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없지만 이미 한차례 애플파이 만드는데에 실패했었습니다.
반죽이 빵처럼 부풀고 질겨서 먹기 싫어지는 끔찍한 맛이었죠
베이킹은 하나도 모르는 미련퉁이가 레시피를 어기니 될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때 당시의 실패요인은 체친 밀가루를 버터와 계란에 동시에 섞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체 왜 잘못된건지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들을 뒤져가며 본 결과 알았습니다.
우선 파이류를 만들 때 버터 마가린 올리브유 쇼트닝 등등 이런 유지를 넣는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밀가루와 밀가루 사이에 강한 결합이 생기는걸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밀가루들을 버터가 코팅한 결과 각 밀가루 입자 사이에 글루텐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찰기가 없고 바삭하게 된다고 하네요
또한 이렇게 글루텐 결합을 짧게 줄여주는(short)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과에 사용되는 유지류 중 일부를 쇼트닝(shortening)이라 부른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즉 계란이나 물 등의 액체류를 섞을 타이밍은 밀가루 설탕 소금 등을 유지와 섞은 다음이어야 한다는거죠
자 그러면 이제 이 글루텐 형성을 방해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재료를 차게 두고 반죽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는거라고 합니다. 따듯할수록 글루텐 결합이 잘 일어난다는 맥락으로 이해했습니다.
차게, 빠르게는 거의 모든 파이 레시피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이네요
그러면 특별하게 결합을 끊는 방안에 대해서는,
식초 한술 정도를 반죽에 넣거나, 알코올류(보드카)를 물 대신 사용한다면 글루텐 생성을 억제한다고 합니다.
유지류를 넣는 두번째 이유는, 이 유지류들이 고온에서 끓어오르고 반죽의 틈새틈새로 빠져나가면서 파이를 바삭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떄 이 틈새를 만들기 위해 반죽을 냉장시켜야 한다고 하네요.
따라서 올리브유 같은게 아니라 저온에서 고형이 되는 버터나 쇼트닝 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또 의외지만 돼지에서 추출하는 라드도 서양에선 파이에 자주 사용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번 두번째 시도에서 바꾼 것이
1. 마침 돼지기름이 있으니 라드와 버터를 2:1 정도 비율로 넣어서 사용하였고
2. 밀가루와 버터를 먼저 온전히 섞어줌
3. 식초와 술을 한큰술씩 넣어줌
4. (계란 넣는 것을 까먹는다)
네 식초와 술을 한술씩 넣으니까 충분히 덩어리진 것 같아서 계란 넣는 것을 까먹었습니다.
이제 이 반죽을 얇게 밀고, 냉장하고, 틀에 밀고, 다시 냉장하고 180도에 구워줍니다.
필링 없이 굽는 것을 블라인드 베이크라고 한다던가? 아무튼 한번에 굽다보면 파이 밑바닥이 설익을 수도 있다고 해서 따로 먼저 구워줍니다
와 정말 맛있어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끄트머리를 살짝 집어보려 했는데 반죽이 퍼석하고 먼지처럼 흩어져버렸습니다. 결합이 없어도 너무 없었나봐요.
사실 한가지 더 빠트린게, 반죽을 굽기 전에 포크로 구멍들을 내줘야만 반죽이 부풀어오르는 참사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혹은 누름돌 같은 것을 사용하거나)
결합이 거의 안 생긴 탓인지, 반죽이 부풀어오르지도 않더라고요.
뭔가 억울해서라도 어거지로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캬라멜화한 설탕에 다진 사과를 붓고 젓다가 계피 소금 레몬즙으로 간 맞추기. 그 후 수분이 빠져나와 걸쭉하게 된 팬에 전분을 넣어 점도를 잡아줄 것.
사과필링은 제가 생각해도 예술적이었어요.
여기에 뚜껑을 씌워주고 다시 180도에서 굽다보면 제법 비쥬얼은 근사한 파이가 나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좀 기대했어요
자 이제 이렇게 구워진 파이를 그릇에 한 조각 덜었습니다.
단면도 제법 보기엔 괜찮네요
근데 사실은 형체 유지가 안 되서 숟가락으로 퍼내야 했습니다.
파이지가 마치 버터에 절인 밀가루 볶음 맛이었고요
사과 필링이랑 같이 퍼먹으면 생각보다는 먹을만하긴 했어요
생각보다는.
자 그럼 이제 다음에는 음...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막막한 기분입니다.
이번엔 계란을 넣고 버터 양을 줄여보기라도 할까봐요
두번 연달아 실패하니 다시 잡을 마음도 안 나고 이거...
나중에 근사한게 나오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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