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꽤나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네요.
지난번에 쓴 글이 아마도 서울 화상 중식당들에서 먹었던 식사와 요리들을 간단한 리뷰 형식으로 적었던 것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컨셉을 잡고 떠난 지난 서울/부산 여행들에 이어 이번 여행 중 식사의 컨셉은 '부산 돼지국밥집들의 수육백반들을 먹어보자.' 로 잡았습니다.
제가 내장과 머릿고기가 국에 들어있는 돼지국밥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돼지고기 수육은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여행의 컨셉을 그렇게 잡았습니다.
사실 부산에 있는 티카페들도 돌아보는 것도 여행의 목적으로 삼았었는데 부산의 인도총영사관 1층에 있는 압끼빠산드 산차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이런저런 사정(시간이 안맞았다던가 신발 문제로 장거리 보행이 불가해졌다던가 아예 찻집이 문을 안 열었다던가 등)으로 인해 그 부분은 다음 여행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하는 걸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압끼빠산드 산차 부산지점은 차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방문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열정과 지식이 넘치는 분들이 직원으로 계시고 또한 시향도 아닌 시음을 무료로 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으니까요.
돼지국밥집들을 선정했던 기준은 부산일보에서 만들었던 부산 돼지국밥 로드를 참조했습니다.
그럼 수육백반의 세계로 가보실까요?
1. 늘해랑 수육백반
집 근처의 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를 타면 부산동부(노포)터미널에 도착하고, 숙소는 부산역 옆의 토요코인으로 잡았기 때문에 도중에 있는 늘해랑을 수육백반투어의 첫번째 행선지로 선택했습니다.
점심시간때라 짧은 웨이팅 후 생긴 자리에 앉아 수육백번을 주문하니 아마도 삼겹부위인 것으로 보이는 수육과 반찬들 그리고 국물을 가져다 주십니다.
국물을 먼저 맛보니 특유의 감칠맛이 약간 있는, 간이 거의 없는 아마도 고기와 뼈를 우린 국물맛이었습니다. 입에 들러붙는 정도는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육은 삶을 때 뭔가를 넣었는지 돼지고기만의 향과 맛이 아닌 다른 미세한 향과 맛 그리고 일반적인 수육과 약간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고기 옆의 무절임(?)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달짝지근한 맛이 마치 보쌈김치의 속을 연상시키는 맛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첫번째 수백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수백 투어의 여정을 기대케 하는 괜찮은 맛이었으니까요.
2. 88돼지집 돼지국밥
서면에서 애니플러스도 가고 스즈메의 문단속 4DX도 보고(솔직히 개인적으론 2D가 가격 대비 더 나았습니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호텔 체크인 전 저녁을 먹으러 또다른 돼지국밥집으로 향했습니다.
어? 근데 이건 돼지국밥이지 수육백반이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하실 분들이 분명히 많으실 겁니다. 맞습니다. 여기는 여정 중 유일하게 수백 대신 국밥을 먹은 곳입니다.
사유는 수육이 다 떨어져 수백이 안된다고 주인분께서 말씀을 하셔서 불가피하게 돼지국밥을 주문했습니다.
가게 비주얼만 봤을 때는 돼지누린내가 펄펄 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물에 들어가 있는 머릿고기+살코기와 비계를 말려있는 밥과 먹는 조합은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좋아할 조합은 아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기가 주 재료인 국밥을 잘 안먹거든요.
그래도 가격이 여정 중 다녀온 가게들 중 가장 저렴했으니 그 부분은 마음에 드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제일 싸다 그래도 돼지국밥 기준 7천원이네요...)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산역 옆 토요코인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신발 문제로 여기저기 통증에 시달리던 발을 잠시나마 쉬게 해 주었습니다.
3. 밀양집 수육백반
2일째 아침, 대략 7시 반쯤에 기상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8시 쯤에 토요코인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씻은 후 다음 수백투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깡통시장에 있는 나름대로 유명하다는(그리고 부산일보 국밥로드 순위권 안에 들어간) 국밥집 중 한 곳입니다(국밥로드에서는 3순위까지만 꼽았던데 처음에 갔던 늘해랑과 이 밀양집 그리고 뒤에서 나올 양산집이 그 3집입니다).
왜 양산집을 저녁에 가고 밀양집을 아침에 갔냐 하면 그냥 영업시간 차이 때문입니다. 오후에 가면 국물이 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일정 짤 때는 떠올리지도 못했던 발상이었으니까요.
어쨌거나 자리가 남아 있어 바로 입장한 후 수백을 주문했습니다. 반찬이 먼저 깔리고 그 다음 수육과 국물 밥이 세팅되었습니다.
이 집은 수육 부위를 비교적 다양하게 쓰더군요. 제가 뭐 대단한 고기 전문가는 아니라 부위는 잘 모르겠지만 맛은 비계와 살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집과 국물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군요. 이래서 평소에 익숙해야 차이점을 쉽게 집어낸다고들 하나 봅니다. 저는 일정 내내 각 집의 국물에서 특기할 만한 큰 차이점은 못 짚어내겠더라고요.
아 참고로 저 부추무침이 생각보다 매웠습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다른 집의 부추무침보다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매콤하더군요.
어쨌거나 아침부터 고기로 시작했습니다. 힘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은거죠. 바로 다음 일정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4. 쌍둥이돼지국밥 수육백반
대연동 부산박물관 인근에 있는 압끼빠산드 산차에서 직원 분과 차에 대해 즐거운 대화 시간(마시는 차 얘기를 할 만한 친구가 없어서 오랜만에 차에 대해 재미있는 대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서론에서도 말했지만 차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부산 갈 일이 생겼을 때 한 번쯤 방문하셔 보는 걸 추천드립니다.)을 보낸 후 인근에 있는 쌍둥이돼지국밥으로 향했습니다.
다행이 제가 도착했을때는 자리가 있어 바로 입장하였고, 바로 수육백반을 주문했습니다.
이 집의 좀 특이한 점이라면 수육백반 국물에도 고기가 조금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사소한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집 수육은 아마 삼겹살이나 전지 그리고 항정살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고체연료에 불을 피워 조금이나마 보온이 되도록 해 두었구요.
개인적으로 이번 수백 투어 중 들린 가게 중에서는 이 집이 큰 차이는 아니고 작은 차이지만 그래도 제일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집어서 이 집이 제일 낫다라고 할 만한 근거는 표현하려니 애매한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가장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다른 집들이 맛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주문하고 나서 단체손님들이 몰려오길래 적당히 속도를 내어 식사를 마치고 계산 후 다음 행선지인 센텀시티(거기 신세계는 식품관의 차 코너를 어떻게 꾸며놨나 싶어서 가 봤습니다. 본점과 비교해서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긴 하더군요. 백화점 자체가 센텀시티 쪽이 더 커서 그런가?)로 향했습니다.
5. 양산집 수육백반
발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센텀시티에 있는 카페에서 호텔 객실청소시간이 끝날 때까지 적당히 시간을 죽이다가 청소가 끝날 시간이 대충 되어 호텔에 가서 좀 쉬다가 다시 수육백반을 먹으러 깡통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깡통시장에 도착해서 밀양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양산집에 도착하니 다행이도 시장에 바글바글하던 사람들 수에 비해 국밥집에는 자리가 남아 있어 바로 입장해서 수백을 주문했습니다.
반찬과 메인이 차려지고, 이 집도 고체연료를 밑에 깔고 불을 붙여 수육의 온도를 유지시켜주려고 하더군요. 효과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접객받는 입장에서 기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집의 수육 부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항정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부위와, 난생 처음 보는 거뭇거뭇한 부위, 그리고 비계가 조금 붙은 살코기 부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삼겹, 전지, 후지로만 수육을 삶아봐서 나온 고기들이 무슨 부위인지는 감이 잘 안잡히더군요.
간장소스에도 찍어먹고 새우젓도 올려먹고 하다 보니 금세 고기와 밥 그리고 국물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이 집도 맛이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썩 괜찮더군요.
다 먹고 나서 아픈 발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가 중간에 구매한 음료수와 과자를 간식으로 먹고 마지막 날의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잠들었습니다.
6. 본전돼지국밥 수육백반
아침에 일어나서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조식으로 살짝 위를 깨워주고 체크아웃 후 바로 근처에 있는 본전돼지국밥으로 향했습니다.
여기는 전에 밀면투어 할 때 이미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날 동선 상 다른 국밥집들은 방문하기 애매해서 재방문 했습니다.
근데 아침부터 대기줄을 꽤나 길게 서더군요. 아침이긴 해도 큰 역도 옆에 있고 해서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니 그럴 수 있습니다.
줄을 서서 대충 20분 정도 기다리니 제 순서가 되어 입장하여 수백을 주문했습니다.
예전에 봤던 비주얼 그대로의 그 수백이 나왔습니다. 여기는 고기 형상이나 물렁뼈의 존재나 확연하게 삼겹 부위를 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삼겹살을 삶았으니 맛이 없을리는 없겠죠. 이것도 와사비 풀은 소스에 찍어먹고 새우젓 올려먹고 해가며 한 상을 해치웠습니다.
몇 개월만에 맛이 바뀌기도 쉽지 않지만 어쨌거나 몇 달 전 먹은 그 맛 그대로였습니다.
다 먹고 난 후 부산역 옆에 있는 삼진어묵에서 집에 가서 가족들과 먹을 어묵을 좀 사고 마지막 일정을 처리하러 서면에 다시 갑니다.
7. 송정3대국밥 수육백반
아마 부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을 서면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서도 수십 회 소개된 적 있어 식사시간이 되면 당연히 줄을 서는 그 국밥집입니다.
여기도 꽤 예전에 친구와 부산 놀러 왔을 때 국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건 아닌걸로 보아 제 기준에서 국밥이 아주 맛있는 집은 아니었나 봅니다(사실 국밥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맛있다고 느낄 만한 국밥집이 흔하진 않겠죠).
어쨌거나 대충 7년쯤만에 수육백반 먹으러 다시 송정3대국밥에 방문했습니다. 물론 서면 도착 시간은 상당히 이른 시간대여서 근처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시면서 아침으로 먹은 것들을 소화시킬 겸 책을 좀 읽다가 대충 식사시간 즈음하여 국밥집으로 향했습니다.
본전도 아침부터 줄을 섰는데 여기도 유동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줄을 서겠죠. 그래도 본전보다는 사람이 금방금방(본전도 빠르게 테이블 회전이 되긴 했습니다) 빠져서 대략 10분 정도 기다리다 입장하여 수백을 주문했습니다.
여기도 삼겹 부위를 수육으로 쓰는 듯하군요. 모양이 딱 삼겹입니다. 이 집 역시 보온을 위해 고기접시 밑에 고체연료를 깔아놨고, 소면도 국물에 말아먹으라고 나오고, 무말랭이인지 무 무침인지도 나오네요. 부추는 알아서 셀프바에 가 떠오면 된다길래 깍두기 조금하고 부추 조금하고 떠와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소화시킬 시간을 좀 가졌어도 절대적인 시간 차이가 얼마 안나서 거의 다 먹어 갈 때쯤에 배가 불러오더군요. 그래도 맛은 괜찮았습니다. 국물 맛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고기도 부들부들하게 잘 삶아졌고 말이죠.
이걸로 지난 주말동안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에서 수육백반 투어 했던것을 대충 정리해 봤는데요, 가게별 국몰 맛 차이를 제대로 짚어낼 만큼 국밥에 조예가 얕았던 건 좀 아쉽긴 하네요.
어쨌거나 기획했던 테마의 여행을 또 하나 끝내고 나니 이번 테마여행도 즐거웠다는 생각도 들고, 다음 테마는 무엇으로 잡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네요.
아마 다음에 부산에 또 오게 되면 떡볶이 집들을 돌거나 중식당에 가서 간짜장만 먹는 여행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떠오른 것들만 추려보면 말이죠.
그리고 다음에는 신발을 잘 신고 와서 이번처럼 장거리 보행이 힘든 지경까지 발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교훈도 얻었구요.
아무튼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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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한 글은 추천이죠...부산에서 대학다니던 시절 단골 돼지국밥집들 주인 할머니들이 연세가 드시거나 돌아가셔서 모두 사라져버린 후로 돼지국밥이 그냥 외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서 좀 서글픈 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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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특별히 맛있는집이 있다기보단 돼지잡내 잘 잡는 집이 맛집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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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한 글은 추천이죠...부산에서 대학다니던 시절 단골 돼지국밥집들 주인 할머니들이 연세가 드시거나 돌아가셔서 모두 사라져버린 후로 돼지국밥이 그냥 외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어서 좀 서글픈 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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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노포들이 아쉽습니다... | 23.03.27 0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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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특별히 맛있는집이 있다기보단 돼지잡내 잘 잡는 집이 맛집이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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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같기도 합니다. 유명한 집들은 돼지고기의 누린내가 안나긴 하더라고요. | 23.03.27 16: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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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분한 말씀을... | 23.03.27 16: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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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양)냉면 투어도 해보고 글도 써 봤는데 개인적으로 냉면 간의 차이를 느껴보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테마 여행이 그런 재미가 있더라고요. | 23.03.27 16: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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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23.03.27 16: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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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진심까지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수육은 좋아합니다 | 23.03.27 16: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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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SNS가 워낙 파급력이 강하니까요. 저도 송정을 예전에 친구랑 갔을 때는 비가 오긴 했어도 줄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고 좀 놀랐네요 | 23.03.27 16: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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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외지 사람이라 아무래도 동네 국밥집들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기에는 정보력이 부족했습니다. 동네 국밥집이라고 전부 유명 국밥집들에 밀릴 일은 없겠죠. 그것도 상향평준화된 부산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 23.03.27 16: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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