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하나, 그리고 철충 한 마리(上)
7편: 구덩이 속의 네 B급, AGS하나, 그리고 철충 한 마리(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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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읽고 넘어가도 상관 없는 잡담들
* 원래 이번 주 초에 소설을 다 업로드하고 주말 즈음에 잡담을 겸한 후기를 올리겠다고 썼는데, 주말에 준비할 게 생겨서 짬이 생긴 지금 글을 쓰게 되는군요. 앙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면서 재밌었듯이 여러분도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다 올리니 뭔가 시원섭섭하군요. 쓸 때는 나름 고생했는데, 올리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ㅎㅎ;;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사실 이야기는 애초부터 10편이 이미 다 쓰여 있었던지라 게시판에 한 번에 올릴까도 생각했습니다만, 그랬다간 혹시 게시판 도배가 될까 싶어 하루에 1~2편씩 올렸습니다. 모쪼록 그게 이야기를 읽거나 몰입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이게 이렇게 길어질 글이 아니었는데요.
원래는 딱 저 절반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원래 이야기에서는 아쿠아는 확정적으로 죽이고, 그리고 시나리오 진행에 따라 거기서 하나 정도를 더 희생시킬 계획이었습니다(제가 사실 매운맛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사실은, 꽤 잔혹하게 묘사해볼 생각이었어요. 희망을 눈앞에서 짓밟고, 좀 더 고통스럽고, 좀 더 유혈이 낭자하게...헤..헤헤헤....
그런데 절반쯤 진행한 걸, 아는 친구에게 보여주고 앞으로의 스토리 계획을 말하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 살리쟈....매운건 공식만화로 족하다...."
이 시기가 마침 김턱파공님 만화에서 바닐라가 푹찎악 당하고 있을 때라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 피드백을 받아들여서 시나리오 흐름을 대대적으로 수정했습니다. 덕분에 분량이 좀 더 길어지게 되었는데요, 읽는데 지루함을 느끼시지 않았을 까 조금 걱정됩니다.
원래의 시나리오에서는 1화에서 샌드걸과 브라우니 사이의 논쟁에서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을 생각이었고, 독자 여러분이 선택하게 하고 싶었어요.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브라우니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습니다만, 뭐 덕분에 전부 다 살렸으니 다행이면 다행이려나요(톰이요? AGS는 생명이 아닙니다 휴우먼)
어쨌든,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더 바랄 게 없겠고, 좋게 평가해 주셨으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장편을 쓰게 되어서 쓰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읽는 분들도 쉽지 않았을 것인데, 끝까지 읽어 주셨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요.
이 정도 분량의 라오진 팬픽션을 또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이 글도 원래 별 생각 없이 애들을 괴롭혀보자! 하고 길게 쓸 생각 없이 썼다가 길어진 글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음에 여유가 된다면, 시간이 난다면, 또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다른 (아마 이보다는 훨씬 더 짧은)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제가 라오진에서 가장 처음에 써 본 이야기(세띠가 출시될 때 그 설정에 감명받아서 짧게 써본 글)를 올려볼까 하는데, 살짝 맵습니다. 수위가 애매한데 19금게에 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다시 한 번,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너스!
"흠, 그래도 잘 지내는 거 같지 말임다"
"뭐가요?"
"아쿠아 말임다."
아무런 수식어 없이 보통명사 '아쿠아'를 말했지만 둘 사이에서, 그리고 이 카페에서 그게 어느 아쿠아를 말하는지는 비교적 명확했다.
오르카의 '카페'는 말이 카페의 구색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이 처한 상황 - 인간 사령관이 오고 나서 나아지긴 했지만, 확실히 카페를 차릴 만큼 여유가 있다고 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 - 상 '카페'라기보다는 '기호식품 배급소'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난다. 매일 아침 일찍 처량한 눈빛으로 일어나서 감자를 깎으러 나오는 아우로라의 눈빛을 본 이라면 누구라도 이 '카페'라는 곳이 교양 있게 모여앉아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담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카페의 구석 중의 외딴 한구석에 콕 박혀서, 전투복을 벗지도 않고 - 왜냐하면 둘은 몇 시간 후에 작전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카페에 나올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분명 임펫이 뭐라 할 만했다 - 누군가에게 들킬새라 최대한 배경에 녹아드려 애쓰는 두 스탈라인 병사들이 커피를 홀짝임에도 전혀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11년차는 분명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투박함과 엉성함 속에서도 카페는 어쨌든 카페였고 그것도 오르카내 유일한 카페였기에 그곳은 항상 카페인과 당분을 찾는 바이오로이드 - 오르카에서의 노동은 빈말로 말해줘도 녹록치 않다. 위안점이라면 최고지휘관인 인간 사령관도 그녀들과 똑같이 과로에 치여 산다는 거지만 - 들로 붐볐다. 덕분에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완벽하게 존재감을 지우고, 카페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각각 카페라테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지켜볼 수 있었다. 분명, 그렇게 손님이 넘쳐나면 카페 직원들은 쉴 틈도 없이 일해야 할 것임이 분명했고, 당연히 피곤할 것임은 더더욱 분명했다. 사령관에 의해 카페 책임자로 배정받은 아우로라의 눈 밑에 날이 갈수록 다크서클이 짙어져 가는 걸 보면 그건 확실했다. 아니 그래서 왜 사령관에게 민트초코랑 블루 봄베이 같은 걸 권해서...
"뭐, 걱정하실 만하긴 함다. 아쿠아 걔는 이렇게 바빠본 적이 평생 없었을 검다. 카페 일은 처음일 테고 말임다"
"거, 걱정된다뇨? 누, 누가요?"
"??? 아쿠아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오신 거 아님까?"
"그, 그럴 리가요! 그그, 그냥 같이 작전 뛰기 전에 당신 커피나 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418!"
"그렇슴까? 더치걸들이 아쿠아에 대해서 좋게 말하던데 얘기 듣고싶으시지 않슴까?"
"그런 건 또 어디서 듣고 다니는 거에요?"
브라우니는 헤헹, 하고 두 손을 모아 깍지꼈다.
"그래서 듣고 싶으심까, 안 듣고 싶으심까?"
".....조, 조금은 들어볼까요"
브라우니는 씨익 웃었다. 우리 분대장은 솔직하지 못한 게 너무 귀엽단 말이지.
"지난번에 더치걸 제 2작업반 애들이 자기들이랑 말이 통하는 아쿠아는 처음 본다고 했슴다."
"?"
"굴착작업 중에 매몰되었던 애가 하나 있었다지 말임다. 구출될 당시엔 멀쩡했는데 요번에 광물채굴 나가니까 걔가 공황장애를 일으켜서 지하로 들어가질 못했다고 했지 말임다"
더치걸들의 삶이라. 레프리콘은 생각했다. 또 다른, 버려지고 무시당하는 B급들의 삶. 어쩌면, 그녀들보다도 더더욱 비참한. 아마도 그녀들의 삶도 그다지 즐겁다곤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중지하고 카페로 데려와서 아이리쉬 커피라도 좀 먹이면서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그 때 아쿠아가 많이 도와줬다고 함다"
"어떻게 도와줬는데요?"
"꼭 안아줬다고 함다"
"....."
"작업반장이 놀랬던 모양임다. 그 경험을 이해하는 건 당해 본 년만 아는데, 더치걸들의 사정을 이해하는 아쿠아는 처음 봤다 이검다."
지하에 홀로 갇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그 아이 본인도 더치걸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쿠아가 그 더치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을 테지만, 동시에 그 더치걸이 가장 원하던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외롭고 절망스러울 때, 스스로의 무력과 무능에 몸서리가 쳐질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 손을 잡아 주는 것.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주는 것. 정말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누군가가 위로해주는 것. 괜찮다고, 너는 열심히 했다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고, 내가 옆에 있다고.
"그러니까 좀 자랑스러워하셔도 됨다"
"제, 제가 왜 자랑스러워해야 해요? 아쿠아가 제 애도 아닌데. 페어리들이 자랑스러워 해야겠죠!"
"그러면 얼굴에서 그 엄마같은 미소 좀 지우시지 말임다. 아이도 없으시면서."
브라우니는 헤헹, 웃고선, 그녀들이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카페 바깥 복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숨어서 들으시지만 말고 나와서 같이 수다떨지 말임다"
복도가 꺾이는 구석에서 멋적은 표정을 하면서 샌드걸이 나타났다.
"제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일병?"
"머리핀 반짝였지 말임다. 그리고 저 이제 상병임다. 진급했슴다"
"오, 그래요? 그럼 이제 당신 분대장과 동 계급입니까?"
"아니지 말임다, 분대장은 병장 달았슴다"
"아, 이제 병장입니까? 축하합니다, 상ㅂ, 아니, 병장."
그러나 어째 레프리콘은 떨떠름해 보였다. 여기서 브라우니는 쿡쿡쿡 웃었다.
"슬슬 행보관이 병장 보고 하사 지원서 쓰라고 하시는 거 아심까?"
레프리콘이 얼굴을 구겼다.
"무서운 소리하지 말아요, 418. 내가 전역해서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농사나 짓는 게 평생 꿈인데."
"그러려면 요번 A급 승급시험 떨어지셔야 하지 말임다"
"아, A급 승급도 준비중입니까? 조만간 B급이라고 무시하지도 못하겠군요? 점점 나아지는군요, 병장"
"그게 말이죠...."
레프리콘은 끄으응, 소리를 내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물론 승급하고 싶다.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 아니 바이오로이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동시에 오르카에 말뚝을 (적어도, 한동안) 박아야 함을 의미한다. 레프리콘 역시 당연히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었고, 동료들 - 주로 스틸라인의 전우들 - 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승급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승급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아마 그녀의 완벽한 은퇴계획은 꽤나 오랫동안 더 뒤로 미뤄질 것이다.
"그리고 말임다, 병장님 농사 지을 줄 모르시지 말임다? 페어리 시리즈도 종종 실수하는데 머리에 든 게 전투모듈 뿐인 군바리가 뭔 농사를 짓슴까"
"그...아쿠아를 데려가면..."
"그건 아쿠아 의사도 물어보아야지요"
샌드걸의 너무나도 지당한 지적에 레프리콘은 그 빨간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끙끙거렸다. 그녀의 생각에 아마 아쿠아는 요안나 아일랜드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도 찾던 산들바람, 녹색의 풀잎들, 푸르고 때로는 노을지는,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 모두가 거기엔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오르카에서 지내는 게 지하 대피소에서 지내는 거랑 큰 차이도 없지 않는가, 란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하늘 아래 수백 미터, 햇살도 잘 들지 않는 우중충한 심연 속을 헤매는 건 지하 대피소나 오르카나 같으니까. 오르카의 카페는, 말했다시피 말이 카페지 솔직히 좀...아직은 그런데도 과연 아쿠아는 여기서 행복할까?
꺄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아쿠아가 웃으면서 커피콩을 들고 온 다프네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역시 같은 페어리 기종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오르카 페어리들과는 잘 지낸다고 했나요"
샌드걸이 묻자 브라우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저는 잘 지냄다. 리제 씨랑 말 잘 통하지 말임다"
그 시저스 리제랑 말이 통한다니 이 브라우니도 만만치 않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혹은 리제의 지능수준도 브라우니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아니, 상병 말고 아쿠아요"
"아! 아쿠아 말임까? 처음에는 좀 서먹했다고 함다. 아무래도 자매들을 보는 건 처음이니...근데 뭐, 동형기들끼리는 코어링크도 되고 말임다. 그리고 거기 큰언니 흉부가 좀 커야지 말임다"
"? 그게 무슨 소립니까?"
"페어리들 무리에서 약간 겉도는 걸 레아 씨가 그 흉부로 껴안으면서 밀어붙이셨다고 함다. 솔직히 저라도 그 말랑하고 따뜻한 거에 폭 안기면 정신줄 놓고 헤롱헤롱 풀어질 거 같지 말임다"
도대체 오르카 내에서 브라우니들이 모르는 건 뭘까.
그래도 다행이다. 밝게 웃는 걸 보니, 잘 지내긴 하는 모양이다. 셋은 아쿠아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괜한 훈훈함과 괜한 섭섭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샌드걸은 작게 손에 든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이제 이건 아쿠아에게 필요없으려나. 그 때, 브라우니가 그 주머니를 알아차렸다.
"그건 뭠까?"
"어...사탕입니다"
"사탕이오?"
"아시잖습니까, 저 금연하는거"
담배를 피우지 않는 샌드걸 기종은 흔치 않다. 샌드걸들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염세주의 하에서 조금이라도 행복을 찾기 위해 담배를 태운다. 링크가 되는 똑같은 샌드걸 기종 사이에서 금연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흡연욕구도 종종 공유되니까. 사탕은 금연자들이 흡연욕구를 견디기 위해 종종 사용하곤 하는 기호식품이다.
"그래서 금연하시려고 사탕을 그렇게 많이 갖고 다니심까? 탄약보다 더 무겁겠슴다!"
"그건 아니고...요번에 인간들의 도시로 수색을 나갔었습니다. 레오나 대장님이 요번에는 사령관님이랑 정말 잘해보겠다고 하셨거든요"
아마 초코여왕의 성 이야기를 말하는 것일 게다. 마리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던 레오나가 그 때 오르카내의 거의 모든 발할라 개체들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거기서...잘 보존된 선물용 사탕을 한 무더기 찾았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보존이 잘된 멸망 전의 식품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대장님이 대원들에게 분배를 해주셨는데..."
샌드걸은 미소지었다.
"저 혼자 먹기엔 좀 많아서요"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레프리콘도 마주 미소지어줄 수 있었다. 이 나보다도 더한 부끄럼쟁이 중위 같으니.
"이제 레오나 소장님에게 직접 포상물자를 분배받을 정도까지 가신 건가요?"
"좀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상병, 아니 병장만은 아니죠"
"그럼 그거 우리 주시는 검까? 햐!"
그녀가 뭘 어쨌건 처음 보는 군것질거리에만 온 관심을 집중하는 바보에게, 샌드걸은 가당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아쿠아 주려고 가져온 겁니다."
"아니, 아쿠아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파는 사탕 중간중간에 뺴먹을 수 있지 말임다!"
"오르카 내에서는 맛볼 수 없는, 멸망 전에 단종된 명품 홍삼맛 캔디란 말입니다!"
브라우니는 울상을 지었다. 맛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서도 먹지 못하는 것은 둠브링어 지니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브라우니들에게도 큰 고통이다. 아마 노래 못 부르는 것 다음일 것이다. 왜 이 사탕이 멸망 전에 단종되어 버렸는지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브라우니의 금방이라도 눈물을 그렁그렁 흘릴 것 같은 표정을 보자 샌드걸은 잠시 어물거렸다. 애초부터 아쿠아에게만 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브라우니의 반응이 너무 강렬하다. 결국 그녀는 흠흠, 하고 말을 바꿨다.
"그...농담입니다. 당신들 몫도 챙겨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울 것처럼 눈이 아련하던 브라우니는 그 말에 금새 입이 헤벌어졌다. 그 염세적인 샌드걸이 농담이라니, 발할라 자매들이 이걸 봐야 하는데. 밝게 미소짓는 샌드걸의 모습이 흔치는 않으리라. 그 모습을 본 레프리콘은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발할라 이외의 부대원도 챙겨줄 정도라니, 발할라 보급사정이 좋은가 봅니다, 중위님"
"그 말 안드바리에게 가서 해봐요. 건카타가 뭔지 보여 줄 겁니다"
"저흰 발할라 자매도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저희랑 나눠먹어도 됩니까?"
"시, 시끄러우니까 받기나 하십시오."
역시 솔직하지 못하다니깐. 샌드걸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게 매일 볼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그래도 샌드걸은, 비록 발할라 자매는 아니지만, 그녀들과 담소를 나누는 게 아깝지는 않았다. 그 지하에서 같이 뒹굴던 게 헛돈 경험은 아니었으므로.
"네, 네, 그럼 커피는 제가 한 잔 더 사죠. 418, 이것만 먹고 작전 뛰러 갑시다"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일어나, 드디어, 저만치서 열심히 커피를 따르는 아쿠아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주문을 하며 인사할 것이다. 잘 지냈는지, 카페 일은 괜찮은지, 페어리 언니들은 잘해주는지, 그리고.....여기서 행복을 찾았는지.
아쿠아를 만날 생각에 들뜬 레프리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라우니가 계속 재잘거렸다.
"병장님, 저도 이제 상병인데 분대장 추천이나 해주시지 말임다"
"418, 당신한테요? 당신 병기본 교범은 읽어봤어요? 지난번 유격 때도 군장에 전투식량 엿새치 넣더만 제가 그런 병사를 어떻게 추천해요!"
"오해심다! 닷새치만 넣었슴다!"
또다시 만담을 벌이는 두 병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샌드걸은 생각에 잠겼다.
인간님들의 옛날 동화책이나 영화 속에서는 거친 고난과 험난한 모험을 거친 이후에는 으레 "그래서 결국은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인생이란 그렇지 않다. 낭만적인 서약 후에는 기나긴 결혼생활이 기다리고 있고, 고통스런 출산과 고된 육아가 기다린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쓰디쓴 고난도 가슴을 에이는 슬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살아있다면,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 구덩이 속의 보석들 같이, 점점이 박혀 있는, 숨어 있는 행복들도 있을 터다.
그러니까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최대한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 낫다. 그리고, 투닥투닥하는 두 스틸라인 병사는, 담배 대신 사탕을 입에 문 발할라의 장교는, 그리고 바쁘게 카페모카에 넣을 커피콩을 준비하는 아쿠아는, 그들 나름대로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말이다.
살아있는 한, 삶은 계속 행진한다.
그 삶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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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덧글들과 마지막 에필로그 덧글을 반영해서, 후기 쓰면서 즉흥적으로 써보았습니다.
그럼, 진짜로 아디오스!
(IP보기클릭)211.201.***.***
소소한 뒷이야기 좋아해서 이런 AFTER 좋아합니다 친구분 말씀 듣고 매운맛으로 안 가서 다행입니다 ㅠㅠ 다시 한 번 재밌게 봤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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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뒷이야기 좋아해서 이런 AFTER 좋아합니다 친구분 말씀 듣고 매운맛으로 안 가서 다행입니다 ㅠㅠ 다시 한 번 재밌게 봤습니다 ㅎ
(IP보기클릭)211.44.***.***
감사합니다.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원래 매운맛 중독자라... | 20.10.23 01:35 | |
(IP보기클릭)58.227.***.***
(IP보기클릭)211.44.***.***
제가 둘 다 제대로 못하고 어중간하게 쓰곤 하는지라..ㅎㅎㅎㅎ | 20.10.23 01:36 | |
(IP보기클릭)203.152.***.***
(IP보기클릭)211.44.***.***
감사합니다! | 20.10.23 01:36 | |
(IP보기클릭)221.154.***.***
해피 에필로그 ㅊ!
(IP보기클릭)211.44.***.***
다음 번에 또 쓴다면 그때는 맵게 써보겟습니다 ㅎㅎㅎ | 20.10.23 01:36 | |
삭제된 댓글입니다.
(IP보기클릭)222.112.***.***
용자추종자
감사합니다. 길게 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소설이란 게, 사실 그림이나 만화에 비해 읽기도 힘들고 관심 가지기도 비교적 어려운 콘텐츠 형식인데 여기까지 읽어주시니 정말 저도 기쁩니다 | 20.11.02 14:4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