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만에 음갤에 올려보는 글로 고른 건 작년 이맘때 즈음 만들어 먹은 독일군의
1941년식 굴라시입니다. 옛날에도 독일군 굴라시를 만들어 먹어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모 블로그에서 찾은 1942년식 레시피를 사용했었어요 :)
이 굴라시 레시피는 "Feldkochbuch fuer behelfsmaessiges Kochen und Backen"에서
발췌한 것으로, 전술했듯 1941년 발행된 것입니다. 직역하면 "야전에서의 간이 조리 및 베이킹"
정도가 됩니다. 저는 원서를 번역해서 사용하는 중인데, 프락투어로 쓰여있다보니 번역이 많이
느리다는 에러사항이 있죠 ㅠㅠ 굴라시는 재밌는 게 헝가리가 원조지만 중부유럽과 동유럽
웬만한 곳에서는 현지화 되어 먹는 음식이다보니 웬만한 짬밥 레시피로는 다 있더라고요.
언젠가는 미군식 굴라시도 해봐야지 생각중입니다 ㅎㅎ
재료로 사온 돼지 전지 어께살 3.5kg
북미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고기물량도 부족하고 했었는데 이 날은 운 좋게
큼지막한 돼지고기를 사왔었죠.
개인적으로 뼈가 있는 부위를 좋아하는데, 가격도 싸지만 발라낸 뼈는 모아놨다가
돼지국밥이나 라멘 같은 걸 만들어 먹을 수 있죠.
책의 표현을 빌리면 "호두알 크기"로 고기를 깍둑썰기 해줍니다.
독일군 전식 레시피의 특이한 점은 몇 인분인지, 정확히 얼마의 재료가 들어가는지
명확하게 써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군의 경우 100인분 기준으로 정확히 얼마나
어떤 종류의 재료가 들어가는지 써있는 것과 상반되죠. 그래서 독일군 전식을 만들
때는 연도별로 대충 병사당 어느정도의 재료를 보급 받았는지 정리해 놓은 표를
참고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는 돼지니까 당대 보급 받았다는 양보다 고기를 좀 더
넣어 먹는 편이지만요 ㅋㅋㅋ
거기다 1941년식 굴라시 레시피는 또 하나 특이한 점으로 파프리카가루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심플함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아닌가 싶어요. 들어가는 재료로는 돼지고기,
돼지기름, 밀가루 조금, 캐러웨이 씨, 말린 양파, 소금, 후추, 물.
독일군 짬밥을 만들어 먹을 때 주로 사용하는 동독군 반합입니다. 크기와 모양이 2차대전
독일군의 반합과 거의 동일하죠. 코로나 이전에는 가격도 착했던 것은 덤.
가족이서 먹자 캐러웨이! 독일인 아빠도 엄마도 정말 좋아하는 캐러웨이!
말린 양파, 소금, 후추
1941년 즈음이면 독일군 병사 개개인은 한 끼에 고기 50g 정도를 먹을 수
있었지만 저는 200g 사용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반합이 워낙 큰데 겨우
50g 넣으면 그건 고기국이 아니라 고기 담갔다 뺀 국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꿀꿀
밀가루는 국물 농도를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굴라시인데도 파프리카가루가 안들어가는 점이 이해가 안되서 레딧 양덕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전쟁말기가 아닌 이상 제3제국 안에서 파프리카가루 보급이 어렵기는
커녕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재료라 왜 레시피에 없는지 그들도 모르더군요. 그냥
저도 이해하기를 포기하기로 했죠 ㅎㅎ
주말의 이른 아침
해가 너무 부셔서 눈뽕이 쵸큼
딱딱
치이익
화르륵
어렸을 때 불장난을 못해봤지만 나이 먹고 해보니 재밌습니다 ಠ ͜ʖಠ
반합을 열어주고
찬기를 없애줍니다.
그동안 돼지기름을 녹여서 라드를 만들어 주죠.
치이이익
냄새가 엄청 좋습니다 헠헠
기름이 나오면
그 위에 고기를 올려서
살살 볶아줍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돼지고기 조와용 오홍홍홍
고기를 다 익히면 반합 본체에 넣어주고
화력을 조금 더 올려줍니다.
말린 양파와 캐러웨이, 소금 후추를 한꺼번에 넣어주고
촤아아악
안볶은 채로 남겨놨던 돼지고기도 마저 넣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남겨 둔
것이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본체에 넣고 익히는 겁니다 ㅎㅎ
촤아아악
캐러웨이와 양파가 지져지면서 나는 향이 매우 좋더군요 :)
물을 넣어주고
물이 적당한 양이다 싶으면
뚜껑을 닫아서 익혀줍니다. 그런데 저는 저때만 해도 몰랐죠.
반합뚜껑 손잡이를 반대로 놨어야 했다는 것을... 따흐흨
화력 최대로!
그런짓은 하지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뚜껑을 덮은 채로 익히다가 어느정도 됐겠다 싶으면 뚜껑을 열어서
간을 대충 확인하고
밀가루 갠 물을 넣어줍니다.
농도가 알맞다 싶으면 그냥 조금 뜸을 더 들여주면 완성입니다.
유럽에서도 굴라시 여러번 사먹어보고 집에서도 직접 만들어 먹어봤는데
이런 향의 굴라시는 난생 처음이네요 ㅎㅎ
캠핑 온 느낌이라 좋습니다 헤헿
들어간 재료가 워낙 없어 많이 심심한 비쥬얼이긴 하지만 실제 이런 굴라시를 전선에서
만들어 먹던 병사들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겠죠.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웅냠냠
호로록
촵촵촵
워낙 큰 기대를 안하고 먹긴 했지만, 그런 것 치고도 꽤 맛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캐러웨이향을 막 선호하거나 하지도 않지만 돼지고기랑은 매우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고, 들어간 재료도 빈약하지만 불향을 입힌 돼지고기에 진한 양파향까지 더해지니
선선한 초여름 아침 밖에서 뜨끈하게 먹기에 상당히 괜찮은 맛이었어요. 물론 들어간
재료의 양에 비해 맛이 괜찮다는 것이지만요 ㅎㅎ
아아~ 손잡이는 갔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가버렸습니다~ 따흐흨
알루미늄 녹는점이 660도인데 잔가지만으로 붙인 불로 녹여버릴 줄 상상도
못해 생긴 사고네요 :( 이래서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불장난을 해봐야
이런 불상사가 안생기는 겁니다 어흨 마이 깟
어찌됐든 파프리카가루 없는 특이한 굴라시였지만 맛있게 먹었어요.
다음 번에는 몇 년 전 동네에서 잡은 무지개송어로 만든 요리 이것저것을
올려봐야겠어요 ;)
오른쪽 베스트 감사합니다 :D
올린지 거의 한 달이 되서 오른쪽에 갈 줄 몰랐네요 ㅎㅎ
요즘 날도 좋고 밖에서 이것저것 해먹기 매우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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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야외 화덕에서 만드셨군요. 파프리카 가루가 안 들어갔음에도 마지막 굴라쉬 색감은 붉으스레 합니다. 레인보우 송어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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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양파가 있긴 하지만 생양파나 감자 당근이 들어갔으면 더 푸짐할뻔 했읍니다 하긴 전쟁중에 그릉거는 사치이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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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저 화덕 예전에 아버님께서 올리셨을때 그 화덕 이군요 ㅋㅋㅋㅋ 간만에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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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드니 맛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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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만들어놨더니 아버지도 곧잘 사용하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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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야외 화덕에서 만드셨군요. 파프리카 가루가 안 들어갔음에도 마지막 굴라쉬 색감은 붉으스레 합니다. 레인보우 송어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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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심할 적에는 야외활동도 못해서 뒷뜰에 하나 만들었죠 ㅎㅎ 고기만 볶았는데도 저런 색이 나더군요 :) | 22.06.03 09: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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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양파가 있긴 하지만 생양파나 감자 당근이 들어갔으면 더 푸짐할뻔 했읍니다 하긴 전쟁중에 그릉거는 사치이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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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레시피로는 저렇지만 전선의 병사들은 현지에서 구한 채소도 추가로 넣어 먹었을 수는 있겠네요 :) | 22.06.03 10: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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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드니 맛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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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맛있게 즐겼습니다 ㅎㅎ | 22.06.03 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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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저 화덕 예전에 아버님께서 올리셨을때 그 화덕 이군요 ㅋㅋㅋㅋ 간만에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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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만들어놨더니 아버지도 곧잘 사용하세요 ㅎㅎ | 22.06.03 1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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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야외에서 불 피워서 먹으면 캠핑하는 느낌이라 왠지 모르게 더 맛있어요 ㅋㅋㅋ | 22.06.04 0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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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ㅠㅠ 그래도 버리진 않고 그냥 가지고 있어요 ;) | 22.06.04 1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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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오랜만에 올렸네요 ㅎㅎ 서울물곰님도 건강하시고요? 아버지께 안부 전해드리겠습니다 :) | 22.06.06 17: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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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베스트! 축하드립니다. | 22.06.29 15: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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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베스트 간 줄도 몰랐네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 | 22.06.30 16: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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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렸더랬죠 :D | 22.06.30 1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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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합에 이것저것 만들어 먹으면 맛있답니다 :) | 22.06.30 1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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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확실히 사워크라우트만 넣으면 한국식 찌개랑 비슷해질 것도 같네요 :) | 22.06.30 1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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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ㅎㅎ 굴라시는 종류도 엄청 많아서 여러 버젼으로 만들어 먹어도 재밌어요 :) | 22.06.30 1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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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려면 열량이 필요하니까요 ㅎㅎ 하지만 독일군은 전쟁말기로 갈 수록 보급사정이 나빠져서 정말 고기 양을 팍 줄여서 먹긴 했습니다. | 22.06.30 16: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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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무빵은 1차대전 때 유명(?)했던 빵이고 2차대전 당시에도 먹었다는 얘기는 저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물론 2차대전 당시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전국적으로 온국민이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기록을 찾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네요 ㅎㅎ | 22.06.30 16: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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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끼인 땅이다보니 교류도 많았고 전쟁도 많아서 여기저기 퍼진 것 같아요. 헝가리가 오스만 투르크 통치하에 있을 때 아시아쪽에도 퍼졌다고 하고 심지어는 에티오피아까지 퍼져서 현지 레시피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말씀대로 맛있다보니 여기저기 잘 퍼져나간 거겠죠 ㅎㅎ | 22.06.30 16: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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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시피는 밥차가 실어다 주던 것이 아니라 야전에서 개개인이 직접 만들어 먹을 시 사용하던 레시피북에서 발췌한 것이라 일반 레시피보다 더 간소합니다 ㅎㅎ | 22.06.30 16: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