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처음 써보네요
밥 먹고 온거 여기 쓰는거 맞죠? 맞겠...죠?
사실 먹고 온지는 몇달 됐는데 귀찮음 때문에 피일차일 미루다가 해를 넘겼네요.
자주 가던 음식점에 계절한정 메뉴가 들어왔습니다.
한정메뉴 하면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게 있잖아요.
참지 않고 시켰습니다.
비주얼 나쁘지 않네요.
사이즈가 무슨 곱빼기 사이즈입니다.
맑은 국물 사이에 방울방울 떠 있는 기름방울이 보기만해도 벌써 얼큰해보입니다.
게다가 알록달록한 청경채와 청양고추 사이로 얼굴 내밀고 있는 포동포동한 통영굴...
역시 먹기 좋아야 보기도 좋죠.
아, 반대인가?
먼저 국물에 대해 평하자면, 바다 내음처럼 짭쪼름한 육수를 청양고추의 알싸한 맛이 잘 잡아줍니다.
얼큰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밸럭스가 무척 잘 잡혀있어요.
덕분에 중학교 동창 만나서 소주 넘기는거처럼 죽쭉 들어갑니다.
무엇보다 목 넘길때마다 느껴지는 감칠맛이 정말 찰집니다.
뭐라고 해야하나, 주인공을 돋보이면서도 주어진 분량 안에서 배역의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조연 전문 배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 샹치 역을 맡은 시무 리우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없습니다.
덕분에 주인공 양조위에게 늘 비중을 뺏기지만, 버스 액션 씬처럼 할때는 또 멋진 연기를 보여주죠.
존재감을 나타낼 때와 아닐 때를 잘 구분하고 있어요.
오히려 그런 점이 조연으로써 빛나게 합니다.
멋진 조연이 영화를 빛나게 만들죠.
물론 농담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양조위 역할을 맡은 통영굴이 진짜 기가 막힙니다.
이게 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안에서 계속 나옵니다.
처음에 위에 떠다니는 굴 다섯 개 빼서 사진 찍고는
"흠, 굴이 다섯? 괜찮네."
라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있어요.
거의 끝 없이 나옵니다.
아니 진짜, 전 제가 밥 먹는 동안 짬뽕 속에서 굴끼리 결혼해서 애 낳는 줄 알았다니까요.
예수님이 사람들 빵 먹이는거처럼 계속 쏟아지다가 "아, 이제 슬슬 굴이 입에 물리네" 싶을때 쯤 없어요.
아주 굴 짬뽕 계의 오병이어 같은 분량 조절입니다.
굴이 한 열 개? 열두 개 정도 있었나?
굴 값만 8천원 받아도 되겠어요.
그렇다고 싸구려 굴인가 하면, 걱정 마시라.
해감이 잘 되어서 그런지 비린 맛이 전혀 없어요.
물이 살살 잘 오른 것이, 씹을때마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 중독성 있습니다.
쫀득쫀득 씹을때마다 베어나오는 육즙에는 짠맛 하나 없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살아있어요.
살짝 우유 향도 나고요.
입이 즐겁고 혀가 즐겁고 코가 즐거우니 그야 말로 삼위일체.
예수님 맞네요. 아멘
짬뽕면은 가수율이 높은 면인지 사진 찍으면서 먹었는데도 안불더라구요.
굵고 꼬들꼬들해서 씹는 맛이 아주 잘 살아있습니다.
한 입 가득 넣고 끊어먹으면 아주 행복합니다.
맛있는 것을 입 안에 가득 채운다고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줍니다.
거기다 여기 청경채라는 녀석은, 육수를 듬뿍 말아먹었으면서도 아삭함을 잃지 않아서 대단합니다.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을때마다 소룡포 먹는거처럼 육수가 터지면서 향기가 입 안에 화악 올라오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머리속에서 "허억?! 아니 이 맛은!! 미미(美味)-!" 하면서 브금이 재생되더라구요.
말 그대로.... 그 뭐시더라... 요새 애들 말로 하면 히트에요 히트.
면을 후루룩 먹다가 질리면 청경채로 입가심하고 국물 마시고 다시 후루룩... 무적 삼단콤보입니다.
아주 절묘한 조합이에요.
배불러서 행복해진 저는 계산하고 나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퇴계 선생이 그런 말도 남기셨잖아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常有不可奪之 志不可屈之氣 不可昧之識)
그래서 미니 칠리 중새우도 시켰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 빨간색과 초록색의 보색대비가 보이십니까?
흥미롭지 않아요?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이 음식에 담긴 철학을 아시겠어요????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내어 직화 불에 바싹 튀겨서 새콤달콤단짠 양념을 빈틈없이 도포해 나온 이 음식의 철학을 아시겠냐구요???
메뉴 이름이 미니 칠리새우가 아니라 미니칠리中새우인데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크다고 하기엔 좀 모자란데 작다기에는 또 큰 이 사이즈....
한 입에 넣기에는 너무 커서 부담스럽고 두 번 나눠 먹자니 좀 아쉬운 사이즈지만...
거기에 튀김옷을 입혀 놓으니 글러브 낀 웰터급 복서와 같은 윙바감이 느껴집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새우를 후후 불어 넣으니 입 안 가득차는 칠리 새우의 거대한 존재감....
한 입으로도 배불러요.
심지어 달고 짜고 시고 매운 4가지 맛이 조합되니 당해낼 수가 없지요.
입 안에 남아있던 굴짬뽕의 여운을 칠리새우 4단 콤보가 다 밀어버리고 혀를 정복해버리고 말았답니다.
먹는 손이 안 멈춰요. 짜고 단 요리는 중독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칠리새우 이 무서운녀석....!!
아, 덤으로.
칠리 밑에 깔린 배추는 그냥 장식용이 아닙니다.
새우를 먹는 사이에 자연 스럽게 양념이 도포된 배추는 새우의 느끼함을 날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단짠심매콤에 아삭아삭 배추까지 더해지니 상쾌함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기름 진 칠리새우라는 거대한 산의 정상 등반에 성공한 뒤 "야호-!"를 외칠때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산뜻해요.
그래서 결론은?
맛있엇다!!
근데 굴짬뽕 아직도 하는지 모르겠네요.
부산 동구 초량상로 102, 중식당 차오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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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감사합니다 | 23.02.02 2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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