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수님...?”
“교수님?”
“아... 네, 듣고있습니다!”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 그래서...”
“요즘은 잠도 잘 주무시고, 식사도 잘 하고 계신다구요?”
“잠에 들어도 예전처럼 자주 깨거나 하지 않으시구요?”
“악몽도 안 꾸시구요?”
“네. 전보다 우울한 것도 많이 줄어든 것 같구요, 덕분에 삶이 풍요로워진 거 같아요.”
“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저는 그저 환자 분의 이야기를 들어드린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요, 상태가 점점 호전되어 가는 게 보이니, 기존에 복용하시던 약의 용량을 좀 줄여보는 것으로 하죠.”
“약은 평소대로 2주 분으로 드리겠습니다. 이전까진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셨다면 이번엔 밤에 자기 전에 복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진료 예약도 마찬가지로 2주 뒤로 잡도록 해도 될까요?”
“교수님께서 편하신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환자가 웃으면서 진료실 밖을 나섰다. 다만 완전한 쾌유는 아니었다. 마음으로부터 오는 병은 쉽사리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병으로부터 나아지기 위한 그 한 걸음의 발걸음은, 그저 단순한 발걸음이 아닌 원대한 도약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존재 의의였다.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반영구적으로 다리를 다친 환자에게 목발을 쥐게 하여주는 것. 그리고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재활치료를 하는 것. 그것이 정신건강의학과의 주된 치료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 걸음의 발걸음을 나아가면, 그것은 두 번째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나아가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아마 거의 다 나을 즈음에는 100미터 달리기 정도는 거뜬해질 것이다.
재활치료.
단순 비교선상에 올리기에는 어폐가 있으나, 정신건강의학과의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의 병은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하는 약도 어디까지나 병이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일 뿐, 결국 호전되기 위해선 끊임없는 상담 진료와 약물 치료를 통해서 환자가 나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물론 그 조력자가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의 역할은 매우 크지만 말이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의학과 자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신경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로 분리된 1982년부터이지만, 정신의학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우울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는 것을 시작으로, 정신의학의 역사는 우울증의 역사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나 정신질환 자체를 나약하거나 의지가 없기 때문에 걸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기간이 상당히 길었고, 그 와중에 악마가 깃들여서 그런 것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을 핍박하고 억압하던 시기도 있었기에 정신의학이라는 의료과목이 인류 사회에서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시기는 아니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사회에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들이 발생하고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정신건강의학이라는 과목이 집중조명되기 시직하였다. 사회에 정신질환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원래부터 사회에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저, 사회가 그것을 순응하고 받아들여 그들을 포옹하기 시작한 시기가 조금 늦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마음의 병도 병이다.
외상이 없어도 아플 수 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의학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즉, 마음의 병은 실체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내상이었다.
청진기도 소용 없고, 메스도 소용없기에 다루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발병하는지 그 사유를 모를 때도 많다. 누군가는 실연의 고통으로 우울증에 걸려오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이유로 양극성장애를 겪는 이도 있으며, 어렸을 때의 괴롭힘으로 공황장애를 겪는 이도 있다. 정신적 충격 및 PTSD로 인하여 자해를 하기도 하고 해리성 인격장애가 발현되기도 하며, 심한 경우 정신분열증이 오는 환자도 있다.
여전히 그들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시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존재하고, 그 현장의 최전선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원인이 무엇이던 간에 미움 받고 아파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깐.
“이 이후에 다음 환자는 없습니다, 선생님.”
“그렇군요. 한 숨 돌릴 틈은 되겠군요.”
진료를 멈추고, 잠시간 얻어진 휴식을 취하며 창 밖의 도시를 내려다봤다.
평온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웃고, 모두가 평온하며, 그 어느 누구도 고통받지 않는 일상을 즐기는 도시.
마키나는 평화롭고 평온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선 아파할 일도, 슬퍼할 일도, 고통받을 일도 없으니깐, 도시의 모든 이들의 얼굴의 만면에 미소가 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진즉에 이 도시를 가동시키지 않았었을까 하면서도, 이제라도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간혹 적잖게 불면증과 얕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 정도는 낙원의 출력을 더 높이지 않아도 자신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방금의 자신이 진료를 본 환자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 곳의 이름은 낙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두가 아파하지 않는, 모두의 소망을 이루며 살 수 있는 도시.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 였어야 했다.
“...”
“하아...”
“... 메리...”
마키나는 한 숨을 길게 내쉬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조곤히 혼잣말로 읊조렸다.
자신의 페어이며, 동시에 이 거대한 도시를 가동하여 더 이상의 고통받는 자들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같이 손을 붙잡고 나아갔던 하나 뿐인 가족. 낙원 도시의 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그녀는 자신의 방식에 반발하여 끝내 지상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도망치는 그녀를, 경비들을 불러다가 붙잡아두려고 했지만, 지하 저수조까지 가동시켜가며 도망치는 그녀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었나 보다.
“여태껏 이런 식으로 낙원을 유지해왔던 거야...?!”
“말해봐... 말해 보라고!!!!”
“이게 옳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이 방법 외에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텐데, 메리.”
“이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 모두를 위해서지...!!”
“그러니 이 질서를 깨뜨리는 이들이 존재해서는 안 돼.”
“그게 설령 메리 너라고 할 지라도...!!!!”
“그러니, 선택해.”
“함구하고 여기 남을지...”
“아니면 이대로 도망치던지...”
“...”
“미쳤어...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 난...”
“... 미치지... 않았어...”
“미치지 않았다고...!!!”
딸이요, 동생이라고, 가족이라 생각했던 소녀가, 겨우 이뤄놓은 낙원을 훼방하는 훼방꾼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켠으로는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말한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어째서일까...
“하아...”
“... 부디 아프지만은 마렴,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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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설정 TMI
오랜만에 짫막 설정 TMI입니다.
마키나와 메리는 둘 다 인게임에서처럼 멸망 전 생존자 출신이지만, 제1차 연합전쟁 이후 마키나의 페어로 태어난 메리와는 다르게, 마키나는 제1차 연합전쟁 이전에 태어난 바이오로이드 인간입니다.
인게임에서의 마키나와 다르게, 소설 속 마키나는 제1차 연합전쟁이 벌어지기 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교수로 의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었습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인 그녀는 PTSD로 인한 정신질환 계의 권위자로 불렸으며, 다양한 학술활동과 사회활동으로 바이오로이드 출신 의사로서는 드물게 대학 병원 교수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사랑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삼고 활발한 의학계 활동을 펼쳤지만, 한 편으로는 약간의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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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0.01 07: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