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날카로운 통찰, 그러나 닿지 않는 목소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자. 살며시, 영원히.
-본 작의 캐치프라이즈-
초등학생 때 청각장애인 쇼코를 괴롭힌 쇼야는 일이 커지자 주범으로 낙인 찍혀 반대로 자신이 왕따를 당하게 된다.
고등학생이 되어 쇼코에게 물어준 보청기 값을 어머니에게 모두 갚은 쇼야는 미련도 없겠다. 극단적인 선택을 준비하고
그 준비과정 중 하나인 쇼코를 만나러가 한 마디 하게 되는데.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목소리의 형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입니다. 저도 최근에 다시 보니 장단점이 정말 확실히 나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해자의 판타지라는 비판부터 흐지부지된 주변 인물들의 서사까지 원작이 아닌 영화만 보았을 때는 상당히 많은 단점이 부각되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저는 이 작품이 학교폭력에 대한 통찰만큼은 날카롭게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목소리의 형태의 어떤 부분이 반발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또 어떤 부분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가해자의 판타지라는 비판에 저는 ‘그렇게 보여질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는 만큼 관객들의 포커스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대상이 누구이냐에 따라 어떤 작품은 평이 확연히 갈리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목소리의 형태는 도입부 특성 상 가해자의 판타지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작품은 초반부 과거를 보여주면서 쇼야의 초등학생 시절을 비춥니다. 지루했던 시기부터 쇼코를 처음 만나고 흥미를 가져 괴롭히게 되는 과정까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죠.
그러다 상황이 반전되며 쇼야가 학교폭력의 피해를 입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는 비교적 짧게짧게 묘사됩니다. 거기다 이미 쇼야는 앞서 쇼코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걸 그대로 돌려받는 식으로 연출하다 보니 업보를 맞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기 쉽죠.
그렇다보니 피해자가 된 가해자 포지션의 쇼야에 곧바로 공감하는 것이 원래도 어려운데 현재로 돌아오며 쇼코를 다시 만나 친근하게 구는 것은 이질적으로 보일 여지가 충분합니다.
정리하자면 작품의 구조 상 관객은 처음에 쇼야보단 쇼코에 몰입하면서 작품을 보기 쉬운데 그렇게 감상하게 되면 뒤의 모든 이야기가 공감하기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영화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은 쇼코가 아닌 쇼야니까요.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학교폭력에 대해 가볍게만 다루고 있는 가하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은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단순히 이분법으로 갈라 말할 수 없고 한 두 명의 싸움으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교라는 좁은 사회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동조하는 주변 학생들이 만드는 분위기가 전부 있어야만 학교폭력 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창작물이 학교폭력을 단순하게 엄청 나쁜 가해자와 무고한 피해자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거기에 정의구현이라는 명목 하에 가해자를 단죄하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게 가장 쉽고 재미있으니까요. 하지만 학교는 그리고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나오기 때문에 현실의 학교와 학교폭력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목소리의 형태는 학교폭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와 고찰이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는 쇼코에게 포커스가 맞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작품의 의도가 그렇지 않듯 극초반부 이후에는 이야기의 중심을 끝까지 쇼야에게 맞추고 진행됩니다.
그것도 학교폭력의 ‘피해자 쇼야’가 아닌 ‘가해자였던 쇼야’에게 말이죠.
방식과 장르에 대한 걸 살짝 미뤄두면 쇼야는 가해자로서의 책임과 무게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쇼코의 여동생 유즈루와 만나면서 자신이 얼마나 과거에 했던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일이 잘 풀리면서 친구들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도 스스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그 와중에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를 만나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 쇼코도 자신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죠.
학교폭력에 대한 통찰은 쇼야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특징과 묘사도 훌륭하죠.
한 사람의 폭주에 동조하는 친구들,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는 방관자들, 중재하고 옳은 길로 이끌어야 할 선생의 태만 등 아이들이 보호 받고 교육 받아야 할 학교에서 왜 학교폭력이 벌어지는 지에 대한 요소가 짧은 시간임에도 아주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작품 초반부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른 중 후반부에도 사건의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면서 인물들의 생각에 대한 변화, 쇼코와 쇼야에 대한 시선들을 상기시키며 깊이를 더해주고 있죠.
하지만 이런 좋은 통찰에도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지 않게 하는 단 하나의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이 작품의 장르 ‘로맨스’ 라는 겁니다.
‘영화 목소리의 형태’의 가장 큰 단점은 쇼코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감초역할로 분량도 조금 밖에 받지 못한 토모히로가 더 입체적으로 보일 정도로 쇼코는 아주 평면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토모히로는 그 짧은 분량에도 유즈루와의 대화에서 성격을, 놀이공원 파트에서 왜 이렇게 붙임성 있는 인물이 혼자였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그리고 말투와 행동에서 쇼야를 얼마나 아끼지를 보여주지만
쇼코는 많은 분량을 받았음에도 왜 이 인물이 쇼야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지, 어쩌다가 먼저 좋아하게 되는지, 또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지에 대한 충분히 설명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 쇼야가 찾아왔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고 아량이 너무나도 넓어 과거의 행동을 용서 했다고 치더라도
중간부터 갑자기 쇼야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먼저 고백하는 장면은 쌓아온 서사를 한 번에 흔들리게 하는 뜬끔포 처럼 느껴지죠.
학교폭력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었음에도 피해자 포지션인 쇼코가 어떠한 ptsd나 거부감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오랜만에 만난 친구 쯤으로 쇼야를 대하고 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쇼야의 캐릭터를 그렇게 잘 묘사 해 놓고도 가해자의 판타지라는 말을 듣는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엔딩부분도 이와 이어지는데 쇼코가 사람처럼 안보이니 후반부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그걸 구하다가 쇼야가 다치게 되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쇼야가 아닌 쇼코가 뛰어다니는 것도 딱히 감흥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쇼코가 자신 때문에 관계가 틀어졌다고 생각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가 쇼야를 보고 정신을 차려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오해를 풀어낸다는 것은 쇼코에게 아주 의미 있는 장면이지만 쇼코에 공감할 수 없으니 그냥 깔끔한 엔딩을 위한 과정 정도로만 보이죠.
동조자나 방관자였던 인물들까지 한데 묶어 어영부영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의 엔딩을 쳐버리는 건 덤이고요.
목소리의 형태가 절대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출적인 부분은 지금 보아도 정말 뛰어난 수준이고 특히나 마지막에 쇼야가 귀에서 손을 땜과 동시에 작품 내내 주변인들에게 붙어있던 x가 일제히 떨어지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반부에 쇼야는 귀를 막거나 눈을 가리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의 원인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소통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주며 매듭을 짓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날카로운 통찰과 뛰어난 주인공 캐릭터 묘사에도 로맨스라는 장르와 쇼코의 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모든 요소가 무너져버린 아쉬운 작품.
작품 내에서와 달리 현실까지는 결국 닿지 못한 짧은 목소리를 낸 ‘목소리의 형태’가 말합니다.
"나랑 니시미야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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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작품 초반만 좋게보다가.. 전개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도 들더군요. 이건 극장판이 아니라 TV시리즈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속으로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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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가 있었네요 수정하겠습니다! | 24.05.18 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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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 24.05.19 2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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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작품 초반만 좋게보다가.. 전개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도 들더군요. 이건 극장판이 아니라 TV시리즈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속으로 몇번이나 외쳤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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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주변인물들과 쇼코에 대한 이야기가 더 세세하게 나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24.05.18 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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