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았다. 그것도 완전히.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결론부터 말하면 참모진들은 아예 처음부터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뭐래더라, 내가 계획이랍시고 세운 게 너무 조악하다던가. 그래서 내 계획에 따라주는 척하다가 우리 셋이 모이는 순간 그 창고에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아니 뭐, 응……. 일이 잘 끝나서 다행이긴 한데. 어째 그 다음 한답시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어……. 그러니까 그게 그냥 딱 거기까지만 꾸민 일이라고?”
“그럼요. 자기들 셋을 한자리에 모아주는 것까지만 우리들의 계획. 그 이후는 아웃 오브 레인지. 전부 자기의 역량에 달려 있던 거랍니다.”
오드리는 내 몸의 이곳저곳을 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고, 한창 옷을 만드는지 치수를 재고 옷감을 대보고 시침핀을 꽂아보는 둥 유난스러웠다. 이미 내 신체 데이터 따윈 미리미터 단위로 다 입력돼 있을 텐데 왜 그러는 걸까.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오드리의 모습이 하도 열성적이라 그런 소린 입도 벙긋 못 할 분위기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안다고 쳐도 신경도 안 쓰겠지. 오드리는 이제 적외선 장비로 내 신체를 한번 좌악 스캔하고 있었다. 내가 감히 얘기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는 덤이었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자기들 사이의 문제에 감히 제삼자가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우리의 최대치는 우연을 가장해서 셋을 만나게 하는 것, 그리고 충분히 오랫동안 얘기할 수 있도록 셋만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나머지는 전부, 저언부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답니다.”
오드리의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엄했다. 하긴 그녀의 말이 다 옳았다. 솔직히 셋만의 시간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 아니겠는가. 그 이상을 바란다는 건 지나친 어리광이고 비겁한 행동이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자 겨우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본의 아니게 어리광을 피워서.”
“괜찮아요. 사실 자기니까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자기는 우리들을 차별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좀 속임수를 쓰는 모양새가 되더라도 화내지 않을 걸 알았으니까 할 수 있었답니다.”
“화를 내긴. 내가 모자라서 모두에게 폐를 끼친 건데.”
“훗, 자기의 강점 중 하나는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단 거예요. 역시 자기에겐 우리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니까요. 우리는 계획이 성공해서 좋고, 자기는 미스 드하고와 미스 아르망의 마음을 얻어내서 좋고. 이제 옛날 이야기처럼 해필리 애버 에프터(Happily ever after)만 남았네요.”
오드리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그렇게까지 쾌활하게 웃진 못했지만 말이다.
“좋긴 뭐가 좋아, 피가 마르는 거 같았는데…….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농담 말아요, 자기. 미스 드하고와 미스 아르망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 그런 모험을 해요? 셋을 거기로 몰아넣는 데만 족히 수십 명이 들러붙어서 애를 먹었다구요.”
오드리는 어림도 반 푼어치도 없다는 투로 가볍게 빈정거렸다.
“게다가 자기의 호러블한 연기력으론 만나는 즉시 둘 다 눈치챘을 걸요? 잊어버린 거 같아서 다시 말해주는데, 자기의 연기 선생님이 바로 그 둘 중 하나셨답니다. 세상에는 스승보다 나은 제자도 있다지만 불행히도 자기한테는 전혀 관련도 없는 얘기 같거든요. 적어도 연기력에 관해서 만큼은 말이죠.”
“…….”
차마 반박할 수 없다는 게 서글펐다. 아르망은 물론이고 내 속내를 못 읽을 애들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실정이니까.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이성으로는……. 이거 참 자존심이 구겨진달까 고맙달까,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이었다.
“하여간에 깜짝 놀래켜 주는 데엔 뭐 있다니까. 서프라이즈를 노린 거라면 대성공이네.”
“서프라이즈? 어머나, 참 자기도 정말 순진하시긴. 고작 셋이서 화해만 시키려고 우리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몇 주 전부터 베리 하드하게 끙끙거린 줄 알아요?”
“…이 이상 또 뭐가 있는데? 설마 지금 나 옷 입혀주는 거랑 관련 있어?”
“호호, 서프라이즈를 말해주면 서프라이즈가 아니겠죠?”
“…….”
얜 평소엔 기분파도 이런 기분파가 없는데 왜 이럴 때만 논리적일까. 그러면서도 오드리는 내 치수를 재고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는 둥 정신이 없었다. 나? 나는 그 창고에서 여기까지 (반쯤은 강제로)끌려온 뒤로 아까부터 팔자에도 없는 모델 노릇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참 그래도 역시나라고 할까, 입은 그렇게 떠들어대면서도 손놀림에는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게 과연 프로라면 프로다운 모습이었다.
“용이랑 아르망은?”
“자기, 서프라이즈라고 했잖아요. 그 둘의 일은 안 말해줄 거예요. 자아, 집중해야 하니까 지금은 나한테만 집중해요. 앞으로 12분 뒤에 보련 양이 헤어 메이크업 해주러 올 거니까, 그 전까지 70% 정도는 끝내두고 싶네요.”
“…….”
그러니까 지금 뭘 준비했는지 말해줄 생각은 없단 거구나. 아니 겨우 셋이 좀 좋은 분위기로 가는가 했더니만, 화해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반강제로 찢어놓는 건 또 뭔데. 보고 싶단 말이야.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런 날 어르듯이 오드리는 가만히 속삭였다.
“토라지지 마요. 그거 빼고 다른 건 다 말해줄 수 있으니까.”
“그럼 우리들을 거기 어떻게 묶어놨는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오브 코스! 기꺼이 말해드릴 수 있죠.”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선 지금까지의 내막부터 듣기로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라면 용과 아르망이 지금 대체 어디 있는 거나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불행히도 요령 있게 원하는 대답을 유도 신문하는 건 내 전문이 아니었다. 인간의 ‘명령’을 내린다면야 일이 해결되겠지만 그러고 싶진 않고. 결국 이럴 땐 맞춰주는 게 최선의 수였다.
“뭐 어떻게 한 거야? 아까 나오면서 보니까 그 창고가 넓긴 넓어도 한 시간 동안 헤맬 크기는 아니었는데. 우리 그 안에서 족히 한 시간은 넘게 걸었다고.”
“이동식 미로라고 하면 믿겠어요? 그야말로 오르카 기술팀의 정수가 담긴 결정체라 할 수 있죠.”
“…미로가 이동을 한다고?”
내 머릿속엔 지네처럼 수많은 다리가 달린 기다란 통로가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게 떠올랐지만, 이어진 오드리의 말에 그런 잡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저는 우아하게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고 명명했지만 닥터는 숫자와 알파벳으로 된 재미없는 이름을 붙였죠. 예술가와 기술자의 의견 차이라고나 할까요? 엘레강스한 작명이야말로 화룡점정인 법인데. 그 애, 정말 다 좋은데 작명 센스가 투 배드에요.”
“…….”
하긴 닥터는 뱀순이니 돌돌이니 하는 귀여운 이름을 좋아했지, 아마. 그런 점만큼은 그 나이 또래의 애들과 똑같았다. 본인은 또 그런 소리 들으면 질색했겠지만 말이다.
“용케도 닥터가 안 삐졌었나 보네.”
“안 삐졌긴요. 그것 때문에 얼마나 다퉜는데요.” 오드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서로 휴전한 것뿐이에요. 나중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파할 거랍니다.”
“애랑 뭘 그런 걸 가지고 진심으로 싸우고 그래?”
“자기, 예술에는 나이가 없어요.”
“…….”
오드리는 단호하게 선을 딱 그었다. 끄응, 예술가들이란. 이름 가지고 한창 대립하는 닥터와 오드리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자즈는 아마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관심을 껐을 거고, 나머지 대원들은 둘 사이의 신경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댔겠지.
“미로에 대해서나 마저 더 말해나 줘 봐. 이름 건은 나중에 닥터랑 실컷 싸우고…….”
“자기도 역시 별일 아닌 논쟁이라고 생각하나 보네요. 하아, 좋아요. 자기와의 깊은 상담은 후일로 미뤄두죠.”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나는 왜? 라는 소리를 다시 밀어 넣기라도 하는 듯, 오드리의 목소리는 유독 투덜거리는 투였다.
“미로의 벽은 제가 이번에 개발한 위장용 특수 재질의 외피를 응용했어요. 그걸 닥터가 무음 드론 수백 대와 연결해서 실시간으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통로로 만들었죠.”
“어, 그러니까 우리가 이 창고 안에서 헤맨 게 아니라 움직이는 통로 안에서 계속 빙빙 돌았단 거야?”
“맞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길을 찾을 수 없었겠죠. 결국 자기들이 있던 그 자리로 계속 우리가 유도했었으니까요.”
“전혀 갇혀 있다는 느낌 같은 건 안 들었는데?”
“마키나와 메리 양의 서포트가 있었으니까요. 벽의 질감부터 음향, 온도에 습도까지 한 통로 안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조차 들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주변을 모방했답니다. 마지막에 미스 드하고가 강제로 벽을 자르려고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대로 교묘하게 출구까지 유도해서, 거기서 서프라이즈를 외쳤을 거예요. 감쪽같이요.”
“아니 내 입장에선 아까 그것도 충분히 서프라이즈였거든…….”
생각해봐라, 당연히 어두컴컴한 미로에 갇혀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주변이 쑥하고 허물어지면 안 놀라고 배겨? 하지만 거기까지 말하자 걱정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아무리 너희가 열심히 준비했어도 아르망이 그걸 예지 못 할 리가 없었을 거야. 그런데 아까 그 통로 무너지면서 봤을 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어. 나 아르망이 그렇게 놀라는 거 진짜 처음 봤다니까.”
다른 의미로 피 말렸던 아까의 광경이 그야말로 눈에 선했다. 아르망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만 뱉어냈고, 용은 아예 초점 풀린 눈동자로 손에 든 칼을 내려다보며 사고가 완전히 정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표정을 짓고 있었을 테고 말이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르망의 예지를 피하다니.”
“후후, 글쎄요?”
속이 쓰려 오는 나와는 달리 오드리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싱글거리는 표정이었다. 재밌냐? 제길, 그래. 재밌었겠지. 완전무결과 철두철미라는 글자를 의인화시킨 듯한 둘이 그렇게 망가지는 모습은 진귀했을 테니까. 솔직히 나도 내 일만 아니었으면 재밌었을 거야.
그러나 나는 몰랐다. 오드리가 지금 진짜 즐기고 있는 건 그때의 광경이 아닌 바로 지금 내가 곤란해하는 표정이라는 것을. 뭐 알았더라도 달리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지만 말이다.
“자기 일 때문에 마음이 엉망이어서 집중을 못 했을 수도 있고,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제대로 예지를 못한 걸 수도 있겠죠. 사람이 꼭 항상 완벽한 컨디션이란 법은 없잖아요?”
물론 우리는 인간이 아니긴 하지만요, 라는 오드리의 악의 없는 빈정거림을 받아넘기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용에 대한 거나 예지가 먹통인 거지 그 외의 일은 아냐.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어머,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정말 고져스한 신뢰 관계네요.”
“말 넘기지 마. 나 조금 진지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걱정도 됐다. 우리가 가능하다면, 만에 하나라도 오메가 같은 적대 세력 역시 아르망의 예지 능력을 무력화시킬 수단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쪽에서 못 하리란 법은 없다. 물론 아르망의 예지 능력 하나 없다고 해서 오르카가 무너질 정도로 거기에 의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자기는 미스 아르망이 예지가 안 통하는 일이 생기면 상처 입을까봐 염려하는 거군요? 너무 감싸고 도는 건 좋지 않아요, 자기. 미스 아르망도 그런 건 부담스러워 할 거예요.”
“나도 알아. 그래도 예지는 아르망의 긍지란 말이야. 가능하면 지켜주고 싶어.”
“미스 드하고에겐 그녀를 여자로서 봐주는 게 긍지인 것처럼요?”
“그래.”
아르망과 용의 긍지. 내 곁에 있다는 긍지. 여자로서의 긍지. 나를 사랑해주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들의 가장 소중한 마음.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갈무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걱정거리를 날려버리기라도 하는 듯 오드리는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걸 알았다는 것처럼.
“걱정 말아요, 자기. 미스 아르망의 예지 능력에 허점이 생긴 건 아니니까. 그저 그 아가씨의 무른 부분으로 조금 빙 돌아서 간 것뿐이에요.”
“아르망의?”
“네. 미스 아르망은 자기에겐 무척 엄격한 주제에 남에겐 한없이 무른 부분이 있으니까요. 정말, 조금쯤은 LRL처럼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텐데.”
기분 탓일까, 패널을 바라보던 오드리의 눈매가 약간 부드러워진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 아가씬 모든 계획과 속임수를 눈치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가 자길 속일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요. 순수한 거죠. 순진하기도 하고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예지의 소녀가, 같은 동료들을 의심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속일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오드리의 표정은 조금 썼다.
“미스 아르망은,”
오드리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뭘 꾸민다 해도 그게 오르카의 위협이 되거나 자기를 다치게 하는 일 따윈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그녀의 예지를 피할 수 있었죠.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은 요소로 미래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거의 도박 아냐? 아르망이 의심이라도 했으면 계획이고 뭐고 없단 거였잖아.”
“거의 도박이 아니라 완전히 도박이었어요. 그때는 뭐, 속이려고 하다가 벌 받았다고 생각하려고 했죠. 이러든 저러든 용서는 구할 거지만요. 아, 물론 미스 드하고에게도 사과할 거예요. 그분 역시 올곧아서, 우리들이 자길 속일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두 분 다 정말 한없이 바른 분들이시라니까요. 대체 누구에게 물들었을까요? 네?”
“킁.”
시선이 마주친 것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고갤 돌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설마 이런 식으로 빈정거리는 칭찬을 들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훗, 그렇게 좋아요?”
“뭐, 뭐가?”
“뭐긴요, 미스 아르망과 미스 드하고 말이죠. 얼굴에 떡하니 써 있는 걸요. 여기 있지도 않은 두 분 때문에 자기가 내게 집중 못 하는 건 조금 분하긴 하지만……. 뭐, 오늘만큼은 봐 드릴게요. 오늘의 주역은 누가 뭐라 해도 자기와 그분들이니까요.”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오드리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햇살처럼 따스한, 마치 훌쩍 큰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미소처럼 부드러웠다.
“약속할게요. 오늘을 자기 인생의 최고라 할 수 있는 날로 만들겠어요.”
“…고마워.”
뭘 약속했는지도, 이 다음에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듣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고 싶진 않았다. 이건 오드리의, 아니 모두의 선물이니까. 선물을 받는 당사자가 먼저 선수를 친다면 그거야말로 예의가 아닌 셈이었다.
“좋아, 디자인은 끝났어요. 아쉽지만 이제 잠깐만 물러나 있을게요. 당신의 헤어가 아름다워지는 동안, 나도 내 최고의 작품을 마무리 지어야 하니까.”
위잉
“오드리 님! 아, 손님도! 저 딱 시간 맞춰 왔죠?”
그렇게 오드리가 내게서 물러나는 순간, 공방의 문이 열리며 보련이 들어왔다. 양손에는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많은 메이크업 도구를 들고서 말이다. 표정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흥분한 상탠지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오드리는 굳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도 그럴 게 보련의 표정이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해요, 보련 양. 마침 우리 자기가 입을 수트 디자인이 다 끝난 참이랍니다. 이전 일은 잘 됐나요?”
“그럼요!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왔죠! 보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아주 좋아요. 저는 이제 수트 만들러 갈 테니까, 이따가 자기의 수트 입는 건 보련 양이 좀 도와주세요. 수트핏에 어울리는 메이크업까지, 믿고 맡겨도 되겠죠?”
“물론이죠. 믿고 맡겨주세요.”
“좋아요. 그럼 자기? 좀 이따가 봐요. 깜짝 놀랄 준비 잔뜩 하는 거, 잊지 않았죠?”
“그래. 아주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깜짝 놀라 줄게.”
“원더풀! 후훗, 뭘 상상하든 기대 이상을 보여드릴 테니까요!”
오드리는 내게 손키스를 보내며 공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해방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바통을 넘겨받은 보련은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능숙하게 흰 천을 두르고 빗이며 가위에 도구들을 세팅했다.
“자아, 손님! 오늘을 빛낼 주인공이 될 준비는 되셨나요?”
“어…….”
아직 너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주인공이야. 그런데 내 ‘어…….’를 알아들은 건지 어쩐 건지, 여하튼 보련이는 내 말을 반쯤은 듣고 반쯤은 흘려듣는 듯한 태도로 내 머리에 빗을 댔다가 머리카락을 만져봤다가 부산을 떨었다.
“스타일은 어떤 게 좋으세요? 댄디하게? 아니면 스포티하게? 손님이니까 어떤 머리든 어울릴 거예요!”
“그, 그런가?”
“그럼요! 아, 정말 이런 날을 위해 평소부터 손님 머리를 가꿔놔서 정말 다행이에요. 세상에 이 윤기 좀 보세요. 역시 저번 달에 쓴 멜리나 제약 제품이 가장 손님께 딱 맞다니까요? 오드리 님의 수트라면 분명히 어떤 머리를 해도 어울리겠지만요!”
“…….”
지금 저 말을 3초 내로 뱉어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그, 알아서 맡길게. 나보다는 네가 더 머리에 대해 잘 알 거니까.”
“역시 손님! 그럼 보련의 헤어 살롱의 오늘 추천 코스는요,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보련이는 나한테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대답하는 건지 모를 기세로 입과 손을 와다다다 움직이며 내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텐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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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아니면 다음다음화에서 마무리
가능하면 다음화에서 마무리
기다리신 분들 있으면 감사하구요
늘어지는 거 같은 느낌 들어도 죄송합니다
다음화로 뵙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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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리고 우리들은 행복해졌다-1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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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오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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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장르전략, RPG한글 지원한국어지원(음성/자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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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사스튜디오 발키리일정[출시] 2019.01.24 (안드로이드)[출시] 2019.11.14 (아이폰) [출시] 2021.11.24 (웹브라우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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