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비로운 유튜브 알고리즘이 난데없이 오리와 거위 부화 실시간 영상을 던져줬습니다.
삐약이들이 알 까고 나오는게 뭐 큰일이라고 몇 시간동안 홀린듯이 그것만 쳐다보게 되더군요.
알 속에서 힘겹게 껍질을 조금씩 깨며 나오는 모습이 나름 감동적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달걀을 '보이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지요.
무생물처럼 보이는 달걀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된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영어 동화책 읽기와도 연관이 있으니 부활절 달걀을 만들어 봅니다.
갈색란은 토종닭이 낳은 달걀이라는 루머 때문인지 주변에서는 흰색 달걀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인터넷에서 나름 난각번호 2번짜리 맛있는 백색란을 두 판(60개) 주문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삶은 달걀을 아주 정확하게 원하는 수준으로 익힐 필요가 있다면서 끓는 물에 넣는 기준으로 시간을 재는데,
지금은 어차피 완숙으로 팍팍 익힐 거라서 그냥 찬물에서부터 넣고 끓입니다.
끓는 물에 넣으려면 달걀을 몇 시간 전에 미리 꺼내서 찬 기운을 빼놔야 안 깨지는데 시간관계상 불가능하거든요.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간 재기 시작해서 10분 삶아줍니다.
삶은 달걀을 식힌 다음 무늬를 만들기 위해 테이프를 두르거나 스티커를 붙여봅니다.
원래는 달걀을 서로 다른 염료에 조금씩 담갔다 빼면서 줄무늬를 만들거나, 달걀 표면에 그림을 그린 다음 염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생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니 가장 쉬운 장식 방법을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종이컵에 물을 채우고 식용 색소 4~5방울과 색깔이 더 선명하게 들도록 도와주는 식초 몇 방울을 떨어트린 다음 잘 저어줍니다.
달걀을 넣고 5분 가량 기다리면 하얗던 달걀이 예쁜 색깔로 염색됩니다.
스티커와 테이프를 떼고 다른 색깔로 물들이면 여러가지 모양의 알록달록한 부활절 달걀이 완성되지요.
강렬한 원색이라기보다는 약간 연한 색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빨간색이 아니라 진분홍색, 파란색이 아니라 하늘색, 노란색은... 노란색.
색깔을 조합해서 초록색, 연분홍색, 보라색 달걀도 만들고 무늬와 달걀의 색도 다르게 해 봅니다.
스티커는 달걀에 완전히 밀착해서 달라붙지 않아서인지 색소가 스며들었는데 왠지 더 예쁜듯한 느낌도 드네요.
프로토타입이 성공했으니 이제 대량생산 준비를 합니다.
삶은 달걀도 꺼내놓고 종이컵에 미리 색소와 식초와 물을 섞어놓습니다.
식용색소는 워낙 강력하다보니 옷에 튀기라도 하면 절대 안지워지는 것으로 악명높은데, 애들한테 섞으라고 하면 백퍼 사방에 튈 거 같단 말이죠...
스티커와 테이프도 넉넉히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달걀을 집에 가져갈 때 필요한 포장지도 사 놓으면 준비 완료입니다.
녹색 달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늘의 책은 닥터 수스의 '초록 달걀과 햄'입니다.
닥터 수스는 '모자 속의 고양이'나 '그린치', '로렉스' 등의 동화로 유명한 사람이지요.
영어 특유의 운율과 말장난을 능숙하게 써서 아이들이 영어 배울 때 읽으면 좋은 책들을 많이 써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공공도서관들은 닥터 수스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그의 책을 읽어주는 행사를 할 정도니까요.
이것이 뉴우-테크놀라지의 위력!
삼성 스마트TV를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책을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결과물은 옛날 도서관에 한 대씩 있던 구식 도서 영사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TV가 오지게 무거운데 손잡이가 없어서 옮기다가 허리 나가겠더군요.
뭘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나 싶어서 알아봤더니... TV 이동용 바퀴를 7만원에 별도 판매중.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게다가 웹캠용 카메라를 연결하면 강제로 피트니스 모드로 넘어가는데다가, 어찌어찌 카메라 화면을 띄워도 좌우 반전이 안되는 놀라운 호환성.
결국 제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겨우겨우 만족스러운 화면을 띄웠네요.
이전까지는 그냥 그림책을 들고 읽어줬는데 점점 입소문을 탔는지 참가자가 많아지면서 뒤쪽에 앉은 아이들의 불만이 생기는지라 마련한 궁여지책입니다.
도서관 면책특권을 휘두르며 책을 스캔떠서 보여주는게 더 편하긴 한데, 사서가 직접 책장 넘기며 읽어주는 게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습니다.
스캔 이미지를 넘기는 건 왠지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보는 느낌이고, 이렇게 영사 시스템으로 보여줘야 "책을 읽는다"라는 실감이 든다고 하네요.
"Say! I like green eggs and ham!
And I would eat them in a boat. And I would eat them with a goat.
And I would eat them in the rain. And in the dark. And on a train.
And in a car. And in a tree. They are so good, so good, you see!
So I will eat them in a box. And I will eat them with a fox.
And I will eat them in a house. And I will eat them with a mouse.
And I will eat them here an there. Say! I will eat them ANYWHERE!"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며 책을 읽고 (닥터 수스 책은 그냥 눈으로 읽기엔 재밌는데 소리내서 읽어주려면 아주 고역입니다)
중간중간 아이들 호응 이끌어내려고 질문도 던지고, 대답하면 상으로 달걀도 주고, 그러면 꼭 중간에 깨트리는 아이들도 생기고...
우여곡절 끝에 달걀을 물 안튀기며 종이컵 안에 안착시키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염색될때까지 5분 정도를 그냥 멍하니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초록 달걀과 햄' 만화영화를 틀어줍니다.
와글와글 시끄럽던 아이들이 단번에 조용해지는 매직~
수업도 잘 끝나고, 아이들은 예쁘게 물든 달걀을 한 개씩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어질러진 도서관을 정리한 다음, 한 숨 돌릴 겸 달걀을 하나 까서 먹어봅니다.
이렇게 물들인 달걀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당장 까서 먹으려던 애들 달래는게 큰 일이었네요.
좀 오래 삶은 탓인지 노른자와 흰자의 경계가 약간 녹색을 띕니다.
원래 달걀에는 황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너무 오래 가열하면 황화수소가 되면서 노른자의 철분과 반응해서 검은 빛 도는 녹색이 되거든요.
삶은 달걀의 노른자에서 유황 냄새가 나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뭐, 그래도 아주 심한 수준은 아니고 무엇보다도 반숙란은 식중독 위험이 좀 더 높은지라 좀 더 안전하게 갑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놓고 보니 겉과 속 모두 녹색을 띄는 게 오늘 읽은 책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58.121.***.***
https://youtu.be/J1Btw-u-uWU 이걸 틀어주면 편하셨을지도..... 닥터수스!!!!! 마마!!!
119.69.***.***
좀 쩌네용
71.176.***.***
토종닭은 갈색란을 낳을 것이다 수입 혹은 외국산 닭은 흰색 계란을 낳을 것이다. 토종닭이 낳은 계란이 수입산보다 건강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토종닭이 낳은 계란을 선호하기 때문에 시장에는 갈색란이 더 많다. 주변 시장이나 마켓에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갈색란을 더 많이 구비해두기 때문에 흰색 계란을 찾기가 힘들다. 정도 일것 같네요
211.202.***.***
줄스가 원인이었어!
119.69.***.***
좀 쩌네용
58.121.***.***
https://youtu.be/J1Btw-u-uWU 이걸 틀어주면 편하셨을지도..... 닥터수스!!!!! 마마!!!
211.202.***.***
줄스가 원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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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yeng
토종닭은 갈색란을 낳을 것이다 수입 혹은 외국산 닭은 흰색 계란을 낳을 것이다. 토종닭이 낳은 계란이 수입산보다 건강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토종닭이 낳은 계란을 선호하기 때문에 시장에는 갈색란이 더 많다. 주변 시장이나 마켓에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갈색란을 더 많이 구비해두기 때문에 흰색 계란을 찾기가 힘들다. 정도 일것 같네요 | 23.04.13 21:45 | |
112.161.***.***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제가 스압으로 본문을 다 안봤더니 아무래도 색칠을 하기 위해서는 흰색이 필요 했던 것 같네요. ㅎㅎ 저도 토종닭 알이 더 좋을 거라는 인식이 있는데 왜 오히려 흰색을 구하려고 했는지가 의문 이었는데 색칠과 연관이 있던 듯 하네요 ㅋ | 23.04.14 01:57 | |
112.163.***.***
일단 갈색계란이 토종닭이 낳은거 아닙니다. 그냥 외국품종인데 갈색계란낳는 품종이에요 맛 성분은 흰거랑 똑같습니다. 본문은 색칠할려고 흰색 산거구요 | 23.04.14 09:05 | |
222.118.***.***
118.46.***.***
211.211.***.***
121.133.***.***
112.151.***.***
49.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