안 가져가면 폐기 처분합니다.
타워를 계속 운영하려면 주기적으로 철거하는 게 응당 맞긴 한데, '사랑의 징표'로 '영원히 변치 말자'며 걸어둔 자물쇠를 '니들이 와서 직접 쪼개시구요, 안 가져가면 부숴버린다'라고 하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이런 걸 볼 수 있지만 볼 때마다 참 잔인(?)합니다. 물론 전 옆구리에 아무도 없으니 쪼개지거나 말거나 팝콘이나 씹겠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한 지역의 경치를 둘러보는 데는 전망대 만한 곳이 없죠.
슬슬 다른 데로 갑시다.
타워 앞. 왜 사자에상 이름이 붙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해안지역에서 벗어납시다.
다자이후를 둘러보러 갈 겁니다. 기왕 온 거 많이 보자... 도 목적에 들어있었으니까요.
아침 일찍 텐진에서 출발하는 열차, 혹은 운이 좋아서 후츠카이치에서 탈 수 있는 객차인 '타비토(旅人)'를 탑승하면, 열차 안에서 무료로 기념 엽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열차 래핑이 아예 다르게 되어있으니 가능하면 얻어보세요. 저는 보시는 바와 같이 일반 객차라서 못 얻었습니다.
후쿠오카를 둘러보는 많은 분들이, 이름과 한자까지 같다는 이유로 이 '타비토' 기념열차와 '타비토' 특급여객버스를 헷갈려서 왜 돈을 따로 내야 하냐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거 방지하려고 투어리스트 패스, 혹은 후쿠오카 1일 그린패스를 살 때 따로 안내 종이를 줍니다.
두 패스가 각각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다르니 헷갈리지 맙시다. 다자이후를 오가는 기준으로 투어리스트 패스는 니시테츠 열차, 그린패스는 특급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니시테츠 열차를 이용하는 쪽이 좀 더 빠릅니다.
사실 다자이후를 둘러보러 온 게 다자이후 자체 때문이라기보단... 다른 거 때문이었습니다.
다자이후를 보러 들어갑시다. 주 건물인 텐만구(天満宮)를 빼곤 대부분 별도 티켓이 필요한 곳들이니, 텐만구를 보러 갑시다.
쓰다듬으면 복이 온다는 소 조형물인데, 등부터 뿔, 코까지 싹 쓰다듬고 왔는데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뭔진 잘 모르겠는데 못 들어가게 막혀있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은 들어가지 말아야죠.
텐만구로 가는 길목입니다. 쭉 걸어가면 텐만구입니다.
여느 신사들과 다른 풍채가 느껴지긴 합니다. 참배를 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서 부적(お守り)을 사갈까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슬슬 돌아갑시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텐만구보다는 다른 거 때문에 다자이후를 찾았습니다.
여기서만 파는 특산 머그잔이 있대서 사러 왔습니다. 굳이 이 점포가 아니어도 이 근처 다른 스타벅스 매장 두 곳 정도에서도 팔긴 하지만, 여기가 오기 가장 편리합니다.
자기네들은 음식점이라고 면세가 어렵댑니다. 나쁜 놈들... 쩝. 그럼 스타벅스 카드로 끊어서 리워드나 열심히 모아야죠.
어차피 여행 내내 힘들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커피를 입에 달고 다녔으니, 카드 충전해서 끊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돌아갈 때도 타비토를 못 봤네요. 돌아갑시다.
마침 후츠카이치에서 텐진 방향으로 돌아갈 때는 특급열차가 옵니다. 좀 더 빨리 돌아갈 수 있겠네요.
텐진에서 내려서, 빠르게 하카타로 이동해서 예정보다 좀 더 일찍 신칸센을 잡아탑니다. JR 세토우치 패스를 본격적으로 사용해봅시다.
야마구치에 진입했습니다.
오늘의 숙소는... 마땅히 다른 곳에서 자려니 애매해서, 시모노세키 쪽으로 잡았습니다. 신시모노세키 역에서 내렸으니 갈아타야 합니다.
신시모노세키 역 바로 앞에 괜찮은 비즈니스 호텔이 있긴 한데, 예약을 하려니 안 잡혔습니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게 오갈 수 있는 곳 중 하나, 시모노세키에 도착했습니다. 신시모노세키 역에서 10분 정도 밖에 안 걸리지만, 배차 간격이 길어서 꽤 걸립니다.
이 날은 좀 편히 쉬고 싶어서 1인실을 예약했습니다. 다행히도 있을 거 다 있는 조용한 방이었네요.
예정보다 시모노세키에 빨리 도착한 덕에, 오락실에 놀러갈 짬이 생겼습니다.
분명 구글 지도에서는 시모노세키 역에서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나와있는데, 좀 많이 걸어야 나오는 라운드 원 오락실입니다.
마음 편히 놀다보니, 어디 한 군데를 안 간 게 생각나서 급히 숙소로 돌아가서 뭔가를 챙기고는 뛰어서 어디론가 향합니다.
시모노세키의 랜드마크 중 하나입니다. 여기도 전망대 좋다고 해서 왔습니다. 도착했을 때가 입장 마감 15분 전이었네요.
조명 배색만 보면 여신전생 시리즈를 담당한 카네코 카즈마가 손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아닙니다.
JR 세토우치 패스를 챙겨가면 입장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할인 폭이 좀 됩니다.
타워 자체는 좁고, 나머지는 전부 다 격자식 철골로 내진/내풍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앞 해협에서 거의 매일 같이 해풍이 장난 아니게 불어오니 대비를 잘 해둬야죠.
언덕 위에 타워가 세워져서 그냥 봐도 높아보이기도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에 방문했던 후쿠오카 타워보다 건조물 높이가 훨씬 높습니다.
입장 요금은 일반 성인 600엔, JR 세토우치 패스의 가호를 받아 300엔.
외국인이 아니어도, 이 타워는 우대 요금이 대부분 300엔 아니면 무료 입장입니다.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시간 맞춰 내려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야경을 둘러보기에는 어느 정도 여유(?)는 가질 수 있는 짬입니다.
일단 올라갑시다.
시모노세키 밤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찍은 사진은 많지만 대부분 이 광경을 반복한 수준이라 패스하고... 한참 쭉 둘러보다가 내려갑니다.
여기도 사진 찍고 자물쇠 걸라고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습니다.
옆구리에 아무도 없으니 넘어갑시다.
요일마다 타워의 조명이 바뀝니다.
오른쪽 아래 예시 그림을 보면 정말로 카네코 카즈마가 뭔가 손을 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아닙니다.
타워 주변 광장을 비춰주던 조명탑인데, 생긴게 꽤 임팩트(?)있습니다.
왜 이런 모양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맥주가 땡기는데 여행 중 컨디션 유지를 하고 싶으니 무알콜 맥주 정도로 가볍게 기분만 냅니다.
일본은 맥주가 참 맛있는데 말이죠. 쩝.
#3. 지방 여행 3일차 (3월 21일)
아침입니다. 비가 옵니다.
우산은 미리 챙겨갔지만 비가 오면 신경써야 할 게 많아지니 번거롭습니다.
시모노세키 역 부근을 둘러볼 계획이 아니었으니, 다시 열차를 타고 나갑니다.
어제 왔던 신시모노세키 역에 다시 왔습니다.
비 옵니다. 오늘 돌아다닐 일정이 좀 되는데 비가 오면 짜증납니다.
먼저 가 볼 곳은 쵸후 정원입니다. 일본 근대기에 조성된 정원입니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세토우치 패스 할인이 있습니다. 할인 받은 입장료 200엔을 내고 들어갑니다.
밖에서 보면 규모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안에서 꽤 헤맸습니다.
입장하려는데 매표소 직원 분이 '혹시 코스프레 사진 촬영하러 왔냐'고 묻습니다.
제 얼굴에... 당치도 않습니다. (조세호 씨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단순히 복장이 검정 외투라서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튼 순간 벙 찐 상태로 입장합니다.
쵸후 정원은 사전 예약을 하고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방을 잠시 빌려서 다실(사진 건물, 물론 건물이 몇 동 더 있습니다)에서 다과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예 아침부터 와서 당일 대관 예약을 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시설 유지나 안전 관리 등의 문제로 어지간해선 직전일까지 예약을 받고, 당일 대관 일정이 없어도 아침에 미리 와서 선점하는 걸 방지하고자 오전 10시까진 매표소에서 신청을 안 받는다고 합니다. 사전 예약이라면 아침 대관도 가능하구요.
요즘은 방을 빌려서 코스프레 사진을 많이들 찍는다나봐요.
비 자체는 짜증나지만, 이런 정원 분위기를 느낀다면 이럴 때 오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습니다.
쵸후 정원은 이런 언덕길 코스가 많습니다.
언덕길 코스로만 쭉 외곽을 돈다고 한다면, 이 날 비가 와서 걸음걸이가 느렸던 것도 있지만 제 기준으로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아직 추워서 싹이 하나도 안 텄습니다. 꽃 좀 피면 볼 만 하겠네요.
잘 가꿔진 작은 폭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등산코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계단 코스가 이어집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외곽 언덕길로만 쭉 돌았을 때 볼 수 있는 계단들이고, 무난하게 정원 코스로만 도신다면 이런 계단을 보실 일은 없습니다.
언덕길로 돌았을 때에는 공원 한 켠에서 이런 작은 토리이를 볼 수 있습니다.
비 안개 때문에 적당히 운치 있고 좋네요.
토리이를 뒤로 하고, 쭉 외곽으로만 크게 돌아봅시다.
코스프레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많아보이긴 하네요.
혹시 정원 관계자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통로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긴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입금지 표식 같은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이런 굽이친 언덕길이 계속 됩니다.
계속 걷다 보면 여긴 여름에 오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기 걱정이 가장 먼저 들더라구요.
계속 걸읍시다.
걸으면 걸을 수록 마음에 드는 정원입니다. 꽃 피면 볼만 하겠다고 적었지만, 걷다보니 오히려 꽃이 피지 않은 지금 정도가 마음에 드네요.
건물에 붙은 유리가, 요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말끔하게 각잡힌 반듯한 유리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연식이 좀 된 것 같네요.
슬슬 다 둘러본 것 같으니 나갑시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라고 매표소에서 알려주니, 비가 오지만 쭉 걷도록 합시다.
여기서 하천둑을 따라 쭉 걸어올라가면 다음 목적지입니다. 이 쯤 왔을 때 비가 멎었습니다.
오른편에 걸린 깃발을 보고서야 이 동네에서 얘기하는 '모리'가 전국시대 가문 '毛利'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그냥 막 오니 몰랐습니다.
하천 개울이 얕고 유속도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비가 그리 많이 안 왔으니 이 정도라는 얘기겠지만, 평소에도 이 정도라면...
여름에 이 주변 사람들 고생 꽤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키우는 듯한 안정적인 애들이 보입니다.
제가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핸드폰 셔터 소리도 크게 났는데 미동도 없는 걸 보면, 얘들은 참 여러가지 의미로 안정적인 놈들이 맞습니다.
걷다보니 이 다음에 가려고 했던 곳이 먼저 나와버렸습니다. 눈 앞에 나타났으니, 일단 여기를 먼저 가도록 합시다.
고잔지는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있고 보호사적이지만 사유지입니다.
고잔지 자체는 아담한 편입니다. 볼 거 다 봤으면 사람들도 많고 하니 나갑시다.
원래 가려던 목적지를 향해서 쭉 걷습니다.
걷다보면 시모노세키 시립 역사박물관도 나옵니다. 따로 둘러 볼 시간은 없으니 지나갑시다.
다 왔습니다.
모리 가문 최후의 당주였던 모리 모토토시(毛利元敏)가 준공을 지시한 건물입니다. 위에 잠깐 카드 짤로 걸어놓은 모리 모토나리와는 400년 정도 시대 차이가 나는 사람입니다.
모리 히데모토가 쵸후 쪽에 터전을 잡고 나서 한참을 건너 뛰어야 나오는 사람이 모토토시입니다.
모리 모토토시가 쵸후 모리 14대 당주고, 모리 히데모토는 모리 모토나리의 손자입니다.
그리고 모리 히데모토는... 임진왜란 때 육군 3만을 이끌고 출병한 기록이 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네요.
입장료는 본당 앞에서 받습니다. 딱히 할인 없이 그냥 200엔.
쵸후 모리 저택은, 모리 가문의 저택이었다는 사료적인 가치 이외에 다른 걸로 더 많이 홍보를 하는 편입니다. 뭐냐면...
메이지 일왕이 잠시 묵었다는 숙소라고 더 많이 홍보합니다. 뒤에 보이는 족자가 메이지 일왕의 친필인데, 옆에 해석을 보지 않으면 도저히 뭐라 쓴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뒤뜰은 일반 입장객은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은 저택 관리측의 동의를 얻어 취재 나온 사람입니다.
다른 쪽 뒤뜰로 가봅시다. 여긴 따로 슬리퍼를 신고 이동하게끔 안내가 되어있습니다.
이 쪽에는 작은 조형물이 있습니다.
슬슬 돌아갑시다.
다 봤습니다. 나갑시다.
이 길 방향으로 가진 않습니다. 모리 저택에서 내려가다가 돌길이 잘 깔려있길래 찍어봤습니다.
쵸후에서 신시모노세키 역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그리 자주 오지 않습니다. 30분에 한 대 꼴입니다.
여긴 교통 IC카드가 먹히지 않는 동네라서, 현금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사진은 정리권(整理券). 뭐에 쓰는 종이인지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흔히 여행 가이드들을 보면, 후쿠오카는 전철보다 버스가 많은 동네고, 교토는 유물 천지라서 전철 뚫기 힘들어서 버스가 다니는 동네고, 홋카이도는 땅덩이가 넓어서 세 지역 모두 교통이 불편한 편입니다... 라고 많이들 언급하는데, 이 세 동네는 양반입니다.
야마구치는 교통 오지입니다. 전철과 버스는 어느 정도 있지만 죄다 배차 간격이 이상한 동네입니다. 너무 힘든 동네입니다.
시모노세키 지역에서 볼 일은 마쳤습니다. 다른 데로 이동합시다.
신야마구치 역에서 내려 야마구치선(JR山口線)으로 갈아탑니다. 2량짜리 원맨 열차입니다.
카미야마구치(上山口) 역입니다. 원래 세토우치 패스로 갈 수 있는 범위는 한 정거장 앞인 야마구치 역까지인데 승무원이 여기까지는 그냥 봐줬습니다.
근데 보시다시피 무인역이고, 철로 자체도 단선입니다. 아아니... ?!
이 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어야 다음 행선지가 나옵니다.
버스 없냐구요? 야마구치 역에서 내렸다면 있었을텐데 일단 버스비가 애매한데다 배차 간격까지 별로라서 그냥 걷는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근데 아침에 비가 왔었고, 이 사진 찍을 때도 여우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던데다 날까지 더워서 참 안 좋았습니다.
걷다가 보인 야마구치 적십자 병원. 다른 병동은 멀쩡해보이는데 뒤에 보이는 건물이 누가 얘기 안 해도 정신병동 같아보입니다.
걷다가 보인 신사 입구.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걷다가 보인 건물. 야마구치 채향정, 사이코우테이(菜香亭) 입니다.
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 곳 본당 안에 이 곳 출신 인사들이 적은 현판들이 수두룩하게 걸려있다고 합니다.
근데 이 현판 주인들 중에 기시 노부스케가... 그렇죠, 참. 여기 옛날에 조슈 번이었죠. -_-;;;
계속 걷습니다. 목적지 표지판이 보입니다.
도착했습니다.
루리코지(瑠璃光寺) 입니다.
여기에 있는 일본 국보, 루리코지 오층탑(瑠璃光寺五重塔)을 보러 왔습니다.
규모는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절제된 듯한 모습이 보이는 꼿꼿한 목탑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음... 불교 목탑이다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왠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루리코지 본당도 들러봅시다.
저도 합장 드렸습니다.
슬슬 떠납시다.
돌아갈 때는 야마구치 역까지 버스를 타볼까 했는데 눈 앞에서 떠나버린 탓에 또 걷습니다.
이 길만 따라 쭉 걸으면, 마지막에 한번 꺾기만 하면 야마구치 역이 나옵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인데, 하루 내내 걷느라 많이 지친 탓에 45분 정도 걸렸습니다.
야마구치 역입니다. 너무 지쳐서 커피나 좀 마시면서 쉬게 스타벅스나 찾아보려 했는데, 없습니다. Aㅏ...
여기서 행선지가 한 군데 더 있었는데, 배차 간격을 보고는 고민이 됩니다.
다음 행선지가 쵸몬쿄(長門峡)였는데, 가려면 15시 41분 마스다 행 열차를 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야마구치 방면으로 돌아가는 열차는 20시가 다 되어야 탈 수 있습니다.
간다고 쳐도 이 대합실에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며, 이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데 큰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이 사진을 찍기 전후로 15분 정도 고민을 하다가... 쵸몬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특급 슈퍼 오키를 타고 신야마구치로 돌아갑시다.
실은 이 날이 춘분이라 일본 공휴일이라서 SL야마구치호가 운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미리 알아보니 이 날을 제낀다고 하더라구요. orz
신야마구치 역으로 돌아옵니다.
빠르게 신칸센을 잡아 타고...
다음 지역인 히로시마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는 JR 패스가 있으면 JR 버스 계통인 '도심관광버스 메이플루프'가 무료입니다. 표기 상으로는 '메이프루-프'가 맞습니다.
배차 간격은 노선에 따라서 30분 정도로 좀 길다 싶지만, 그래도 버스가 무료입니다.
노선은 오렌지, 그린, 레몬 루트로 세 계통이 있습니다. 각각 운행 범위나 방향이 모두 다르니 미리 찾아보고 탑승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반 탑승 비용은 200엔이고, 1일권도 400엔 짜리가 따로 있습니다.
일단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갑니다. 체크인을 하고, 대강 짐을 정리하고, 땀을 많이 흘렸으니 간단하게 샤워를 합니다.
기껏해야 캡슐호텔이지만 사진이 남아있는 이유가... 어머니께서 대체 어디서 자면서 돌아다니고 있냐고 궁금해하신 통에 연락드리려고 남겼었습니다.
숙소에서 잠깐 나와서 대충 밥을 먹습니다. 이것도 메일 쿠폰의 힘을 빌어서 싸게 먹었네요.
초몬쿄를 포기한 대신... 히로시마성 야간개장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초몬쿄를 포기하자니 너무 아쉬웠는데, 히로시마 역에 내려서 메이플루프 버스를 기다리는데 표지판에 야간개장 관련 안내가 붙어있는 겁니다.
이건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얻은 느낌이라 고민할 것도 없이 쫓아갑니다. 숙소에서 히로시마성까진 걸어갔습니다.
야간개장 구역을 들어가기 전. 조명을 위주로 한 이벤트라서 바깥도 많이 반짝거립니다.
TeamLab이 기획한, '히로시마성 빛의 축제' 이벤트입니다. RCC 방송국은 히로시마성 입구에 붙어있습니다. 입장료 1,000엔.
들어가면 처음에는 괴-기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빛이 계속 바뀌니 당황하지 말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세요.
장내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그린 '전국무장'들이 화면에서 뛰노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별도의 유료 이벤트입니다.
조명이 모두 달걀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색은 계속 바뀌지만서도...
이걸 보고 이게 생각나면 비정상이죠? 이게 뭔지 바로 알아보신다면 여러분도... 어흠.
괴이한 그림이니 눌러서 크게 보려고 하진 마세요. 그림 자체에 특정 네타 요소도 있다보니 '이게 뭐에요'라고 궂이 묻지도 마시구요.
날씨가 적절해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광장들도 조명을 다채롭게 하곤 있지만, 주로 본성 조명을 계속 바꿔가면서 히로시마성의 밤 모습을 보여줍니다.
귀곡산장이 됐다가...
불타오르기도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를 잡아라! ... 는 멀리 교토에 있는 혼노지(本能寺)죠, 참.
사람 키보다 큰 달걀 조명들이 따로 모여있습니다. 스태프들이 '넘어뜨리지 마세요'라고 하는데도 다들 한번씩 넘어뜨립니다.
공기 빵빵하게 차있고 오뚝이같이 생겼으니 다들 샌드백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저 같아도 저기 들어갔으면 넘어뜨렸을 것 같네요.
슬슬 나갑시다.
돌아갈 때 메이플루프의 야간특별편성(레몬루트)을 타고 돌아가고 싶었는데... 정류장에 가보니 20분 뒤에나 온대서 또 걸어서 숙소까지 갑니다.
어차피 가는 길에 오락실에도 갈 생각이었으니 느긋하게 갑니다.
예전에 일본에 들렀을 때 찍은 기록까지 합해서, 10개 도도부현을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갔는데도 못 찍은 도도부현도 조금 있습니다.
쿠마모토 > 후쿠오카 > 시모노세키(야마구치) > 야마구치 > 히로시마 > ?
원래는 4일차까지 묶고, 나머지도 묶어서 두 편으로 끝낼 예정이었는데... 4일차에 찍은 사진이 좀 많아서 세 편으로 나누게 됐습니다.
지방 여행은 7일차까지 일정이 있고, 이후로는 수도권에 넘어가서 여유로운 일정을 즐기는 Extra를 3편에 끼워넣을 예정입니다.
사진 솎는 것도 일이네요. 나머지는 천천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4월 18일 추가 >
여러분 덕분에 여태 쓴 모든(정확히는 부속 몇 편은 못 갔습니다) 여행기가 오른쪽에 가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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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마구치는... 일본에 다시 간다고 해도 피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orz | 19.04.18 04: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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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서 논다고 생각하시면 없던 체력도 나옵니다. 음! ... 하지만 돌아온 뒤의 체력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19.04.18 0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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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워낙 바빠서 말이죠... ㅜㅜ | 19.04.18 05: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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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X야나 스X야를 자주 갑니다만, 각 브랜드마다 메일 매거진이나 LINE 친구 같은 걸 등록해두면 2주에서 한 달 간격 정도로 쿠폰이 한 번씩 옵니다. 각 쿠폰의 주의사항에 써진대로 잘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 19.04.18 05: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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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가 정말 이렇게 불편한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몸이 너무 힘든 곳이에요... orz 저는 그 다음에는... 음... 2편을 올렸습니다만, 꽤 돌아서 다른 데로 갑니다. | 19.04.18 0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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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가 오카야마급 똥차동네라 ~_~. 거기다 배차간격도 ㄷㄷ하고 | 19.04.18 0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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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어머니'와는 관계 없는 '루리'입니다. ㅜㅜ 한자로 '유리광사'라고 읽는 줄 알았는데 '수리광사'라고 읽더라구요. | 19.04.18 05: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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