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엔딩을 봤습니다.
독특하고도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곳곳에 배치된 섬세한 요소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배달을 메인컨텐츠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근데 생각보다 재밌다! 라는 느낌이었죠.
이 작품은 여러모로 하나의 실험이었습니다.
뭐랄까, 영화로 치면 히어로물을 만들랬더니 나온 결과물이 조커? 이런 느낌??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적인 요소는 보통 말초적입니다.
화려한 액션, 묵직한 타격감, 아니면 한계를 돌파하는 스피드감이라든가..
이 작품은 그런 말초적인 자극을 넘어, 좀더 고차원적인 만족감과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큼 호불호도 강하게 갈리며, 게임에 대한 평가도 절하될 수 있음이 이해됩니다.
특히 초반 구간은 전투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그 빈자리를 택배의 고단함과 유려한 자연 배경, 거기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채웠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래서 중후반부는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게임이 점차 편해지고 빨리지면서 배달 그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부가 요소 같은 느낌이
되거든요.
물론 끝까지 처음처럼 피로했다면 엔딩까지 달릴 수 없었을 수도..
고단함.. 고독함.. 저는 이게 이 게임의 색채 내지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토양으로 작가가 말하는 '연결'이란 주제의식이 피어나지요.
타임폴은 쏟아지고, 길은 험하고.. 이런 순간에 누군가가 놓아둔 사다리를 발견할 때의 그 고마움, 반가움..
또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재료를 모아 국도를 복구하고 연결했을 때의 뿌듯함..
이런 게 데스 스트랜딩의 '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다니.. 그것 참 신기한 경험이었죠.
이 작품은 그런 감동을 잘 느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디자인되었으며, 좋은 만듦새가 그 바탕이 되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데스 스트랜딩 말고도 스토리 중심의 웰메이드 게임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작의 스토리 자체도 그렇게 막 빼어나단 느낌은 아녔습니다.
설정적인 부분에서 허점이나 어색한 부분도 많고, 반전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이 찡했던 건, 감독의 역량이었다고는 생각합니다.
스토리 요소가 그렇게 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건, 그 스토리의 구도? 시점?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작품은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 깊이 배치된 느낌입니다.
그냥 주인공 캐릭터를 조작한다, 혹은 대신한다는 느낌을 넘어 나도 같이 참여하고 있달까요.
이 게임 속 인물들은 말이 참 많습니다.
모두가 샘에게 말을 걸어요.
샘조차 스스로에게 말을 겁니다.
근데 그 말이 동시에 플레이하는 유저에게도 걸려오는 느낌입니다.
중간중간 살짝살짝 제4의 벽을 넘는 듯한 부분이 있고, 실제로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였을 때 진행이 편해지고,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집니다.
동시에 이런 언어적 요소들이 게임의 설정과 자연스레 어우러집니다.
데스 스트랜딩.. 분명 '해변'에 좌초된 동물들의 죽음을 일컫는 단어라고 들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현실과 해변, 삶과 죽음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BT 역시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샘은 하나의 '브릿지', 다리이자, '스트랜드', '끈'이 되어 사람들을 연결시킵니다.
이런 상징적인 요소들이 대사 하나하나에서 등장할 때마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새삼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더군요.
결국 코지마 감독은 기성 예술에 필적하는 하나의 인터랙티브한 영상 예술로서의 게임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이 작품이 단지 일개 웰메이드 게임과는 조금 결이 다른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지금 한창 고티 선정이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이 그 기준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나 취향 문제를 떠나서요.
사실 전 히데오 코지마가 누군지도 잘 모른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그만의 독특한 맛에 팬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팬들이 왜 열광하는지 알 거 같아요.
정말 묵직한.. 꽉찬 경험으로 가득찬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엔딩을 본 후에도 택배는 종종 계속되겠지만, 다음 작품 역시 기다려집니다.
(IP보기클릭)175.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