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이터 3 캐릭터 노벨
제 3장 클레어 빅토리어스 편
「때묻지 않은 선택 1화」
도움을 청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그것이야말로 빅토리어스의 명성에 걸맞는 귀족의 모습이라고 배워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될 거야.
어렸을 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그런 귀족으로서의 사명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막연한 상태였다.
생명을 구할 것인가. 생활을 도와줄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이해자가 되어줄 것인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무렵이었다.
"아, 아버지! 오빠! 어서오세요!"
녹음이 우거진 정원의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래, 다녀왔다 클레어.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니?"
그렇게 말하며 내게 상냥한 시선을 보내온 사람은 아버지인 랜달 빅토리어스였다.
그의 팔에는 인류의 수호자라는 증거인 붉은 팔찌가 있었다.
"오늘은 말이야! 맛있는 홍차를 타는 법을 공부했어! 나중에 방으로 가져갈게!"
"그래? 그건 기대되는구나. 하지만 찻잔을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 또 나를 어린애 취급해! 난 그러지 않는 걸!"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려서 허리에 손을 댔다. 그 순간.
"맞아요, 아버지. 클레어도 이제 어른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어린애 취급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클레어."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사람은 오빠인 에드릭 빅토리어스다.
오빠의 팔에도 아버지와 같은 붉은 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응! 역시 오빠가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어!"
난 오빠에게 꼭 안겼고 우리는 이곳저곳에 꽃이 피어있는 정원을 걸었다.
꽃의 씨앗 자체가 귀해서 아직은 숫자가 적지만, 귀족으로서의 사명과는 별개로 언젠가 이 항구를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내 꿈이었다.
넓게 펼쳐진 꽃밭에서 아버지나 오빠, 빅토리어스 가를 섬겨 주고 있는 사람들, 이 항구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만들어주고 싶다.
말 그대로 꿈과 같은 풍경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용기가 깃들었다.
아버지의 방에 방금 탄 홍차를 들고 들어갔더니 실내는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도 이 항구에 많은 난민들이 모여들었다... 가능한한 수용을 하고 있지만 역시 새로운 항구를 건조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선은 각지의 새틀라이트 거점을 항구 건조의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적어도 장갑벽이 있는 만큼, 건조 작업 중에도 아라가미의 습격에는 대응하기 쉬울 겁니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아버지와 오빠가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재앙으로 인해 펜리르 본부가 회역에 휩쓸리면서 우리는 그동안 살았던 장소에서 쫓겨났다.
재앙 전 지하에 건조되어 있던 거점을 재빨리 항구로서 운용하여 우리들은 간신히 이주처를 찾아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재앙 전에 펜리르에 소속되어 있던 갓 이터와 그 친족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회역에 휩쓸릴지 모르는 공포를 안은 채 정처없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 아버지가 방 입구에 서 있던 나를 발견했다.
"오, 클레어. 차를 끓여 와 준거니? 고맙다."
엄격했던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린 아버지는 의자를 준비해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잔으로 손을 뻗었을 때, 방의 입구에 당황한 모습의 사용인이 들어왔다.
"랜달 님, 글레이프니르로부터 통신입니다. 시급하다고 합니다.
"알겠다. 정말이지, 차 한 잔 마실 틈도 없군... 클레어, 미안하다. 곧 돌아오마."
서둘러서 떠난 아버지의 등을 배웅하고, 나는 오빠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봤다.
"일 힘들어?"
"그렇지... 날마다 답이 없는 문제들뿐이야."
"곤란한 일이 있으면 뭐든지 상담해! 나도 빅토리어스 가의 일원이니까. 언젠가는 아버지도 오빠도 도울 수 있게 될 거야!"
재앙이 발생하기 전, 아버지는 글레이프니르라는 정예 갓 이터들의 사단을 창설하여 초대 사단장으로 활약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후계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오빠와 함께 회역에 맞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같은 가족인데도 두 사람은 나 같은 게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다.
이 두 사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일을 나는 아직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일 가족에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적어도 들어주는 역할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오빠는 손에 쥔 잔의 가장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클레어,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말을 알고 있니?"
"카르네아데스...?"
"클레어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어. 하지만 어느 날, 배는 폭풍우를 만나서 침몰하고 말았어. 클레어는 한 장의 판자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건졌어.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생존자가 헤엄쳐 온 거야."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의 정경을 떠올리며, 나는 숨을 삼켰다.
"그 사람은 클레어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하지만 클레어가 매달려 있는 판자는 두 사람이 올라타면 확실히 가라앉아 버려... 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을 할 것이냐. 아니면."
잠시 뜸을 들인 후, 오빠의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것이냐... 클레어는 어떻게 할 거야?"
둘 중 하나밖에 살아남을 수 없는 무거운 선택의 이야기.
오빠의 조금은 무서운 시선을 받으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나, 나는... 둘이서 함께 살 방법을 찾고 싶어!"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넌 정말로 상냥하구나. 하지만 혹시라도..."
오빠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계속했다.
"함께 살 방법을 찾을 동안 판자가 가라앉아 둘 다 죽어버린다면... 그건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이 막힌 순간, 아버지가 방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자, 차를 마시자꾸나. 클레어, 오빠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니?"
"그, 그게..."
"긴급 시에 어떻게 사람을 구하느냐는 이야기에요. 아버지, 클레어는 마지막까지 구해야 할 목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호오, 그건 멋진 마음가짐이구나. 클레어가 올곧은 마음을 지닌 채 자라줘서 이 아빠는 자랑스럽다."
아버지는 정말로 기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셨다.
칭찬을 받은 것 같아서 나도 기뻤지만, 방금 전의 이야기는 정말로 그런 의미의 물음이었던 걸까.
어느 날 심야의 일이었다.
"너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거냐!!"
천둥 같은 아버지의 호통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머뭇거리며 복도로 얼굴을 내밀자 아버지의 방에서 굳은 표정의 오빠가 나오고 있었다.
일 때문에 의견을 나누는 일은 있어도,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아버지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날 밤은 불안과 곤혹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아버지도 오빠도 일절 입을 열지 않았고 저택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임무에 나가지 않고 정원 벤치에 혼자서 앉아 있는 오빠를 보고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곁으로 달려갔다.
"오, 오빠! 무슨 일이야? 아버지는 왜 그렇게 화가 나신 거야...?"
"아... 어제 그 대화를 들었구나."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오빠는 긴 침묵과 함께 허공을 응시했다.
"클레어, 미안해... 나는 이 집을 나가기로 했어. 이제 함께 살 수 없어."
"어... 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미안해, 클레어. 아버지를... 잘 부탁해."
"시, 싫어... 싫어! 어째서!? 오빠, 가지마!"
가지 마. 이별이라니 싫어.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오빠에게 매달렸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오빠는, 이윽고.
"클레어...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
그런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일순간, 그렇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오빠는 외톨이가 되어버려.
나만이라도 곁에 있어줘야지... 언젠가 아버지와 화해할 계기를 만들어줘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클레어, 이 세계에는 말이지 살아남아야 할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어."
부드러운 미소를 띤 오빠는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그 사실을 확실히 확인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후회하지도 않아."
"오, 오빠...?"
"너도 분명 알게 될 때가 올 거야. 이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는 순간이. 그러니까..."
어째서일까?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오빠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깊은 어둠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삼켜질 듯한, 비유할 수 없는 압박감에 희미한 공포를 느꼈다. 그때.
"클레어!!"
저택에서 뛰어나온 아버지가 억지로 오빠를 내게서 떼어냈다.
당황하는 나를 감싸듯 선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빠를 마주한다.
"두 번 다시 클레어에게 접근하지 마라... 이 짐승 같은 놈..."
"유감이네요, 아버지... 이걸로 작별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오빠는 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원을 나섰다.
답답한 기색이 사라지자 아버지는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었다.
"클레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아버지가 꼭 껴안는다.
"나는 너에게... 굉장히 무거운 것을 짊어지게 할지도 모른단다."
깊은 낙담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도, 나를 껴안은 그 팔도 떨리고 있다.
"알겠니? 지금은 아직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부디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게 있단다."
아버지는 똑바로 내 눈을 바라보며, 타이르듯 말을 이어갔다.
"언젠가, 내가 너에게 짊어지게 한 것 때문에 네가 원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한차례 깊게 눈을 감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망설일 것 없다. 그런 건 버려도 돼."
그 말은 지금까지 아버지가 해주신 그 어떤 말보다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마음에 깃든 정의는 반드시 너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너는 네가 원하는 미래를 살거라."
무언가 큰 의지를 맡기셨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그것의 의미를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 안에서 나는 맡겨진 의지와 사라져 버린 오빠를 언제까지나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 : 카와세미 히스이 (주식회사 테일 포트)
원안 : 요시무라 히로시 (주식회사 반다이 남코 스튜디오)
역자 : eito
