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한 번 북극 항로를 지난다
시인이 전화를 해서는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옆에서 그의 어린 아들이 울음을 말리는 듯한 기척이 들
렸다
아들이 손으로 아버지의 전화기를 막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상황이 하도 그래서 나는 같이 울까 했지만
아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뭐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해서
이어붙여도 붙여지지 않아서
그게 시인이라서
뭐라도 쏟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울고 싶을 때가 그러한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더 중요하겠는데
어딘가로 여행중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견뎌야 하거나 견딜 수 없을 때
시차가 있거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기분 속에 빠져 있거나
특별히 답할 게 없거나 대답할 거리도 아니며
한 줄 적는 일도 곤란하거나
닿는 바람도 싫어지고
그런 게 있어서
한 노래만 열흘 동안 듣는 나를 때리고 싶거나
모든 것이 소망했음에도 깜깜하거나
누가 오래 아프거나
입을 여는 일이 서걱일 때
그럴 때가 있어서
어떻게든 이으려 애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모두를 없애는 것도 중요할 때
이기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중요할 때
이병률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시인선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