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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안고 시작한 한국문화 공유플랫폼 사업이 완전히 실패했다.
직원도, 사무실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얼어있던 땅이 녹고
다시 조금씩 봄 기운이 폭발하던 시기
마음을 다시 잡은 나는 센터의 옆 사무실에 있던 대표에게 부탁했다.
"대표님, 인턴들 쓰고 있는 책상 하나만 빌려주세요."
그렇게 옆 회사의 인턴들이 쓰고 있는 복도 한 쪽 구석, 책상 하나를 빌렸다.
불과 몇 개 월 만에 직원도, 사무실도 없이 그 지경까지 되어버렸지만 아직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기에는 고작 만 서른 살인 나는 여전히 젊었다.
***
우선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여러 가지를 확인했다.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돈 문제’였다.
정부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법인 명의로 대출한 사업비 수억 원이 강한 압박으로 마음을 짓눌러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고민했다.
법인을 파산시켜 버리면 적어도 수억 원의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
이 지경이 된 마당에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만으로 서른 살, 혼자 온전히 떠안고 있기에는 액수가 너무 컸다.
내가 그 돈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을 뿐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정말 피 나게 노력했건만 왜 그 실패는 나 혼자 떠맡아야 된단 말인가?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다행스럽게도(안타깝게도)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내가 결정한 하나하나의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롯이 나에게 있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른 뒤로 적어도 법인명의의 빚을 모두 갚기 전까지는 폐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미혼이다.
책임질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깐 그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정이 있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그래, 애스크컬쳐야. 같이 가자. 이제 옆에 너만 남았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했다.
일단은 돈부터 다시 벌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루프탑 00하루'를 오픈했다.
카페는 아니었다.
방송촬영장으로 대관해주는 렌탈 스튜디오 개념이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허름한 단독 주택을 임대 해서 내외부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수 개월 간 직접 공사했으며,
전체적인 디자인부터 전구 하나, 소품 하나까지 깊은 고민 끝에 지었다.
원래는 나 혼자 한국문화 공유플랫폼을 계속 운영하면서
외국인과 한국인이 여러가지 한국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유재석, 김용만, 송은이, 김숙, 정형돈, 민경훈, GOD, 박민영, 성시경, 에이핑크, 비,
맛있는 녀석들, 스트레이 키즈, 뉴이스트, 나문희, 인순이, 이광수, 김종민 등등.
대한민국의 유명한 배우, MC, 방송인, 희극인, 가수 등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찾아왔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소설가, 시인, 정치인, 예술인, 스포츠 스타 등
각계 각 분야의 셀럽들도 각종 영상이나 인터뷰 촬영을 위해 찾아왔다.
영화, TV 드라마, 웹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콘텐츠, 광고 등
많은 콘텐츠들이 ‘루프탑 00하루’에서 촬영됐다.
한국문화 공유 플랫폼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사무실로 만든,
'루프탑 00하루'는 생뚱맞게도 ‘촬영 스튜디오’에 매우 제격이었던 것이다.
따로 홍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한번 방송가에 입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여러 제작진에게 계속 대관 요청이 들어왔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장사가 잘 되고 있는 셈이었다.
오픈 한 이래로 이후 3년 간 큰 탈 없이 꾸준히 영업이 잘 됐다.
촬영팀이 3, 4일 혹은 그 이상의 일정으로 대관하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났다.
혼자도 갔고, 부모님과도 갔고, 친구와도 갔고, 조카와도 갔다. 3년 간 이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은 있었다.
모든 게 평화로웠지만 불현듯 심장이 크게 뛰고,
갑자기 주위가 새까맣게 어두워지며 두 다리로 딛고 있는 땅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은 철렁함이 있었다.
정체모를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하루하루 쉽게 흘러갔다.
“내 인생이 이렇게 편할 리가 없는데…”
루프탑 00하루를 운영한지 2년 차가 된 그해 연말에는 뒤늦게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내가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고친 건,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가 20년이 넘은 소나타를 -그나마도 아빠가 아는 사람에게 중고로 얻어온 차였다- 운전할 때였다.
내부순환도로에서 차가 갑자기 멈춰버려 혼자 있던 엄마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집에 돌아와 충격으로 얼이 빠져서 몸을 가늘게 떨고 있던 엄마를 위로하며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좋은 차 사줄게.”
그 길로 면허학원을 등록했다.
면허를 취득한 날,
외관은 멀쩡하지만 속은 다 낡아서 카센터 직원이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 타시라"고 했던 소나타는 바로 폐차했다.
부모님께 즉시 출고 가능한 작은 메르세데스를 구입해 선물했다.
부모님께서는 정말 뛸 듯이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주변의 친구분들께 자랑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벤츠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가장 저렴한 모델이었건만...
조금 더 좋은 차를 사드릴까 하는 후회가 스쳤다.
그래서 패밀리카를 한대 더 고심 끝에 골랐다.
포르쉐의 신형 라인업인 ‘카이엔 쿠페’였다.
옵션을 최대한으로 넣어서 계약했다. 이건 가족과 함께 다닐 때 탈 목적이었다.
포르쉐 센터의 담당 딜러는
“계약이 밀려 있어서 출고까지 대기 시간이 최소 1년에서 1년 반 정도입니다.”라고 했다.
상관없었다.
이제 막 면허를 취득한 상태라 운전에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계약 선물로 웬 장난감 차를 보내줬다.
그리고 얼마 뒤 킬로 수가 얼마 안되는 중고차를 한 대 더 구입했다.
BMW의 컨버터블 차량이었다.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메르세데스를 부모님께 선물하고,
동시에 가족 차로 포르쉐를 계약하고,
내 전용 펀카로 BMW 컨버터블을 구입한 그때
나는 걱정거리가 없는 게 걱정일 정도로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
영원할 줄 알았던 루프탑 00하루의 성공은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하루아침에 다시 또 거짓말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눈곱만큼도 예측하지 못한 재앙이 닥친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대가가 찾아왔다.
자만에 빠져 인생의 황금기(30대 초중반)를 배짱이 마냥 놀기만 하던 그 삶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코로나가 심각해지자
기존에 대관을 예약했던 팀들이 줄줄이 예약을 취소하며 환불을 요청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새로운 대관 문의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불길한 쪽으로는 촉이 기가 막히게 발달한 내 직감이 경고했다.
‘코로나19인지 뭔지가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라’라고.
1년 반을 넘게 목 빠져라 기다렸다가 이제 막 인수했던 포르쉐는
그래서 두 달도 채 타지 못하고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했다.
허세 따위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팬데믹이라는 악몽의 시작은 그 정도로 심각하게 다가왔다.
2월말, 아직 겨울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꽃샘추위가 심했다.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부터는 현실이다. 팬데믹은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내 안을 돌아봐야 했다.
왜 또다시 실패했던 걸까.
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더 잘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보편적으로 정리하여,
귀한 시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가치 있는 메시지를 줄 것인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과거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실패의 실력』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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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실력』 연재는 다음 브런치에서도 소소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IP보기클릭)211.201.***.***
이 형님이 진짜 찐인 이유 1. 나라면 쪽팔려서 못할것같은 실패얘기를 패기넘치게 그래도 담담하게 전달하는것 2. 이런글을 쓰는 이유가 이러한 실패를 막아주기 위해서 말하는것. 존경해요~ㅋㅋㅋㅋ
(IP보기클릭)182.220.***.***
자기 이름걸고 이렇게 경험담 공유할 용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있을까요. 귀중한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맨날 성공만 조망하는 요즘 시대에 오히려 눈에 띄는 글 같습니다. 계속 연재해주세요!!
(IP보기클릭)114.201.***.***
잘봤습니다. 천국과 지옥 왔다 갔다 하면서도 멘탈 잘 잡는게 대단하네요. 와 그나저나 촬영팀 양심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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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걸고 이렇게 경험담 공유할 용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있을까요. 귀중한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맨날 성공만 조망하는 요즘 시대에 오히려 눈에 띄는 글 같습니다. 계속 연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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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님이 진짜 찐인 이유 1. 나라면 쪽팔려서 못할것같은 실패얘기를 패기넘치게 그래도 담담하게 전달하는것 2. 이런글을 쓰는 이유가 이러한 실패를 막아주기 위해서 말하는것. 존경해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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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것을 저도 서비스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써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만의 가치관이 있는데 100의 사람이 온다면 그중 정말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사람은 10은 될것이고(좋은방향이든 나쁜방향이든), 그중 60은 메아리처럼 내가 이러한 행동을 했을때 다시 비슷한 행동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나머지 30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계속 부딛쳐야 공략이 가능한(자기만의 베리어가 있는)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연락처도 드렸는데, 얼른 연락주세요. 서울이나 원주 근처시라면, 근 시일내에 커피나 식사 한 번 하시죠^^ | 22.08.02 1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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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지않은 시기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이도? 거주 및 직장이 서울이라 커피정도라면 저에게 있어서도 설레는 만남이 될 것 같습니다. | 22.08.02 1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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