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씩 쿨타임 돌아오는 결혼기념 롯데호텔 파인다이닝.
지금은 신규 가입이 없어졌지만, 롯데호텔에서 결혼하는 부부는 '롯데 패밀리 멤버' 회원 카드를 줍니다.
연회비나 유지 조건도 따로 없고, 그냥 결혼기념일 식사 할 때 무료 와인 두 잔에 식비 50% 할인해주는 무시무시한 회원권이죠.
간혹 인터넷에서 '남편이 결혼기념일인거 잊어버리고 저녁밥으로 떡볶이 시켜먹자더라'라며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오는데
이런 혜택같은 게 있다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란 원래 그런 생물이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찾아간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입니다.
옛날에는 축하 와인을 그냥 하우스 와인(이라고 쓰고 안팔려서 남은 와인이라고 읽는다) 두 잔 내줬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글라스 와인 메뉴에서 고를 수 있게 해줍니다.
기념일답게 모엣 샹동 임페리얼 브뤼, 그리고 해산물이 주로 나오니까 클라우디 베이 2023년을 한 잔씩 주문합니다.
조셉 펠프스가 있길래 그것도 한 잔 시켜볼까 하다가 그냥 패스.
감자칩과 함께 한 모금 냠냠 아껴먹다 보면 음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전채.
오른쪽 위에는 겨울 느낌 살린 호랑가시나무 열매 장식. 혹시 먹을 수 있는 거 아닐까, 괜히 맛있는건데 놓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직원분이 설명해주시면서 건너뛰는 걸 보니 음식은 아닙니다.
'먹지 못하는 건 접시 위에 올리지 말라고!'가 평소 신조인지라 조금 실망. ㅋㅋ
시계 방향으로 올리브유를 뿌린 제철 굴, 아귀 간 카나페, 시금치, 시라코 소스를 곁들인 시금치, 버섯과 당근 무침, 그리고 가운데 금귤 조림입니다.
하나같이 재료 맛 살려서 맛있게 만들었고, 특히 금귤(낑깡)은 그 특유의 귤 껍질 맛 때문에 싫어하는데 이렇게 조림으로 만드니까 맛있더라구요.
이번에 주문한 건 모모야마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모모야마' 코스와 계절별 특색을 살린 '모모' 코스입니다.
모모야마 코스는 두부완자탕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안쪽에 버섯과 콩 등이 들어간 부드러운 두부 완자와 버섯이 가다랑어 국물과 잘 어울립니다.
완자를 반으로 갈라서 먹어보고, 나머지 반은 젓가락으로 슬슬 풀면 국에 완전히 풀어져서 훌훌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지요.
모모 코스는 도빙무시로 첫 시작을 끊습니다.
찻주전자에 생선과 은행 등을 넣고 육수로 끓여낸 다음 육수를 먼저 찻잔에 따라 마시고 나머지 생선을 건져먹는 식이지요.
국물은 두부완자탕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주전자에 끓여마시는 게 퍼포먼스가 좋아보여서 다음에 저도 한 번 집에서 만들어볼까 고민중.
계절 생선회.
참치뱃살, 도미, 광어, 단새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뭐, 다들 아는 그 맛이죠 ㅎㅎ
간만에 도로(몰타산)도 맛있었지만 아마에비가 오늘따라 굉장히 좋았네요.
모모 코스의 계절 생선회는 무늬오징어와 방어가 추가되어 나옵니다.
생선 두 종류 더 나오는 건 그렇다치고, 디스플레이가 확 차이가 나네요 ㅎㅎ.
특히 저 얼음그릇 얼리는 틀 있으면 하나 사놓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생선회나 디저트 먹을 때 좋겠더라구요.
한우 안심구이. 한 점은 그냥 먹고, 한 점은 소스 찍어 먹고, 나머지는 빵가루 골고루 묻혀서 양파와 함께 규카츠 느낌으로 먹어봅니다.
고기는 언제나 정답입니다 냠냠.
모모 코스 해물 메인으로 나온 바닷가재 치즈구이.
맛은 있는데 랍스터 크기가 작아서 '얘는 잘못하면 타이거 새우한테도 맞고 다니겠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차가운 생선회 먹은 다음에 따뜻하고 고소한 랍스터 구이 먹으니까 뭔가 궁합이 잘 맞습니다.
다만 랍스터는 먹을 때마다 르 버나딘이 떠올라서 눈물이 납니다.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요.
결혼기념일 축하한다고 특별히 나온 아귀간 모나카.
아래쪽에 밥을 살짝 깔고 위에는 아귀간으로 만든 리예뜨 형태의 무스가 올려졌습니다.
언제나 맛있는 안키모! 바다의 푸아그라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장어를 올린 하코스시. 네모난 틀에 눌러 넣어서 만든 초밥입니다.
막 태운듯한 장어도 호쾌한 맛이 있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 구워서 초밥으로 만든 것도 나름의 풍미가 있습니다.
곁들이 장국으로 순채가 나와서 반갑네요. 예전에 순챗국 만들어 먹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모모야마는 모나카 틀에 내용물 넣어서 샌드위치처럼 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게 특징인가봅니다.
모모 코스에 나온 지라시 스시도 이렇게 모나카에 담겨 나오네요.
연어알이 듬뿍 들어가서 톡톡 터지는 맛이 즐거운 지라시 스시입니다.
도미 가부라무시.
도미 술찜 위에 달걀 흰자 머랭을 쳐서 살짝 익혀 낸 요리입니다.
추운 겨울에 호호 불어가며 먹기 좋네요.
모모 코스에는 소고기가 나옵니다. 소고기 샤브샤브.
국물에 넣기 전에 고기 때깔 보면서 사진 한 번 찍어봅니다.
고체연료가 파란색이라 신기했네요. 불 붙여서 국물 끓기 시작하면 각종 채소와 버섯, 고기를 넣고 살짝 끓여서 먹습니다.
고기는 너무 오래 끓이면 질기니까 둘둘 말린 거 풀어서 한번 휘적휘적 데쳐서 먼저 집어먹고
한 숨 죽은 채소와 버섯을 소스 찍어 먹은 다음 국물도 한 번 떠먹습니다.
국물이 마음에 들어서 '아, 여기에 밥 말아먹고싶다. 아니면 우동이라도!'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식사가 나오기 전에 잠깐 쉬어가는 게살 고로케.
이건 모모 코스에는 안나오는 거라 아내와 한 개 씩 나눠 먹었습니다. ㅎㅎ
잘 만든 고로케는 희한하게 안쪽이 미칠듯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겉만 보고 '다 식었구나'라고 성급하게 판단 내리고 확 깨물었다가는 입천장 다 까지지요.
조심스럽게 후후 불어가며 뜯어먹으면 고구마무스와 게살이 버무러진 속이 김을 뿜어올리며 등장합니다.
고로케 먹고 나면 바로 등장하는 굴솥밥. 장어 솥밥을 먹을까 굴솥밥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굴이 제철이라 물이 좋다는 말에 선택했습니다.
유자 껍질 살짝 들어가서 향기로운 굴솥밥입니다.
다만 간이 좀 약한데, 소금간 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간장 넣자니 섬세한 유자향이 다 죽을 거 같은 딜레마는 이해가 갑니다.
그래도 제대로 만든 양념간장 하나 정도 옆에 따로 내서 손님 입맛에 맞게 뿌려 먹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았겠다 싶네요.
그래도 김치와 무절임, 오이절임이 워낙 맛있어서 함께 먹으면 나름 괜찮은 조합이긴 합니다.
다만 주가 되는 솥밥이 싱거운 걸 밑반찬으로 커버치는 것보다는 그냥 양념장도 함께 주는게 정석 아닐런지.
순채 장국은 아까 처음 봤을 땐 반가웠는데 두 번 보니까 좀 아쉽네요.
국 종류도 두부나 유부 등 다른 된장국을 냈더라면 훨씬 더 다채롭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디저트로 나온 크렘브륄레와 과일.
크렘브륄레는 저렇게 네모 반듯하게 나온 걸 보면 네모틀을 썼을까 칼을 달궈서 잘랐을까 궁금해집니다.
맛은 전형적인 푸딩 스타일의 크렘브륄레보다 약간 더 케이크에 가까운 단단함.
모모 코스의 디저트로 나온 붕어빵과 저지 밀크 아이스크림.
저지Jersey 품종의 소에서 나온 우유로 만들어서 저지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는데, 참기름 살짝 뿌려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시원해서 맛있습니다.
붕어빵이 바삭해서 궁합이 잘 맞네요.
다만 일본의 우유회사에서 푸딩을 만들며 저지 밀크를 강조해서 유명해졌는데 일본에서는 Jersey를 ジャージー로 읽기 때문에 볼 때마다 속으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중간에 축하 메뉴가 나와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디저트로 한번 더 기념일 축하를 해줘서 기분이 좋네요.
역시 기념일에는 촛불 하나 켜줘야 제맛이지요.
전반적으로 크게 흠잡을 곳 없이 맛있는 식사였습니다. 중간중간 음식의 조합이라던가 코스 배치 면에서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서도 서비스라거나 음식 품질 면에서는 뭐 하나 뒤쳐지지 않습니다.
다만, 맛있는 걸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게 파인다이닝의 최종적인 지향점은 아니다보니 뭔가 사람을 압도할만큼 대단히 독창적이고 훌륭한 맛이 예술처럼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레스토랑 랭킹 매겨가며 먹는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이 돈이면 스시조/아리아께를 가는게 정답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달까요.
이번에 모모야마 방문하면서도 니기리(쥠초밥)가 메인으로 들어가는 코스보다 일품요리 중심의 코스를 고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혼기념일인데 서로 음식에만 집중하며 코 박고 먹는 것도 웃기고, 무엇보다도 와인 포함하면 76만원짜리 계산서가 33만원으로 변하는 매직~이 있으니까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벤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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