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 살고있는 아재 루리인입니다.
루리웹은 1999년쯤 나우누리 VG 닌64 게시판에서 활동하다가 하나로통신 가입하면서 넘어왔으니
초 아재급 루리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항상 집에 아케이드 머신 놓는게 꿈이어서
이베이 같은 경매 사이트를 뒤지다가 그냥 내가 만드는게 낫겠다는 결론이 왔습니다.
왜냐면 기기값은 납득 가능한 수준 (300-500만원 선) 이었지만
배송을 안해줍니다. 트럭 렌탈 해서 왕복 30시간 운전 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인지라...
결국, 고민 끝에 일단 동네 장터에서 50 달러에 티비를 업어왔습니다. 34인치 소니 베가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평면티비입니다.
당시에 돈 주고 샀으면 500만원은 족히 나갔을 괴물 티비입니다.
이 티비를 구한 이유는 아케이드 머신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가격이나 무게 문제로 LCD 모니터를 쓰면 좋겠지만, 브라운관의 그 가로줄과 가로줄 사이의
미묘한 라인 느낌을 내려면 브라운관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는 집도 좁은데 뭘 또 사들이냐고 쌍욕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돈주고 사오려면 트럭 빌려서 직접 가져와야 하고,
상태가 꺠끗한 브라운관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이제 몇년 안남았다고,
막상 나중에 구하려면 없거나, 고장을 감수해야 하거나, 비싸다고 하니까
조용히 넘어가 주십니다.
사오자 마자 바로 아케이드 머신 제작은 못합니다.
적절한 재료를 고르고, 작업 날짜도 잡아야 하고,
무엇보다 안에 기기를 뭘로 할지,
요즘 대세인 라즈베리 파이로 할지, 저렴한 PC를 구할지
여러가지 고민이 남아있습니다.
그동안 제 티비는...
아이들의 위 머신으로 활약합니다.
닌텐도 스위치만 하다가 모션이 많이 필요한 게임을 하니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오락실 게임은 버추어파이터 1과 2였습니다.
마치 카메라맨이 현장에서 촬영해서 보여주듯 나오는 박력있는 화면과,
그전까지 캡콤 게임등에서 보던 오락느낌 물씬 나는 뿅뿅 사운드 대신에,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웅장한 입체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 고인물이 없는 게임.
6버튼 격투겜이 난립하는 가운데 심플하게 P펀치 K킥 D가드만 이용해
즐기는 게임은 여러모로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티비를 구입한지도 한달 반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다양한 자재 테스트를 했고,
작업을 도와주실 형님도 구했고,
마침 아이들과 아내가 여행을 떠나서 집에서 마음 놓고
위험한 도구들로 목공 작업을 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가게에 다서 이것 저것 도구들을 구입힙니다.
작업에 쓰일 나무는 멜라민 보드입니다. 절삭면이 우둘투둘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지만,
엄청나게 튼튼하며, 가격도 매우 저렴하고, 무엇보다 코팅이 되어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한 나무입니다.
제 차에 실을 수 없어서, 어렵게 부탁을 드리자
KFC 할아버지께서 친히 오셔서 나무를 반으로 잘라 주십니다.
나사못, 경첩 등등...각종 자잘한 부품들도 구입합니다.
가구조립 경력이 대략 30년이 넘으신 달인 형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사진 하단에 보이는 멜라민 보드..8개 차에 싣는데
차 트렁크에 흠집이 정말 많이 났습니다.
눈물이 츄르르...그래도 헝그리한 작업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저기 동그랗게 뚫은 부분은 나중에 게임기 정면 하단, 무릎이 닿는 부분입니다.
저렇게 동그랗게 차면 곡면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두어시간 씨름 끝에 하판 형태는 거의 잡았습니다.
이제 무려 85킬로그램을 자랑하는
34인치 브라운관 티비를 버틸 수 있게끔 지지목을
달아 주어야 합니다.
연필로 가운데 표시선을 잘 내고..
티비가 올라갈 자리와 버팀목을 만듭니다.
아케이드 느낌을 내기 위해 티비는 10도 정도 기울여 주었습니다.
더 기울이고 싶었지만, 그러면 뒤로 너무 뚱뚱해져서
나중에 이사갈 때 문밖으로 뺄 수가 없습니다.
전문적인 작업대가 없으니 이렇게 아이들 공작용 의자를 놓고
작업을 합니다.
이제 티비가 기울여질 때 미끄러져 흘러내리지 않게
고임목을 올려줄 겁니다.
노트북 뒤로 보이는 긴 나무가 고임목입니다.
종이로 보이는 스케치들이 이번 작업에 쓰인 설계도의 전부입니다.
30년 경력의 목공 형님은 머리속에 캐드가 인스톨되어 있습니다.
상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판이 티비를 10도 기울였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려봅니다.
자 이제 육중한 티비 녀석을 티비대에서 내려 눕히고
가장 빡센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 텔레비전이 80킬로인데,
브라운관쪽으로 모든 무게가 쏠려 있어서 들고 옮길 때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 잡아도 양 팔에 무게분산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티비 처음 사서 들고 올때도 남자 둘이서 옮기는데 다섯 발짝 떼고 한번 쉬며 겨우겨우 옮겼었습니다.
5분동안 스트레칭하고 마인드컨트롤 하고, 혹시나 있을 불상사에 대비해
척추 디스크를 모두 손으로 꾸꾹 마사지 한 후에 겨우 올렸습니다.
강한 희열이 왔습니다.
상판 조립을 후다닥 끝냅니다.
작업 내내 먼지가 엄청나게 많이 났습니다.
저때가 아직 3월인데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너무 추워서 실내에서 부득이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작업 다 끝나고 카페트 사이 사이에 낀 톱밥 제거하느라 진공청소기를
몇날을 돌렸습니다.
자 이제 조이스틱부를 구현하기 위해 도면을 대고 구멍을 내야 하는데...
아뿔사..
구멍내는 드릴이 사이즈가 안맞습니다.
저는 그냥 대충 뚫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1mm의 오차도 용납 안하네요.
결국 작업을 종료하고, 이베이에서 드릴 세트를 구입합니다.
카본 커터 라고 하는 제품입니다.
꿈에 그리던 버추어 파이터를 일단 USB 패드 연결해서 돌려봅니다.
그런데 어째 거대한 아이폰3GS 같은 느낌이 나네요.
크기 가늠을 위해 발을 대 봅니다.
손은 사진 찍느라..
집에 두고 나니 뿌듯합니다.
의자가 없어서 그냥 피아노 의자 놓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드릴 배송이 늦어져서 (중국에서 오는거라 오래 걸림)
남은 나무로 뭐 하지 하다가
아직도 아이들과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떠올리며
화장대용 수납함을 제작했습니다.
요렇게 옆에 놓습니다.
너저분하던 화장품들이 좀 정돈이 되었습니다.
창찬 +1을 획득하였습니다.
드디어 부품이 다 왔습니다. 버튼은 1p가 빨강, 2p가 파랑입니다.
나무에 카본 커터로 구멍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제 다 됐구나!
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해 보니 스틱이 제대로 안됩니다.
알고 보니 제가 산 스틱이 완전 싸구려 똥망 제품이었습니다.
리뷰 사이트에서 그냥 버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삼덕사와 산와 스틱 중에서
미국에서 구하기 쉬운 산와 스틱을 삽니다.
대부업체가 별걸 다 만드네요.
..는 뻥이고 그냥 회사 이름이 같을 뿐입니다.
산와 스틱이 왔는데,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번째는, 스틱이 작아서, 멜라민 보드의 두깨에 메립할 경우, 스틱이 너무 조금만 위로 솟아오르는 문제,
두번째는, 산와 스틱과 제가 쓰는 USB 보드와 연결할 경우, 연결 케이블이 따로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새로 나무를 삽니다.
원래 있던 멜라민 보드는 두깨가 0.75 인치인데, 0.5인치 나무로 새로 구했습니다.
그리고 케이블은 이베이로 주문합니다.
아이들과 아내가 돌아올 생각을 안합니다.
그래서 저도 훌쩍 여행을 떠났습니다.
프랑스 파리..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에펠탑은 안 보이고, 맨 나무 작품들만 보입니다.
저 나무로 저런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아직도 컨버터 케이블이 안왔습니다.
그래서 뭐하지 하다가 창고에서 쓰다남은 나무들이 있길래
슥슥 도면을 그립니다.
남아있는 나무들입니다.
미국에서 집 지을때 쓰는 뼈대목인데,
전 주인이 버리고 간 것을 창고 구석에서 찾았습니다.
슥슥 작업을 합니다.
피아노 의자로 게임하는게 영 별로여서
벤치를 만들겁니다.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게 2인승으로...
모양이 다 나왔습니다.
에스프레소색과 나무색을 반반 섞은 도료로 색을 입힙니다.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
게임기 앞에 세팅해줍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주문했던 0.5인치 나무를 이식해줄겁니다.
나무 이식이 끝났습니다. 스틱과 버튼 들어갈 구멍도 잘 났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번엔 데칼로 붙일 게임기 디자인을 할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임들 이미지를 모아서 작업을 합니다.
수퍼마리오, 댄스댄스 레볼루션, 버처파이터, 메탈슬러그, 젤다의 전설 바람의 택트 등등
많은 게임 이미지를 구했습니다.
레트로 게임들은 고화질 원본이 디지털화된적이 없어서인지 구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구했더라도, 게임 박스나 씨디 프린트를 스캔뜬 것이 많아서
인쇄용으로 쓰기 쉽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디자인이 다 나왔습니다.
보름 후에 한국에 잠시 다녀올 예정이라,
한국에 아는 업계분께 부탁을 해 둡니다.
며칠 후, 인쇄가 잘 나왔다고 인증샷이 왔습니다.
고마운 형님입니다.
한국 출국을 이틀여 앞두고, 기차를 타고 워싱턴 DC 근처 동네로 향합니다.
이곳은 봄이 완연합니다. 제가 사는 곳보다 남쪽이거든요.
(제가 있는 곳은 뉴저지)
여기 온 이유는 친구가 치과를 개업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요청으로 컴퓨터와 티비, 전기 관련 공사를 선물로 해 주기로 했습니다.
라우터 설치도 했고,
벽에 지저분하게 선이 보이지 않게 컴퓨터와 티비로 연결해 주고,
조립컴도 6개 만들어서 병원 방 곳곳에 설치하고,
나중에 치과 진료의자 위쪽으로 들어올 티비를 위해 전선도 위로 내 줍니다.
친구네 동네는 봄기운이 완연~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며칠 사이에 제가 사는 동네에도 그 사이에 개나리가 피었네요.
깡시골 동네입니다.
인구가 5천명이 채 안되는...
케이블 업체에서는 아직도 배송이 안왔습니다.
알고 보니 판매자가 실수로 택배 송장번호만 생성시키고 부치질 않았네요.
환불 요청하고 다시 주문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열흘 정도 머무른 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사실 한국에 있었습니다.
가족을 한달만에 만나니 반갑습니다.
자 이제 케이블을 모두 잘 연결해줍니다.
뿌듯뿌듯합니다.
가동 준비 완료! 아이들이 신났씁니다.
아침잠이 없는 막내가 제일 먼저 호사를 누려봅니다.
자, 이제 한국에서 가져온 데칼을 붙여주기로 합니다.
데칼을 바닥에 놓아봅니다.
디자인한대로 잘 나왔습니다.
상판을 꺼내서 데칼을 꼼꼼히 발라줍니다.
좌측 사이드는 마리오와 젤다로, 우측 사이드는 제가 좋아햇던 게임과 하드웨어들 아트워크를 모아서 만들었습니다.
게임큐브와 미국형 패미컴 패드, 그리고 피크민등이 보이네요.
내사랑 마크로스도 보입니다.
아내가 옆에서 씩씩대며 저를 도와줍니다.
전면부에 버추어파이터 데칼이 예쁘게 잘 붙었습니다.
애들이 신났습니다.
마리오와 젤다가 시공을 넘어 같이 마주하니 뿌듯합니다.
우측도 잘 붙었습니다.
뿌듯뿌듯합니다~
나중에 컴퓨터와 전선이 보이는 앞에는 경첩을 달아 문을 만들 생각입니다.
마리오를 돌려 봅니다. 아케이드 스틱으로 마리오는 너무 생경하네요.
뿌듯한 마음으로, 이번 작업을 도와주셨던
30년 목공 형님과 프린터 형님에게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싸늘합니다. 상판에 조이스틱 두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른 나무가
영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남은 자투리 스티커를 쓰기로 했습니다.
예쁘게 업그레이드 해주마!
힘들게 조이스틱을 다시 다 분리하고,
데칼을 붙입니다.
엎드려서 작업 하니까 힘드네요.
이렇게 다 구멍을 다 내고, 마무리 해줍니다.
또 아침잠 없는 막내놈이 먼저 일어나 호사를 누립니다.
2월 10일쯤 티비를 사와서 5월 12일에 작업이 마무리되었으니, 장장 3개월이 걸렸네요.
그런데 아직 하단부는 마무리가 안된것은 함정...
오랫동안 원하던 것을 긴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워 진행하다보면
사실 완성보다는 그 과정에 더 짜릿함이 옵니다.
마치 실제 연애기간보다 썸 탈때가 더 좋았던 것처럼??
아무튼 오랜 시간동안 이걸 만들며 행복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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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에러나지 않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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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티비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커졌어요. 그런데 2인용 할때 좌우로 여유가 있어서 좋긴 하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 19.05.14 17: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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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1년인가요? 대신 세 주셔서 감사합니다! | 19.05.17 04: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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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질려하지 않고 잘 놀아서 뿌듯하네요 | 19.05.17 04: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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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부시샵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굽신굽신 | 19.05.24 0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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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뽕추니님! | 19.05.24 0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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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아재한 댓글 감사합니다~ | 19.05.24 0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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