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메이 vs. 아스널! 폭풍을 부르는 전설의 고백대작전! 메이 편
오르카에서 가장 위험한 대원은 누구인가.
혹자는 교살용 밧줄이 매달린 커다란 가위를 휘두르며 사령관에 대한 집착 증세를 보이는 페어리의 시저스 리제를 꼽을 것이오, 또 누군가는 오르카에 오자마자 화려하게 약물로 대사건을 일으켰던 주방장, 소완 S2를 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개념은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는 법.
그러니, 지금의 사령관에게 있어서 오르카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을 꼽는다면…….
“메이 소장의 소식은 잘 들었다, 사령관!!! 비록 선공을 빼앗겼다만, 아직 승부가 난 건 아니다! 나는 사령관의 아이로 여단을 이룰 생각이니 각오하도록!!!”
……대낮부터 함교에 들어와서 누가 보든 상관 않고 사령관에게 위풍당당하게 포부를 밝히는 여장부, 아니 미치광이인 AA캐노니어의 지휘관, 로열 아스널이었다.
“쮸, 쮸인님?! 저, 저 해ㅉ… 아니 저 사람, 대, 대체 찌끔, 뮤, 뮤슌 말을 햐뉸 견가요?!”
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폭탄선언 때문에 언어 모듈이 쇼트를 일으킨 듯, 혀 짧은 말과 함께 더듬거리는 시저스 리제,
“우애애애애옹!?!?!?!”
과거, 펜리르에 의해 장난삼아 얼굴에 식빵이 끼워졌을 때 마냥 눈동자가 서로 다르게 위아래로 향하며 사람의 목소리 대신 고양이 울음을 내는 리제의 선임 부관, CS 페로,
‘파킨-!’
오래간만에 쓰고 나온 안경이 새하얗게 김이 서리다가 쩌적 금이 가더니 파편이 와장창 튀어나온 콘스탄챠까지,
사령관 곁에 있던 모두가 완전히 얼이 빠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 아스날 준장님, 인류 재건에 의욕을 보이시는 건 좋지만…….”
“내 대의는 정당하고 내 의지는 강하다. 그리고 내 총은…”
“그만! 거기서 총 이야기는 또 왜 나오는데?!”
어렵사리 말을 꺼낸 콘스탄챠의 만류도 뿌리치는 아스널을 보곤 사령관이 황당하다는 듯이 일갈하자 그녀는 도리어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를 올렸다.
“남자라면 다들 좋아한다는 만화를 참고했지. 이래도 난 사령관의 취향을 고려하는 상.냥.한 여자라고?”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야, 상식의 문제!!”
아스널 특유의 호쾌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등골이 서늘하게 만드는 웃음을 보면서 사령관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빠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발렌타인 때 이미 징조가 보이긴 했다.
만나자마자 사령관의 역량을 보겠다며 동침을 요구해버린다거나, 티아멧과 에밀리가 어린아이들처럼 옆에서 코~ 하고 자고 있는데도 스스럼없이 ‘3명도 괜찮다만’하고 말하던 모습이라던가.
하지만 사령관은 그걸 대수로 여기지 않았다.
표현의 강도가 좀 다를 뿐이지 결국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사령관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아스널은 지휘관 개체니 좀 더 당당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일 뿐이라 생각해서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솔직하고 시원시원한 그 모습에 반하기까지 했다. 진중한 마리, 냉정한 레오나, 고압적인 메이와 달리 속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으니까.
그 때까지는.
괌을 공략하기 위해 캐노니어 부대를 투입하기 전까지는.
아스널의 포부가 단순히 사령관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애정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령관은 자신 휘하에 정말 황당한 지휘관이 들어왔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메이와 누가 주공을 맡을지 다툰 것 때문에 둘에게 벌을 주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날 메이는 머릿속에 꽃밭을 피웠는지 질책을 가장한 데이트를 생각하고 왔지만, 이 무시무시한 지휘관은 알렉산드라에게서 BDSM 도구를 빌려와서 ‘자, 내게 벌을 다오 사령관!’하고 눈에 하트까지 띄면서 기대에 가득 찬 투로 요구하는 바람에 사령관은 기존에 생각해두던 질책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일단 둘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세상에 이런 지휘관이 어디 있나.
이런 지휘관을 보좌하고 있을 비스트헌터에게 미안해졌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에밀리에게 부관을 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그건 더 안 될 일이다. 안 그래도 억제기가 없는 아스널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에밀리를 붙여놓으면 에밀리까지 동시에 날뛰게 될 것이다. 아스널이 하는 행동과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에밀리라니, 사령관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꼈다.
이래서 사령관은 아스널이 무서웠다. 그녀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가 없었기에.
지휘관 개체들은 복잡한 전장 상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짜야 하니 복잡한 사고방식을 지니는 게 당연한데, 아스널의 사고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대의가 정당하고 의지가 충만하다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방침이었다. 철충이고 별의 아이고 그녀가 하는 말을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아이고 우린 감당 못 하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인간 녀석아!’라고 하면서 긴급 탈출할 것이 분명했다.
“상식은 중요하지 않다 사령관. 인류가 멸망한 세계에서 인간의 상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령관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차마 반박할 근거가 없어서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찾아가도록 하겠다, 사령관. 기대하도록, 우리 앞길엔 오로지 승리뿐이니!”
활짝 웃고는 망토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그 모습은 이미 사령관 휘하의 지휘관이 아니라 침략 전, 미리 탐색하고 돌아가는 정복왕을 연상케 했다.
-피해야 해, 어떻게든 아스널에서 살아남아야 해!
이대로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그는 아스널을 좋아하고 아스널도 그를 좋아하는 건 분명했지만, 이건 단순히 애정의 문제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건 주도권의 문제였다. 그는 총사령관이고 아스널은 그를 모시는 입장이다. 사령관인 그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휘둘릴 수는 없었다.
사령관은 어느새 턱까지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으며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
“우와……. 아스널 대장이 그랬다고요? 생각 이상으로 엄청 대범한 여장부네요.”
그날 오후.
평소에 한산하던 식물원에는 오래간만에 서로 얼굴을 아는 이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서 약간 북적거리고 있었다.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콘스탄챠가 애지중지하는 안경을 깨 먹고 묵언 수행하면서 돌아올 정도지 뭐야.”
라비아타가 한숨을 쉬면서 한 말에 레아도 약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머, 콘스탄챠도 그랬어요? 저희 리제도 오전 업무를 끝내고 돌아오니까 횡설수설하면서 제게 매달릴 정도였는데. 그래서 오후 정원사 업무는 다프네랑 아쿠아한테 맡겼지 뭐에요.”
“리제가 의외로 예민한 아이긴 하지……. 그럴 만해. 가뜩이나 최근에 연산 모듈까지 추가로 이식했는데.”
“그렇죠……. 근래에 참해지고 의젓해져서 얼마나 보기 좋았는데 이걸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삼안의 큰 언니와 페어리 제품군의 맏이가 시름이 담긴 말을 나누는 것을 들으면서 경호대장은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레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보니 페로도 현장에 있었다는데, 별문제 없었나 봐요? 말이 없네요, 리리스 양.”
“우리 고양이는…… 커다란 야옹이가 돼서 돌아왔어요.”
“에?”
페어리 시리즈 맏이의 반응에 블랙 리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시면 돼요, 레아. 우리 페로는 사람 말을 못 하는 진짜로 큰 고양이가 돼서 돌아왔어요.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야옹, 애옹, 우애옹’ 뿐이더라고요.”
“세상에, 그럼 업무는…….”
“업무는 무슨, 도저히 본래 일정대로 경호를 맡길 수 없어서 방금 비번인 금란 양에게 연락해서 메꿔야 했는걸요. 지금은 한숨 푹 재우고 있어요.”
“……생각보다 심각한데?”
레아는 머릿속에서 페로가 어떤 상태인지 그려보려는 듯 시선을 천장으로 향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안색이 나빠지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침착한 고양이가 그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라니, 정말 아스널 대장은 강렬한 사람이네요.”
라비아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죽했으면 주인님이 우리한테 그 사람의 폭주를 막을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셨을까.”
“그러네요. 보통 같으면 우리에게서 조언만 얻으신 후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실 분이신데 말이죠.”
-아스널이 저렇게 말하고 쳐들어오는 걸 보니 도저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어떻게든 막거나 말릴 방법을 좀 찾아줘!
이토록 사령관이 공포를 느끼면서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과거에도 있었던가? 별의 아이를 마주할 때도 분명히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음, 주인님의 요청 말인데요, 라비아타 ‘언니’. 리리스는 좀 다르게 생각해보고 있어요.”
“다르게 생각해봤다고? 어떻게?”
라비아타와 레아의 말을 곰곰이 들으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던 블랙 리리스는 노란색 보석이 세공된 반지가 끼워진 왼손으로 뺨을 톡톡 치고 있다가 찬찬히 테이블로 내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로 주인님의 요청대로 아스널 대장을 막는다면 이후에 무슨 후폭풍이 들이닥칠지 예측해봤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철저하게 계산적이네요, 결과는요?”
레아가 두 눈을 쫑긋 뜨고 묻자 리리스는 한숨과 함께 답해줬다.
“3일 이내 아스널 대장의 주도 하에 캐노니어 부대가 사령관을 납치 및 감금할 가능성이 99.9%이에요.”
“.......제가 숫자를 잘못 들은 게 아니죠? 게다가 뭐에요, 그 범죄 사건을 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단어들은?!”
레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되물었지만, 블랙 리리스는 딱 잘라서 답해줬다.
“99.9999%인데 줄여서 말한 거예요. 엄한 단어들은 검열한 거고요.”
“아자젤 맙소사.”
레아가 혀를 내두르는 사이, 라비아타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이 뭐니, 리리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에 라비아타가 생각한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사이, 레아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을 말했다.
“설마 오르카의 화목을 위해 사령관을 아스널 대장에게 제물로 바치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후후, 미안하지만 정답이에요.”
설마, 하는 마음에 레아가 한 말에 호박색 눈의 경호처장은 웃는 얼굴로 그녀의 생각이 맞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을 덧붙였다.
“욕망은 억누를수록 더욱 강해지는 법.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욕망을 해소시켜야 더 큰 사고가 터지는 걸 방지할 수 있을걸요?”
“아니, 이런 데서 이름값을 하면 어쩌자는 거니…….”
골치 아픈 듯, 인중을 문지르고 있는 라비아타를 보면서 블랙 리리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장담컨대, 지금쯤 주인님의 요청으로 소집되어 진행되고 있을 아스널 준장님을 제외한 지휘관 긴급 대책회의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갈걸요?”
“설마? 그 고지식한 무적의 용이랑 불굴의 마리가 주도하고 있는 회의에서?”
기가 찬 듯, 라비아타가 반박하는 것을 들으며 리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씨익 웃었다.
경호대장의 눈과 귀를 피할 곳은 오르카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
로열 아스널의 폭주 대응 회의.
같은 시각, 아스널을 제외한 오르카의 지휘 개체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회의의 명칭이었다.
“그냥 사령관을 한동안 각자 부대의 숙소로 돌려가면서 머물게 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처음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철혈의 레오나였다.
실행도 쉽고, 사령관의 피신과 호위도 쉬운데다가 지휘관들 각자가 원하는 ‘사령관과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라는 꿍꿍이도 만족할 수 있는, 지휘관 모두의 욕망을 충족할 방안이기도 했다.
“레오나, 너 로열 아스널이 수틀리면 에밀리까지 동원할 거란 건 생각 안 한 거 맞지?”
“응? 아무리 그래도 설마 아스널이 막 나가도 그 정도까지 하겠…….”
“하고도 남아. 걔가 괌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벌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거야?”
의외로 가장 찬성할 줄 알았던 멸망의 메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의를 제기하자 레오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애초에 아스널이 상식적인 목적으로 상식적인 수단을 사용할거라면 사령관도 이렇게까지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이 소장의 말대로 아스널 준장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아마 레오나 네 안건대로 간다면 처음 피신할 네 발할라의 생활관부터 제녹스의 포화가 꽂힐 거다.”
“그러네요. 더 슬픈 사실은 아스널 준장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그건 폭주라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지만요.”
신속의 칸과 홍련 역시 메이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하자 레오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런 지휘관들의 토론을 뒤로 한 채 사령관에게서 받아온 캐노니어의 지휘관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있던 무적의 용은 턱을 짚고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흠, 사령관을 함대 내 다른 함선으로 이동시키는 경우도 고려하고 있었지만, 사령관이 언제까지고 오르카 밖에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하겠군.”
“무엇을 해도 로열 아스널의 성격 상, 잠깐이나마 시간에 끄는 것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라면 결국 아스널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이야기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차마 사령관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사령관의 절실한 요청을 받아 지휘관들의 토론장을 연 불굴의 마리 역시 고민이 많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들의 우수한 두뇌로도 이 문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난감한 과제였다.
“우리가 인류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듯, 사령관도 인류의 재건을 위해 봉사하는 게 마땅하다고 조언을 드리는 건…….”
“말이야 맞는 말인데, 그런 식이면 아스널과 우리가 다를 게 뭐가 있어? 아스널이 부당한 걸 요구해서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게 아니잖아?”
“사령관이 진짜 걱정하는 건 아스널을 상대하다가 복상사 당하는 것 같은데, 아예 특훈을 하여 체력을 좀 더 보강시키는 건 어때?”
“저번에 경호대장이 사령관을 상대로 심술을 부릴 때처럼 말인가? 그 때도 후유증으로 사령관이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또 그 모습을 보고 싶은가?”
“문 밖에 다프네 등 의료진을 대기시켰다가 긴급 상황이 되면 바로 꺼내오는 건……”
“지금도 아스널을 막지 못해서 이렇게 회의를 하고 있는데, 막 불이 붙은 아스널에게서 사령관을 빼내는 건 불가능해. 이건 오로지 사령관 홀로 감당해야 할 문제다.”
한편, 지휘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는 사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함께 온 부관들은 로열 아스널의 선전포고를 말없이 돌려보다가 조용히 하나둘 입을 열었다.
“이거……. 이리저리 보더라도 아스널 준장님 욕구불만 상태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무리 봐도 그러네요. 저희 꼬맹이 대장이 술주정 부릴 때랑 차이가 없군요.”
“이대로 두면 더 큰 사건을 일으킬 것 같네요.”
캐노니어의 대장의 영상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부관들은 이 당돌한 선전포고의 이유를 간파할 수 있었다.
욕구불만.
각자 다른 대장을 모시고 있는 부관 바이오로이드들이었지만, 그녀들에게 있어서 이런 ‘난동’은 나름대로 익숙한 일이었다.
“흐음, 그러면 해법은 간단하겠는걸요? 다들 한 번씩은 해봤지요?”
“포장지를 화려하게 만들어서 사령관님 방에 밀어 넣거나, 사령관님을 아스널 준장의 방에 밀어 넣고 밀봉한다.”
“역시 부관들 생각은 똑같군요. 그럼 대장님들이 납득 가능하게 구체적인 방안을 계획합시다.”
발키리부터 시작하여 나이트 앤젤, 탈론 페더, 그리고 레드후드까지. 오르카 내의 부관들은 욕구불만으로 인한 대장들의 이상행동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선 데이터가 엄청나게 쌓여있었고, 그걸 기꺼이 공유하는 게 오르카 사회의 화목과 평화를 공고히 하는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괌에서 레오나가 부관인 발키리한테 ‘날 속였어!’하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 건 유명한 이야기고, 레드후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이 취향이 있는 상관의 욕구불만을 해소해주기 위해 브라우니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아예 상관인 마리의 포장지라 쓰고 옷이라 읽는 걸 화끈하게 바꾼 후 사령관의 방에 밀어 넣은 전적이 있었다.
유일하게 그런 쪽의 경력이 없는 것은 호드의 탈론 페더였지만, 그건 호드의 대장에게 그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대장보다 부관이 욕구불만인 유일한 부대, 그것이 앵거 오브 호드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욕구불만의 발단과 전개, 절정과 결말에 관한 자료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축적한 건 탈론 페더였으니, 그녀 역시 이 전문가 회의에 참석할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문제는 그것을 지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장들에게 어떻게 납득이 가능하게 설명을 하느냐, 였다.
“누가 총대를 메실래요? 제가 말하면 ‘저번에는 영창으로 끝났는데 이번에는 또 어디에 처박히고 싶냐!’면서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한데.”
탈론 페더는 조심스럽게 다른 부대의 부관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녀의 말에 C-77 레드후드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옆에 뒀던 모자를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할 테니 다들 걱정 붙들어 매시길.”
그렇게 말한 후, 레드후드는 다른 부관들을 보면서 당부의 말을 건넸다.
“여러분은 대장님들의 설득이 끝난 후 라비아타 통령께 어찌 설득할지부터 고민해보십시오.”
부대의 부관들은 레드후드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로열 아스널은 여러 가지로 오르카의 자연재해와 맞먹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
“대장, 대낮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다니신 거예요?!”
한편 같은 시각, 캐노니어의 생활관.
AT-100 비스트헌터는 오전에 이미 오르카 내에 쫙 퍼진 소문을 전해 듣고는 완전히 질린 채로 질책하듯 말하고 있었다.
“흠, 벌써 소문이 난 건가? 효과가 좋군.”
부관의 그 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로열 아스널은 걸치고 다니던 망토를 옷걸이에 휙 던져 내걸고는 씩 웃었지만 비스트헌터는 머리를 감싸고 절규했다.
“효과가 좋고 말고를 떠나서 저희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파니랑 레이븐도 얼마나 난감해하는 줄 아세요?!”
아스널의 폭탄 발언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오르카 내에서 캐노니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하게 바뀌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밀리는 요즘 왜 남들이 자신들을 피하냐고 묻고, 파니와 레이븐은 에밀리에게 차마 어찌 설명해야할지 끙끙댔으며, 업무 때문에 자주 밖을 오가는 부관인 비스트헌터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관의 속도 모르는 채, 아스널은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우리의 방법대로 했을 뿐이다. 충격과 공포! 목표를 뒤흔들고 틈을 노려서 친다! 익숙하지 않은가!”
“그 충격 요법에 우리도 휘말렸다고요! 적어도 피아 구분은 하셔야 할 거 아닌가요!”
위풍당당한 아스널의 말에 정신이 아찔해진 비스트헌터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리고, 여단을 이룰 정도로 낳는다고요?! 대장, 우린 바이오로이드지 인간 생산 공장이 아니에요!”
“포부는 크면 클수록 좋다! 적이 저렇게 끝도 없이 몰려오는데 언제까지 숨어 다녀야 하겠나?”
“가능한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거예요! 한 번에 10개월, 게다가 매번 쌍둥이만 나온다 쳐도……. 하아…….”
허리춤에 손을 얹으면서 눈을 번쩍거리며 말하는 대장의 말에 비스트헌터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에 분명 사령관님이 죽을 거라고요. 대장이야 바이오로이드라 철충이나 그 별의 아이인지 뭔지에 당하지 않는 이상 안 죽는다지만, 사령관님은 인간이라고요.”
“흠, 그런가? 너무 원대한 목표를 잡았나보군.”
“아무렴요. 여단을 꾸릴 만큼 낳는다니.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니까요.”
겨우 설득에 성공하여 고집을 꺾는 것에 성공했는지, 고민에 빠지는 아스널을 보면서 비스트헌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사령관의 후손에게 그 대업을 물려주도록 하지! 육체는 쇠할지라도 의지는 불멸하리니!”
“아 대장님! 제발!”
‘꾸욱’
비스트헌터가 골머리를 앓으면서 로열 아스널의 광기에 치를 떨고 있는 사이, 누군가 옷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는 느낌이 났다. 그 순간, 지금껏 너무 목소리를 키웠다는 생각이 비스트헌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비스트헌터……. 대장, 아기 낳는 거야……?”
‘돌겠네, 진짜.’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비스트헌터에게 있어선 고난 그 자체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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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호러(사령관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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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