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 곧 있으면 아빠가 된다고?”
집으로 돌아온 라자르가 웃 옷을 벗으며 아내 피톤에게 말했다.
“그 어린 것이 벌써부터 아를 가졌다니, 참말로 신통방통하단 말이지.”
“우리 애들은 언제 임자 만나서 결혼하려나~”
“... 우리 큰 왕자님은 순항훈련 다녀오더니 벌써 생긴 것 같더만.”
“아, 아빠!!!”
“아하하~ 그렇게 부끄러워 할 일이었니?”
“미안하구나.”
“아, 아니 그렇게 또 갑자기 정색하시고 사과하면 제가 뭐가 되요...”
자신의 첫 째 아들인 카를이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저러다 자기도 이제 아빠들을 따라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가겠지. 대견하면서도, 한 편으론 씁쓸해지는 생각이 들었다. 듣기로는 보통 이런 감정은 보통은 딸에게만 느끼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류가 멸망해서 인류 재건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이다보니 아들들에게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런 것 보다도, 라자르 본인부터가 유달리 자기 아이들에게 애틋한 편이었다. 이 말은 다른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 아니라,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들들을 여러모로 신경쓰고 챙긴다는 뜻이었다. 안 그래도 엄마들 못지 않게, 아니 엄마들 만큼이나 한 미모 하시는 아버지이시다보니 그런 면이 좀 더 부각되는 것이 없잖아 있었다. 당장에 스프리건 주재 오르카 앙케이트에서도 세 명의 지휘관들 중 가장 미모가 예쁘기로는 라자르 대장이 꼽힐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몰라도, 그래도 제법 훈남이나 쾌남의 인상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유진이나 민하준 장군의 아이들과 달리, 라자르의 아이들은 아빠를 닮아 유달리 선이 가늘고 곱상하고 고운 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하여튼 잠시 딴 길로 센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그래도 아이들을 어느 정도 울타리 밖으로 내놓은 유진과 하준과는 달리, 아직 아이들에 대한 보호욕이 강한 편이었다. 아이들에게 애틋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괜히 아이들의 앞 길을 막아세우는 건 아닌가 싶어 언제나 뒤에서만 바라볼 뿐이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졌을 때 유진과 하준은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고 상처를 털게끔 바라만 보지만, 라자르는 아이들이 넘어지는 모습에 자기도 덩달아서 아파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앞서는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끔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못하기에, 다른 아빠들처럼 바라만 볼 뿐이지만 애가 탄다.
그래서 간혹 엄마들 앞에서 아직 자신이 불안정한 부모인 것 같다고, 이래도 걱정이고 저래도 걱정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때도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아끼고 또 애달파 하는 이유는, 자기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 때문이었다.
라자르는 태어나고 9살 이후, 부모로부터 사실상 방치된 삶을 살아왔다. 9살의 아이에게 부모란 메이드와 집사들이 전부였고, 밥을 먹을 때도 같이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 한 명 없었으며, 아파서 몸져 앓아 누웠을 지라도 자신을 위해 걱정해주는 이 하나 없었다. 그저 저명한 의사 한 명 보내주는 것이 끝이었다. 8살의 크리스마스 때까지 같이 레고를 사서 드넓은 거실 바닥에서 다 같이 배깔고 드러누워 소방차와 소방서를 만들던 엄마와 아빠는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곁에 없었고,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메이드도, 집사도 아닌 방 한 켠에 진열장에 마련된 레고들이었다. 자신이 그나마 엄마와 아빠와의 추억이 있던 시절 만들어놓은 레고들부터 해서, 자신이 용돈을 모아 직접 산 레고들까지.
그것들만이, 갑자기 이유없이 세상의 외톨이가 된 자신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자신을 기숙학교로 입학시키겠다 하시며 자신이 만들어온 레고를 버리시던 날에는, 정말 의절할 각오로 악바리를 쓰고 집을 나섰다. 그 날은 비오는 날이었고, 갈 데가 없었던 자신은 도대체 어떤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지역 유지의 상원의원을 찾아갔는지 모르겠지만, 다짜고짜 상원의원을 찾아가 의회추천서를 받아서는 곧장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아마도 사실상 부모의 얼굴을 눈 앞에서 직접 대면하고 본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어쩌다 연락을 할 지언즉, 사무적으로 대할 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더 이상 자신을 자식이라 생각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했다.
한 때 다정다감하시던 부모님께서 왜 갑자기 자신을 차갑게 대하고 홀로 내버려두셨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돌변한 어머니와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을 홀로 보내야만 했던 라자르는, 부디 자신의 겪은 외로움을, 고독을, 고통을 아이들이 되물려 받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자신은 끝내 그 고독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으니깐 말이다. 아직도 알게 모르게 전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은 자신이 감내하고 견뎌내야할 속죄였다.
그래도 비록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로 부모가 되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우려와 다르게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자라주고 있었기에 그것이 자신의 오랜 시간 상처받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었다.
피톤은 오늘 하루도 고생했을 남편에게 수고했다며 따뜻한 커피를 타서 가져와주며 말했다.
“참, 그러고보니 여보는 내일 도쿄에 다녀온다면서.”
“환태평양 사령관이랑 좀 만나서 의논해야 할 일이 생겨서.”
“이번에 하와이에서 벌어졌던 일도 그렇고, 사실상 직접적으로 펙스랑 맞닿아 있는 부대다 보니 이번에 여러모로 논의해야 할 게 많아서 말이야.”
“다음 통합전투사령부 증편, 창설 문제도 있고...”
“은별이가 같이 따라간다고 했었나?”
“응. 내일 아침 첫 수송편으로 같이 갈라고, 언니.”
"그래서 원래는 오늘 퇴근 안하고 사령부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얼굴 볼라 그랬는데, 우가 애 아빠가 되었다고 하니 나도 선물 챙겨주고 축하해주려고 왔다가 보니 이렇게 되었네, 헤헤."
“원래는 합동참모차장의 일인데...”
“알잖아, 이번 일 때문에 근신 처분 받아서 업무 중지된 거.”
“우리 여보야 고생하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그를 탓하진 말아줘.”
“응, 안 그래. 그럴 생각도 없고.”
“나 또한 그에게 고마워 하고 있으니깐.”
“단지...”
“그 친구가 안 받아줘서 그렇지...”
친구라. 과연 자신이 그렇게 부를 자격 조차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게 하준의 귀에 들어갔다간, 자기가 왜 니 친구냐며 또 다시 노발대발할 것이 뻔했다.
노발대발만 하면 다행인거고, 그 양반 성격 생각하면 그 입을 꼬매버리겠다고 달려들어서 또 다시 주변이 난장판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가 영원히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평생을 갚아나가야 할 속죄일 것이었다. 그런 라자르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피톤은 의자를 땡겨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여 주었다.
“언젠가 받아줄거야, 여보.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합참차장도 분명 본질은 좋은 사람일테니, 분명 마음의 문을 열어줄걸세.”
“... 고마워.”
결혼하고 나서 피톤은, 언젠가 대놓고 남편에게 모성애를 느낀다고 하였다.
내가 차라리 당신의 엄마였다면 조금 덜 상처받지 않았을까, 그러면 당신이 이렇게 아파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며, 그러면서 조금 주제 넘게 이야기 했다면 미안하다며 웃으며 사과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멋쩍게 웃어보이는 아내의 미소가 귀여워서, 한 번은 차라리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 피톤은, 그러면 엄마만 다섯 명인 아들인 거냐며 웃으면서 말하였다. 말은 웃으면서 하지만, 과거의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한창 사랑을 받고 자라야 했을 나이에 부모에게 응석 제대로 못 부려본 것이 이렇게 큰 결과를 낳게 되었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괜히 라자르가 아이들의 응석 만큼은 가급적 다 받아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 그럼...”
“슬슬 다른 가족들도 돌아올 시간이니...”
“저녁 준비를 좀 해볼까??”
“...”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나서 가족들에게 위로도 받고 마음의 위안도 얻고 다 좋은데, 아내 피톤의 식사 준비 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
큰 엄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는 소리에 거실에서 쉬고 있던 아이들이 슬그머니 큰 엄마의 눈치를 보며 방 안으로 스리슬쩍 들어가는 모습은 언제봐도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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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참고로 이번 낙원 챕터 제목인 "레고 버리지 마세요" 는
미국의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밴드인 AJR의 Don't Throw Out My Legos를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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